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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치주의를 부르 짖었던 조선에서도 책으로 인해 탄압받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성리학 사상으로 무장됐던 조선지배층이 점점 사상적으로 경직돼가고 탄력을 잃어 가면서 더 성리학 이외의 사유를 수용할 수 있는 폭은 좁아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리학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유들은 존재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사유들을 담아낸 책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했다. '조선시대 책에 목숨을 건 13가지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조선에서도 역시나 책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들이 다사다난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영조 대 '명기집략'이란 책 때문에 발생했던 사건을 꼽을 수 있다. 고려말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하다 이성계에서 처형을 당한 인물이 이인임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명기집략에'에서는 이 인물이 이성계의 아버지라고 기술했고, 그 책이 국내에 유입된 것을 영조가 알고 격노했다는 것이다. 조정에서는 당연히 그 책을 수거해 불태워 버렸지만, 사건이 그 선에서 마무리 되지 않았다. 그 책을 주변에 배포했던 사대부, 읽은 인물과 함께, 중국에서 그 책을 들여온 역관 색출에 나섰다. 결국 사대부와 책쾌들이 대거 처형을 당하는 피를 부른 사건으로 겉잡을 수 없이 비화됐다. 불경스러운 내용의 책을 읽은 죄로, 혹은 책을 판 죄가 그렇게 끔찍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불태워진 책은 또 있었다. 박세당이 쓴 '사변론'과 '색경' 박세당은 전후 복구를 위해 사대부도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조세제도를 개혁해 신분으로 인한 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인데, 그는 결국 사문난적으로 몰렸고 유배를 가게 됐다. 그리고 그의 주장이 담겼던 저 두 책 역시나 화마속에 던져지는 불행을 겪게 됐지만 후손이 보관하고, 문집으로 남겨 둔 덕에 여전히 살아 남은 행운의 책이 됐다.
그렇다고 이 책에는 금서에 가까운 조선 책들만 소개된 것은 아니다. 당시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적 요구와 해결책을 담은 책들도 소개되고 있다. 전란을 복구하기 위해 편찬됐던 '동의보감'이나,마마를 치료하기 위한 '마과회통', 또는 전쟁이 발발하자 승리하기 위해 '무예제보' 등의 병서가 그런 목적하에 탄생한 책들이었다. 또 백과사전 식의 지식을 담은 총서가 발간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책들은 간행된 목적을 제대로 이루었을까? 또 그 필자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듯 조선시대 책과 관련한 흑역사를 담은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은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책으로 인해 빚어졌던 마찰과 갈등을 통해 권력의 의도와 당시의 시대적 요구, 혹은 성리학에 길들여지지 않은 욕망과 사유등 많은 의미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서점을 허용하지 않고, 소설을 비판했던 사대부들, 그들은 백성들이 결코 그들이 그어놓은 선 밖에 있는 욕망을 꿈꾸는 것을 허용하려 들지 않았다. 또 백성들이 글을 가까이 하면서 무언가를 상상하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은 성리학이나 지배층에 대해 불온하거나,반항적이거나, 발칙한 책에 대해서는 결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사문난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책을 수거해서 불태우고, 필자는 유배를 보내거나 처형하는 방법으로 생각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금지하려 들었던 것이다. 이른바 '마녀사냥의 욕망', 필자는 이것이 바로 조선을 괴롭힌 가장 뿌리깊은 병통이었다고 지적하고 있e다. 그렇게 조선 사회는 다양한 사유를 막고, 오로지 성리학적 가치 일변도로 나가면서 사상의 탄력성을 잃고 경직되고, 교조화돼갔다. 그 결과 개화시기에 조선 정국은 척화와 개화라는 양대 세력으로 극심하게 대립하면서, 제국주의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몰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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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조선을 담았던 책 조선을 설명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왕조국가라고는 하지만 유약한 왕들이 많아 신권에 의해 좌지우지 된 경험이 많았던 나라가 조선이다. 그런 조선을 지탱하고 이끌어 왔던 사상적 본류가 성리학이고 보면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라고 하는 말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보여 진다. 하나의 사상으로 일관되게 지배된 나라는 다양한 문제를 노출한다. 나 이외에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기에 공존이 실현되지 못하게 되며 결국 스스로도 존재의 기반을 잃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본다면 조선은 성리학으로 기반을 다진 것이 국가의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사회저변의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의 활발한 활동을 막게 되는 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조선을 볼 수 있는 기록은 당시 권력을 쥐고 주류로 있었던 성리학의 편에서 작성된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성리학 측면에서 바로 본 것 이외의 분야나 시각과는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재하고 살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주류의 시각에서 벗어난 흐름을 통해 조선이라는 사회를 살피고자 한 것이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이유로 금지되었던 책을 찾아내고 그 책이 금지된 이유를 앞 뒤 정황을 따져 당시 권력의 성격과 시대의 흐름을 파악해 보자는 것이다. 