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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해서 듣고 있는 사이에 이 <해변의 카프카>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 같은 것을, 나는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해변의 카프카>의 음악에 담겨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재능과 욕심 없는 마음의, 솔직하고 다정한 어울림인 것이다.(404쪽) 마치 내가 이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하루키 소설에 대해 느낀 마음이 기록된 듯 했다. 에세이는 쫌 읽었지만,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고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소설을 멀리하다가 작년에서야 <노르웨이 숲>을 읽었고, 그 다음에 <1Q84>를 읽었다.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를 읽는다. 앞서 읽은 두 소설이 있었기에 이 소설을 읽으며 느끼게 된 감정인지, 두 소설 없이 이 소설을 먼저 읽었어도 느꼈을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지나간 일을 '만약에~' 하고 마음대로 의미를 부여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어떤 것이든, 나는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 나가다가 404쪽의 문장을 맞닥뜨렸을 때 '이것은 마치 하루키가 독자들이 <해변의 카프카>에 대해 느끼게 될 감정을 예언한 듯 하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한 동의!!!가 뒤따랐다. 세상에 대한 메타포와 신화적 예언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에 꼭 맞는 결과다. 하루키가 계산을 하면서 쓴 것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연이었겠지만, 또한 필연인 것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예언 내지 저주를 들어 온 15세의 다무라 카프카와 고양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나카타라는 노인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된다. 상권에서는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지만, 나카타씨가 여행을 시작하면서 하권에서는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아직 하권을 읽지 않아서...) 물리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마주친 적은 없지만, 둘은 꿈 혹은 비현실적 세계에서 하나가 된 것 같다. 이 부분은 상권에 나오는 이야기다. 왜 다무라 카프카가 나카타와 하나를 이루게 되었는지 하권에서 나올까? 아직은 모르겠다. 조각가인 아버지가 다무라 카프카에게 한 예언 내지 저주는 '너는 언젠가 그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언젠가 어머니와 (또 누나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조각가인 아버지는 나카타씨 앞에 조니 워커로 나타나 고양이를 산 채로 죽이고 심장을 먹고 머리를 잘라 냉동한다. 나카타씨는 전쟁 같은 살인을 저지른다. 그 시각 다무라 카프카는 정신을 잃은 채 4시간을 보낸 것이다. 카프카는 자신이 꿈 속의 회로를 통해 아버지를 죽이러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은유이며 동시에 실체를 가진 진실이다. 비유가 맞을 지는 모르겠는데 가톨릭 교리에 이런 것이 있다.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는 미사 때마다 성체를 모신다. 이 성체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인데 이 성체를 모시는 것은 은유도 상징도 아니라고 교리에서는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살덩이와 핏물로 먹고 마신다는 것은 거북스러운 일이므로 밀떡과 포도주로 대신하기는 하지만, 은유도 상징도 아닌 실제하는 몸과 피임을 믿어야만 세례도 받을 수 있고 미사 때마다 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뚱한 비유같기도 하지만, 이 교리가 떠올랐고, 카프카에게 이것은 곳 진실임을 알겠다는 것이다. 예언은 이루어진 것이다.(하권을 끝까지 읽어봐야 하겠지만...) '인간이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인간을 선택한다, 그것이 그리스 비극의 근본을 이루는 세계관이지.'(353쪽) 나는 운명이 인간을 선택한다는 쪽이다. 운명은 피하려 하면 할 수록 벗어날 수 없다. 운명은 의지보다 강하다. 상권은 주인공 카프카가 예언에서 도망쳤지만, 그 첫번째 예언이 이루어졌고 나머지 예언도 피할 수 없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고속버스에서 만난 사쿠라와 보낸 밤은 누나와 관계를 맺는다는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은유와 예언을 무기삼아 나의 심장을 가늘고 긴 손톱으로 긁듯한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나는 두리번 거리며 하루키 세상으로 발을 들이민다. 하권도 이 어렴풋한 느낌을 이어가기 바란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에는 금세 싫증을 느끼게 되고,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대개 지루한 것이라는 걸. 그런 거야. 내 인생에는 지루해할 여유는 있어도 싫증을 느낄 여유는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게 보통이지만.(201쪽) 침묵이란 귀에 들리는 것이다.(247쪽)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주위에 있는 현실이란, 불길한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야.(277쪽) 그러나 그 사소한 차이가 때로는 끝없는 심연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322쪽)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메인 주제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323쪽) 그 말을 일단 입 밖에 내버리자, 새삼스럽게 형태가 있는 말로 만들어버니자, 내 마음속에 커다란 공동이 생긴 것 같은 허전한 감각이 생겨난다. 