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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들이라고 하더군요.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어떤 가치에 반하여 또는 벗어나 다른 가치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소수자는, 트랜스젠더, 넝마주이, 동성애자,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소외 어린이, 비전향 장기수 그리고 네티즌입니다. 성향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숫자로도 소수에 해당하는 범주들이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소수자는 굳이 숫자로 따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에 역행하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이 소수자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분명 압도적 다수의 수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가치에 반하는 이해 관계를 갖는 소수자들 아니겠습니까.
개별의 소수자 그룹에 해당하는 사람 한명한명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쓴 글들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소수자의 이야기라 해서 그들이 '우리도 사람이다'라는 식의 분개에 찬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을 특별하게 바라봐달라는 말도 물론 없죠. 그저 담담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넝마주이를 대표하는 윤팔병씨나 비전향 장기수 정순택씨 같은 분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장애 여성을 말하는 김효진씨나 외국인 노동자의 김해성씨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건조하다싶을 정도로 그냥 전달해줍니다. '다르게 사는 사람들'일 뿐이지 '틀리게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고 멸시하고 교정하려 들지 말고, 인정하고 섞이면서 같이 살아가자는 그런 것이겠죠.
제게는 김비의 트랜스젠더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리수 덕택에 트랜스젠더가 대중들에게 많이 다가가긴 했지만, 트랜스젠더들을 가깝게 했다기보다는 예쁜 트랜스젠더 덕에 이제 겨우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구분하기 시작한 정도인데.. '못생긴 트랜스젠더'를 자처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평범하게 다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그녀에게 힘든 일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계집애라고 놀림받고, 사내애들한테 채이고, 괴롭히던 남자애들에게 연정을 느꼈다 상처받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한 이후에도 계속 받게된 상처에 사회가 인정하는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정하지 않는 다수자들하며.. 그랬던 삶이 수술 뒤부터 보여주는 자신감있는 모습과 참 대비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여자인 사람이 남자의 몸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다른 이들의 행동에서 상처를 받은 수술 이전의 삶과 겉과 속이 일치하게 되면서 그런 압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개척하게 된 이후의 삶., 소수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대변해주고 있죠.
이 책에 나오는 소수자들은 보통 두가지 이상의 범위에서 공통적으로 소수의 범위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가난+동성애+여성, 가난+어린이, 가난+장애+여성, 가난+외국인+노동자, 좌파+전과자.. 이런 식이죠. 예쁘고 돈많은 트랜스젠더는 당당히 메인스트림에 서고, 성공한 장애 남성은 국회에도 들어가고, 하얀 피부의 영어 잘하는 외국인은 대접받으며 강사를 하는 세상 아닙니까.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 저소득층의 암 발생률이 고소득층보다 훨씬 높다라는 이야기를 본 적 있습니다. 소수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되어 어려운 삶으로 내몰린 소수자들이, 그 삶 속에서 또 하나의 소수 집단으로 다시 자리매김하면서 더욱더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형태를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가치를 지니며 살 수 있으려면 구조적으로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낯선 것 자체가 끼치는 해악보다는 낯선 것에 대한 공포가 가져오는 해악이 더욱 크다고나 할까.
