|
김형경 예전 소설들은 안 읽었었는데, 에세이들은 좀 봤던 것 같다. 오랜만에 새로 쓴 소설이라길래, 또 분량도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집었다. 에세이는 쉽게 마음이 개운해지지만 소설은 대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읽을 여지가 많은 것 아닌가.
그렇게 김형경 소설이라는 걸 전제로 하고 읽어서 그런지,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읽힌다. 다른 소설들은 읽을 때 인물들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켜보게 되는데, <꽃피는 고래>는 처음부터 니은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읽게 된다. 처음부터 니은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누군가를 잃은 슬픔이 됐든 뭐가 됐든 위태로워 보일 만큼 힘들어하는 친구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그렇게 아파본 사람이면 다 안다. 그럴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맙고 중요한지. 아무말도 해주지 않아도, 기껏 생각해서 말했다가 시큰둥한 대꾸만 듣게 되더라도, 실은 나중에라도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고맙다는 말을 꺼내지는 않더라도.
물론 누구나 다 겪는 일이다.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으니, 죽음은 너무도 흔해서 아무일도 아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 누군가의 죽음보다 더 커다란 일은 없다.
그러니 아파하는 사람을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다. 아파하는 사람의 말을 다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걸로 족하고, 내 이야기를 해주면 그걸로 족하다. 무엇을 어떻게 들을지는 그 사람 몫이다. 그러고 보면 이건 힘들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야기가 이상한 데로 나갔지만, 내게 니은이의 이야기는 그런 두서없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팠을 때 옆에 있었던 사람들, 내 옆에서 아파했던 사람들을. 그때 내가, 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그래서 그때를 기준으로 내 모든 것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때를 전후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니은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겠지만, 사실 니은이보다 어린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실은 다들 아직 어린아이가 아닌지.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상실을 경험한 뒤에야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익숙하고 무의미한 존재들이 낯설고 신비로운 신화의 빛깔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뒤표지의 이 문구가 마음에 남는다. |
|
솔직히 나는 김형경씨의 작품들이 부담스러웠다. 이 책을 사게 되고 읽게 된 건 모두 우연 때문이다. 1. 사게 된 이유 2. 책을 읽게 된 이유 마음도 너무 지치고, 하고 많은 책 중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 우려했던 것과 달리 책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가 너무 슬퍼하는 건 상대방이 슬퍼할 기회를 뺏는 거라고.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예전에 내가 읽었던 김형경의 작품보다 많이 가벼워졌지만, 이 책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꼭 이런 스토리라인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물론... 사건들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땐 뭐랄까? 소독약을 발라주면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 지레 겁을 먹고 그래도 엄마가 포옥 안고 이것봐. 하나도 안 무섭지? 그럼... 눈물이 흐르던 눈을 깜빡 거리며 피가 나던 상처는, 이런게 바로 치유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형경의 작품은... 그래서... 문학성이니 뭐니... 이런 걸 다 떠나서 뭐랄까? 이젠 작가가 자기 연민에 서러워 우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이 작가의 작품을 계속 사서 보게 될 것 같다. 당신의 작품이 |
|
홀로… 그렇다. 열일곱 니은이는 이제 혼자다. 급작스럽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삶의 지표도 살아가는 법도 완전히 잃어버린 여자아이였다. 아주 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더라면 일찍부터 ‘고아’라는 타이틀을 달고 아마 다르게, 어쩌면 용감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니은이는 그냥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부모님께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 동안 잘못한 수만 가지 일에 대해 변명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그냥 여자아이였다.
