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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그리움으로 기억되는 시절[박완서- 그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리움으로 기억되는 시절[박완서- 그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내용보기
개인적으로 나는 박완서씨의 글을 좋아한다. 현학적인  기교없이 옆집 아줌마의 수다처럼 솔직하고 담백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책장을 덮을 때면 마음 한켠에 수북히 쌓인 감상의 조각들이 부슬부슬 일어나서 잔잔한 감동마저 선사해 준다.그런데 생각해보니 좋아하는 작가치고는 정작 제대로 읽은 작품이 몇개 되지 않았다. 박완서님의 활동한 해와 작품을 세어
"그리움으로 기억되는 시절[박완서- 그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내용보기

개인적으로 나는 박완서씨의 글을 좋아한다. 현학적인  기교없이 옆집 아줌마의 수다처럼 솔직하고 담백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책장을 덮을 때면 마음 한켠에 수북히 쌓인 감상의 조각들이 부슬부슬 일어나서 잔잔한 감동마저 선사해 준다.그런데 생각해보니 좋아하는 작가치고는 정작 제대로 읽은 작품이 몇개 되지 않았다. 박완서님의 활동한 해와 작품을 세어본다면 터무니없이 미소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찬찬히 그녀의 글을 읽어보겠노라 다짐을 했고 완서님 매니아를 위해 마련된 듯한 전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계사에서 출간된 박완서 소설전집,,,좋아하는 작가이니만큼 전집에의 욕구가 마구 솟았고 망설임없이 몇권을 구매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전작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함께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결혼전까지의 실제 삶을 이야기로 담은 자전적 소설형식의 작품이다. 작가적인 관점에서 였다고는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가족과 자신에 대한 기록들을 샅샅이 대중에게 공개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출판되는 순간 자신의 손을 떠나 대중들의 다양한 관점에서 읽혀지고 평가되어질 것이고 가족개인의 익명성이 사라져버린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망설여질 일이다. 그런점에서보면 그녀는 분명 뭔가 남다른 작가임에 틀림없는 것같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20대이전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결혼 이전까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작품을 거꾸로 읽게 되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먼저 읽은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저변을 흐르는 기본적인 정서가 유사해서 큰 충돌은 없었다.

 

78년에 출생한 나는 6.25를 전후로 한 격동의 세월을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것도 체험적인 인식이 아닌 그 세대들이 남겨준 구전과 기록에만 의지하여 지식으로 체득한 것 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된 배경이 바로 그 낯선 기억 속의  6.25를 정점으로 하는 혼란기였다. 사실 어색했다. 우리 세대들에게 그 시절 그녀가 겪었을 시대적인 고통과 어려움은 어느 곳에서도 낯선 장면으로 다가오기만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록 영화와 문학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세대간의 이질적인 문화와 정서를 교류하는 장이 활성화되어서 어느 정도 생경함에서는 벗어났다고는 하더라고 말이다.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작품의 시대적이고 공간적인 배경이 주는 참담함보다는 그녀가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엄마와 올케로 대변되는 여성의 모습과 그들과의 관계가 더 긴 여운으로 남았다. 

 

대개 우리는 여성작가들의 작품에서 빛나는 여인들을 주인공으로 쉽게 만날 수 있다. 엄마로 대표되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은 여성작가들의 손을 지나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나 또한 작가의 가족속에서 찬란하게 아름다운 여인들과 재회했다. 바로 작가의 엄마와 올케였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이 하루가 다르게 술렁이는 사회속에서라도 그녀들은 가족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어떤 비난과 굴욕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렵던 시절을 그래도 굶지않고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여인네들의 땀방울 덕분이었지만 여자라는 신분적인 한계때문에 사회적인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했다. 팽팽한 이념대립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그래서 모질고 구질한 여자라는 비난도 받았다. 이러한 이중적인 시각은 어린 완서에게도 존재했다. 억척스러운 엄마의 생활력을 존경하면서도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점에 대해서는 역겹다는 표현을 서슴치 않고 사용했다. 동시에 가족에서의 엄마의 존재감을 부정하려고도 했다. 반면에 엄마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올케에 대해서는 진한 우정과 연민으로 일관되었다는 점에서 비교해본다면 딸로서의 엄마에 대한 정서가 혼란스러웠다. 사실 공식적인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오빠가 가장이였지만 역할에 맞는 책임감은 늘 부재했다. 헛된 공상과 과장된 영웅의식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외면하고 가족을 어려움에 빠뜨리기 일수였다. 지주였던 오빠의 죽음에도 가족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바로 엄마와 올케의 거대한 존재감 때문이었다. 

