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켈러는 스물셋에 자신의 자서전을 썼다.
애초에 스물셋은 자서전을 쓸 나이가 전혀 아니다, 라고 생각해왔다. 적어도 나의 상식으로는 자서전이란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려앉은 명망높고 사려깊은 어르신들이 죽기 전에 남겨놓는 자기반성이자 유언이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자화자찬과 자기애로 가득찬 선전물이었다. 그것도 자기 손으로 쓰지 않고 남의 손을 빌려 한편으로 픽션으로 완성된. 하지만 여기 훌륭한 반증이 존재하고 있었다. 책을 거의 다 읽을 때까지 몰랐다. 이것이 그녀가 스물셋에 쓴 글인 것을. 말미에 붙은 역자의 말을 읽고서야 이 자서전이 스물세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서전을 쓸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은 애초에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할 뿐.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라는 유치진 시인의 시구가 자꾸 나를 괴롭히는 날이다. 아, 게으르고 못난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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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구나. 8글자에 담은 간절함이 전해진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바로 헬렌켈러의 자서전.
어릴에도 헬런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은적이 있다. 물기르는 곳에서, 제자와 스승이 함께 앉아있는 사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지. 어릴때야, 현실감도 전혀없고 그저 이런사람이 있구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인생을 나름 겪어본 지금의 나이에 책속에서 만난 헬렌켈레의 세계는, 놀랍고, 위대하고,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란 것은, 어쩌면 이리도 기막힌 묘사를 할 수 있는지! 어떤 사람들은, 글에 미사어구가 많은 문장을 싫어한다지만, 볼 수 있는 사람보다도 더 실감나게, 생생하게 묘사하고있다. 마치 보고 있는 사람처럼! 헬렌켈러가 약간의 시력은 있나..? 라는 의심이 계속 들정도로 말이다.촉각적 묘사, 후각적 묘사, 시각적 묘사... 나는 그 중의 1%도 흉내내지 못한다. 손으로 더듬어 글을 읽는다는 것도, 누군가의 말을, 입모양을 만져서 알아듣는 것도...
나에겐 헬렌켈러같이 사는데 불편할 수 있는 장애가 없다. 하지만, 그녀의 글에서 묘사하는 '본다는 사람'들의 장애를 난 가지고 있었다. 내 시각에는 無라는 것은 없다. 눈을 감지 않으면.. 수많은 색상, 수많은 물건, 쏟아지는 정보들.. 난 늘 접하고 있지만, 기억에는 없다. 내가 뭘 보고 왔지? 복잡한 시내를 통과하고나서, 혹은 산책을하고 나서 누가 내게 "무엇을보았느냐"라고 묻는 다면, 난 단지 "뭐..그냥, 별거 없었어"라는 말 뿐이었을것이다. 그래서 헬렌켈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내가 무엇을 보며, 무엇에 만족해하며 살고있는가? 헬렌켈러의 자서전은 감성을 두드린다. 그리고 자각하지 못하고 사는 감각들에대한 소중함, 이런 감각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혹은 있었던 행복감을 일깨운다.
헬렌의 상상속에 무엇이 있을지, 그녀가 감은 눈 속에는 무엇이 살아 있는지 궁금했다. 그녀의 자서전 속에서, 존재할 수 있게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도 있지만, 헬렌이 겪은 억울함도 묻어 있다. 조각보처럼 이어졌다는 글이, 이제는 이렇게 멋지게 전 세계에 전해지고, 나같은 사람의 마음에도 감동을 준다.
몇 가지, 내 머리를 흔드는 그녀의 글을 적어본다.