이 이야기는 그런 니은이가 조금씩 부모 없이 세상을 바라보며 홀로 세상 보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는 이야기이다. 많이 아프고 함께 공감하고 조금쯤 걱정을 하며 그리고 속으로 나도 모르게 ‘화이팅’을 외치며 니은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열등감 덩어리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심리를 너무나 적나라하고 자연스럽게 파헤친 <사람풍경>으로 처음 김형경을 만났었다. 그리고 이제 소설, 어떻게 보면 청소년 소설을 만났다. 열일곱의 니은이를 주인공으로 보면 청소년 소설이 맞다. 하지만 넓게 보면 이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모든 이, 혼자서 어른이 되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세상은 우리에게 어른이 되라고 강요한다. 그것도 갑자기… 문제는 일단 이 세상을 떠나버린 부모님과 이별해야하는 과제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살아생전의 부모,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부모, 아무 생각 없이 예전의 행동을 하다 언뜻 떠오른 부모님의 걱정하는 한 마디를 들은 것 같을 때 아무래도 이별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다 이젠 그 부모님 없이 이 세상을 홀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준비해야 한다. 생각도 행동도 미래의 지표도…
그 모든 걸 니은이는 아빠의 고향인 바닷가 처용포에서 한다. 니은이는 아빠가 해주던 처용포에 얽힌 이야기들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고래잡이의 마지막 포수 장포수 할아버지, 도와주는 셈치고 와서 밥 먹으라는 왕고래집 식당 할머니, 아직 부모도 있고 사촌언니도 있고 남자친구도 있는 친구 나무, 번갈아 찾아와 니은이를 걱정해주는 이모와 고모… 결국 따져보면 혼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혼자였던 니은이는 결국 혼자 힘으로 이들을 찾아낸다. 간혹은 그들의 이야기로 또 간혹은 꿈같은 어떤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이런 질문들은 그런 니은이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열일곱살 때 뭐 했어요?” “울면서, 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열다섯살에 시집을 갔고, 할아버지는 열여섯살에 고래배를 탔다. 나는 열일곱살이다. 법적으로는 미성년이지만 나이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니은이의 말대로 그 나이에 유관순 누나는 독립만세를 외쳤고 석봉이는 명필이었고 오성과 한음은 더할 나위 없는 우정을 다졌다. 니은이도 조금씩 세상과 맞설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더디고 얼마나 힘들던지 읽는 나마저 한도 끝도 없는 고개를 사방팔방으로 떨어져나가는 짐을 끌면서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고래 이야기 그리고 바다와 바닷가 사람들 얘기는… 그냥 묻어두련다. 고래가 둑어가면서 마지막으로 피를 뿜는 광경을 꽃핀다고 표현하는 고래잡이 들의 얘기에는 ‘시 같다기보다’ 끔찍하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또 그들처럼 고래잡이가 생활의 수단이고 터전일 경우가 아닌 일반 독자로서는 그대로 그들의 삶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기보다 일말의 어떤 판단이 앞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나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단 건 아니다. 니은이의 홀로서기와 병행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 처용포 얘기를 안 하는데 대한 내 변명일 뿐이다.
니은이의 홀로서기엔 혼자 고통을 새기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세상에도 사람들에게도 먼저 기대거나 한없이 요구하는 태도보다는 자신이 어떻게든 먼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에 우뚝 서는 어른이 되려는 그 노력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 와서 좋았다. |
|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상실을 경험한다. 다소 잔인하다 싶은 것은 어떠한 종류의 상실을 경험할지라도 그 상실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례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지라도 자신이 살아있으면 삶은 지속된다. 아니, 그 순간부터 우리는 부모 없는 삶을 출발해야만 한다. 마치 어린 아이가 첫 걸음을 떼며 비틀거리듯 우리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가 입었던 상처는 치유되고 과거 있었던 것들이 없는 상태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마저 느끼게 되곤 한다. 주인공은 누군가를 잃는 경험을 하기엔 너무 어려보였다. 오래 앓다 돌아가셨더라면 차라리 나았을까? 예측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교통사고로 부모 모두를 잃은 아이에게 삶은 가혹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아파할 시간을 충분히 제공치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방황이란 터널을 통과한 주인공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교사는 휴학 처리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노라고 말했다. 자신을 돌보아줄 가족도, 돌아갈 학교도 없는 아이. 