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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불어로 커피를 말한다. 카페는 말그대로 '커피 마시는 집'인 것이다. 그래서 카페의 역사는 17세기 유럽의 커피 문화사와 겹친다. 카페의 단골은 대개 학생, 작가나 화가와 같은 자유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카페의 역사는 자유의 역사, 정치토론의 역사와도 겹친다. 1723년 파리에만 380곳의 카페가 손님을 맞았다 한다. 몽테스키외의 말대로 정말 파리는 카페의 천국이었다. 특히 파리의 앙시엔 코메디 가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인 '카페 프로코프'(Cafe Procope)는 진정한 의미에서 문학이 숨쉬는 최초의 카페였다. 라퐁텐, 몰리에르, 라신, 루소, 볼테드, 디드로, 몽테스키외, 보마르셰 등이 단골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카페는 단순히 '검은 음료'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남녀가 은밀한 만남을 갖거나 정치토론을 벌이거나 괴담을 퍼뜨리거나 스파이들이 정보를 수집하는 공간이 되었다. 유럽에서 카페는 역사와 문화의 산실이면서 동시에 범죄와 퇴폐의 온상이었고, 정치적 혁명의 공간이자 데탕트의 둥지이기도 했다. 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는 《파리의 풍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카페는 한량들의 피난처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안식처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집을 데워줄 땔감을 절약한다. 학문적인 토론이 벌어지고 연극에 대한 비판이 열을 뿜는다. 그것으로 카페의 등급과 가치가 정해진다. 시인으로 등단을 노리는 문학가들이 이곳을 찾아와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집단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내쫓긴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독설가로 변한다."(31쪽)
카페는 친서민적인 별칭이 있다. '비스트로', 불어로 '빨리'라는 뜻이다. 당시 사람들은 '카페에 간다'고 말하지 않고 '비스트로에 간다'고 말했다. 즉 비스트로가 카페의 가장 대중적인 명칭인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어느 도시에서나 비스트로를 볼 수 있었다. 비스트로는 식료품을 파는 잡화점이자 공장 노동자들의 휴식처였다. 예술가와 장인들의 사교장소였고 축제의 장소였다. 에밀 졸라가 묘사한 퇴폐와 방탕의《목로주점》처럼 비스트로는 술꾼들이 드나드는 휴식과 망각의 장소이기도 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에게 자신의 작품 <밤의 카페>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카페를 사람들이 파멸해가는 곳, 미쳐가는 곳, 범죄를 저저르는 곳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지옥불처럼 뜨거운 열기가 지배하는 곳, 옅은 유황빛이 감도는 곳으로 음울한 선술집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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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종이 질과 아름다운 책의 모양으로 선택된 책이다. 프랑스어 ‘커피’인 카페는 커피가 도입되면서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검은 물’을 마시는 곳인 카페는 화려한 실내 장식과 분위기로 ‘아름다운 곳’을 뜻하는 신조어가 되며 서민들의 휴식 공간이었던 카바레를 급속하게 대체해 갔다고 한다.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커피와 함께 주류를 판매하면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들, 카페에 도입되었다가 없어진 공연 공간, 오락, 도박, 정치 공간으로서의 기능 등 카페의 변천사가 흥미롭게 기술되어 있다. 특히 다양한 책에 기술된 내용들을 인용하여 그 당시 카페의 분위기를 묘사하였는데 어디까지가 저자의 말인지 구분이 잘 안될 정도로 이야기를 잘 풀어간다. 풍부하게 첨부되어 있는 질 좋은 사진과 그림도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자세하게 생각하며 읽기보다는 소파 깊숙이 몸을 묻고 여가를 즐기며 편안하게 ‘볼’ 책이다. 글자 그대로, 잡지처럼.