성리학의 시각에서 배재된 흐름이기에 그 흐름만을 찾는 것은 동전의 한 면만을 보고 다 본 것처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에 주류의 시각인 성리학과 동시적으로 파악하고 다른 시각이 지닌 의의와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될 것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책으로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간의 힘의 대결에서 사람파가 권력의 전면에 등장과 관련된 채수(1449~1515)의 ‘설공찬전’, 어득강(1470∼1550)의 상소를 통해 조선에서 책의 유통과정에 관한 이야기, 성리학의 독주에 다른 해석을 전하는 과정에서 논쟁을 일으킨 첨릉의 ‘이단변정’, 나흠순의 ‘곤지기’, 진건의 ‘학부통변’, 실생활과 유리되었던 성리학의 귀신 논의를 해체시킨 정약용의 ‘중용강의’, 문(文)에 치우쳐 무(武)에 약했던 조선에서 무에 대한 준비를 강화했던 한교(1556~1627)의 ‘연병지남’과 ‘무예제보’, 역사의 가정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현세자와 관련된 ‘심양장계’, 훌륭한 의학서를 갖추고도 전염병에 허약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허준의 ‘동의보감’과 정약용의 ‘마괴회통’,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 했던 성리학의 이상주의자들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렸던 박세당의 ‘사변록’과 ‘색경’, 영조왕의 분노에 엉뚱한 책쾌들의 죽음을 불러온 ‘명기집략’, 정조로 하여금 문체반정을 불러온 ‘원중랑집’, 18세기 조선의 학문적 흐름을 반영한 박학다식한 선비들의 총서 ‘임원경제지’와 ‘오주연문장전산고’, 조선말 혼란스러움을 조장한 ‘조선책략’ 등이다. 저자의 시각으로 보는 조선사회는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다. 성리학이라는 단일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면 성리학이 이룬 성과의 이면에 흐르는 다양한 요소를 간과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주류에서 벗어난 금기 사항을 매개로 앞 뒤 정황을 살핀다. 저자는 ‘사상사를 벗어나 대화와 투쟁의 사상사를 그리기 위한 기초적인 시도’라고 했다. 조선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구성한다는 말이다. 한 사회를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시도로 책을 매개하고 있다. 책은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의 반영이다. 그 사상이 주류에서 비켜나 있기에 더 깊은 속내를 표현할 수도 있다. 하여, 책을 통해 한 사회를 살핀다는 점은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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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명 역사서가 참으로 많이도 쏟아져 나왔고 지금도 봇물처럼 출간되고 있다. 그러한 역사서 중 단연 조선이라는 나라가 주는 오묘함과 흥미진진함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찰나에 단순히 집권중인 왕을 중심으로 소위 서열다툼이나 왕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 아닌 ‘조선’ 이라는 방대한 나라를 오목조목 짚어보고 여러 방면에서의 조선- 사상, 문화등 그러한 것들에 얽히고 설킨 사람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책인 듯 하다.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 이란 책의 제목부터 범상치 않으며 책을 읽은 후 훔친다는 개념이 마치 한겨울 벌거벗은 나뭇가지처럼 송두리째 내보여지는 것임을 새삼 느꼈다. 책에서는 13가지의 부제를 달고 조선의 ‘책’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사건들을 말한다. 13가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보면 결국 조선을 지배한 성리학이라는 이념이 얼마나 고질병인지 그로 인해 조선이라는 사회가 끝끝내 성리학의 이데올로기에서 벋어나지 못한 채 새로운 사상은 불태워질 수 밖에 없었는지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일부 여성들과 민초들 역시 18세기 청에서 유입된 패관소설을 접하며 새로운 세상에 눈뜨지만 책이라는 것이 당시 지배층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고 유통되었기에 이들의 앎에 대한 욕구 또한 시대의 비운 속으로 묻혀진다. 책의 13가지 내용 중 가장 흥미롭고 동시에 안타까웠던 부분은 소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심양장계』편이다.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는 삼전도의 치욕을 겪으며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는 동안 서양의 앞선 문물을 조화로이 받아들여 부강해지고 앞서가는 청을 본다. 진정 조선이 부강해지고 앞서갈 수 있음의 해답을 청을 통해 얻고는 성리학적 사상에서 탈피하고 실질적 학문을 통해 조선이 개혁의 나라, 개방의 나라로 거듭나길 바랬지만 권력에 눈이 먼 인조에 의해 조선으로 귀국 후 독살 당하고 만다. 소현세자가 죽은 후, 인조반정의 후예들인 소중화 주의자들에 의해, 조선은 유일무이한 성리학 유일사상의 나라로 남게 되며 극심한 문치의 나라가 된다. 조선의 사상을 집대성한 듯 성리학을 비롯 그와 관련된 여러 현상과 이야기 거리가 넘쳐나고 평소 모르던 내용들도 있어 역사적 지식을 넓히기에도 좋은 책인 듯 하다. 외국의 속담에 책이 없는 궁궐에 사느니 책이 있는 마구간에 사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듯 예나 지금이나 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윤택하게 하고 정신을 드높여 고질적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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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나라 조선 조선에서는 성리학에 어긋나는 사상을 담고 있다는 사유를 들어 책과 책의 저자를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이 책은 그러한 조선의 사회상을 더 심도 있게 해석하려고 한 듯 하다. 즉 저자는 금서가 되어버린 책의 내용을 이야기 하는게 아닌, 그 책이 금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당시의 사회가 어땠었는지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중반이 되면 사회적으로 앎의 욕구기 높아지면서 그에 맞춰서 책을 읽고자, 혹은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계속된다. 하지만 당시의 기득권 층은 그 요구를 끝까지 묵살했다. 당시 사회에서 무언가를 안다는 것,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은 바로 권력이기 때문에. 이 책에는 당시 백성들에게 앎을 허락하지 않았던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도 곳곳에 담겨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 내의 풍부한 서적을 보유한 개인 소유의 도서관을 여럿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보는 것만도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 주인은 책을 빌려주지도 않고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손님에게 절대로 책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로서는 빌려주고 싶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왜 그 책을 그렇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그러한 조선인의 관습을 설명하기 힘들다. -선교사 호머 B 헐버트 만일 만 권의 책을 저쟁해놓고도 빌려주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햇볕을 쏘이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빌려주지 않는 것은 인(仁)하지 못함이요, 읽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못함이요, 햇빛을 쏘이지 않는 것은 부지런하지 못함이다. 