방황은 예정된 기로였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삶을 산다. 부모라는 울타리가 있었더라면 알지 못했을 세상을 주인공은 만난다. 이제 막 세상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에게 이제 막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할머니나 고래배를 타고 훌쩍 떠나버린 장포수 할아버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듯 그들은 전진한다. 그들이 내뱉는 단어, 문장을 이해하기란 주인공보다 훨씬 나이 먹은 나로서도 벅차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이가 들고 기력이 쇠하더라도 살아가며 축적된 경험이란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퇴물이라 손가락질 받을 정도로 늙더라도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까닭은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용기 덕분임을… 물론 추구하는 바를 모두 이루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생활을 청산(?)한 후 새로운 삶을 꿈꾸는 영호 언니의 문자가 나날이 센티해지는 것을 보라. 오로지 밝은 모습만이 잘 어울릴 거 같은 이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란 결코 가볍지가 못하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아무리 강한 마음을 먹어도 지치고 때론 제 스스로 약해지는… 그래도 우린 살아야만 한다. 살아있는 자로서 감당해야만 하는 그와 같은 부담감은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으나 축복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더라도 죽는 것보단 세상에 살아있길 꿈꾸었던 이들이 많음을 우린 이미 잘 알고 있기에… 내가 지금 두렵고 답답하다면 처음 혼자 서는 순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처음은 거듭 찾아올 것이다. 왕고래집 할머니를 보며 나는 또 한가지를 기억하기로 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일들을 잘 맞을 준비를 하기로. 몸속에 작살을 꽂고 다니는 백사십살 먹은 고래한테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래도 괜찮을 것이다. (p 247 중에서) |
|
얼마 안 되는 분량의 소설을 열흘 정도나 걸려 읽은 것은 어쩌면 이 책이 갖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거다. 듣기로는 분명, 작가 김형경은 '따뜻한 공감과 위로의 작가'였건만, 내가 느낀 그녀는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로 포착하여' 먹먹하게, 우울하게 만드는 데 '선수'였다. 사실, 열 일곱살 먹은 소녀가 갑자기 부모를 잃는다는 설정은 많다못해 넘쳐나는 설정이고, 개인적으로도 그런 극한 상실과 고통에 대한 글을, 만화를, 영화를 참 많이도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니은이는 좀 달랐다. 불쌍하다는 연민의 감정이 아니다. 왠지 모르게 그녀가 처한 상황 하나하나가 불쌍하기보다는, 눈물난다기보다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펑펑 우는 울음이 아니라 온몸이 마른 눈물의 소금기로 가득한 그런 느낌이랄까. 저자는 책 속에서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이상해지더라. 그냥 글자만 쓰는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더라. 마음을 깊이 뒤집어 밭을 가는 것도 같고, 맘 속에서 찌개를 끓이는 것도 같고.(137p)"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게 왜 책을 읽는 사람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인지 참. 책 때문인지, 혹은 지금까지 마셔본 것 중 가장 맛있었던 더치커피를 마시면서 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그랑 블루'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나의 '남자답지 못한' 감정적인 독서는 우습게도 문자메씨지 한 통에 의해 끝났다(몇 번이고 책을 던지는 경험을 모두 끝내고). 책 중 니은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통해 조금씩 치유되어가는 그녀에 비해 나 자신은 치유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고래를 만났음에도. 열 일곱 소녀보다도 못한 어리석은 남자 한 '마리'가 되어버린 느낌이었지만, 만 팔천원에 경매에서 산 한 언니의 문자메씨지 몇 통에 의해 치유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어쩌면 참 재미있다. 작가의 의도에 의해 상처받고, 또 치유되면서 느끼는 성장소설의 묘미를 이렇게 느낀 것이 참 간만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성장소설들이 상처와 치유가 아닌, 발전을 통해 우뚝 서는 방향을 취하고 있던 것들 뿐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능글맞을 정도로 사람 마음을 건드릴 줄 아는 작가 김형경의 힘이었을까.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의 힘이었을까. 간만에 즐겁게 한 권의 책에 조종당한 느낌이다. 그래, 성장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런 것이었지. |
|
