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연을 판별하는 기준은 다시 들어도 새로운 감동에 젖는 생명력에 있지 않을까. 한 젊은이가 있다. 으스대면서도 자만에 빠지지 않고, 정력적이면서도 모나지 않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면서도 강단이 분명한 젊은이가 있다. 세상을 '반주'하는 늙은이들은 끝까지 쳐다보면서도 스스로 경탄하였음을 자신있게 시인하겠으니‥ 아울러 남몰래 쳐다볼 동년배들은 남몰래 가슴 속으로 연모를 불태우겠지만 이는 상큼한 추억으로 아로새겨질 초록빛 건강으로 모두의 성장으로 이어지리라. 시작과 끝이 확실한 젊음, 승리와 패배를 시인하는 열정, 도전과 성취를 반복하는 패기.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은 뒤에 다시 찾아본 그는 여전히 젊다. 하지만 시샘과 질투가 일기는 커녕, 망각하였던 예전의 열기를 되살려주는 메시아 같은‥ 서양고전음악을 처음 듣던 시절에 최초로 구입한 'CD'이다. 강산이 한번은 변하는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들어보니 느낌이 사뭇 달랐지만 리히터의 연주는 젊었다. 여타 피아니스트들보다 강렬한 타건은 마디마디가 구별되며, 우울함에 빠지기 쉬운 아르페지오는 선명한 나이테처럼 눈부셨다. 물론 "후기 낭만파"에 속하는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 특성상, 다른 연주를 들어보신 분들이면 몰입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아쉬워하실게다. 다만 그 자리에는 작곡가를 배제하고, 오로지 작곡가가 남긴 악보에 철두철미 매진하는 만학도 피아니스트의 연륜과 정열이 섞인 해석"만 있을 따름이다. 비록 "기적"까지는 도달치 못했지만 이 '패기넘치는 연주'는 피아노 협주곡의 '모범' 이상의 살아숨쉬는 모형을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놀라운 것은 리히터가 오케스트라를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정적이며 다정다감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경우, 리히터의 피아노가 감정의 기복을 사나이답게 끌어가면 비츨로키 지휘의 바르샤바 필은 부드러운 쿠션처럼 애수어린 그림자를 드리어준다. 다른 연주들을 들어보면 피아노가 우수어린 감정을 담당하고 오케스트라가 기백과 힘을 표현하는 본말전도가 종종 있다. 곡 자체가 서정성을 바탕으로 깔면서도 남성미넘치는 '극복과 승화'가 본주제에 가깝기 때문에, 리히터 식의 해석이 역시 옳다고 확신하는 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몰입까지 이르지는 못하기 때문에 아마 다른 연주들도 더 듣고 싶을 것이고, 따라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싶은 분에게 있어서 가장 추천할만한 입문이 아닐까싶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 - 대단한 연주이니 감동적이니를 떠나서 듣고나면 미소부터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본 1962년 연주에서 오케스트라를 맡은 지휘자가 바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기 때문이다. 말년(1980년대)의 카라얀이 지휘를 맡았던 협주곡 연주의 악명이 자자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너무 오케스트라를 강조하여 연주자를 위축시킨 나머지 피아노 협주곡을 "피아노가 첨가된 교향곡" 수준으로 발전(?)시킨 그의 공로를 누가 잊으랴. 하지만 1960년대 '젊은 카라얀', 즉 토스카니니적 특징을 계승한 이른바 "토스카라얀"의 기백은 흥미롭게도 리히터의 열정과 조화로운 대립을 이룬다. 그래서 이 연주의 경우, 감상 포인트를 '피아노 연주'로 할거냐, '오케스트라 반주'로 할거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니 반복청취를 권하는 바다. 연주 시작부터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는 격렬히 대립한다. 카라얀을 만난 빈 심포니카는 베를린 필 못지 않은 백만대군 막강파워를 자랑하고(* '막강파워'라니‥ 무식한 표현이긴 하나 이런 말 밖에는 ^^) 소련의 자존심을 걸고 므라빈스키와 마찬가지로 유럽으로 원정(?)온 리히터는 적진을 달리는 조자룡처럼 피아노 건반 위를 종횡무진 가로지른다. 풀파워를 자랑하는 카라얀의 지휘 덕분에 상대적으로 리히터의 강력연주가 '서정적'으로 비쳐 역설적으로 차이코프스키적인 도도한 애수, 남자이면서도 남성을 사랑했던 동성애적인 슬픔이 기막히게 형상화된 것이 기막히다.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의 음튀기는 대결이 협주곡을 듣는 최고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 말년에 너무 기름기가 많은 카라얀의 지휘가 이토록 군살없는 보디가드 몸매였는가는‥ 여전히 경이롭다) |
|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 둘 다 러시아 낭만주의의 꽃을 피웠고, 그 둘의 이 유명한 피아노협주곡은 상당히 난해한 기교, 그리고 '러시아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다. 그러나 리히터는 이 피아노협주곡을 더 이상 '러시아적'인 곡으로만 머물게 하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의 연주는 난해한 기교를 잘 소화해 낸 것에 그치지를 않았다. 그는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의 내면에 숨쉬던 '거인의 면모'를 단 한 대의 피아노로 너무나 유려하고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리히터 연주, Stanisaw wislocki 지휘-바르샤바 필)은 라흐마니노프를 떠올릴 때 의례 등장하게 되는 음반이다. 어째서 그러할까? 왜 호로비츠,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도 뛰어났는데 이 음반이 라흐 피협의 대명사가 되었느냐 말이다. 리히터의 피아노는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메우는 훌륭한 연주임에도 음악을 들을 때 도저히 리히터가 연상되지 않는다. 라흐마니노프가 연상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곡을 감상하는 동안 라흐 피협 종례의 '시베리아의 거센 삭풍의 이미지'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나의 마음 속에는 햇살에 빛나는 크렘린 궁전의 모습, 그 왠지 모를 따스함이 떠올랐다. 