사군자가 글을 읽자면 남에게 책을 빌려서도 읽는 법인데 책을 꽁꽁 묶어놓기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덕무 수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위의 두 문구이다. 이 책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고려시대에 제작되었다. 즉 고도의 기술인 인쇄술이 서양의 인쇄술보다 최소 2백년이 앞섰던 것이다. (개성에서 발견된 금속활자 '복' - 국립중앙박물관)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이런 고도의 기술을 권력의 도구로만 사용했다. 조선으로 넘어와서도 역시나 책은 기득권층의 소유물이었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던 시대였으며 그 권력을 일개 백성들에게 나눠줄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반면 서양의 금속활자를 제작한 구텐베르크는 성경을 제작하여 널리널리 보급하였다. 서양의 인쇄술은 이때를 기점으로 기하학적으로 발전하였고 백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수 만권의 책들이 발간되었다. 많은 일반 민중이 읽었고 그렇게 그들은 많은 지식을 습득하였다. 그리고 서양은 엄청난 발전과 더불어 빠르게 근대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조선에서는 기득권층이 책을 꽁꽁 숨기고 심지어는 죽어서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 양반들끼리도 이럴진데 일반 백성들이 책을 보는 건 택도 없는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구했더라도 책이 전부 한자로 되어있다면 ? 정말 택도 없는 일이다. 앎의 권리가 없었던 백성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모른 체로 살아왔고 비합리적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국가에 위험이 있었을 때 마다 제일 먼저 희생을 당했다. 지금 껏 아는 것이 없었고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던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해왔던 힘 없는 백성이었기에..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수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물론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져서 진위여부 판단이 필요한 경우도 많지만.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된다는 건 지금도 유효한 전제이다. 우리의 힘 없는 조상들은 못했던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감시가 지금은 가능하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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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 4/7~4/8
학교 다닐때는 그렇게도 국사나 세계사 과목을 싫어했었는데 졸업후 편안한 마음으로 읽는 역사서는 언제나 재미있다. 특히 나는 일반적인 역사책에서는 다루지 않는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데 이를테면 역사속의 음식이라든지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왕을 낳은 후궁들,역모사건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이다. 이번에 읽은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도 마찬가지 범주에서 이제껏 몰랐던(확실히 내가 역사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교과서나 학교에선 결코 배울수 없었던..) 사실을 알게 많이 알게 해주었다. 이 책에는 조선시대 책에 얽힌 유명한 사연 13가지가 소개되어 있는데 내가 그중 흥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혔던 소현세자의 <심양장계>와 우리나라 최고의 의학서라 불리는 <동의보감>편 이었다.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당했던 인조는 조선과 명나라의 내통을 염려한 청나라의 요구로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를 무려 8년동안이나 청나라의 볼모로 내주게 된다. <심양장계>는 소현세자가 조선에 자신이 청나라에서 겪은 일상들을 보고한 기록물이다. 처음에 인조는 낯선 오랑캐의 나라에 끌려간 자식을 염려하고 불쌍해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점차 청나라에서 소현세자의 위상이 높아지고 세자의 외교적인 능력과 인품이 인정을 받게 되자 세자가 자신을 밀어내고 왕위를 찬탈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증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소현세자는 8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오지만 귀국한지 불과 2달만에 학질로 죽는다. 하지만 소현세자가 죽을때 온몸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일곱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는 증언과 인조의 세자에 대한 매몰찬 대우로 미루어보아 그는 왕위찬탈을 두려워한 인조가 독살했을거라는 설이 현재는 유력하게 전해진다.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청나라에서 서구의 신문물을 접했던 어질고 총명한 소현세자가 독살당하지 않고 제대로 왕위를 물려 받았다면 조선의 서구화는 일본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게 됐을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해봤자 소용없지만 정말 만약 그랬다면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역사가 완전히 뒤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인 <동의보감>편에서는 이 책이 만들어질 당시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눈길을 끌었다. 소설로도 나와있는 <동의보감>은 일찍이 읽었었고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허준의 일대기를 통해 어느 정도는 미화된 구석이 없지 않았을거라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작가가 쓴 <동의보감> 제작 배경은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당시 조선에선 병자가 생기면 돌보는 것이 아니라 외진 곳에 버려두고 홀로 죽게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동의보감>은 사실 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란후 왕실에 아픈 사람이 많았고 선조 자신이 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책이었다. 학자들은 이 사실을 '동의보감에 내장된 의학 지식이 사화화 되지 못한 것은 그 지식 자체가 일반 백성들이 실용화하기에 쉬운 지식이 아니라 양생을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었던 사대부들의 눈높이에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비하면 <동의보감>보다는 훨씬 덜 알려졌지만 직접 일반 백성들의 소용에 닿게 저술한 정약용의 <마과회통>이 훨씬 실용적이고 쓰임새가 많았다.
