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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을 처음 접하게 된 책은 '미국 민중사'였다. '미국 민중들의 삶'.'미국 민중들의 감춰진 모습' 등등의 제목도 아니고, 미국 민중의 역사가 주류 역사인 것 처럼 당당한 책 제목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갈끔하게 2권으로 나뉘어져 새로 출간된 개정판에서 왠지 모르게 흘러나오는 도도함에 매혹되어 책을 읽게 됐다고 해야 겠다.
너무자잘한 사례들가지 수록함으로 약간 지루하다는 점만 빼면, 미국 민중사는 너무 훌륭했다. 연대순으로 전개되면서도 뚜렷히 주제별로 나뉘어진 책은 강력한 메시지의 민중의 대변서였다.
미국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작가 하워드 진. 솔직히 난 내 자신이 어느 쪽 정치이념에 치우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에, 극단적인 치우침이 싫다고 할 수 있겠다. 다행히도 미국민중사의 하워드진은 과격하지도 않았고, 감탄이 나올 정도로 도도했다. 그리고 서문에서 밝히는 그의 역사의식은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는 하워드 진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형식이다. 좀더 본격적으로 그를 알 수 있을 기회라 생각했고, 너무 심오한 내용이 아닐까 부담스러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미국민중사에서 느낀 도도함과는 달리 이 책에서의 하워드 진은 너무나도 앙칼지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그의 의견 모두에는 동의할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미국에 가장 부러운 점은 명목상으로라도 독립선언문과 헌법을 통해 뚜렷한 종교관과 인권의식을 담은 건국이념 위에 국가가 세워졌다는 점이다. 일단 명목상이라도 그 위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명목상의 이념 때문에 자유주의 수호자로 대변되는 미국의 상대적으로 더 많이 대내외적으로 비판을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생각이 달라졌다. 역사가 짧은 이 이민자의 국가에 뚜렷한 민족의식이 존재할까? 라는 물음에 쉽게 긍정의 제스쳐가 나오지는 않는다.
만약 하워드진 같은 인물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면, 미국에서와 같이 존경받을 수 있을까? (좀 민감한 질문인가? 그러나 내 논지를 명확히 마무리 짓고 싶다.)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에서는 상황이 많이 다를 것이다. 그 이유는 이념의 당위성에 대한 양 국의 인식차이 때문이 아니라, 양 국의 역사의 깊에 의해 만들어진 민족의식 차이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언제까지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극심한 이념적 논쟁은 항상 달고 다녀야할 문제일 것이다. 때문에 하워드 진같은 인물은 미국에 더 없이 필요한 존재라 생각한다. 그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앞으로 미국의 행보에 주목하며, 이 책을 통한 그 와의 만남을 소중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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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부끄럽게도 하워든 진이라는 이름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노암 촘스키 역시 명성만 알고 있고 그의 저서 한 권 읽은 적이 없으니 하워든 진도 절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심각한 독서는 피하고 싶은 것이 그동안 내 마음이었고, 원래 내 취향도 픽션쪽이기 때문에 더더욱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 이 책의 소개를 보고나니 이 책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 읽은 지금은 역시 어떤 독서보다 즐거웠다는 마음이 든다.
예전에 10대였을때는 토론 프로그램 같은것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공부를 하다 쉬는 시간에 일부러 토론 프로그램을 보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서 공부를 하다가 그 때 쉬곤했다. 즉 그것은 나한테 오락과도 같았다. 토론 속에 오가는 논리의 맹점을 찾는 것도 큰 재미였고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을 보면 흥분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 성향을 찾을 수 있었던것 같다. 세상을 보는 나만의 기준 같은 것. 이렇게 장황하게 내 예전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은, 이 책을 보며 그 때의 즐거움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지적인 즐거움이었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 하워드 진을 인터뷰한 것을 옮겨놓은 것이 이 책이다. 자본주의, 전쟁, 예술가들의 사회적 역할등 사회 여러방면에 대한 하워드 진만의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하워드 진이 더 좋았던 것은, 이런 심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만의 관용적이고 해박한 방식이다. 자신이 말하는게 꼭 옳다고 강요하지 않고 자신도 모든것을 아는 것이 아니고 단지 부분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에 참여해온 사람이 보여주는 삶과 세상에 대한 낮고 바른 자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초강대국 미국의 이면을 까발리는 그의 근거있는 논리들을 읽고 있으면 우리가 살면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산 소고기 문제때문에 촛불문화제가 끊임이 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이런 운동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인데도 우리 개개인의 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더딜지언정 한결같이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불합리한 구조속에서 우리에게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을것인가.