그 가공의 공동 속에서, 내 심장은 금속적이고 공허한 소리를 내고 있다.(3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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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하권을 모두 읽고 나서 왜 이제서야 이 작품을 접했나 싶을정도로 미친듯이 재밌었습니다. 또 등장인물에 대한 성격 묘사가 섬세하여 몰입하기가 쉬었습니다. 다소 적나라한 표현(잔인하거나 선정적인)이 있어서 '이런게 나와도 되나?' 싶기도 했는데, 나중엔 이런 요소가 어쩌면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포인트였지 않나 싶습니다. 하루키 작가님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작품이라고 한 것이, 독자에게도 와닿는 매력적인 이야기 였습니다. 앞으로도 몇 번 더 읽어보게 될 책인 거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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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의 화자, 남자 아이. 이 기본 설정이 내게는 한참 동안 거슬렸다. 내가 15살을 너무 무시하는 건가, 그 나이에 뭘 알겠나, 내 15살은 어땠던가, 15살에 이렇게 깊은 방황이라니, ...... 이런 생각들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었던 탓이다. 돌아보면 내 15살은 참 어리고 온화했다. 그래서 아마도 다른 이의 아픈 처지를 헤아려 볼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소설은 흥미롭게 전개된다. 현실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환상까지 겹쳐 전개된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작가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 것일까를 궁리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두 권으로 되어 있고 나는 이제 막 상권을 다 읽은 참이라 하권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다가 마무리될지 모르지만 기대는 된다. 이 소설을 예전이 아니라 지금 읽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읽은 태엽 감은 새가 제대로 읽은 것 같지 않다는 느낌도 같은 맥락이고.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써 본다. 나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나쁜 사람, 이라고 쓰고 보니 좀 애매하다. 내가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이라고 바꿔 본다. 나는 어떤 사람을 나쁘다고 하는가? 다치게 만드는 사람, 피해를 주는 사람, 괴롭히는 사람 등. 대신에 나쁜 상황을 제시한다. 어쩌면 이게 더 나쁠 수도 있지만. 인물은 이 나쁜 상황을 헤쳐 나가려고 한다.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는 단정할 수가 없고. 아무래도 나는 나쁜 상황의 거대한 음모보다 나쁜 사람에게 더 질려 있는 것 같다. 나쁜 상황도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만든 것임에도. 내가 이렇게나 단순하다. 15살 카프카는 혼자다. 너무 이른 게 아닐까? 자연스러운 자각일까? 작가가 그랬을까? 내가 그러지 않았다고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 18살 정도라고만 했어도 훨씬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 같은데. 나는 왜 이토록 나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지, 이 또한 편견일 텐데. 어느 새 15살의 영혼이라면 마냥 어리고 유치할 것이라고 여기는 꼰대가 되고 만 것인가. 하권에서 이런 내 생각이 바뀌게 되는지 잘 살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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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약간은 외설스러울 수도 있는 내용을 서스름 없이 소설 속에 담아, 오히려 그러한 부분이 문학스럽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과 어떻게 보면 찜찜할 수도 있고, 아쉬울 수도 있고, 뒷부분을 마음껏 상상해 볼 수도 있는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내용 전개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해변의 카프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사랑하고 또 추천하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간략히 설명하고 싶다. [해변의 카프카]는 등장인물이 꽤나 많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장 별로 각각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온다. 그 중에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은 카프카와 까마귀소년, 나카타씨 이렇게 세 인물인 것 같았다.
단연 책의 주인공을 한 사람만 짚으라고 한다면 다무라 카프카 라는 소년 뿐이겠지만, 그와 항상 함께하는 까마귀 소년과 그와 반대되는 삶을 사는 나카타씨 또한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카프카 소년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개척과 발굴'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진취적이지 않나 하고 느꼈다. 반면 나카타씨는 그와 반대되게 흘러가는 삶에 세월을 맡기는 느낌이었다. 현재의 삶에 고뇌하고 고민하지만 그걸 바꾸거나 개척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데로 받아들이고, 기다리고 또 그 상황속의 변화를 따라간다.