이학사, 윤수종 엮음, 288 page |
|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왼손으로 글씨를 쓰지 말아라, 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 어른에게 공경과 공손을 이외에도 많은 부분을 사회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강요했다. 우리는 그것을 알거나 모르거나, 그 사회 통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사회가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들어와서 사회의 마이너러티 부분, 소수의 이야기에 대해서 자신감있게 말하는 경우가 많아 졌다. 이게 그동안 아주 보수적인 사회에서 최근에 가진 성공이라면 성공이라고 하겠다. 물론 이런 책이 나오면서 우리가 가져온 고정관념과 싸워야 한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내용이란 사실 트렌스젠더에 대해서 하리수처럼 이쁘게 나올 수 있는 남자만 여자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 비전향 장기수의 이야기, 분명 다수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았던 사회 현실 속에서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사회 밖으로 밀어 붙이려는 사회 통념들, 그 소수들은 그것과 싸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수의 비극이다. 다원성을 인정하는 민주주! 의, 개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인정하는 사회라고 말하고 있지만, 음지에 있는 소수들에게는 깨트릴 수 없는 금기와 같은 것이다. 그들의 맘 고생 힘들어함을 이야기 한 책이고, 그들의 눈으로 그들을 삶을 이야기 했다는 데 있어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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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사는 사람들. 사는 방식의 문제이자 사회적, 이념적, 육체적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보는가? 그럼 이 사회에 자주 등장하는 보통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전체적으로 평균적이라는 사람들의 집단, 하지만, 명확한 기준은 없는 것 같다. 다들 나름 보통사람이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점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 이외의 사람들, 특히 남을 이해한다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사람은 알기 힘든 존재이기에. 특히 사회적으로 소수자들(트랜스젠더, 레즈비언, 장애인 등) 이런 사람들이 과연 다른 것일까? 겉모습이 표나게 다른 것도 아닌데. 우리는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지? 나조차도 다름과 틀림이라고 은연중에 믿게 된 것이 아닌지. 나 스스로 자주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봐서는 나도 그런 인식을 가지고 삐딱한 시각으로 소수자들을 보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정말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조금은 다름을 다름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소수자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들, 성적 정체성 문제인 트랜스젠더나 레즈비언, 넝마주이는 다양한 직업 중의 하나가 아닌가? 어떻게 보면 재활용으로 사회적 기여가 적지 않은 직업인데, 우리는 왜? 우리 사회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외국인 노동자는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할까? 사장님 나빠요와 제발 때리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그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은 우리와 그들을 위해서,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장애인과 그 중 소외어린이, 누구의 잘못인가? 우리의 아픔, 비전향 장기수와 사이버 코뮤니스트 등을 다룬다. 흔히 하는 말로 트렌스젠더는 이쁘야 한다는 말, 이에 김비는 "못 생긴 트렌스젠더"라고 말한다. 생김새와 성적 정체성은 아무 상관없는 인자이지만, 다들 그렇게 믿고 있으니 우리들의 착각이나 오해가 아닌지, 우리의 인식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최근 들어서 이런 성적 정체성문제가 유전적 문제로 밝혀(?)지고 있기에 타고 난 죄(?) 밖에는 없는데 차가운 시선을 받고, 차별을 해야 할까? 이런 소수자들이 일반 사람을 괴롭히나? 아닐 것이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우리의 인식의 문제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장애인, 그들은 보호 받아야 할 사람이면서, 그렇지 않기도 하다.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리고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이들을 알고,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 그 중 소수자들을 말 그대로 소수자로 묶어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모자이크에서 이들이 빠지면 아름다운 부분만이 존재할까? 아니다. 다양성은 우리 사회를 진정 아름답게, 진보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타인을 바로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을 바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알게 해줄 수도 있다. 나와 타인의 구분이 사라지면 더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특히 차별 없는 평등이 구현되는 사회를 바라며, 하루 빨리 이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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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서울에서 열린 북포럼을 다녀온 적이 있다. 『디아스포라 기행』을 주제로 저자인 서경식 선생님, 그리고 패널로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님이 나오셔서 책에 관한 이야기와 여러 가지 토의문, 북포럼 참가자들의 질문 등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얻을 수 있었던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디아스포라 기행』도 저자인 재일 한국인(소수자)이 바라보는 다양한 국가, 인종의 디아스포라 - 이산 민족 : 소수자 - 들의 예술을 테마로 하고 있었는데 이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란 책도 ‘나’라는 다수자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여러 소수자들의 힘든 삶을 읽을 수 있었다라는 점에서 이미 내가 읽었던 『디아스포라 기행』이라는 책의 속편(?) 