아는 것은 힘이다.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전제요소이다. 안된다고 포기하는 순간 나의 반대쪽의 사람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결국 정의와는 상관없이 더 많이 행동한 사람이 이 세계를 마음대로 끌고 갈 수도 있는 것이다. 행하지 않으면 결과는 없다.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살 수 밖에. 다행히 우리의 역사속에서 우리는 시민들의 위대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엔 작게 시작한 그 움직임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큰 파동으로 이어져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어렵게만 생각하던 사회참여나 시민불복종을 비롯한 시민운동들이 한층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고 우리의 생활 속에, 인생속에서 어떤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최고의 지식인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라 참 즐거운 독서가 되었고, 그의 유명한 저서인 미국민중사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양한 독서가 하고 싶어지게 만들고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게 해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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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도 나오지만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는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막연하게 알고 있는 미국사에 감춰진 더러운 모습들을 분명하게 볼수 있게 해준다. 사실 David Barsamian의 인터뷰 모음인 본저는 하워드 진의 다른 저서들은 먼저 읽고 접하면 보다 도움이 된다. 오만한 제국 이나 미국 민중사를 아직 안 읽어보신분이 계신다면 권해드리고싶다. 세상과 미국의 음모를 알뿐더라 우리를 다시금 되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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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에서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이고, 사회비평가이며 희곡 작가 등으로 유명한 하워드 진과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영어권에 방송되는 얼터너티브 라디오의 진행자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대담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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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을 위해 존재하는 세계입니까? 무소불위의 정치권력과 가공할만한 경제제재를 앞세워 걸핏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을 위한 세계란 말입니까? 이라크를 침략한 명분은 현재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막바지에 다다른 공화당 정권은 하루빨리 전쟁이란 단어가 국민의 머리에서 사라지길 바랄뿐입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그들은 어떠한 반성이나 후회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들이 하는 일은 정당하고 다른 민족들은 위대한 신의 계시를 받은 자신들의 자유 민주주의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되풀이 하고만 있습니다. 편파적인 논리에 수만기의 핵폭탄을 보유한 미국을 누가 감히 거역 할 수 있겠습니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결권을 마음대로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미국을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미 전 세계에 뻗쳐있는 미 기업들의 상품을 먹고 마시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국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안타깝게도 가난한 나라일수록 미국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친미적인 성격이 강한 국가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린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역사상 최고 권위를 누리던 국가들은 영원할 것 같은 순간에 모두 사라져갔으며 팍스 아메리카 역시 자신이 처한 위기감을 알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너무 비관적입니까? 하지만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연을 극복(?)해왔고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지구상의 모든 만물을 자신의 발아래 앉혀 놓았습니다. 깨뜨릴 수 없는 고정관념은 없습니다. 결국 세상의 큰 흐름을 깨닫고 변화하는 인간만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워드 진은 노암 촘스키와 더불어 진보성향이 가장 강한 미국 학자입니다. 그는 근 100년 미국이 자행해온 전쟁과 정치적 이면에 관한 끊임없는 논란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왔습니다. ‘전쟁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보는 집단은 누구인가?’ 1930년대 대공황을 통해 본 미국은 돌파구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시 루스벨트는 지금은 완전히 잊혀져 버린 미국민을 위한 ‘경제권리장전’을 만들었습니다. 세계 인권선언의 기초가 된 당시의 경제권리정전은 기업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경제적 권리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미국의 야심을 더욱 키워 나갑니다. 하워드 진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전복, 끊임없는 테러, 베트남전, 걸프전, 그리고 이라크전등 근 100년사에 미군이 참전하지 않는 전쟁이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들은 미국민들의 지지도를 이끌어 내기 위해 언론 통제등 갖은 술수를 부립니다. 하지만 전쟁 후 남겨진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들이 그렇게까지 수백만 명을 살상하지 않았더라도 독재자는 죽었을 것이며 자치제도는 설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전쟁 시마다 내세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나라들이 결국 베트남이고 이라크란 말 입니까? 정말 웃기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국민들을 희롱합니다. 하지만 정부에 위탁하는 기업과 언론은 더욱 가관입니다. 마치 자신들이 세계를 어떻게 할 수 있고 어떤 나라든 미국의 깃발을 꽂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동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상상은 지구촌 반대편 사람들에겐 생사를 가늠해야하는 현실이 됩니다. 전쟁 후 가장 가슴이 아픈 사람은 참전 용사들의 가족들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전쟁의 기억이 빨리 대중 속에서 사라지길 바랍니다. 