[인상깊은구절] 내 집에서 살고 내 집에서 사색하며 내 집에서 먹고 마시는 것, 내 집에서 고통을 견디며 내 집에서 죽는 것, 우리는 이런 삶을 지루하고 심지어 불편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행복이 무엇이고 불행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내 꿈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웃고 울기 위해서 화창한 날과 길이 필요하고 카페와 카바레와 레스토랑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인공이 되고 목격자가 되기를 좋아한다. 함께 어울릴 사람들, 우리 삶을 지켜봐줄 증인을 갖고 싶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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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후기대로 이 책은 단순한 카페의 역사책이 아니다. 또, 단순히 읽기만 하는 책도 아니다. 읽고, 보고, 또 냄새 맡고, 함께 마시는(!) 책이다. 책 읽는 내내 커피잔을 옆에 두지 않은 적이 없었다.
17세기 말 커피와 함께 생겨나기 시작한 카페는 음식점을 겸한 비스트로로, 또 술집과 당구장을 겸하면서 정치토론방도 되었다가 음란영업장소로도 되었다. 또한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으며 멋장이들의 대결장이기도 했다.
디드로, 발자크, 헤밍웨이, 보들레르의 글이 인용되면서 독자들을 그들의 시간 속 카페로 불러들인다. 시큼한 맥주 냄새와 섞여서 내 앞에 놓이는 작은 에스프레소 잔과 앙증맞은 각설탕을 떠올려본다. 건방지고 날쌘 빠리의 갸르송부터 가짜커피를 나름대로 만들어낸 시골 다방 주인장이야기까지 쉬엄쉬엄 읽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은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카페의 진수(!)를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가 직접 프랑스 방방 곡곡을 누비며 찍은 것들이라 소박함이 넘쳐난다. 그래서 살짝 지루해 질 뻔 했지만, 그때마다 19세기 작가들이 자기네 단골 카페 친구 이야기를 해댄다.
우리 드라마에 나오는 시골 다방부터 (뽀글 파마에 껌을 딱딱 씹는 사십 넘은 언니야도 물론 포함해서) 호텔 커피숍까지의 너른 스펙트럼을 다 망라하는 단순한 말 "카페". 먼 나라 이야기이면서 은근 가까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퇴근길에 집에서 보다 더 집음식같은 비스트로 음식을 사먹고 한 잔 걸치는 남편들 이야기는 정말 가깝다. |
| 나는 요즘 특이한 책을 읽고 있다. 카페의 역사라는 책이다. 카페의 역사라? 그저 차 마시고 술이나 먹는 카페에 역사가 있다니? 그런데 아니었다. 카페야말로 근대 유럽역사의 산증인이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하루의 휴식을 푸는 공간이었을뿐만 아니라 혁명의 사상이 무르익었던 카페의 역사가 유려한 필체로 잘 설명되어 있다. 오죽하면 책 속에 있는 고풍스런 카페의 사진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었겠는가? 우리에게도 카페와 비슷한 공간이 있었다. 다방이 그것이다. 그러나 다방은 커피숖, 혹은 카페로 이름이 바뀌어 예전의 그 정취가 사라지고 남아 있지 않다. 프랑스도 마찬가지 사정이라고는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다방이 몇 군데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문득 대학로의 학림다방이 생각난다. |
| 카페는 프랑스어로 '커피'를 뜻한다. 즉 커피의 역사와 카페는 무관할 수 없다. 하지만 카페에서 처음부터 커피만 판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술을 팔았다. 이 책은 18-19C의 프랑스카페의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압셍트'로 대변될수 있는 19C후반의 카페풍경을 자연주의자들의 소설과 인상파들의 그림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즉 에밀졸라의 '목로주점'과 고흐의 '밤의 카페'등에서 나타나는 이미지 말이다. 드가의 '압셍트'에서 그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지겠지만. 이 책은 대학시절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보들레르의 '취하세요'라는 시를 떠올리게 한다. 예전에 파리에 갔을때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일정이 너무 바빠서 도저히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다시 한번 파리를 가게 된다면 꼭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와인 한잔을 하고 싶다. 낯선 이국의 도시 파리에서 그 풍광,정취 그리고 알콜에 취하며 조용히 보들레르를 다시 떠올리고 싶다. "너의 어깨를 짓누르는 시간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려면,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으로. 시로, 철학으로,포도주로 그 무엇에 취해도 상관없으리" 玄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