같았던 책이라 읽는데 흥미가 배가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부분은 비전향 장기수, 외국인 노동자, 소외 어린이 편이다. 1. 지옥일기 - 정순택 우리나라에 만약 ‘옥중문학’이라는 장르가 생긴다면 그 장르에 넣고 싶은 책이 세 권 있다. 신영복 선생님의『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황대권 선생님의 『야생초 편지』, 그리고 서승 선생님의 『옥중 19년』. 이 세 책의 저자들이 감옥에 가게 된 공통적인 배경에는 군사정권 시대의 치열했던 ‘반공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이 수기의 저자인 ‘비전향 장기수’ 정순택 이라는 사람도 군사정권 시대에 서슬 파랬던 반공 이데올로기에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31년 5개월 만에 가석방되어 ‘인생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이미 동구권 사회주의 정권들이 몰락하고 북한의 참담한 현실이 연일 화제가 되는 이 21세기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의 신념을 고문, 회유 등에 굽히지 않고 오직 뜻을 이루지 못한 ‘혁명’에 말 그대로 인생을 바친 이 사람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자발적으로 전향하는게 자기의 신념을 굽히는 일이었다면 고문에 의해서 비자발적으로 전향할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그 힘든 수형생활을 선택하고 31년 5개월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버티게 해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소신, 대나무 같이 꿋꿋한 절개, 지조라 생각한다. 요즘 현대인들은 이런게 없이 그냥 적당히 타협해가며 살고 있진 않은가. 같이 찌개를 먹을 때 국자로 덜어먹지 않고 숟가락으로 직접 떠먹는 사람을 비위생적으로 비난하던 사람들이 교수가 술잔 하나로 한명씩 돌아가며 술을 따라 마시라고 했을 때 황송하다는 표정까지 지어가며, 심지어는 교수가 보지도 않는 먼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마시는 사람들을 본 기억이 있다. 왜 우리는 무조건 권위에 복종하는가? 만약 그것이 잘못된 권위라면, 왜 우리는 끝까지 자기의 소신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가? 적어도 이 정순택이라는 사람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런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사상범들에게 최고 극형을 구형하는 나라로 이미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등에서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문민정부면 문민정부답게, 비전향 장기수들을 모두 북송해서 그들의 남은 여생이나마 평안히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관용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2. 제발 때리지 마세요 - 김해성 지하철을 타거나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 우리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을 심심찮게 본다. 다들 하나같이 피곤에 찌든 얼굴, 뭔가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 깔끔하지 못한 입성들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스컴에서도 일년에 한두번 명절 때나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 분명 방송사에서 협찬을 받은 것이 틀림없는 - 웃는 얼굴로 한국음식을 먹거나 한국노래, 민속놀이를 하는 모습만 보여줄 뿐, 그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근무조건, 당연시 되는 임금체벌과 빈번한 욕설, 구타 등은 방송사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들은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비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피부색, 불법체류라는 약점을 악용해서 더 큰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일제의 식민 지배를 통한 조센징 학살, 학대, 약탈, 그리고 해방 후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양민 학살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마음을 열고 내부(소수자)와 외부(다수자)의 ‘곤란한 대화’를 통해 전근대적인 단일민족주의 환상에서 벗어나 탈근대적인, 종교 ․ 인종 ․ 국가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인류’라는 하나의 이름아래 동등한 인격적, 사회적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 ․ 국민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누가 이 아이들의 작은 소망을 들어줄 수 있는가? - 이주영 얼마 전 TV에서 부모님 없이 사는 아이들의 생활모습을 본 적이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게 아니라 사이가 안 좋아서 별거상태인데 아이들을 서로 맡기 싫어 내팽겨 친 집안이었다. 부모님이 조금씩 보내주는 돈으로 간신히 쌀을 사서 제대로 씻지도 않고 말 그대로 쌀을 끓여서 슈퍼에서 사온 김, 김치로 연명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집안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어질러진 상태이며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밖에 나가 놀다가 아무 때나 집에 들어와서 배고프면 또 그렇게 밥을 해먹고 아무 곳에나 누워서 잠을 청하는,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웃들의 관심은 사라진지 오래이며, 동네 불량 청소년들의 집합소가 되어 술을 마시거나 컴퓨터로 음란물을 보고 나이 어린 여동생을 성폭행까지 하는 - 물론 촬영 당시에는 제작진이 막을 수 있었지만 -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나중에 이들의 생활상을 제작진을 통해 알게 된 부모님들이 다시 화해해 집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였으며 다시 별거를 하게 되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이 TV 프로그램은 보여주었다. 누가 이 아이들의 작은 소망, 단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고,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을 들어줄 수 있는가? 아이들을 이렇게 방치한 어른들에게 물론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이런 아이들을 못본체 하고 지내온 우리들의 삶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웃사촌’ 이라는 말이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적어도 내 주변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성의껏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수 있는 상부상조의 정신이 필요한 요즘 세상이다. |