전쟁을 통해 이득 보는 사람은 극히 몇 명이고 그들은 엄청난 돈 방석에 앉게 됩니다. 하워드 진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부다.’ 51%의 득표율로 100%가 넘는 권력을 장악한 승자독식사회는 미국 정치의 아이러니입니다. 분명 현 체제에 반대하는 언론이나 국민들도 많을 것인데 그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보수체제를 옹호하는 집단이 철옹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닮은 자녀들 역시 그 품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교육, 사고의 획일화를 통한 맹목적 자본주의의 팽배, 위기의 근본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따르라는 것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승자독식사회를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판을 받아들이고 대중적인 정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우린 자신에 불리한 상황을 변론하는데는 익숙하지만 사고를 통한 비판력과 통찰력을 발휘하는데는 상당히 취약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황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게 되면 세상이 복잡해질까요? 권력에 대한 의문과 삶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우리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우린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결국 하워드 진이 말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의 기본 개념은 통찰력입니다.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의 비폭력 저항 운동이 위대한 역할을 수행해 왔듯이 대한민국의 촛불 집회가 변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큰 흐름을 만드는 통찰이 필요합니다. 우린 지구인입니다. 해석하기에 따라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경제적 균등을 주장하는 하워드 진의 무정부주의와 경계 없는 국가는 무척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전쟁이나 부의 집중화, 기업의 팽창화는 분명 우리들이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는 미국만의 문제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바위에 구멍을 뚫고 주위를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로 보는 것 그리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많은 가능성을 비출 것입니다. 하워드 진의 ‘세상을 어떻게 통찰 할 것인가?’ 그 분의 진보 철학에 의문을 더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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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답변했다. 그런 그의 생각에 나는 동의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역사가 또 다른 역사를 만들고, 이 과정에서 진실도 드러나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진실을 밝히는 힘은 소수의 역사학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살았던,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우리들에게도 그 힘은 있고, 이 힘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거짓된 진실과 참된 진실을 구별할 줄 아는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하워드 진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통찰력을 가진 지식인 중 한 명이고, 나는 그의 저서를 통해 상당히 많은 거짓된 진실을 구별할 줄 아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이 책 역시 나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켰을 정도로 다양한 현상과 주제를 통해 그만의 명쾌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특히 전쟁에 반대하는 그의 생각은 이렇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고, 그것이 전쟁용으로 미국과 세계를 위협한다는 부시 행정부가 내세운 전쟁의 이유는 거짓이며, 애초부터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여부는 관심 밖 이었다. 약 1만기에 가까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이 이라크에 위협받는다는 가정 자체가 뻔뻔하다는 것이다. 또 사담 후세인이 독재자 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근거가 없다. 알제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후세인이 통치했던 이라크 보다 더 많은 반정부인사를 무자비하게 살해했고, 학살했기 때문에 독재자 후세인 때문에 전쟁을 시작했다는 이유도 설득력이 갖지 못한다. 오히려 이 전쟁으로 인해 죄가 없는 국민과 군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 전쟁의 진짜 이유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주의 정책과 미국이 정한 가격으로 팔아야 할 석유가격 때문이다. 연일 치솟는 유가를 보더라도 현재 세계 경제의 원동력이 석유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석유 매장량이 많은 국가이다. 그리고 석유를 가졌나 못가졌냐의 문제보다는 석유의 가격이 진짜 문제이고, 전쟁의 원인인 것이다. 이러한 전쟁들을 거치면서 미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무기 판매국이자 병영국가(garrison state)로 변해가고 있다. 이렇게 그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다. 그가 정부에 의해 발표된 전쟁의 이유에 대해 반박한 이러한 이유들 외에도 다양한 국가간 실리주의와 목적이 존재하겠지만 일단은 부시 행정부가 내세운 전쟁 정당성에는 나 역시 코웃음 치는 인간 중 하나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진행되어온 과정을 보더라도 그들의 침략주의를가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 하워드 진의 말이 절대적이고 옳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역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지식과 주관적인 잣대로 사물을 평가하는 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그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불려지는 이유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어지는 역사를 기억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깨어있는 의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이라는 거대매체를 통해 잘못된 근거에 기인한 것들이 사실인양 급속도로 퍼져가는 위험함 속에서 현실을 비판적이고 통찰력있게 바라볼 수 있는 개개인의 역량과 힘이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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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위기는 구조적인 위기이다.