보고 또 들으면 다 안 것인가, 다 설명한 것인가, 150p
이 정도면 그래도 제약된 생활이라지만 꽤나 아름다운 세상사를 두루 접해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만사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다. 비록 어둠과 침묵 속에서 만난 것이라 할지라도 분명 그러하다. 어떤 처지에 있게 되더라도 나는 이에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때로 고독이 찾아들고 차가운 안개처럼 나를 에워싼다. 다만 홀로 앉아 기다린다, 인생이 닫아버린 문 앞에서. 저 너머엔 빛이 있다. 음악과 즐거운 사귐이 있다. 그리고 나는 입장을 허락받지 못한 채 문 밖에 있다. 누가 내 길을 가로막는가, 운명, 침묵, 무자비? 아, 이 가혹한 처사에 항변하련다. 내 심장은 아직도 이렇듯 펄떡거리고 들끓고 있느으모. 그러나 내 혀는 이 고통을 토로하지 못하고 입술까지 이르렀다가도 내뱉어지지 못한 말은 헛되이, 삼켜버린 눈물처럼 마음속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침묵은 내 영혼을 짓누르고 저만치 희망이 미소지으며 속삭인다. "부디 잊어비림으로써 기쁨을 찾기를." 그래서 나는 다른 이의 눈 속에든 빛을 나의 해로, 다른 이의 귀에 들린 음악을 나의 교향곡으로, 다른 이의 입술에 떠오른 미소를 나의 행복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236-2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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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국어시간에 자서전에 대해 배웠다. 여러 위인,작가,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 중 헬렌켈러의 자서전인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 가장 마음에 깊게 내리박혔다. 우리 나라 언어로 번역했기에 사흘이라고 표현되었는데, ( 물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이 날짜법을 잘 쓰지 않는 내 탓이겠지만) 영어 원제 에서는 three days 즉 단 3일만 보게 해 달라는 제목이 아닌가.. 그래서 담담히 말하는듯한 그 3일이라는 시간이 더 마음이 아프고 제목부터 사람을 울리는듯했다.. 이 자서전은 우리 국어선생님께서도 추천해주신 책이었다. 헬렌켈러는 이미 훌륭한 위인이지만, 위인전기보다도 그녀의 삶과 감정이 살아있는 자서전은 크게 새로운 이야기를 말해주는것 같다. 그녀가 느꼈던 고통, 행복, 성취감 하나 하나가 모두 공감할 수 있었고, 그 감정들은 너무나도 생생히 마음을 울렸다. 자서전에 관심이 있다면 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먼저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것이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나서도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나의 소소한 시간과 일상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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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은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다고 당연히 처음에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완전한 어둠과 완전한 침묵 속에서 살아야 했다. 다시 잠들었다. 아침이 올 때까지. 하지만 얼마나 시간이 흘렸을까 다시 눈을 떴지만 여전히 밤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내 삶에 아침이란 없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내 주위를 오고가는 그들이 있지만 누구도 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경계없는 끝없는 어둠과 침묵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이다. 숨이 막힌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아마도 스스로 어둠과 침묵을 끝내고 싶을지 모르겠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보았다. 단 몇 분도 견디지 못했다. 세상의 색깔과 소리들로 나는 이미 중독되었다. 그것들 없이는 단 몇 분도 견딜수가 없다. 헬렌에게는 육적인 눈과 귀는 없었지만 마음의 눈과 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자연스레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주위 사람들의 사랑과 헌신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 눈과 귀가 된 것이다. "얼마 전, 친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마침 숲속을 오랫동안 산책하고 돌아 온 참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별거 없어." (중략)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앞을 볼 수 없기에 다만 촉감만으로 흥미로운 일들을 수백 가지나 찾아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본문 중) 여러 책을 읽다보면 내가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 작가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부럽다. 질투가 난다. 남성작가면 친구가 되어보고 싶고 여성작가면 사귀어보고 싶다. 그들의 삶에서 묻어나는 체취들을 같이 느껴보고 싶다. 글 속의 울림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울림의 훈련이 내 눈, 내 귀, 내 손가락 끝의 떨림이 되어야 한다. 최근 동양적인 시각 즉 세상과 자연과 함께 하는 관계론적인 시각을 찾고자 하는 노력들이 많이 있다. 열성적인 서구따라쟁이가 된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주위에 늘 함께 하고 있는 것들을 잊어버렸다. 느림은 삶을 더 풍성히 한다. 서구를 따라 달려만 갈 것이 아니라 이제 조금 천천히 함께 가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거의 보지 못하더군요. 세상을 가득 채운 색채와 율동의 파노라마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갖지 못한 것만 갈망하는 그런 존재가 아마 인간일 겁니다. 이 빛의 세계에서 '시각'이란 선물이 삶을 풍성하게 하는 수단이 아닌, 단지 편리한 도구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건 너무나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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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 중에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왜 위대한 사람이 되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헬렌 켈러가 그러한 위인중의 한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그녀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을까?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헬렌 켈러가 50대에 쓴 글로서 시각을 회복하였을 경우를 상상해서 사흘 동안 가장 보고 싶은 것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그 글속엔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식상하게만 보아왔을지도 모르는 우리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 그녀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있다고 역설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시각은 큰 선물이고 축복이며 일반인들은 이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평소에도 시각의 고마움을 잘 모르는 것은 물론,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함을 이야기하였다. 만약, 우리에게 앞으로 3일동안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볼 것인가? 이렇게 우린 현재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고, 건강에 있어서도 병에 걸린 다음에야 건강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20대 초반에 쓴 글로 어릴 때 시각과 청각을 잃고 난 후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고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과 수많은 조력자들과의 인연, 인생과 세상에 대한 감회 등을 서술한 글이다. 이 책은 세상을 알아나가는 것에 대한 감사와 언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글, 그리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의 중요한 가치를 느끼게 하는 내용, 시각과 청각을 잃은 분들과 가난과 고통을 겪는 분들에 대한 격려가 되는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녀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감사와 인내와 노력으로 가꾸어 갔으며 이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세상과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헬렌 켈러는 자신의 장애를 장애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기보단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로 세상을 알아가고자 최선을 다하였다. 평생의 은인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면서 언어를 공부하게 되었고 섬세한 촉각과 언어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면서 무한한 감사와 감동으로 자신의 삶을 축복하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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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는 만일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이 보내고 싶다고 술회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내 가슴 한 켠에 잔잔하게 울려나오는 인생을 바라보는 모토가 되어 준다.
