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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란 영화를 보고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너무 감명 깊게 들었던 터라 바이올린 협주곡을 일주일 내내 듣다가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 차이코프스키 편을 읽고 참 기구한 인생의 차이코프스키의 역작인 비창이 듣고 싶어 구입하였다.
어차피 클래식을 전공한 터는 아니라 좋아하기는 하지만 종종 클래식을 듣다보면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한다. 비발디의 사계나 베토벤의 운명처럼 30-40분이 금방 지나가버리는 음악도 있기는 하지만, 인내심을 많이 발휘해야 되는 음악들도 있기 마련이다. 나의 문화적 허영심일까? 카라얀이 지휘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여러번 듣고 있지만, 4악장을 제외하고는 딱히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녹음이 원래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음량도 좀 작은 듯하고 비창만 듣기에도 인내심을 요구하였다. 4번과 5번도 그러하였고, 4악장에서 느껴지는 절망감만 빼면 귓가에 남아서 맴도는 멜로디는 떠오르지 않는다.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잠시 장식장에 넣었다가 다시 들어 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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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교향곡6번 비창, 클라우디오 아바도, 시몬볼리비에르청소년관현악단 루체른페스티발실황, 루체른홀, 2010.3.19
오랜만에 비창교향곡을 감상하였고 나름 아바도 지휘에 시몬볼리바르교향악단이 연주가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를 하고 보게되었는데, 기대와 달리 약간은 낮은 만족감의 연주였습니다.
사운드 측면에서도 오디오차이때문인지는 몰라도 1~3악장까지 화려한 교향악의 소리의 분출이 부족한 것같았으며, 연주기량에 있어서도 약간은 불만족스러웠단 평가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다행히 4악장 피날레 연주는 완벽했는데, 희한하게도 어떻게 4악장에서 저런 연주가 나올수 있을까 할만치 신들린, 영혼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저승의 피안세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바도의 암수술후 지금 그러한 상태이기 때문에 저런연주가 나오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돌 들었었고, 지금까지 비창교향곡 감상중 처음들어보는 가장 완벽하고 현실을 초월한 소리를 들었다 생각됩니다.
가장 친숙하기도 하지만 가장 어렵고 또 감상 만족하기도 어려운곡들중 하나가 이곡인것 같습니다.
=========================================================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러시아어: Пётр Ильи́ч Чайко́вский 듣기 , 구력: 1840년 5월 7일 ~ 1893년 11월 6일, 신력: 1840년 4월 25일 - 1893년 10월 25일)는 낭만주의 시대의 러시아 작곡가이다. 생애 [편집]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는 우랄지방의 외딴 시골 캄스코봇킨스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일랴 페트로비치는 우크라이나계의 정부 탄광 공학자였고, 어머니 알렉산드리아는 일부 프랑스계였다. 표트르에게는 작가인 동생 모데스트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으나, 어학쪽에 더욱 재능을 보여 6, 7세에 벌써 독어, 불어를 구사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당시 상류계급의 풍조에 따라 법률학교에서 공부한 후 법무성 관리로 근무했으나,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 1860년 안톤 루빈시테인이 주재한 음악교실에 입학, 러시아 최초의 음악원으로 개편한 이 교실의 제1기생이 됐다. 그 뒤 모스크바 음악원이 설립되자 교관으로 일하다가 철도 경영자 부호의 미망인 폰메크 부인을 알게 돼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부터 교직을 떠나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그의 작품은 1854년 14세 때의 《왈츠》에서 시작하여 1893년에 완성된 교향곡 제6번 《비창》(작품번호 74)으로 끝났다. 교향곡 6곡, 미완성의 교향곡 1곡, 교향시 1곡, 오페라 11곡, 발레곡 3곡 이외에도 다수의 실내악곡 ·피아노곡 ·가곡 및 협주곡 등이 있다. 차이콥스키의 작품들은 음악회장에서 자주 연주된다. 《피아노 협주곡 1번》,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4·5·6번 등이 유명하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인》, 《호두까기 인형》 등 발레곡들도 많이 공연되는 작품들이다. 이 외에도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스페이드의 여왕》도 서양의 오페라 극장에서 유명한 작품들이다. 감정에 섬세하게 말하는 그의 음악적 성향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 성향과 매우 가깝다. 1893년 11월 6일 콜레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향년 53세였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총결산이랄 수 있는 《비창》교향곡을 자신의 지휘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하고 1주일 후였다. 주요 작품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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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6번 (차이콥스키)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교향곡 6번 b 단조 “비창”》(Op. 74)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이다. 1893년 그가 사망하기 아흐레 전에 초연되었다. 차이콥스키의 말에 따르면 그는 “과장 없이, 모든 영혼을 이 작품에 쏟아 넣었다”[1].