내가 한 말은 아니고. Howard Zinn의 인터뷰 집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의 첫 장 제목이다. Zinn 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진보주의자 이며 칼럼니스트이고 역사학자이며 여전히 강당에 서는 현역 교수이다. 또한 그는 마르크스를 지지하는 확고한 사회주의자 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이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총아인 국가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대학교수를 하며 존경받는 지식인의 최상위권에 속해있다는 사실은 사실이기 때문에 겨우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믿기 어렵다. 그의 대표저작 [미국민중사]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건립부터 현재까지 아메리카원주민을 포함한 미국의 민중들과 정부 및 통치세력들이 민중을 어떻게 유린하고 역사를 날조하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지 신랄하게 적어내려가고 있다. 그가 살아있는 한 [미국민중사]는 계속 쓰여질 것이며, 그가 죽고난 이후라도 전세계 사람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저작물로 남을 것이다.
연륜과 화려한 경력은 별개로, 그의 주장은 너무나 논리적이고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의 저작을 읽으면서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구에 충실한 자연스러운 경제체제라는 A. Smith의 주장에 대한 확신만이 Zinn의 폭풍같은 논설에서 내 확신을 지켜주는 깊은 뿌리가 되어줄 수 있을 정도다.
Zinn은 이 파트에서 이윤추구라는 동기로 움직이는 것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위기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심지어 자본주의 자체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정도의 위기가 말이다. 그는 이것은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형이라고 설명하며 대체로 '전쟁'을 그 증거이자 사례로서 언급한다. 비인도적 행위의 연속과 미국정부의 제국주의적이며 폐쇄적인 통치 또한 예로 들고 있다. 원인은 경제 결과는 정치 및 사회로 들고있는 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은 한쪽 뇌만 있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하다.
A. Smith 의 [국부론]이 내 책장에 꽂혀있지 않았다면 나도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A. Smith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 정확히는 [국부론]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 [국부론]의 첫 머리에 나오는 '핀 공장의 분업' 사례 편만 읽고 A. Smith의 주장을 다 이해하는 척 하기 때문이다. A. Smith는 순수자본주의-보이지 않는 손 을 정의한 경제학자 인 것은 맞지만, 그가 완전 자유방임 자본주의 체제를 주장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랬으면 국부론이 1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저서가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A. Smith는 이론의 초기부터 Zinn이 설명한 이윤추구라는 개인의 이기심이 노동의 동기가 되며 재화교류의 목적이 된다는 것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 이기심은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면서 까지 개인의 욕구를 이루는 비윤리적 이기심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설명을 한다.
무한 경쟁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기심이 가져올 폐해에 대하여 그는 이론의 도입단계부터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단지, 그의 이론을 재대로 읽지 않는 사람들이 무한경쟁형 자유방임 순수 자본주의를 A. Smith식 자본주의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A. Smith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 하는 개념 즉 야경국가를 주장하였다. 정부는 시장의 힘을 믿고 범죄자나 잡아주면 된다는 개념이다. 사실이 그렇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생기는 문제들, 그 원인을 제공하는 민, 형사상 범법자들에게 제대로된 철퇴만 가하더라도 자본주의의 위기 따위의 주장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룰이 깨어지는데도 방관하거나 오히려 룰을 깬 자들을 옹호해 주는 정부가 있다면 그 국가의 경제체제가 어떻게 제대로 운영 될 수 있겠는가.