<꽃피는 고래>라는 제목에서 파스텔빛 아름다움과 알 수 없는 슬픔이 전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 김형경이라는 이름이 함께라 그러하리라. 그녀의 소설에서는 항상 슬픔이 묻어났다. 선연한 빛깔의 슬픔보다는 보일듯 말듯 조금 혼란스러운 슬픔이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 내재된 트라우마를 간직한 이들이 세상과 소통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가득했고 끈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메는 이들이 존재했다. 오랜만에 선보인 소설, 책을 여니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가 보인다. 열 일곱, 니은은 이제 막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은 소녀다. 환하게 웃는 모습은 이제 사진속에서만 존재한다. 갑작스레 닥쳐온 슬픔, 준비할 시간도 준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부모를 잃은 마음을 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열 일곱, 소리 내어 말해도 핑크빛이 물드는 나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니은은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하루 하루 꿈속에서 엄마,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 속 바다를 본다. 아빠의 고향 처용포에서 니은은 오랜시간 고래를 잡으며 살았던 장포수 할아버지와 식당을 운영하며 한글을 배우는 왕고래 할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게 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거운 시간을 보낸다. 학교도 친구도 친척도 니은을 달래줄 수 없고 니은을 이해할 수 없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마음, 세상을 향한 분노를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 할머니는 너그러이 받아주고 니은의 마음을 위로하며 쓰다듬어 준다.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 할머니에게도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고래를 향한 할아버지의 애정, 죽은 남편에 애절한 할머니의 사랑을 니은에게 꺼내놓는다. 17살 소녀가 겪기에는 너무도 큰 슬픔을 작가 김형경은 고래잡이가 유명했던 시골 어촌 처용포의 자연을 담아 치유하고자 한다. 곳곳에 자연이 남겨준 처용과 황혹에 관한 이야기, 존재가 확실히 않은 바다생물, 그 안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통해 니은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도록 하고 있다. 니은의 너울 같던 마음이 잔잔하게 바뀔 때 니은은 어른이라는 문을 만날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17살이 있었을까,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하는 니은의 마음은 내가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내 나이에 무얼했나고 묻는 것과 같다. "여든살이 돼도 맘속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다. 열살 때 생각을 하면 열살이 되고 마흔 살 때 생각을 하면 마흔살이 되지. 열살처럼 세상을 보다가, 마흔살처럼 세상을 보다가 한다." 257쪽 장포수 할아버지의 말처럼 책 속의 니은은 17살 소녀이지만 니은을 통해 내 모습을 보기도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내일,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지금 이 나이에 남들은 무슨 생각으로 살았을까 궁금한 우리네 모습과 닮았다. "기억하는 일은 왜 중요해요?" "그것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보낸 뒤 마음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236쪽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살 수는 없다. 그것은 이별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상처일 수도 있다. 니은이 부모님을 기억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것 처럼 우리의 삶은 떠남의 연속일지 모른다. 떠나보냄과 동시에 새롭게 살게 하는 것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니은도 알게 될 것이다. 니은에게 매일 희망을 보낸 영호 언니의 문자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라고 말하듯 내게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게 한다. 누구도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은 크나큰 상실과 슬픔도 때로는 작은 메모, 지속적인 작은 관심이 치유의 약이 되어 슬픔을 무너뜨릴 것이다. 내가 보낸 문자도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격려가 되어 희망의 존재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 |
|
김형경작가와 만나는 네번째 작품으로 <꽃피는 고래>를 읽었다. 이 책은 10대 소녀 ’주니은’ 이 겪은 상처를 스스로 다독이며 더디긴 하지만 상처가 아물어 가는 과정을 깊이있게 그려낸 성장소설이다. 사람의 심리를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작가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기역 니은 디귿 할때의 그 니은을 이름으로 가진 소녀는 열일곱살이다. 열일곱살이 되던해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엄마와 아빠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여서 울음도 채 나오지 않는 상실감이었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면 부엌에서 밥 짓는 엄마가 보일 것 같고, 산책을 하러가면 커다란 나무 뒤에서 ’니은아~!’ 