이렇게만 비교를 한다면 나카타씨의 삶은 카프카 소년에 비해 부족한게 아닐까 라고 느낄 수 있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받아들이는 삶 조차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뇌하고 절망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카프카 소년처럼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찾기위해 나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러다가 지치면?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고, 막연한 공포들과 함께 살아간다. 이럴때 나카타씨처럼 살아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본문에서 나카타씨는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는 어떻게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지 본인도 잘 모르는 듯 했지만 나는 알 것 같기도 했다. 바로 '기다림'이다. 그는 기다리는 것은 익숙하다고 말하며 기다리는 것을 잘 했다. 나카타씨가 고양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오랜시간 지켜보며 행동양식, 울음소리, 표정, 몸짓 과 같은 모든 언어적 비언어적 대화의 방식을 조금씩 터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바로 '기다림'의 결과인 것이다. 그는 물 흐르듯이 삶을 살아가고 뭉근히 기다릴 줄만 아는 사람이었지만 사실은 그게 인생의 정답이 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모르겠을 때, 그저 주변에 주어진 일들을 하며 일단 살아가다보면(인생의 좋은날이나 뚜렷한 목표가 다시 나타나길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많은 것을 해 와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 놓은 것들이 생겨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인은 나카타씨의 삶을 사랑했고, 나카타씨가 하는 모든 말들을 존경했다. 나는 누군가를, 그리고 나 스스로를 그렇게 천천히 기다려 줬던 적이 얼마나 있을까. 본문에서 나카타씨의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나 스스로가 느끼기에 이 책의 주인공은 나카타씨인 것 처럼 나카타씨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소설을 읽고 인생을 생각했다고 하면 거창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나카타씨의 삶을 보는 동안의 나는 분명 행복했고 삶의 '기다림'이란 것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스러울 때 마다 다시 찾는 책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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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문장들 질이 높은 치밀한 불완전함은 인간의 의식을 자극하고 주의력을 일깨워주거든. 이것 이상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완벽한 음악과 완벽한 연주를 들으면서 운전을 하다간, 눌을 감고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어질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D장조 소나타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인간이 영위하는 한계를 듣게 되지.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올까. 감탄할 따름 완벽한것은 지루해...결핍이 따분하지 않은 인생을 만들어 준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는 것에는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되고,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대개 지루한 것이라는 걸.
핵소름...쉽게 말해 자극적인거에는 금방 싫증을 느끼고,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한 것에는 싫증을 느끼지 않는... 곰곰히 곱씨어 보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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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카미 하루카의 해변의 카프카이다. 20년전에 읽은것 같은데 기억이 하나도 안나 다시 구매하게 되었다. 사실 기사단장 죽이기를 먼저 구매해서 읽을려다 왠지 해변의 카프카가 더 끌려서 구매하게 되었다. 다음은 진짜 기사단장 죽이기를 구매하리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은 왠만큼 많이 모았다고 자부할만큼 많이도 사모았다. 왠지 이 작가의 소설이 좋다. 그리고 사람 본인도 괜찮은 사람인것 같다. 앞으로도 좋은 소설 많이 냈으면 싶다. |
| 이번에는 3개의 상황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가면서 마지막에 같이 만나게 되는 상황, 이번 이야기는 사실 고양이의 사건은 좀 옆기적이기는 하지만, 그 짜임과 구성은 과히 하루키라는 느낌을 한층 받을수 있었다. 글의 묘사와 전개는 하루키를 따라 갈수 없을것 같아, 근데 아직까지 하루키가 진정야기 하는것은 아직 모르겠다. 자신의 결정체라고 할 정도로 심의를 기우렸다고 하지만 그 의미를 아직은 모르겠다, 암튼 하권을 읽어 봐야겠다 |
| 이번에는 3개의 상황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가면서 마지막에 같이 만나게 되는 상황, 이번 이야기는 사실 고양이의 사건은 좀 옆기적이기는 하지만, 그 짜임과 구성은 과히 하루키라는 느낌을 한층 받을수 있었다. 글의 묘사와 전개는 하루키를 따라 갈수 없을것 같아, 근데 아직까지 하루키가 진정야기 하는것은 아직 모르겠다. 자신의 결정체라고 할 정도로 심의를 기우렸다고 하지만 그 의미를 아직은 모르겠다, 암튼 하권을 읽어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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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0년이 되었다. 서점에서 발간이래 서점가를 휩쓸었던 그때가.
상, 하권으로 출간되었고, 일본책 임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로 한동안 랭크되었었다.
당시 그러한 모습들이 인상깊었고, 최근 노벨문학상 선정 후보자로 작가가 더욱 알려지면서 다시한번 그때가 기억났고 이번에 구매를 하게 되었다.
작가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는 표현력으로 이 소설은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겹쳐진 시간들, 유령과 음악, 용서의 치유력, 폭력, 사랑, 기억 그리고 상실감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다양한 감정에 대해서 작가나름의 풀어놓는 방법, 묘사방법을 보면서 책을 읽는다면 잠시 현실 세계를 벗어나 책의 세계로 빠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