시장에 대한 정부의 섣부른 개입이 어떠한 부작용을 만드는지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예로 들면 이해가 빠르겠다. 수십년간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수시로 변하는 일관성 없는 부동산 정책은 매번 부동산 가격을 안정 시키는데 실패하였고 부동산을 자원이 아닌 투기자산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에서 다른 모든 재산보다 부동산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은 한국인이 유난히 땅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부동산 정책이 보유비용을 적게 지불하고 거래비용을 늘이는 쪽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시장개입이 시장을 망쳐놓은 대표적 사례로서 너무나도 적절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다못해 야경국가로서의 노릇 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중대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매번 졸속수사나 '경제 발전에 끼친 공로' 따위를 운운하며 풀어주기 십상이니 현재 한국 경제의 위기는 순전히 제 역할을 못한 정부 탓으로 돌려도 이론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진보적 입장에서 역사를 공부하면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 처럼 공산주의, 사회주의로의 변천이 필연적인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실패가 퉁치계층과 시장을 주도하는 이들의 이기심, 부패, 무한 욕망 때문이라면 제도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이 아닌가. 역사의 진행으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진화했다는 동구권 국가들의 사례에서 볼때 그것은 결코 진화가 아닌듯 한데 말이다. 통치계층과 시장주도층의 이기심, 부패, 무한 욕망을 위한 피지배계층의 희생은 그곳에서도 비슷하게 혹은 더 심하게 일어나지 않았던가 말이다.
현재의 시장체제가 큰 문제가 있어 진의 주장처럼 필연적으로 위기가 닥친다 해도 해결책은 결국 변형된 자본주의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말이다. 물론 나역시 현재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비인도적 상황과 무한경쟁에 따른 인간성의 상실등 괴물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인해 나타나는 병폐적 현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수용하거나 묵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체제가 아닌 다른 경제체제가 필요하며 그것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이다 라는데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Zinn 은 또한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반전을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이라크 주둔군 철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를 없애는 수준의 반전을 주장하고 있다. 내가 무슨 war junky인건 아니지만, 정말 궁금한것은 그가 수도 바로 100Km 북쪽에 호시탐탐 전쟁을 일으키려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 하는 미치광이가 독재정치를 펴는 정권을 둔 나라에서 태어났어도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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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장계획이 잡혀진 뒤 하워드 진의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를 들고 가고 싶었다. 마침 날짜가 안 맞았고, 9박 11일간의 미국 뉴욕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니 하워드 진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오만한 제국>> <<미국 민중사>>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하워드 진은 2차 대전에 공군 폭격수로 참여한 경험을 계기로, 전쟁의 참상을 체험하고 반전에 대한 생각과 행동을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초대강국의 일방적인 이념의 합리화와 폭력의 정당화, 이라크전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의 군사대국의 유지를 위한 전쟁의 합리화 등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 세계에서 만연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폐단과 자본가와 밀착되어 있는 지배계급의 허구성을 끊임없이 폭로하고, 이를 위해 은폐되거나 잊어지는 역사가 아니라 진실을 끝까지 규명하고 밝혀 알리는 ‘기억으로서 역사’를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 포장되거나 은폐되어 있는 자본주의사회와 지배계급의 폭력과 모순을 파헤치는 비판적 사고와 의심(skepticism)을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현재 자본의 논리로 뒤덮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오류와 잘못을 고치고 변혁시키는데 노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워드 진은 자본사회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폭로하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이러한 모순을 고치고 사회를 변혁시키는 실천을 강조하고, 그 변혁의 주체로서 이른바 자본주의 비주류사회라고 할 수 있는 연극, 영화, 문학 등 예술가들을 비롯한 문화켄텐츠 담당자들을 비롯하여 인터넷과 비주류 언론을 담당하는 문화지도자들의 역할에 특별히 주목하고 함으로써, 이른바 진보 진영을 대변하는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하워드 진이 그동안 여러 저서를 통해 주장했던 핵심내용인 미국의 국가이념의 위선과 자본주의사회의 모순, 미국의 ‘군사제국화’와 그 실례로서 이라크 침략전쟁의 실상과 미국이 주장하는 전쟁명분의 허구성, 자본주의논리의 불평등성과 빈부격차의 심화 현상, 자본주의 논리에 기초한 사회보장제도의 비인간성 등에 대해, 언론인 데이비드 바사미언(David Barsamian)이 면담을 통해 하워드 진의 역사적 이론과 사상, 그리고 사회운동가로서 그의 비전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특히 하워드가 자본주의사회의 폐단이 극에 달한 모델서 미국을 ‘군사제국’이라 역사적 분석을 통해 비판하는 한편, 현재 당면하고 있는 자본주의사회(미국)의 위기를 구조적 위기로 이해하고 그 핵심을 지배계급의 위선적인 논리와 이에 기초한 전쟁의 합리화에 초점으로 두어 이를 비판하고 폭로하는 동시에, 