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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이미 중독된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느낌이란, 담배 끊었다가 꽤 오래간만에 하나 땡겨 물었는데, 너무 순한 것이어서 아쉽고 허망한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저 이쁘기만 한 영화, 그래서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영화. 무릇 스타일리스트는 언제나 근본적인 질문은 던지지 않는 법이다. 그저 불빛이 명멸하는 어두운 거리를 향해 담배연기를 피워올릴 뿐.
미국으로 간 그가 아마도 조금 많이 외롭지 않았는가 싶다. 어두운 거리에 불밝힌 작은 까페처럼. 그게 등대 같은 것이라면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들이 찾아들 것이고 그런 나그네들을 위해 그는 녹슨 열쇠들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라면 그는 철인과도 같은 존재지만 동시에 그는 실연의 아픔을 간직한 젊은이다. 그래서 그는 슈가처럼 다른 영혼 속으로 스며들고 싶었던 것인가 싶다. 또 조금은 늙어버린 듯도 싶다. 너무 쉽게 잊혀지고 싶지 않은 영수증처럼. 그걸 탓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영화 속의 장면들은 낯익으면서도 아주 이따금씩 몹시 낯설다. 장국영이 있던 자리에 주드로가 미소짓고 있는 것도, 장만옥을 대신해서 노라존스가 길을 걷고 있을 때에도,그들이 꼭 가면을 쓴 것처럼 어색해 보인다. 금발령들의 세계, 뉴욕에서 왕가위의 시선은 홍콩에서의 그것처럼 깊지도 그윽하지도 못하다. 하긴, 이 시대에 누가 깊이 따위를 원하겠는가? 또 하나 비록 영어가 세계어로 군림하고 있는 시대긴 하더라도, 이 영화 속의 영어는 영혼의 울림을 담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왕가위는 거세되었다. 오오, 사라지는 작은 언어들의 울림이여. 솔직히 나는 언제나 영화 이외의 것엔 관심이 없다. 함께 배송되어 온 브로마이드는 내게 처치곤란한 물건일 뿐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가격에 비해서 케이스는 참 볼품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왕가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게 늘 아쉽다. 그래도 왕가위를 만나서 반갑다. 그의 실패까지를 나는 사랑하고 그래서 기꺼이 그를 흡입한다. 나는 그가 직접 만 담배를 피워물 듯이 그가 빚어낸 영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또한 그러하리라 싶다. 세상은 어둡고 삶은 외로운 것이며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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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삶의 사랑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때로는 그 상처를 줘버리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때로는 그 상처를 지고가는 사람이 있기도 한다. 상처를 어떤 방법으로든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공간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드러내며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그저 끝나버린 것이다.우리의 시간이 그렇게 끝나도록 되어버린 것이다. 사랑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그저 끝나게 되어 버리는 그런 것이다.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게 된다면 그것은 축복이겠지만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서로의 이해 충족을 위해 이렇게 지내고 있지만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어떤 것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일까. 오직 상대일 뿐 다른 사람과 어떤 종류의 사랑관계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지고 간다.그 사랑으로 사람은 살고 있는 것이고, 그 사랑으로 사람은 죽어간다. 직접적인 죽음을 느끼지 않아서 그런건지, 죽는다는 것의 무상함을 그린다.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그런 것, 무엇에 대한 정의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말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은 오히려 일부러 돌아간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아무것도 되지 않을 만큼, 사랑을 돌아가게 만들어 버린다. 당신이 나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느낀 것이 언제일까, 나를 보면서 얼굴이 빨개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 였을까, 당신은 그저 당신의 생각을 통해 나를 맞춰가고 싶었던 것이고 나도 나 나름의 과정을 당신에게 적용한게 아니었을까.
블루베리 파이 안에 녹아들어가는 아이스크림을 보면서, 서로가 저렇게 받아들여지고 감싸진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받아들여지고 감싸들어간다. 그러나 그 관계가 좋다 나쁘다를 구별 짓은 것은 사람만이 하는 짓이다. 맞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에 맞아들여 진것이고 그것이 계속 지속할 만한 것이라면 지속되어지는 것이고 아니면 그 뿐인 것이다. 키스를 하는 입과 입이 언제까지나 붙어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때의 감촉을 느끼고 잊지 못하는 것 뿐이다. |
![]() 남자친구와 이별을 하고 그 사실을 확인한 카페에서 주인인 제레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블루베리 파이를 먹는 엘리자베스. 그녀는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무작정 뉴욕을 떠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제레미는 카페에 그녀를 위한 자리를 비워둔 채 기다린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보게 됐는데 나오는 배우들이 유명한데다 감독마저 유명한 영화였다. 노라 존스의 노래로 시작된 영화를 보며 좋다, 생각하고 있는데 배우로 출연한.. 기억력이 유별나게 좋은 카페 주인인 제레미와 바람난 남자친구의 동행을 찾으러 카페를 찾은 엘리자베스. 첫 만남은 좋은 기억이 아니었지만 대화를 통해 제레미는 그녀에게 빠져버린 듯 했고, 엘리자베스 역시 그가 싫지만은 않은 듯 했다. 그리고선 떠나버린 엘리자베스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나게 된 사람들. 전 부인을 그리워하며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경찰관인 어니. 카지노에서 눌러사는 레슬리.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며 자신의 상처를 지워나가는 엘리자베스는 뉴욕에 있는 제레미에게 엽서를 보낸다. 실연으로 남겨진 사람이 되어 뉴욕을 떠나 여행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엘리자베스지만, 잠깐의 인연으로 엘리자베스를 그리워하는 남겨진 사람이 된 제레미. 어쩐지 재미있는 상황이기도 하면서 애틋하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한 기다림. 크게 튀는 내용이 없는 영화였지만 노래가 좋았고, 감각있는 영상 덕분에 그리 지루하지 않고 봤다. 그리고 마지막에 재회한 엘리자베스와 제레미의 모습에서 설렘을 마음껏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