이밖에도 많은 에피소드들이 책을 읽는동안 내내 지적 욕구를 자극하여 오랜만에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릴수 있었다. 그리고 드는 의문 한 가지..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책에 열중하고 귀한 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독서를 사랑했던 민족의 자손인 우리가 지금 이토록 책을 안 읽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옛날처럼 책이 귀하지 않고 너무 흔해서,아니면 책 말고도 얼마든지 시간을 흥미롭게 보낼 수 있는 다른 여흥거리가 많기 때문에,그것도 아니면 삶이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여기저기 책이 널려 있어 흔해 보이지만 그걸 손에 집어들어 읽지 않으면 그 개인에겐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절대 흔한 것이 아니며, 다른 여흥거리는 금방 싫증이 나고 너무 자극적이지만 책은 오래도록 봐도 질리지 않고 늘 새롭고, 삶이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어도 책 한권 읽을 여유조차 없다면 자신의 삶이 너무 불쌍하지 않겠는가. 일본에 갔을때 지하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은 문고판을 들고 읽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철 풍경이 머리속에 겹쳐지면서 일본이 괜한 선진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백년전에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책에 대한 열정이 시들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우리네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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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쓴 시간: 08년 9월 14일 21시 59분 4초 ~ 08년 10월 3일 23시 45분 xx초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 / 이 민희 지음 / 글항아리) 자: 2008. 9. 07. (일) 09:22 (금정역) ~ 지: 2008. 9. 13. (토) 23:27 (중동사거리/버스)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과거 조선시대로 돌아가 책 읽는 선비가 되어 보기도 하면서 독서의 의미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들의 삶을 느껴보기도 했다. 책과 독서가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의 세계에서의 책읽기는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갖고 싶은 책을 애첩 맞바꿨다는 얘기를 읽으면서 조소를 날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책 사랑이 정말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 읽는 내내 행복했다. 2008. 9. 15. 17:45 김 선욱 서 어젠 추석 연휴 첫날이었지만 출근을 했었다. 일단 오후에 우리집에 세워둔 동생차를 끌고 우리 가족과 조카 둘을 태우고 어머님댁으로 갔다. 가는 길에 포토밭에서 포도를 2박스 샀다. 기다리는 사이 조카 시은이가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했다. 자리가 비좁다며, 덥다며 울상을 짓던 아이들은 아우성을 쳤다. 어머님 집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두시가 훨씬 지났다. 하지만 나는 사무실에 출근을 하려고 길을 재촉했다. 일주일마다 쓰는 독서일지를 쓰지 못했고, 고객분들께 명절 인사 문자도 보내지 못해서 출근을 하려는 것이다. 토요일부터 추석연휴라 금요일에 다 처리했어야 했는데 금요일에 밤에 동생네가 갑자기 우리집에 놀러오게 되면서 마무리 짓지 못하고 급하게 집으로 와야 해서 그냥 넘어가기에는 찜찜했다. 어머님 집 앞에서 300번 버스를 탔다. 배낭에서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을 꺼내 읽었다. 버스는 역시 움직임이 커서 책 읽기가 불편했다. 밑줄을 치는 일은 더욱 쉽지 않았다. 전부터 책 읽기가 불편해서 가급적 버스를 타고 다니지 않았는데, 이번에 역시 버스에서 책을 읽는 일은 불편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로 버스를 타고 다니며 책을 읽는 동생이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00번 버스는 범계역이 종점이다. 범계역엔 헌책방이 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책 구경을 했다. 하지만 책은 사지 않았다. 꼭 마음에 드는 책이 아니면 아니 사기로 톡톡히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좋은 책이라면 몰라도 웬만한 책에 굴할 수가 없었다. 고봉 기대승이라는 책이 잠깐 눈길을 끌긴 끌었다. 30분내에 환승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300번 버스는 아직 환승이 허락되지 않는 버스였다. 서울 삼성동에 도착하니 벌써 해는 다 저물어 가고 있었다. 5시였다. 저물어 가는 도시의 풍경이 길 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잡아 디카질을 했다. 20층 사무실에 도착하여 서쪽 창을 바라보니 태양이 하루를 마감하려는 듯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급한 마음으로 독서일지를 쓰고 사진까지 넣어 게시판 여기저기에 글을 올렸다. 시간은 째깍째깍 잘도 흘러갔다. 혹시나 처갓댁에 갈지 몰라 막내 처남을 위한 보험설계서도 프린트했다. 버스나 전철이 끊어지지는 않을까 싶어 서둘러서 마무리를 지었다. 범계역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탈까 하다가 수원역까지 가서 시내버스로 환승을 했다. 읽고 있던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은 추석날. 햇 곡식과 과일로 조상들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는 날이다. 하지만 우리집에선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나는 집안의 장손격인데 조상들은 그렇다고 쳐도 아버님을 위한 차례도 지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머님께서 아버님께서 밉다며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해서 이번 추석 때는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어머님의 건강을 생각해서 할 수 없이 그 뜻을 따른 것이다. 그냥 어머님 집에서 두 형제가 모여 아침 식사를 하고는 오후에 어머님댁을 나왔다. 동생네는 처갓댁으로 갔고, 나도 내친 김에 처갓댁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그냥 집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 미리 장모님과 연락을 하여 다음에 가기로 한 모양이다. 이렇게 된 김에 영화나 보자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다. 다들 좋다고 해서 영화를 보았다. 이번 추석은 정말 가슴 아픈 명절이었다. 지난 구정 때 땅 찾는 문제로 어머님께서 진노하셨는데, 그 이후로 집안에 더 큰 분란이 생긴 것이다. 결국 조상은 물론 아버님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길고 긴 집안 얘기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는가마는, 어머님께서는 아버님의 강제와 협박에 못 이겨 오랜 전에 백부모님께 땅을 사드렸는데, 그 땅을 엉뚱한 사람들이 차지하려고 다투다가 백부님 처남네로 넘어가고 말았다. 어머님께선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그 땅을 찾아야겠다고 나선 것이고, 나와 동생은 어머님의 건강을 생각해서 말렸던 것이다. 그로 인해 지난 구정 때 집안에 큰 소란이 일었다. 우리 두 형제는 지난 6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욕을 먹고 혼이 났는지 모른다. 어머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심한 저주와 욕설을 퍼부으셨다. 심지어 자식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어머님의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다. 그 바람에 나는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어머님의 억지 말씀을 거스르지 못하고 따랐던 것이다. 어떻게든 어머님의 마음을 푸시게 해드릴까 고민을 하다, 최대한 어머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로 작심을 했다. 