이러한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변혁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워드 진은 이 책의 후반에서 그가 꿈꾸는 앞으로의 세계에 대해, ⑴ 국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세계, 즉 모든 인류가 자유롭게 왕래하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전쟁이 없는 세계, ⑵ 전 세계의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어 요즈음처럼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세계, ⑶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세계, 진정한 권리장전이 구현되는 세계, ⑷ 인종과 종교와 국가라는 경계가 더 이상 반목의 원인이 되지 않은 세계, ⑸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 일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그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한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는 역사가로서, 또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변혁운동의 실천가로서 지향하는 목표이자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책의 내용핵심이라 하겠다. 이처럼 그가 통렬하게 비판한 자본주의사회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Neo-Marxism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 비판의 대상이 주로 미국사회에 국한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비판이론의 일반화에는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사회의 변화와 이를 위한 변혁운동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조직적 대응과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지 않음으로써 자칫하면 개인차원의 이상향 제시나 변혁운동의 당위성 강조에 머무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하겠다. 더구나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 미국에만 제한됨으로써, 이 책이 ‘반미’가 현안 정치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동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등지의 변혁운동에는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 자칫 과도하게 묵수하는 참고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현재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는 점도 이 책이 인류가 직면한 공동문제를 해결하는 보편적인 대안으로 자리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되어 적지 않은 독자들을 확보한 데에는 지나친 ‘친미’나 ‘반미’의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다만 이 책이 자본주의사회의 극단적 폐단을 반영하고 있는 초강국 미국의 ‘군사제국화’를 냉철하게 비판하고 ‘자본논리’가 갖고 있는 불공평성과 허구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미래상을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처음 밟아본 미국, 뉴욕이라는 도시가 낯설지 않았다는 점. 뿔달린 도깨비같은 나라라는 머리 속 잔재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만날 수 있었던 미국인들은 영화속에서처럼, 드라마에서처럼 평범한 이웃사람이었다는 점. 그래서 기대를 갖고 들여다본 하워드 진의 책에게서 오히려 거부감을 느꼈다는 점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부분이다. 우리가 정작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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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어떻게 미국을 통찰할 것인가 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할애되어 있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책은 2004년 미국-이라크 전부터의 전쟁에 대한 우려와 전쟁에 대한 반대,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 후에도 계속 전쟁의 부당함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하워드 진은 그의 전공인 역사학에 맞게, 종교가 어떻게 기득권자에게 부당하게 이용당하고, 또 역사도 그러한 맥락에 맞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최근의 이라크 침공뿐만 아니라, 파나마, 베트남, 칠레등 셀 많은 곳을 부당하게 침공하거나 쿠테타를 했으며,멀리는 인디안을 학살하고, 멕시코와의 전쟁을 일으킨다. 결코 정당한 전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책 곳곳에 책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나의 인생을 바꾼 책 한권이 나의 인생을 바꾼 영화 한편보다는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책이 인간은 변화에 끼치는 영향이 많고, 그래서 책을 많이 쓰고 읽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책은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인터뷰를 통해 하워드 진의 미국을 보는 것을 통찰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반적으로 주제의 통일됨등이 벗어난다는 느낌이다. 하워드 진의 책을 한번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다른 책인 <미국 민중사> <오만한 제국> 나 자서전격인 <달리는 기차위의 중립은 없다>를 먼저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책을 읽으면서, 언급되는 문학 작품들과 (예로 스타인벡 의 <분노의 포도>) 영화들 <조용한 미국인> 들이 있어서 레퍼런스로 도움이 되었다. 특히 잘 모르는 노래인 <발 딜런>의 <전쟁의 지배자들 Masters of wars>를 꼭 한번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미국 고교의 밴드인 탈레반드의 이름이 바뀌는 것은 희극이었다.
책의 뒷 부분에 있는 광고 글과 같이, 하워드 진은 시대의 양심이고, 미국의 부당함과 시민불복종에 대해 미국과 세계에 알리고, 세계의 진행 방향을 조금 더 정당한 쪽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분이다. 이 책은 최근 몇년간의 미국의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과 전쟁의 부당함을 알릴 수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