유럽을 제패했던 황제 나폴레옹은 "내 생애 행복한 날은 단 6일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태어난 직후 시력과 청력을 잃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헬렌 겔러는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고백을 남겼다. 그녀는 "행복한 삶은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을 이겨낸 삶이다"라고 조언해 준다. ----------- 첫째 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먼저, 어린 시절 내게 다가와 바깥 세상을 활짝 열어 보여주신 사랑하는 앤 설리번 메이시 선생님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습니다. 또 사랑하는 친구들을 모두 불러모아 그들의 얼굴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그들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의 외적인 증거를 가슴에 새길 겁니다. 그리고 내 충직하고 믿음직한 개 두 마리의 눈도 들여다 보렵니다. 스코티종 다키는 용감하고 빈틈없는 친구요, 그레이트데인 종 헬가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재미있는 친구여서 내게 많은 위안을 준답니다. 내 작고 아담한 집도 돌아보고 싶습니다. 내가 밟고 있는 양탄자의 따뜻한 색깔, 벽에 걸린 그림들, 집안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있을 친밀감 넘치는 장식물들도 보고 싶네요. 오후에 나는 오래토록 숲을 산책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렵니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져 보이는 자연의 장대한 영광을 단 몇 시간 안에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찬란하고 아름다운 저녁놀까지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듯 합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그 전율어린 기적을 바라보겠습니다. 태양이 잠든 대지를 깨우는 장엄한 빛의 장관은 얼마나 경이로울까요. 이 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일에 바치고 싶습니다. 우선 자연사박물관을 찾을 생각입니다. 거기에 전시되어 있는 지구의 압축된 역사와 그 주민들, 원시 자연환경 속에 그려넣은 동물이며 인간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입니다. 자연사박물관이 이 세계의 물질적인 측면을 보여준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인간 영혼의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줍니다. 나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색하는 일에 둘째 날을 바치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연극이나 영화를 보며 지내고 싶습니다. 햄릿의 매력적인 모습과 엘리자베스 시대의 희극적 인물을 대표하는 똥보 폴스타프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지막 날에는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보낼까 합니다. 그러자면 뉴욕 만큼 활동이 왕성하고 수많은 상황이 연일 벌어지는 곳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뉴욕을 행선지로 정하겠습니다. 뉴욕에 도착하면 가장 거대한 건축물 중 하나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로 급히 올라가겠습니다. 나에게 그것은 또 다른 세계의 광경일테니까요. 또 나는 5번가를 천천히 걸어갑니다. 특정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지 않고, 만화경처럼 물결치며 흘러가는 색채들을 그냥 지나치며 걷습니다. 파크 애비뉴, 슬럼가, 공장지대,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공원 등을 둘러보며 시내 관광을 합니다. 외국인 거주지역도 방문해서 외국에 여행가서 민박하는 기분도 맛보렵니다. 마지막 날 저녁에 나는 아주 신나는 코미디 공연이 한창인 극장으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군요. 그래서 인간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희극적인 요소를 감상하고 싶습니다. 나는 장님이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힌트, 시각이란 선물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드릴 수 있답니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내일 귀가 안 들리게 될 사람처럼 음악 소리와 새의 지저귐과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를 들어보십시오. 내일이면 촉각이 모두 마비될 사람처럼 그렇게 만지고 싶은 것들을 만지십시오. 내일이면 후각도 미각도 잃을 사람처럼 꽃 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해 보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자연이 제공한 여러 가지 접촉방법을 통해 세상이 당신에게 주는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영광을 돌리세요. 그렇지만 단언하건대 모든 감각 중에서도 시각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축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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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절렸다... 단 소원이 사흘만 볼수 있다는 것이라니..난 평생을 보면서 보는것에 대한 아무런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왔는데...근위축증에 걸린 삼촌에게 "삼촌의 소원은 아마 걷는것이지 않을까요? "라며 빤이 쳐다보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던 울아들녀석 마음이 전해지는것 같다..그말을 들은 삼촌은 씁씁히 웃었지만...꼭 우리아이들에게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읽혀주고 싶은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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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다닐때, 위인전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항상 헬렌 켈러만 썼다. 존경하는 인물을 적으라고 하면 그때에도 헬렌 켈러를 썼다.