하고 부르며 숨어있던 아빠가 튀어나올 것 같은데 세상은, 주위 어른들은 엄마와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라 한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니은이는 이유없이 모든 것에 분노하고 화나고 삶의 의욕도 없다. 왜 그렇지 않을까!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대화하고 장난치던 가족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거라 생각한다. 위로를 해줄 수 있겠고, 따뜻한 말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니은이에게는 모두 잘난척 하는 소리 같다. 부모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질투가 나고 화가 난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도 모든 말이 하나같이 거슬리고 분노를 느끼게 한다. 니은이도 머리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만, 뾰족한 말을 되돌려주곤 한다.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를 꽂게된다. 이모네집으로, 다시 고모네집으로 왔다갔다 하지만 마음을 잡지 못한다. 엄마와 아빠의 고향인 처용포에 오면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처용포에는 대왕고래라고 불리우는 장포수 할아버지가 있고, 왕고래집 할머니가 계신다. 가족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니은이를 친손녀처럼 대해주신다. 그 두 어르신을 통해 니은이의 깊은 상실감은 조금씩 조금씩 치유되어 간다. 어느 일정한 시간을 살아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상실감을 경험하고, 패배도 맛보고, 힘든 시기와 고난의 시기도 겪게 되는가 보다. 장포수 할아버지도, 왕고래집 할머니도 나름대로의 슬픔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슬픔을 애써 없애려 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점들을 알게 되면서 니은이도 자신만의 슬퍼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내가 아직도 슬퍼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게 문제 같았다. 왕고래집 할머니가 개와 고양이를 돌보듯, 장포수 할아버지가 뒷산에 나무를 가꾸듯이. 내게도 그런 일거리가 있다면 이 시간들을 잘 넘길 수 있을 텐데 싶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는 말처럼 큰 일을 겪은 니은이는 이제 어른이 되기로 한다. 처음엔 아무말도 없이 나 혼자 버려두고 떠나버린 부모님을 원망하고 분노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거듭할 수록 자식을 홀로 두고 떠나는 부모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씩 하나씩 오해를 풀어갈 수록 니은이의 마음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일년전인 작년 2월첫째날에 아빠를 보내드렸다. 병상에 오래 계셨던 터라 가족들 모두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는 해온 상태였다. 한 해 두해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준비가 흐려지긴 했지만 언제든 떠나실 분이라는 건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터였다. 한해씩 연장했던 삶은 15년째가 되던해에 현실로 나타났다. 오래된 마음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현실로 맞닥뜨리게 됐을때의 상실감과 허전함, 끓어오르는 슬픔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런 내 경우가 아닌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마주해야하는 상실감은 얼마나 클지 도저히 상상을 못하겠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견주지 못할만큼 큰 몇 배의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 니은이에게 힘내라는 말 밖에는 그저 손 잡아주는 것 밖에는 해줄게 없을 것 같다.
|
|
부모를 떠나보내는 일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예민하고 부서지기 쉬운 17세의 소녀에게는 세상을 통째로 잃는 깊은 상실일 것이다.
'꽃피는 고래'는 열일곱 니은이가 자기 앞에 놓인 가장 큰 상실을 극복하고 어른이 되어 가는 성장담이다. 소설은 부모를 잃은 상실감과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초조함, 두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떠안고 있는 소녀의 복잡한 내면을 천천히 보여준다. 돌연한 부모의 죽음으로 홀로 남게된 니은은 아버지의 고향인 처용포로 내려와서 지내게 된다. 한 때 고래잡이가 번성했었고 고래 한 마리를 통해 삶의 희노애락을 모두 겪어왔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처용포. 처용과 황옥의 신화만큼이나 기이한 분위기를 간직한 처용포에서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은 꽤 오랫동안 니은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잃거나 깊은 좌절을 겪어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니은에게 집은 더이상 안락한 공간이 될 수 없고, 남자친구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가장 친한 친구와 주고받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적인 대화도 폐부를 찌르는 독설처럼 느껴진다. 타인과의 소통은 부모가 있던 때와 없어져 버린 지금의 삶이 명백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할 뿐이다.
