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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역사 도서명 메이지 유신의 무대 뒤 저자 이시이 다카시 역자 김영작 출판사 일조각 출간일 2008. 6. 9 선정이유>> 우리의 근대를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곧 식민지 근대라고 말할 수 있다. 구한말 세도정치와 외척에 의한 권력의 농단은 대원군의 마지막 개혁정책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의 노력은 그 반대세력의 정치적 견제와 그들이 추구한 외세를 등에 업은 개방이라는 스스로의 한계로 말미암아 우리는 근대로 가는 길목에 서보지도 못한 채 우리의 강토를 일본의 식민지로 내주는 굴욕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해서 근대의 여명을 열고 산업화와 세계화의 기치를 내걸며 대륙으로의 당찬 행보를 할 수 있었을까? 바로 메이지 유신이라 불리는 근대화 운동 혹은 근대화의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암기사항처럼 배워왔다. 그러나 강제 병합의 치욕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대사, 나아가서는 현대사 및 앞으로의 역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그 일본에 대하여 우리가 배워온 지식은 사실 너무나 적다. 그러니 저 친일의 후손들은 우리의 근대화는 일본의 합병이 준 위대한 선물이라고까지 강변하는 지경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일찍이 써졌고 그 후의 개정판조차도 30여 년 전(1975)에 써졌지만 <메이지 유신의 무대 뒤>를 오늘에 읽는 것은 그들 근대의 출발을 살펴보는 독서 경험임과 동시에 우리의 식민지 역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산업화의 성공과 비약적인 상공업의 발전으로 서구 열강은 새로운 시장이 절실히 필요했고 이는 그들의 식민지 개척으로 이어졌다. 중국이 아편전쟁의 여파로 영국의 시장이 되어갔고 미영을 비롯한 서구제국의 다음의 시장은 일본과 조선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열강의 전함이 내뿜는 포연 속에서 그들의 근대화를 이룩한 반면 우리 조선은 그들 열강의 먹잇감으로 강토를 유린당했다. 당시 일본의 권력의 중심이었던 막부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존왕양이를 주창하며 쇄국의 방편으로 나아갔음에도 일개 봉건제후에 불과한 사쓰마 조슈 등의 번에 의해 쇄국의 자물쇠가 풀리고 근대의 파고를 넘었다는 사실은 이채롭다. 안중근 의사에 의해 피살된 식민침략의 원흉 이토 순스께(이토 히로부미)가 바로 조슈번의 개화를 주창한 젊은 인재였다는 사실 또한 조선의 후예인 필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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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다카시 저/김영작 역| 일조각| 262쪽| 2008년06월09일| 정가:15,000원
이 리뷰는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읽기를 포기한 후에 쓰는 리뷰입니다.
다 읽지 않은 책의 리뷰를 쓴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혹시,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 책을 들었다가 2주간 다른 책도 읽지 못하고 헤매일 사람이 생길까봐 걱정되어서 리뷰를 쓰게되었다.
가고시마 방문 후, 잡히지 않는 궁금증에 시달렸다. 역사의 배경이 선명한 곳에 방문하여 역사의 배경을 모르고 본 현재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내게 가고시마가 꼭 그런 곳이었다. 가고시마가 메이지 유신 지사들의 고향이라하는데 내 머리 속에는 메이지 유신과 함께 떠오르는 말이라고는 일본의 근대화 뿐이었다. 그때 접한 얇은 책은 모르는 단어의 열거 뿐이었고, 다른 한 권의 책은 내가 궁금해 하는 인물이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두 권의 책을 읽었지만 큰 역사적 사건의 갈피를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독서량이었다. 메이지 유신이 단행되기까지의 흐릿한 윤곽선만 그리고 하나하나 내용을 찾아 가고 있는 상태라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느닷없이 때로 등장하는 일본인들과 양인들의 이름과 그 직책들은 어떤게 이름이고 어떤게 직책이며, 어떤게 지역인지도 헤깔릴 지경이 되었다. 결국 책의 내용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글자를 읽어나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이 책 읽기를 그만두었다. 초판이 59년에 쓰이고 이 책은 75년에 개정판으로 출간된 책을 번역한 것이라니 이 책의 구술 방식이 안맞았을 수도 있다. 혹시, 나처럼 어설프게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입하기 전에 살펴보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가운 인물이 이 책에서 등장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조부가 등장한다. 내가 아는(?) 사람(!)의 할아버지가 이렇게 역사적인 인물이라니 괜히(더불어 쓸데없이) 반가웠다. 또 한명의 아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토 히로부미'로 한때 조슈번의 개화를 주장한 젊은 인재였단다. 문득, 이토 히로부미는 배려없는 늙은이로 흉하게 자란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보았다. 물론 그 인물에 대해서 안중근 선생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것이 없으니 길게 이야기 할 것은 못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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