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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읽고서 리뷰를 써보기는 첨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만화보다는 무협지를 더 좋아했다. 학교 다닐 때 학교 앞 만화가게에 가면 친구들은 만화책 쌓아놓고 봤지만, 난 점잖게 꽂혀있는 무협지 한 권씩 꺼내어 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만화가게 문닫을 때 되면, 나머지 전부 뽑아 들고 집으로 왔던 것 같다. 그리고 무공도 참 많이 창안했고, 문파도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 것을 보니 조금은 가슴이 아프다. 저자의 원주민에 대한 정의가 가슴을 또 아프게 한다. 전통사회의 바닥에 깔려있다가 느닷없이 닥쳐온 파도에 떠밀려 떠돌아야 했던 사람들, 너무 늦게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제 삶의 방식을 손볼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야 했던 사람들, 그들을 키웠던 곳의 흔적은 찾을 수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들의 일상이었던 것들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어버린 사람들, 이들을 저자는 대한민국 원주민이라 부른다고 한다. 맞다. 헌데 1977년생인 저자가 이런걸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다. 우리 부모님들의 삶이었고, 내 누이들의 삶이었고, 바로 나의 삶이었는데.. 비록 그것들이 모두 다 나의 삶이었다 해도, 시골에서 다니던 국민학교 시절의 삶은, 6학년때 나온 도회지의 삶과 달랐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고등학교 때의 삶은 또 달랐다. 지금은 아파트 촌으로 변해버려 찾을 수도 없지만, 자취를 하던 봉천동 달동네는 여름날 장마가 지면 장화 없인 살수가 없었다. 남부순환도로 하나만 썰렁하게 뚫린 그곳에선 도로양편으론 아직도 논밭이었고, 산등성이를 따라 벽돌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던 것 같다. 좁은 골목길에는 하얀 연탄재가 언제나 쌓여있었고, 밤하늘의 별이라도 한번 볼라치면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했었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유학까지 보내주어 서울에 있었는데, 내 누이들은 그때 고향에서 무얼 했을까? 지금은 없어졌지만, 방학이라도 하여 집에 한번 내려 갈려면 전쟁이었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완행열차를 타기 위해서 저녁 일찍 먹고 역 광장에서 기다린다. 아마 그렇게 살다가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하자 부모님께서 모두 서울로 오셨다. 맏아들인 나는 당연히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했다. 어느날인가 어머니께서 채소를 한움쿰 가지고 들어오신다. 아파트 뒤쪽으로 공터가 있는데 그곳에 채소밭을 만들었단다. 노인정에서 만난 노인분들 몇이서 소일거리를 찾다가 텃밭을 일군것이다. 도시농사의 원조이고, 지금 유행하는 텃밭의 시초가 그렇게해서 탄생한 것이다.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할일이라곤 눈씻고 찾아도 없는 도회지에서 그야말로 자신들이 가장 잘할수 있는일을 찾은, 아들내외에게 무언가 도움을 줄수 있다는 어머니의 얼굴은 기대에 부풀어 빛나고 있었다. 그후 얼만가를 지나서, 그땅에 교회가 들어선다며 텃밭을 폐쇄했다고 서운해 하시던 그 모습을 지금도 잊지못한다. 당시의 대한민국 원주민들의 어머니들은 모두그랬다. 지금은 해가 뜨나, 별이 뜨나 병실을 지키고 계시지만 아버지 또한 대단하셨다. 평상시엔 집에 계셔도 존재여부가 별로 표시가 나지 않으셨지만, 경제권에서 멀어지신 후, 대부분을 조용히 지내셨지만, 손님이 온다거나, 약주한잔 하시면 그 누구도 아버지 말에 가타부타 대꾸를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내라서 남정네 말에 대꾸해서는 안되고, 누이들은 출가외인이니 말을 거들어서는 아니 되었다. 나 또한 아버지 자식이라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 성깔을 지금도 부리면서 산다. 단지 아직까지 돈을 벌고 있다는 그 핑계 하나로.. 마지막 남은 대한민국 원주민이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도회지로 나온 나는 처음 학교에서 도시락 먹던 일을 잊지 못한다. 시골에선 도시락 먹는 것은 잔치나 다름없다. 미군구호물자로 나온 강냉이 죽에 말아서 누구 수저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입에 넣기에 바쁘다. 반찬이래야 김치조각 하나만 있어도 감지덕지다. 도회지 학교에서는 자기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도시락을 먹었다. 옆 짝꿍의 반찬이 무지 맛있어 보였다. 난 스스럼없이 젓가락으로 하나를 집어 먹었다. 순간 짝꿍이 밥 먹기를 멈추고 도시락을 싸 버린다. 