그래서 오늘 오랫동안 어머님의 하소연을 들어드렸다. 할 이야기가 태산 같지만 어찌 한번에 다 풀어낼 수가 있겠는가. 소설로 만들어도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불행하게 살아야만 하는가. 정말 정사(正思)를 하면서 정심(正心)을 하고 살아야할 것이다. 동생네는 어머님과 한집에 살고 있다. 어머님 집은 다가구 주택인데, 동생이 결혼을 할 때 살림을 나지 못하고 어머님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어려운 상황에서 동생네가 어머님 진노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장남인 나는 떨어져 사니깐 동생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최근에 동생네가 어머님의 미움을 많이 사고 있다. 그래서 분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게 화근이 되어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생네가 안타까워 위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엔 아내와의 통화중에 제수씨에게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가게 하라고 넌지시 운을 뗐다. 그래서 갑자기 두 가족이 뭉치게 되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하고 있던 일을 마치고 천천히 내려가려고 했는데 아내가 독촉을 해서 급하게 수원으로 내려와 순대국집에 가사 한잔 술로 동생 내외를 위로해 주었다. 집에서도 한잔을 더 했다. 자고 가라는데도 집이 비좁아서인지 동생내외는 막내 조카만 데리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밤 조카들 둘은 우리집에서 잤는데 내겐 딸이 둘, 아들이 둘 같아 뿌듯하고 좋았다. 아이들은 사남매를 두는 게 좋을 듯 싶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원역에서 영화를 보았다. 오랜만에 온가족이 영화를 보았다. 아내는 딸과 ‘맘마미아’를, 나와 아들 성준이는 ‘신기전’을 보았다. 아들 성준이가 신기전을 보고 싶다고 해서 혼자보게 할 수 없어 나는 아들과 신기전을 본 것이다. 아내는 맘마미아가 무척 재미있었다며 나와 함께 하지 못할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고보면 양쪽 다 크게 만족스러운 셈이었다. 가슴 아픈 추석연휴지만, 한순간의 기쁨의 폭죽이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님의 한을 풀어드리고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게 해드릴 지가 내겐 큰 숙제다. 큰 아들인 내가 어떻게 해야 어머님께서 조금이나마 생의 기쁨을 느끼며 행복을 노래하게 되실까.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남은 시간이라도 즐겁고 기쁘게 보내면 되는데, 이 간단한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시고 오로지 과거에 매여 억울해 하고, 분노하고, 저주하고, 한타스러워 하시며 고통스럽게만 살고 계신다. 어떻게 하면 이런 간단한 이치를 깨달으시고 행복의 노래를 구가하실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절절하게 느끼게 할 만큼 효도를 다한다며 이 생에서의 한을 조금이나마 푸실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어머님으로 인해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는데, 이제 어머님은 내게 사랑을 어떻게 전하는 것인지를 깨우쳐 주시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책만 읽어도 행복하다. 먹는 것 시원찮고, 입는 것 허술해도 책을 읽는다면 천하가 다 내것인듯 뿌듯하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고 산다. 어디 그뿐이랴, 책을 읽다보면 절로 웃음을 짓게 된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를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가지 면에서 어렵고 불편한 상황에 빠져 있지만, 행복하게 사는 많은 기술을 터득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내 생은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내게 한 가지 욕심이 있다. 그것은 바로 책 욕심이다. 물론 책 욕심도, 과유불급이라, 지나치면 욕이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늘 경계를 한다. 책에 미치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큰 돈 들이지 않고 즐거움과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책 욕심 조금 많이 내도 큰 허물이 되지는 않으리라. 지난 번에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서 책에 관한 책이 서평도서로 올라온 것을 보고 욕심을 내어 서평도서 신청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어떤 책을 읽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자, 조선시대의 책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옛 선비들은 어떤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고, 어떤 깨달음을 얻고, 어떻게 수행을 하면서 살았는지 알아보자. 특히 조선의 역사를 뒤흔든 책들은 없었는지 알아보자. …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 / 이 민희 지음 / 글항아리) … <책 읽은 시간> 자: 2008. 9. 07. (일) 09:22 (금정역) ~ 지: 2008. 9. 13. (토) 23:27 (중동사거리/버스) <책 읽은 계기> 책에 관한 책이라 리더스가이드에서 서평도서로 신청해서 읽었다. 역시 책은 좋은 것이다. 만약에 옛날에 태어나 선비로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실컷 책을 읽으며 고고한 삶을 살았을까, 아니면 입신출세를 하기 위해 뼈빠지게 공부를 해야했을까.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라면 책을 벗 삼으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지 않았까 싶다. 이번에 이 책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이란 책을 읽으면서 과거로 돌아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만큼 선비로 사는 것이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책만 읽고 사는 것이 행복하지는 않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무척이나 즐거웠다. 손에서 책을 놓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 있다. 우리는 과연 책을 읽으면서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저 배불리 먹으면 살면 그만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책은 취미요, 사치일 뿐이다. 온통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다가 시간이 나면 어찌 그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책을 잡는 것이고, 의식주 문제에 골몰해 있는 사람들에 책 읽는 것은 사치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인간은 몸을 위해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정신을 위해서도 무엇인가를 먹어주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란 존재의 생명원리이다. 다만 우리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거나,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정신을 위해서는 책에 실린 좋은 정신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신이 나약해지거나 타락하거나 하지 않는다. 정신이 나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마음의 양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잘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것의 중요성을 알았던 옛 선비들은 책을 읽지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독서를 인생의 중요한 일로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책은 언제 읽어야 하는가. 어려서 공부할 때만 읽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죽을 때까지 읽어야만 하는 것인가. 