리히터의 피아노는 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면서 깊은 사색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리고 피아노가 화려하고 기교적임에도 곡을 듣는 동안에는 도저히 그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전에 루빈스타인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감상하면서 그 기교에 놀라다 결국 곡을 제대로 못 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오늘 아침 리히터는 나에게 이렇게 일깨워 주었다. '그래, 마음이 원하는 음악이란 이런 거로구나...' 그리고 다음 곡인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리히터 연주, 카라얀 지휘-빈 심포니)를 듣는 순간, 성대한 나팔소리와 함께 '차르(러시아의 황제)'가 등장하고야 말았다!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장엄하게, 때로는 느린 듯 하면서도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어오는 묵직한 걸음이 주는 위압감은 너무나도 대단했다. 호로비츠-토스카니니 연주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고 그 폭발적인 질주에 매료되었던 내가 이번에는 리히터, 카라얀이 만들어 내는 거인적 면모에 할말을 잊어버렸다. 이 두 연주는 차이 피협 1번 최고로 뽑히는 음반이고 그러면서도 두 연주의 해석이 너무 상반되어 우열을 가리기 불가능하지만, 오늘만큼은 리히터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아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 나는 비로소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능가하는 리히터의 '차르'를 들었기 때문이다! ps: 안동림 교수의 '이 한 장의 명반'에 소개가 되었고 여기 YES24에 있는 DG원판은 모두 매진된 상태다. 그렇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음반의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고, 원판의 흑백재킷보다 지긋이 쳐다보는 리히터의 눈길이 보기가 좋다. DG원판이 매진되어서 이 음반을 못 구한 사람이 있다면, 리히터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니 피아노의 진정한 맛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이 음반이 그 모든 것을 충족하고도 남을 것이다. |
| 너무나도 유명한 연주인 리히테르와 카라얀의 음반인데 흑백 사진에 카라얀은 지휘도중인 것 처럼 한쪽 팔(오른팔)을 들고 있고 리히테르는 카랴얀의 악보를 보며 뭐라고 하는 듯한 모습 또한 너무나 유명하다. 그런데 이 CD의 사진은 그것이 아니다. 같은 구성의 일본 수입음반에 나오는 사진이 원래 사진이다. 이 CD는 LP시절 리히테르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과 전주곡을 실었을 때 나온 유명한 사진으로 되어있다. 두 연주 모두 대서특필할 만한 연주이니 만큼 이 CD는 애호가들의 콜렉션에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하는 것이 되겠다. 많은 사람들이 빈 필하모니와 착각하며 그 존재자체를 모르고 있기 십상인 빈 심포니를 카라얀이 이끌고 있다. 빈 심포니란 존재 자체에 의문이 들었던 것은 옛날 도이치 그라모폰의 라이센스사였던 성음 레코드사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던 것일까. 이 연주의 오디오 테이프에는 베를린 필하모니로 되어있었다(!) 본의 아니게 2류로 취급받는 서러움을 토해내듯이 작열하는 무게감이 실로 대단하다. 리히테르의 피아노 또한 무게감이 매우 실한데 반클라이번이나 아르헤리치처럼 현란한 빠르기는 아니지만 타건 하나 하나에 거장의 경륜이 묻어나고 있다. 20세기를 풍미한 최고 거장 두사람이 연주하는 것이니 만큼 소문이 자자한 잔치이겠으며 또한 먹을 것이 많고 그 맛 또한 일품이다. 다시 나오기 힘들 것 같은 명연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 또한 안동림 교수의 이 한장의 명반에 나오는 유명한 연주이다. 바르샤바 국립 필의 반주는 우수에 충분히 차있고 리히테르의 피아노를 충분히 잘 받쳐주고 있다. 리히테르의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와는 또다른 애절함과 낭만이 충만해있다. 대단한 연습벌레이며 학구파였다는 리히테르의 한결같은 연주 품질은 여느 피아니스트에게는 흔히 찾아 볼 수 없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굴드가 세상에는 리스트와 리히테르같은 두 부류의 피아니스트가 존재한다고 말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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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건, 명해석... 두가지의 조건이 어우러져 명반중의 명반이 나왔다...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익히 알려졌듯이... 리히터의 라흐2번을 들으면 다른 라흐2번 피협을 듣기가 곤혹스럽지 않을수 없다. 게다가 차이콥스키 피협 1번의 해석은 빼어나기로 유명한 리히터... 그러니 당연히 이 시디는 명반중의 명반으로 소장가치 1순위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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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볼 때마다 품절인 이 음반.
연주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매번 품절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커플링도 기가 막히고,
쩝, 꼭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음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