| 나는 세상에 대해서 나름대로 꽤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로는 비분강개하기도 하고, 때로는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도 조금은 노력을 하는 편이라는 되지 않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참 많이 부끄러워졌었다. 내가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닳은 때문이다. 세상에... 그들은 내 옆에 있었는데...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나 자신이 용기가 없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서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실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내 마음에 그런 호소가 와 닫는다는 뜻임)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아파하기만 할뿐 도무지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이 선뜻 생기지 않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도 내가 깨닿지 못하는 사이에 많이 보수적인 사람이 되어가는가 보다. |
| - 소수자: 표준화된 인간상을 거부하는 사람. 이성의 강박과 기득권논리가 만들어낸 억압, 그리고 근대적 인간상에 대한 거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자. "진보평론"에 실렸던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의 발언들을 모아 윤교수가 편집한 책이다. 여기에는 트랜스젠더, 넝마주이, 레즈비언,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소외 어린이, 비전향 장기수, 사이버 코뮤니스트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대부분은 자신이 직접 소수자로써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외국인 노동자와 소외 어린이의 경우에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무엇보다 계몽적인 발언을 지양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만큼 진실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이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뭐, 대강 아는 얘기도 있고, 모르는 얘기도 있고 한다. 개 중에 놀라운 이야기도 많고 그렇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어쩔진 몰라도, 우리의 경우에는 소수자 문제가 결국에는 인권문제로밖에 이야기되지 않는 한계가 안타까웠다. 인권 투쟁은 본디 감정에 호소하는 소극적인 면이 있고, 약자임을 호소하는 나약한 방법이다. 이 책의 필진들은 대부분 여기서 나아가 왜 약자가 될 수 박에 없는가,를 밝히고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당당히 요구하고 자신의 권리에 대하여 적극 개진하고 있다.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대대적인 개혁은 소수자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수자는 연대해야 된다. 그러나 연대는 얼마나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다양한 소수자들이 하나의 연대를 형성할 만한 연대의식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재하는지 말이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윤팔병씨의 넝마주이 공동체 이야기이다. 사회 속에서 혜택받지 못한 실패한 인생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룬 넝마주이 공동체는 국가가 자신의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불법이라할지라도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공동체는 그들 나름의 정의와 공동체 수칙을 통해 사회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온정을 나눈다. 얼핏 보기에는 티비드라마에서 종종 나오곤 하는 낭만적인 이야기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임을 인식하고, 그들의 '더불어 사는 사회'에 관한 세계관을 접하고 나면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회의 수혜- 경제발전의 혜택을 적극적으로 누려온 나는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윤팔병씨의 미천한 존재 역시 국가 폭력으로부터 기인한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 중 몇의 월북으로 인하여, 단 두명을 제외한 그의 남쪽 형제들은 다 한국전쟁 중 행불되거나 국군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보도연맹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그가 어릴적부터 거지에 부랑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사이버 코뮤니스트의 이야기는 정말 '갖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 중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내는 근거는 바로 현실 속에서의 실천이고, 자기 이야기화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친구의 이야기는 완전 잡탕이고, 사춘기적 냉소와 폭력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익명 속에서 그는 아무 말이나 밷어내고 있다. 나는 그가 소수자를 가장한 한낯 가상적 존재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낯 가상적 존재는 존재의 '유희'에 지나지 않으며 그만큼 가볍다. 이 책에 나온 여타의 소수자들과 차원이 다르고 달라도 한참 달라 보인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의식 따위가 보이지 않으며 소통보다는 굉장한 자의식에 사로잡힌 사춘기적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실천이 없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가 소수자의 자유공간을 얘기하고 연대를 얘기한다면,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작은 것이라든 실천을 하고, 실천에 만족하라. 이 필자는 익명성 속에 자신을 숨긴 채 기존의 계몽적 발언을 그대로 뒤집어서 공격적인 말로만 설교하고 있는 뿐이다. 그 밖에 또 외국인 노동자의 착취를 조장하는 우리의 법제도의 안타까운 현실과 그들을 사람 취급 하지 않는 일부 영세사업주들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우리 광주지역에도 그런 일이 잦을까? 시내에선 종종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도 그렇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건지 염려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장애인구를 450만 정도로 추산된다는 것이 사실인지 어쩐지 정말 깜짝놀랐다. 450만명이라면 거의 10명에 1명 꼴 아닌가, 그런데 우리 사회 속에서 장애인들은 10명에 1명은 커녕 오십명에 한명이 보일까 말까 한다. 그만큼 그들의 사회생활을 억압해왔다는 거다. 너도 나도 자꾸만 자꾸만 '내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가는 1%가 모든 것을 지휘통제하는 이놈의 한국 사회 속에서, 소수자는 점 점 점 점 늘어갈 것이다. 그 속에서 소수자 그들은, 아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우리와 함께 연대할 자는 누구일까, |