 

엄마와 딸이라는 애증의 관계에서 시작된 충돌은 작가가 미군부대px에 취직하면서 시작된 독립의 의지에서 뚜렷하게 드러났고 그녀의 결혼에 이르러서는 정점에 달했다. 20대를 지나는 청춘의 가슴을 불태우는 가장 큰 화두는 바로 독립일것이다. 일상적인 변화에 다름없는 독립하고자 하는 20대의 모습치고는 투쟁에 가까왔다. 끊임없이 신식여성이 되기를 강요하는 엄마의 틀에서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는 엄마에게 반항이라도 하듯이 결혼과 함께 독립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결혼이었고 엄마와의 이별이었지만 그녀는 하염없이 통곡하듯이 울기만 한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도,,,참 인상적이었다. 엄마와 딸이라는 풀리지 않는 관계의 명제를 가장 잘 그리는 장면으로 자평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스라한 과거를 회상하며 펜을 잡은 작가의 모습이 연상된다. 산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있어주었던 오빠,엄마,올케,큰숙부내외,작은숙부내외,할머니,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d*****8 2008.07.24.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내용보기
이 책의 전편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년에 읽은 바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박완서 작가의 가치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속편 격인 이 책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올초에 구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개월이 지난 이제서야 책을 펼친 것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이다.   이 책을 전작인 『그 많던 싱아는 누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내용보기

 

 

이 책의 전편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년에 읽은 바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박완서 작가의 가치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속편 격인 이 책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올초에 구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개월이 지난 이제서야 책을 펼친 것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이다.

 

이 책을 전작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비교한다면 어느 쪽을 우위에 두어야 할까? 세간에 알려진 지명도로는『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앞설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내가 느낀 점을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박완서 작가의 깊이에 대해서 다시 확인했다. 작가의 명성에 대해서는 수십 년 전 학창시절부터 들은 바 있다. 그러나 나는 한국 명작이면서 여성이 쓴 문학이라면 재미도 없고, 완성도도 떨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박화성, 장덕조, 박경리 등 여성 원로들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어느 여성 원로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때의 실망이 계속 이어진 듯하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 역시 그런 이유로 가까이 하지 않았지요. 20여 년 전엔가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읽었던「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재미있게 보면서 그 글이 실린 수필집을 읽은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서 섬세하면서 깊이 있게 펼쳐지는 내용에 반하였고, 좀 더 빨리 작가를 알지 못한 것을 후회했었다. 이 책을 통해 박완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게 되었다. 이 작품은 그만큼 흥미 있게 몰입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

 

둘째, 처음으로 접한 인공치하의 서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흘만에 서울이 적화되었을 때의 모습을 여러 책에서 읽기는 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은 대부분 북한군을 악마로 표현하고, 서울시민을 자유를 사랑하는 시민으로서 부당하게 박해를 받는 민중으로 그렸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작가는 완전하게 중립을 유지했다. 이승만 정부나 국군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사가 아니었고, 김일성이나 북한군도 탐욕에 불타는 승냥이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사람이 사는 이야기였다.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읽는 듯 편한 마음으로 읽게 해 준 작가가 고마웠다. 삼국시대의 전쟁에서 신라가 이기면 어떻고, 백제가 이기면 어떻고, 고구려가 이기면 또 어떻겠는가? 이 책에 나오는 남북한의 모습은 내 눈에는 그저 우리였을 뿐이다. 이런 작품들이 보다 많아진다면 수구꼴통이니 좌파종북이니 하는 지금의 좌우익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듯하다.