니은에게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처용포는 이미 신화가 사라져 버린 곳이지만 신화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빠의 유년의 공간이자 꿈이었던 처용포에는 오래된 신화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장포수 할아버지가 있다. 그는 포경이 금지된 이후에도 고래잡이 배를 보존하며 다시 한 번 바다 한 가운데서 고래가 꽃을 피우는 것을 보기를 소원한다. 처용포에는 또 가족을 잃은 슬픔을 타인의 상처를 보듬어 안는 것으로 치유해 가는 왕고래집 할머니가 있다.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의 삶은 보이지 않게 니은의 아픔을 조금씩 달래준다. 장포수 할아버지의 고래배를 타고 넓은 세계를 접하게 된 니은은 마침내 처용포를 떠나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친한 친구 나무의 사촌언니와, 영호 언니를 만나 그들의 자유로운 삶의 모습을 보게 된 니은은 부모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삶에 조금씩 용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남겨진 자신보다 자기를 남겨두고 떠나간 부모의 마음이 더욱 아팠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정도로 아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외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 점차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혼자서 살아갈 용기를 얻게되는 모든 과정이 처용포의 변화 과정과 교차되며 드러난다. 처용포는 고래잡이가 생의 전부였던 사람들의 기억을 화석처럼 저장해 관광상품화하고, 처용포의 신화를 옛 것으로 묻어버린다. 신화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 슬픔의 세계에서 성장의 세계로 내려온 니은의 내면을 보여주듯이 이 모든 변화에 대해 니은은 담담하다. 그러나 니은의 부모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처럼, 처용을 닮은 장포수 할아버지가 '신화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본다. 사라진 부모와 장포수 할아버지, 신화 속의 처용을 일치시키면서 니은은 비로소 '이별'이라는 것의 속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예고 없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 걸음 성장해나가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깨달음의 과정은 매순간 어떤 계기에 의해 점차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결말에 가까워 올 수록 깨달음이 급속도로 빨리 전개되는 듯 보인다. 니은이 갑자기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 지나치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너무 쉽게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단조로운 성장담에 신화와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끌어들인 섬세한 필력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
|
처음 접하는 김형경 씨 작품이다. 그녀의 많은 작품들을 귀동냥으로만 듣다가 이번에 문학작품을 여럿 샀다. 작품을 샀다,라는 표현이 귀를 간지럽힌다.
오랫만에 장편문학을 읽어서인지 가슴이 콩닥거린다. 처음에는 책이 나누어놓은 작은 소제목을 따라 화장실에서만 읽었다.(나는 왜 화장실에서 읽는 책이 맛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결국 어제, 오늘은 마지막을 보기 위해 이불 위에서, 그리고 사무실 책상 위에서 장엄한 최후를 맛보았다.
그녀에게 이야기는 중요한 주제인 듯했다. 주인공은 내내 이야기를 갈망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고 끝내 니은(주인공)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부모님을 동시에 잃고 나서 겪는 상실의 아픔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헤쳐나간다는 표현은 가당치도 않다.- 어떻게 휩쓸려 다니는지, 어떻게 아파하고, 어떻게 무기력하고 어떻게 철이 들고,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울었다. 상실의 아픔을 겪어 보았기에.
언제나 내가 중심이 되어 생각하는 그 못된 자아들은 결국 니은과 함께 깨어졌다.
작가는 환경을 중요한 모티브로 삼았다. 고래잡이를 하던 처용리 할아버지,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 아버지. 울산은 변해갔고 가슴은 정유공장으로 울렁거렸다.
다행스럽게도, 책을 읽으면서 울산에서 고래잡이 하던 사진이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가 나왔다. 정말 처용포에서 일어난 그 일이 기사화되었다.
1920년대 중반 방어진항 모습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에 발행된 우편엽서 속의 방어진항 모습이다. 최근 발굴된 이 엽서에는‘방어진항구에서 바라본 항내(港內)’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상세한 사진설명은 없지만, 항구에 가득 들어찬 각종 선박들로 봐서 당시부터 방어진항이 포경선(捕鯨船)과 어선 등으로 북새통을 이뤘던 대형 어항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당시부터 철공업과 조선업도 활발했다고 한다.(2009년 12월 28일 기사)
게다가 남자친구 뿔테안경과의 재회에서는 '총맞은 것같은' 표현이 나왔다.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이라는 제목이 여기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표절의 의심마저 드는, 생뚱맞은 기쁨도 있었다.
리버보이같은 청소년의 성장소설. 상실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그녀의 치밀한 묘사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 나도 성장소설 한번 써보고 싶은 유혹에 가슴을 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