정말 마음깊이 존경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고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항상 그녀만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때였던 것 같다. 아니, 5학년때였나 ? 내가 쓴 위인독후감을 애국조회 때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헬렌 켈러 였다.
책을 읽고나서 알게된 건데, 어느분께서 리뷰에 쓰신것처럼 그녀는 이 자서전을 23살에 썼다.
내가 어릴때 위인전에서 본 늙은 할머니의 모습의 헬렌 켈러가 아닌 젊고 아름다웠을 젊은 여인의 헬렌 켈러. 낯설은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그래도 그녀가 좋았다.
존경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운 감정이고 또 그냥 알고있다고 하기엔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있다. 어릴땐, 잘 알고있는 위인이었지만 나도 나이를 먹고 또 세상을 알아가면서 또 다른 눈으로 그녀를 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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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지 19개월 만에 눈와 귀가 멀어 손으로 세상을 느끼고 손으로 세상을 경험한 헬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소한 일상에서도 큰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얼굴, 무심코 지나치는 거리의 나무들, 내가 쓰는 물건 등 매일 같은 모습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얼굴을 얼굴로 바라보면 변함없는 얼굴이겠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심경변화 속에서 표정을 읽을 수 있다면 다를 것이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화는 나무들의 모습. 그리고 내가 쓰는 물건들이 천천히 닳는 모습들.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때야 비로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일상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헬렌은 이야기 해준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갖지 못한 것만 갈망하는 존재라 말하는데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행복하고 일맥상통하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행복은 가진것/욕망 으로 정의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분자를 늘리거나 분모를 감소 시켜야 하는데,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에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리기 못하게 되는 굴레에 빠지게 된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이라는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헬렌이 우리에게 3일만 눈을 볼 수 있게 된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만약 자기에게 3일간 볼 수 있게 된다면 첫째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이런저런 것을 할 것이라 애기해 준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만약 내가 3일간만 볼 수 있게 된다면 무엇을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그 3일간의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쓸 것이다. 2부에서는 헬렌의 어린 시절부터 23살까지의 살아온 삶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경험을 이야기하는 에세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 시절 헬렌이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느끼는 답답함과 억울함에 분노하며 절망하였지만, 사랑과 신뢰라는 무지개 다리위에서 설리번 선생님과의 만남은 헬렌의 삶 또한 낙관적으로 변화는 전환점이 되었다. 고통이 주는 삶이 가르침을 주기도 하지만 헬렌의 고통은 일반인 보다 큰 고통이었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느끼며 점자로 된 책을 보았고,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들으면서 세상의 진정성과 실제성을 알아갔다. 책 속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네 앞에서 온 산과 언덕이 별안간 소리 내어 노래할 것이며, 옷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 치리라,” 이는 헬렌이 말을 배워 부모님에게 말하는 모습을 보여 졌을 때의 그 기쁨을 표현한 것이었다. 글을 읽다 보면 종종 보게 되는데, 이게 정말 23살의 아이가 쓴 글인지 믿지 못할 만큼 표현이 섬세하고 글을 아름답게 써서 감탄할 뿐이다. 헬렌의 삶은 순탄치 않았지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소소한 것에서 행복이라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을 그녀를 보면서 나의 삶과 비교해 보았다. 과연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였는지. 어른이 되어서도 불만투성이로 가득한 내 삶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진 것은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고 싶은 충동에 젖은 적이 종종 있었지만 조금씩 변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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