 

셋째, 2편에서 멈춘 것이 아쉬웠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의 어린 시절인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 책은 한국전쟁 무렵을 다루고 있다. 만약 3편이 나왔다면 이승만 정권의 독재나 혼란, 이어지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등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을까? 좌익과 우익의 세계를 모두 경험했던 작가가 한국전쟁 이후 경제개발과 민주회복의 두 마리 토끼를 쫓던 우리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지 그 진솔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면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는 이미 작고하셨다. 그 이야기들은 다른 작가들의 몫이 되리라. 작가가 두 편의 작품을 어느 정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30년이나 지난 1990년대였기 때문이리라. 1970년대 이전이라면 이런 작품들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최소한 10년 전의 상황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완서 작가의 두 책들이 각급학교의 도서관에 비치되고, 어린 학생들이 많이 읽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 작품들이 통일을 주제로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제 말기와 해방을 거쳐 6.25 전쟁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내용을 읽게 되면 최소한 남북을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줄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쉬움을 쓴다면 이 책은 1995년에 웅진출판에서 2008년에 세계사에서 다시 발간되었다. 내가 읽은 책은 2011년에 발간된 초판5쇄이다. 이렇게 15년에 걸쳐서 꾸준히 읽히며 판을 거듭했다면, 교정을 확실히 했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이런저런 오자가 보이는 것이 아쉬웠다. 특히 박완서 작가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받을 만큼 우리말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가이다.

 

박완서는 그의 출신지 · 성장기 · 거주지의 언어가 아닌 현재의 표준어를 구사하면서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형상화하는 과정 속에 작가 자신이 만들어낸 개인적 어휘를 활용한다. 그런데 이렇게 창조된 어휘들이 독자들에게 엉뚱하다거나, 외국어처럼 느껴진다거나 아니면 생경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디서 들어본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아주 친숙하게 다가오는 어휘들이다. 그렇기에 박완서의 작가적 역량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완서가 만들어 낸 우리말의 아름다움 (박완서 소설어사전, 2003.7.25, 백산출판사)-

 

이런 작가의 작품이 사소한 오자로 인해 행여 아름다운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덧붙인다.



y******3 2013.07.08.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내용보기
박완서님의 자전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다 먹었을까]의 후속편이다. 스무살의 지은이가 대학을 입학하고 불과 몇일만에 625라는 대사건을 만나 겪게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가 실화를 중심으로 이어져나간다.   상상 속에 존재하던, 영화와 드라마로만 봐왔던 전쟁의 참상과 그 속의 비참한 생활상이 그대로 그려진다. 한 민족이 불구대천의 원수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내용보기

박완서님의 자전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다 먹었을까]의 후속편이다. 스무살의 지은이가 대학을 입학하고 불과 몇일만에 625라는 대사건을 만나 겪게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가 실화를 중심으로 이어져나간다.

 

상상 속에 존재하던, 영화와 드라마로만 봐왔던 전쟁의 참상과 그 속의 비참한 생활상이 그대로 그려진다. 한 민족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총을 겨누고 서로 살육을 벌이는 야만의 세월......  

 

인민군에 끌려갔으나 탈영하고 돌아온 오빠가 재수없이 총에 맞아 다리를 다친 이야기, 남북의 일진일퇴 남하와 북진에의해 수복됐다 빼앗겼다를 반복하는 사이에 피난조차 가지못해 이리저리 마음 고생 몸 고생한 이야기, 가족 생계를 위해 px에 취직하여 겪게되는 이야기 등이 주 내용이다.

 

이 한권의 책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미군에 빌붙어 살아야만 하는 지은이와 지은이의 올케 그리고 그 가족... 지은이는 그것에 대해 참담하다는 표현을 많이 했던 것같다. 그러나, 어쩌면 지은이가 서울대 문턱이라도 밟아본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나마 그런 정도의 생활이라도 가능하게 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란을 전후한 대부분 민초들의 고통에 비한다면 그녀 가족은 그나마 많이 나은 생활을 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인공기와 태극기가 바뀌는 순간마다 어느 쪽에도 함부로 속할 수 없는, 어느 편에 함부로 부역할 수 없는 서민들의 애환, 고민, 북에 부역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위해 국군이 밀릴 때 남으로 피난을 가야만 하는 현실이 잘 묘사되어있다.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 잘 그려진 옛 마을 풍경화 속에 한 동안 머물다 나온 것 같은 상쾌함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r*****9 2010.09.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