우리는 흔히 학교 공부를 할 때까지만 책이라는 것을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정작 중요한 인생에 관한 공부는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학교를 졸업하고는 공부를 그만둔다. 그러면서 인생을 잘 살아가려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를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잘 살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공부는 평생해야만 한다. 당연히 책은 죽을 때까지 읽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 공부를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언제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빠르면 빠른 만큼 인생을 실수 없이 잘 살아나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나 가장 빠른 때이다. 아무리 늦었더라도 책을 읽기 시작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의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있다. 창피하지만 우리 어머니께서는 책을 읽는 것을 싫어 하신다. 당신 말씀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그랬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 형제가 책 읽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신다. 책 읽는다고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하시면서 가난한 주제에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우리를 나무라기까지 하신다. 그러면서 TV만 열심히 보시며, TV에서 나온 것들을 신봉하시며 우리에게까지 종용을 하신다. TV라고 해서 그릇된 정보만 있겠는가만은 책을 통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깨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TV의 정보는 조족지혈이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우리에게 옳은 것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에 중요한 문제일 경우에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정신이 올바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본인에게 큰 화가 된다. 반면 동생의 장모님께서는 동생네 집에 오셨다가 책을 한권 두권 보시기 시작하셔서 이제는 일주일에 4~5권 혹은 5~6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신다. 63세가 되셔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어엿한 독서가가 되신 것이다. 그저 책을 읽는다면 무슨 이야깃거리가 되겠는가. 책을 읽으시면서부터 많은 깨달음을 얻으시면서 더 행복하게 살게 되셨다는 것이다. 일찍이 홀로 되셔서 어린 자식들을 키우느라 고생고생하시면서 사셨기 때문에 인격적인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가 있는데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고 의식이 깨어남에 따라 세상을 대하는 관점에서 많은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변화는 대게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며, 마음을 너그럽고 온유하게 만들어 주게 된다. 앞으로도 수많은 책을 읽으시면서 성장, 발전해 나가신다면 얼마나 훌륭한 인격을 갖추게 되겠는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경우를 보면 책을 읽는데 너무 늦은 나이란 없는 것 같다. 사실 우리 어머니께서는 과거를 툴툴 털어버리고 남은 인생을 편하게 행복하게 사셔도 되는데 과거의 억울한 일에 매달려 현재를 낭비하는 삶을 살고 계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얼마든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선악 . 시비를 판단하고 계신다. 그러다 보니 입을 열었다 하면 친척들을 욕하고 심지어 자식들까지 비난하고 나무라시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가르쳐줄 수가 없다. 이러한 사실을 말씀드리면 오히려 역정을 내시고 자신을 몰라준다고 나무라신다. 이런 어머니께서도 이런 저런 책을 읽으시면서 정신적으로 인격을 함양해나가신다면 얼마든지 사리분별이 밝아질 수가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계신다. 실로 인간에게는 책이라는 정신적인 자양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책의 힘이란 이렇게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고 그저 얇팍한 정신을 가지고 몸만 편하게 살려고들 한다.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살려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 다들 돈~돈~ 하면서 인생의 모든 것을 돈이라는 관점으로만 보고 있다. 가던 길 멈춰서서 과연 이대로 좋은가 진지하게 반성해 볼 일이다. 우리 옛 선조들은 책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았을까. 이 책에 조선시대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책에 얽힌 이야기 13편이 실려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부터 황당하고 터무니 없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책 이야기가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 중간 중간 책 이야기도 나와 있어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 책을 읽노라면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 당쟁, 사상과 철학, 정치, 경제 등 여러가지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서점을 내게 해달라고 임금에게 여러 차례 간청했지만 실패한 이야기를 읽노라면 오늘날 마음껏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살 수 있는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옛 선비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알아보기 위해서 책에 언급된 책 제목들을 모두 말미의 여백에 빼곡하게 적어 두었다. 서양 세계의 책을 다 읽어본 후에 동양세계의 책들을 탐험할 때 모조리 읽어볼 심산이다.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라 그런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도 책을 좋아했지만 나보다도 훨씬 더 책을 사랑했던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빙그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번 귀기울여 보자. 명나라 선비 주대소는 책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 중국에서 가장 값이 나간다는 송판본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어느날 한 집을 찾아갔다가 뜻밖에도 송판으로 된 원굉의 후한서를 발견했다. 깜짝 놀란 그는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서 3대가의 평이 들어 있고, 비단과 옥을 곁들인 호화장정의 송판본인 것을 확인하고는 가슴이 콱 막힐 지경이었다. 망설임 없이 이를 넘겨줄 것을 책 주인에게 간청했보았지만, 주인은 책을 팔 의향이 전혀 없었다. 고가를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주대소는 자신의 첩을 주겠노라며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말과 바꿨다는 얘기보다는 낫겠지” 당최 주대소의 집착을 꺾을 수 없는 데다 여자를 주겠다는 말에 혹한 주인은 책을 팔고 여자를 얻었다. 이때 책 대신 다른 주인에게 팔린 애첩은 시 한 수를 벽에다 써 붙여 놓고 가버렸다. 본의 아니게 이 집을 떠나가지만 그 옛날 애첩을 말과 바꿨다는 얘기보다는 낫겠지 언젠가 재회하더라도 후회일랑 말기를 무심한 봄 바람만 길가의 나뭇가지에 불어대네. 이 시를 본 주대소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상심 끝에 얼마 안 있어 집을 팔아버렸다. 물건과 사람은 달랐다. 책을 서재에 꽂아놓은 흐뭇함은 곧 사라졌지만, 애첩의 빈자리는 갈수록 커져만 갔다. 결국 주대소는 상심이 너무 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긴가. 