별명의 유래 [편집]원래 차이콥스키는 이 교향곡을 “프로그램 교향곡”이라고 부르고 싶어했으나 밝히고 싶지 않았던 그 ‘프로그램’에 대해서 오히려 궁금증을 유발할 것 같아 망설였는데, 그때 그의 동생인 모데스트가 작품의 초기 본에 사용되었던 “비창”(러시아어: pateticheskii)이라는 이름을 다시 제안하였다. 차이콥스키는 이 별명을 좋아하지 않아서 출판할 때는 별명을 지울 것을 요청하였으나 출판업자는 별명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출판하였고 지금도 그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2]. 편성 [편집]
구성 [편집]연주 시간은 약 45분 정도이면, 다음과 같이 네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 문헌 [편집]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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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아바도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970년대의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모습과 그의 서명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어: Claudio Abbado Cavaliere di Gran Croce OMRI, 1933년 6월 26일~)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지휘자이다. 아버지인 미켈란젤로 아바도가 교수로 있던 밀라노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이후 빈 음악 아카데미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와 함께 지휘를 전공했다. 이력 [편집]1958년에 쿠세비츠키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국내에서의 기반을 세웠고, 1963년에 미트로풀로스 콩쿠르에서도 우승하며 관현악 및 오페라 지휘자로서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아바도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첫 공연을 했으며, 1968년부터 1986년까지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전래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물론 현대 오페라도 매년 공연하였고, 알반 베르크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의 작품을 대상으로 연주회 시리즈를 열기도 했다. 라 스칼라에서 재직할 당시에 아바도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도 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1965년의 잘츠부르크 축제 때 처음 지휘한 바 있는 아바도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빈 오페라의 음악 감독을 지내며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호반시치나, 그리고 슈베르트의 피에라브라스, 로시니의 랭스로의 여행 등을 공연했다. 1979년부터 1987년까지는 안드레 프레빈의 뒤를 이어 런던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맡았으며 1989년부터 2002년까지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재직했다. 2000년에 위암 진단을 받은 아바도는 소화기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회복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2003년에 공연을 하였고,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아바도의 아들은 오페라 감독인 다니엘 아바도이다. 평가 [편집]아바도는 다양한 낭만파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고 녹음했는데, 그 중 교향곡을 여러 번 녹음하기도 했던 말러가 유명하다. 아바도의 쇤베르크나 슈톡하우젠, 루이지 노노 등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의 연주도 널리 알려져 있다. 유럽연합 청소년 관현악단(1978년)과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관현악단(1986년)의 창립자이기도 한 아바도는 젊은 음악가들과의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일본학사원상, 말러 메달, 독일 공로훈장, 키테라 상 등의 상을 받았으며 페라라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애버딘 대학교, 아바나 대학교 등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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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스페인어: Orquesta de la Juventud Venezolana Simón Bolívar, Simón Bolívar Youth Orchestra of Venezuela)은 카라카스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청소년 관현악단이다. 경제학자이자 아마추어 오르가니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베네수엘라의 유소년과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관현악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설립한 음악 재단과 함께 1975년 2월에 창단했다. 아브레우는 베네수엘라의 대다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극빈층 생활을 영위하며 마약과 범죄, 강간 등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던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유소년과 청소년 관현악단을 만들기 위한 기금 모금과 체계 수립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 결과 2008년 현재 청소년 관현악단 약 120개 단체와 유소년 관현악단 약 60개 단체가 등록되어 활동하고 있다.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은 그 중 대외적으로 가장 유명한 단체이며, 사실상 국립 청소년 교향악단으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아브레우의 재단이 유네스코로부터 공로를 인정받고 '엘 시스테마(El Sistema)' 라는 약칭으로 해외에도 알려지게 되면서 관현악 분야에서 열세였던 베네수엘라의 음악 환경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도 클라우디오 아바도나 사이먼 래틀, 주빈 메타, 주세페 시노폴리 등 유명 지휘자들이 객원으로 지휘하면서 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99년에는 엘 시스테마의 수혜자 중 한 사람인 구스타보 두다멜이 18세의 나이로 음악 감독에 임명되었고, 두다멜은 2005년에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인 도이체 그라모폰과 전격 계약하면서 데뷔 음반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7번을 취입해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말러의 교향곡 5번 등 후속 음반과 DVD가 계속 같은 음반사에서 발매되고 있다. 카라카스에서는 테레사 카레뇨 문화회관과 카라카스 시립 대학교 대강당을 주요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베네수엘라 각지의 순회 공연도 하고 있다. 두다멜 부임 후에는 해외 순회 공연도 적극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특히 루체른 국제 음악제와 BBC 프롬스에서 절찬을 받은 바 있다. 대개 5관 편성의 대규모 편제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으며, 앵콜 연주 때는 단원들과 지휘자 모두 국기와 국명이 인쇄된 점퍼를 입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청소년 관현악단으로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정확한 합주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말러 등의 대곡에 도전하기에는 개별 주자들의 표현력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누가?] CD/DVD 목록 [편집]특별한 주기가 없는 것 외에는 모두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것이고, 출시 연도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것에 따른다. CD
DVD
참고 기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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