| 이 책은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목소리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이 그 소수를 대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아주 잘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그들의 이야기에 혹했고, 그러다가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것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것은 소수자들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무조건 소수자들을 소용해야 한다고 한다면 사회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감은 하지만 어디까지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소수자들에 대한 강조 때문에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에 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차피 사회는 계속해서 패러다이의 전환을 경험해왔다. 소수자의 의견이 이 시대에 옳고 타당하다면 그들이 다시 사회의 주변인이 아니라 주체로 서게 될 것이다. 노력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를 한꺼번에 수용하려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소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시대에 오히려 전체를 생각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의 창출이 요구되는 시대다. |
| 한 번씩 신문을 뒤적거리면 여러 신간이나 읽을만한 책을 소개해준다. 이 책도 거기서 건진 책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많지만 그 중 아이에 관한 것이 슬펐다. 가난하고 부모가 없어서 조부모 밑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글을 쓴 걸 보면 정말 꾸밈없이 잘 자라는 것 같다. 그런데 부모중 보통 아버지가 남아있는 아이들은 맞으면서도 신고를 못 한다. 아버지까지 사라질까봐. 그런 맘으로 살아가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정말 행복하게 사는 아이들도 많지만 거기에 비례해서 힘들게 사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은 없는 것일까? |
| 요즘 게으름이 천직인 되어버린 나에게 밤 동무는 당연히 책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밤에 자야 할 잠은 낮에 몽땅 자버리고 말었으니... 마이너리티 이미 우리들에게 이 단어는 낯선 용어가 아니다. 단지 그들의 모습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동안 모르고 살아왔을 뿐이다. 이책에 나온 사람들은 흔히 소수자들이다. 작기 때문에 그들의 이론은 몰지각한 것으로 몰리게 되고 부족한 이들도 인정한다. 우리들의 현실에 소수자들은 이 책에 나온 자들만이 아니다. 왼손잡이 혹은 생약을 지닌 이들도 소수이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는데도 사람들은 그들을 마치 장애인정도로 생각한다. 모든 시설은 그들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그들은 억지로 다수들이 택한 것들을 택해야만한다. 물론 불편을 무릅쓰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이 말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한다. 우리들 모두는 제복에 길들여지면 이미 다수가 편하다는 너무나도 엉뚱한 결론으로 빠져들지만 이 책은 그런 우리들에게 그렇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
| 우리 시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책이다. '우리 모두가 소수자'라는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 일반적인 아주 평범한 이 시대의 한 시민으로 스스로 다수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의식중에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의 부류라고 체면을 걸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은 인식할 것 같다. 트레스젠터 김비, 레즈비언 김송혜숙, 여성장애인 김효진은 우리 시대가 정해 준 독특한 이름을 하나씩 지니고 있는 우리 시대의 소수자임에 분명하다. 그들의 마음속에 그들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이 그냥 우리가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분류해 두고, 두고두고 연구해 보자는 우리 시대 다수라 칭하는 자들의 편협된 자기 편의주의가 이들의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정치범 정순택, 넝마주의 윤팔병의 얘기 속에서는 진정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아 가슴깊이 동감을 느꼈다. 사회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들이 사회에 보여준 모습은 진실로 우리가 가꾸어야 할 사회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읽었던 부분은 모두들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요즘 세상에 매맞고 성폭당하고 굶주리고 벌거벗으며 세상의 모든 고통을 그 어린 나이에 타의로 떠맡아야 했던 우리 어린 천사들의 모습들을 접하며 가슴이 심히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자며 몇벌의 옷가지와 약간의 먹을거리를 가져다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심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시대가 안타까울 뿐이다. 타국에 와 비인간적인 군상들에 의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도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리곤 외국에 부당하게 처우를 받았다며 다른 나라를 욕하기에 더욱 열성을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 과연 모순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다시금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사이버코뮤니스트를 표방하는 어떤 이의 글을 읽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을 인정하며, 그의 지나친 표현들에 매우 불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은 이미 별도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편협성이 너무도 두드러져 보인다. 더욱 길게 얘기하는 것이 결국엔 재공격으로 올 것이기에, 나 역시 "도망"이라는 방법을 택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