아무리 책이 좋기로서니 사랑하던 애첩과 바꿀손가. 그래도 책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에 담았던 몇구절을 옮겨적어 본다. - 24p: 채수는 조선이 모시고 있는 중국의 왕보다 염라왕을 훨씬 높은 지위에 둠으로써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 29p: 조선전기에 김시습이나 서경덕 등 유학자 사이에서 귀신론이 활발히 개진됐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사실 채수가 지은 귀신 이야기 설공찬전이 과연 분서갱유에 처해질 만한 것인가 의구심이 들 수 있다. - 47p: 조선의 관료 세력은 백성들이 책을 다양하게 읽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 48p: 그가 서사의 설립에 집착한 이유는 그 자신이 경남 진주의 향족 출신으로 책을 구해 보기 어려운 지방 유생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 81p: 곤지기는 양명학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쓴 책이다. 명나라의 왕양명이 주창한 양명학은 “마음이 등불”이라고 외쳤다. 왕양명 이전의 주자학은 마음은 기이고, 도덕성 등의 이치는 이라고 말했다. 기와 이를 구분한 것이다. 양명학은 이런 이분법에 반대해 만물일체의 입장에서 마음이 곧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자학에서는 사물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양명학에서는 먼저 마음의 눈을 열어야 그 다음에 사물의 문이 열린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 … (중략) ….. - 325p: 실제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에게 박학다식한 교양은 하나의 멋을 넘어 삶의 실천적 과제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 335p: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고민이 이 시기 만들어진 백과사전과 총서류 저서들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새로운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 말미에 소개된 다른 책들도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조선의 마지막 문장, 이향견문록, 조선이 버린 여인들.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욕심을 냈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빨리 동양 사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2008. 10. 3. 23:45 고고한 선비처럼 살고 싶은 고서 김 선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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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오랜 속담에 ‘책이 없는 궁전에 사는 것보다 책이 있는 마구간에 사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책은 말이 없지만 책을 읽은 우리가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책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의 욕망을 쓸모 있게 한다. 하지만 지금과는 달리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책을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책은 교서관(校書館)이 간행해 국왕이 신하에게 내린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개인이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이 또한 그들만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즉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히 다지는데 책이 아주 유용하게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의 불평등을 통해 조선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발견하는 책이『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冊)들』이다. 여기서 위험함의 척도는 성리학적 판단에 있다. 성리학은 성즉리설(性卽理說) 즉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가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지식을 강조했다고 해서 이학(理學)이라 불렀다. 저자 말대로 단순화하자면 성리학은 공부를 하는 게 우선이었다. <책 속 밑줄> 사문난적으로 몰린 책과 저자들의 역사는 성리학에 포섭되지 않은 사유를 가장 잘 보여준다. p 5 깊은 생각과 복잡한 사변은 이데올로기라는 칼날에는 어울리지 않는 장식이다. 조금이라도 거슬린다면 떼어내면 그만이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책에도 해당된다. p 73 책이라는 것의 속성은 오묘하기가 그지없다. 못 읽게 막으면 더 읽고 싶고 앎의 욕구는 조그마한 틈이라도 생기면 기어코 비집고 들어가서 미지의 세계에 닿고 싶어한다. p 79 불온한 사유는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합당한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러하다. 하지만 어떤 책에는 사유보다는 운명이 앞서 있는 경우가 있다. p 155 짝패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용어로 서로 다른 욕망을 지닌 것들이 비슷한 대상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p 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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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책은 참으로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이다. 책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을 빌지않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가 담겨있고 자신의 가치관 형성과 앞으로의 인생 길잡이가 되어주는데 책만한 것이 없음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이다. 하물며 조선시대는 어떠했을까? 태어나 읽기시작한 서책은 가히 평생의 친구가 되고 있었다.
평생의 숙원인 과거시험에 급제 관원이 되는 나이가 평균 40이었다하니 거의 35년의 시간을 책과 씨름했음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책사랑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알고있다. 그렇게 특별했던 조선시대의 책사랑속에서 조금은 특별했던책, 권력가들이 인정하지 않았던 책이야기를 만나며 새로운 역사 만나기를 하게되었다. 그들의 특별한 사랑이 목숨으로 이어지고 있는 13편의 이야기속에는 나름의 이유로 거부당할수 밖에 없었던 숨겨진이야기와 자신의 소신을 책에서나마 펼치고 있던 이야기 역사속에서 거론되지못한 아녀자들의 이야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내용들이었다.
조선의 대표적 성군인 성종과 최고의 폭정을 일삼았던 연산군 그리고 반정으로 왕권을 차지한 중종까지 3대에걸친 삶을 살았던 채수에 의해 쓰여진 설공찬전은 충신과 반역자 여인등이 등장하며 현실세계에서 펼칠수 없었던 인간의 재주와 능력을 펼치고 있는 염라국의 모습을 묘사 그로인해 강한 현실 비판을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모든 책은 불태워졌을뿐만아니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쓰여져야할 소설이 지배이념을 전달하는 교화소설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또한 어특강이라는 인물이 평생의 숙원으로 왕에게 간청하고 있던 서사 설치의 의견이 묵살되고 있는것에서는 평소 조선의 역사를 만나며 책을읽는 사람은 많은데 책을 사고 팔았다는 이야기가 없어 참으로 의구스러웠던 서사(서점)의 이야기를 만나며 철저하게 권력가들의 전유물일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이해할수 있었다. 조선의 역사속에서는 이렇듯 양반가들의 횡포에 가까운 책의 독점을 향한 집념들을 곳곳에서 만날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중국사대주의에 얽힌 성리학의 폐단으로 조선이 더 발절할수도 있던 여건들을 미리막는것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기도 했다.
조선의 역사를 만나다보며 그 무의미하다는 만약이란 가정을 많이 하게된다. 인조 반정이 안일어났더라면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선조가 조금만 더 의욕적이었더라면등 정말 무의미한 가정이건만 자꾸 되뇌이게 되는건 그 만큼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일기 때문일것이다. 여기에 또하나의 만약을 덧붙이게 만드는 책이 있었으니 그건 소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한 심양장계였다.
병자호란의 치욕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게된 소현세자가 강빈과 함께 신문물을 받아들여 경제를 살리면서 백성을 위하는 선정을 익히며 실천하는사이 병자호란의 치욕속에서 헤어나지못한 인조는 왕권에 대한 위기위식을 느끼고 급기야 비공식적으로 자기아들을 독살하기에 이른다. 왕권을향한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있어서인가 아들과 며느리 친손자들을 독살할만큼 그 자리를 지킨다는것이 그토록 중요할까 라는 의구심은 정녕 떨칠수가 없기도하다.
이토록 500년 조선역사속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책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이면을 만나게되고 시대에 부합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한 길을 걷고 안타까운 말로를 맞이한 이야기에는 권력의 뒤안길에서 고통스러웠던 선구안을 가졌던 신지식인과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할수 밖에 없었던 여인네들의 이야기가 함께 하고 있었다. 당시 환영받지 못했던 20가지의 책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시간이 되어 좀더 깊이있는 역사 읽기가 되고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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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들이 ‘서점’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빌려주기도 하는 그런 서점. 권력자들은 거절한다. 서점이 생기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책의 힘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요즘에도 책 한권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기도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그랬던 것 같다. 왕을 비판하는 책, 세상을 희롱하는 책, 조정에 피바람을 불러온 책, 사무라이를 무찌르자는 정신으로 조선을 매혹시킨 책, 유학자들 민망하게 만든 귀신에 관한 책 등등...
도대체 책이 무엇이기에, 그것이 성리학으로 똘똘 뭉쳤던 그 시대에 직격탄을 날린 것인가. 재밌게 읽었다. 재미도 있는데 유익한 것이 많았다. 알찬 느낌? 요즘 나온 그렇고 그런 역사책과 다르게 묵직한 것이 있다. 좋다. 나는 이런 책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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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민희 연세대 국문과 졸업 서울대국문과 대학원 고전문학을 전공해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 현재 아주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중
책 내용은 조선의 문화사를 많은 부분 알 수 있고 그당시 지식인들이 어떤모습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알려준다. 또한, 사람들에 흥미를 돋울 수 있게 인물들의 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그 내용에서 저자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룬 내용은 조선시대에 금서가된 책들, 그리고 그 책으로 인해 탄압을 받은 사람들, 그당시 시대에 관한이야기이다. 금서가된 책들이 탄압을 받은 대부분 이유는 당시 기득권의 권력을 유지해주는 이데올로기에 어긋난 것이 그 이유였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비판하고 있었다.
저자가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비판하는 것 은 분명한 이유가있었다. 이책의 내용에서 금서가되고 탄압받은 책들은 자유로운 사고를 갖고 사유를해서 만든 책들 이였다. 충분히 가치있는 책들 이었고 그 자유로운 사고가 어쩌면 조선을 실패의 역사에서 구해줄지도 모르는 책들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양반들과 왕들은 그들을 탄압했고 결국 조선은 실패했다. 이 책의 저자는 독자 들에게 그당시 기득권 에게 대항했던 자유로운 사유를 하고 조선을 구하려는 참된 지식인들 그들을 탄압하고 책을 불태웠던 성리학에 찌든 기득권들 그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비판을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말해주고있었다.
이 책의 가독성에 대한 평가는 이 책은 좋은 내용 이지만 용어들이 조금은 어려워 일반 역사에 관심없는 독자에게는 조금 어려울것이라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역사에대한 기초지식과 조금의 용어만 안다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편집상태는 좋은 편이고 책에는 조선시대의 그림, 고서적의 모습 조선시대 사진, 등 이 있어 조선문화의 모습을 상상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의 저자는 주로 문어체를 사용하고 있어서 딱딱하고 읽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객관적인 사실을 서술할때와 자신의 생각을 말할때는 어조가 변화해서 독자들게 더 책의 내용이 와닿게 한다.
이 책은 학습적인 가치도 좋은 책이다. 교과서에서 보지못한 뒤에 숨겨진 역사를 알려준다. 책에든 정보의 양이 많아 교양을 쌓기에 좋은 책이다. 아는 것이 많아야 확장적인 사고를 할 수있다. 독자들이이 책을 읽으면 분명 지금까지 역사를 생각했던 사고가 확장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들어있는 조선역사의 어두운 면을 본다면 지금까지 와는 다른 색다른 사유를 할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많은것을 알고 느끼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조선역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제목이 흥미를 끌어서 읽었는데 흥미뿐만 아니라 역사적이 사실도 알게해주고 이 책을 읽으며 당시 조선이 무엇이 문제였는지 왜 발전하지 못하고 일본에게 잡아 먹힌 실패의 역사가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그리고나는 조선을 괴롭힌 병통이 무엇이었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사람들은 알아야한다. 우리가 역사를 알면 우리가 잘못한것을 바로잡고 다시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조선이 했던 잘못들이 잘 나와 있는 책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수 도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은 사람들게 읽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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