국민학교 6학년 조그만 아이였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는 않았다. 아들놈이 중학교 1학년 때 지금 아이들도 그러는가 멋모르고 물어 본적이 있다. 아들놈이 희한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학교에서 급식하는데, 다 똑같은 것 먹는데 무슨 소리 하냐는 것이다. 급식하는 것도 모르고 물어보는 아비나, 그렇다고 외계인 취급하는 아들놈이나 대한민국 원주민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그렇지만 굶는 아이들을 해결해줄 수 있다면 이런 것 에서나마 원주민을 벗어나고 싶다. 이제 대한민국 원주민들이 사라지고 있다. 저자가 원주민의 정의에서도 말했듯이 그때는 일상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엔 사라져가서 많이 아쉬운 것들도 있고, 시원섭섭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소망하는 것은 그 당시 우리네 마음, 즉 원주민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길 바래보지만, 이 또한 부질없는 생각이란 걸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때가 많이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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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사투리를 소리내어 읽으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을 가능성 많음.
속상했던 당시의 나를 안아주는 현재의 나를 보여주는 작가의 그림들. 이 작가의 내공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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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할까요? 아 그래요. 대학로에 간 것부터 시작하죠.
갑자기 책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중앙국립도서관 말고, 영풍문고나 교보문고 말고, 인문학책들이 그득 그득 쌓인 그런 서점에 가고 싶었어요.
경복궁역에 있다는 길담서원엘 갈까, 대학로에 있는 이음아트에 갈까...하다가 발길이 대학로로 향하더군요.
"혜화역 1번 출구, 동숭아트센터 방향 30m" 인터넷에서 찾아본 주소대로 갔더니, 아담하고 깔끔한 곳이었습니다. 디카를 가지고 갔더라면 찍어올텐데...
책들이 자유롭게 놓여있거나 꽂혀있는 게 헌책방 비스무리한 느낌도 나구요. 아무렇게나 있는 것 같아도 가지런히 주제별 분류가 돼있었어요.
계산대에 앉아계신 분에게 인사를 하고, (저도 모르게 꾸벅 인사하게 되더군요. 다른 대형서점과 다른 작은 책방의 맛이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내 안에 이런 탐욕이 숨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책들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냥 목록을 읽는 것만으로도, 관심있는 제목의 책을 빼들어 설렁설렁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잘도 가고, 마음은 풍요로워졌습니다.
그 곳에서 발견하고, 구입까지 한 책이 바로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입니다.
만화책인데요, 예전에 한겨레21에 연재할 당시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연재된 것을 볼 때는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단행본으로 묶어져 나온 책을 보니,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과 웃음, 그리고 따뜻한 감성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게 아니겠어요?
작가가 진주 사람이대요.
진주는 그렇게 못 살았나 싶을 정도로.. 뭐 우리 집도 어렸을 때 가난했지만, 작가 그림 속의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같은 시대를 살면서 정말 다른 세계를 살아온 듯한...
그런데 읽다보니 그 위로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삶이 겹치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경험과 삼촌들 그리고 이모들의 성장기가 겹치더군요.
무엇보다 가족들의 삶을 다시 관조하는 작가의 시각이 참으로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쥐잡듯이 패는 아버지가 폭군으로 그려질법도 한데, 오히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몇 번이고 반추하면서 그의 고단함을 이해하는 모습에서, 이 작가가 지닌 인생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한 살 어린데, 경험의 차이가 사람을 이해하고, 삶을 통찰하는 수준의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암튼 말이 길어졌지만, 강추합니다.
비루하지 않은 가난함, 그리고 유쾌함, 삶에 대한 긍정, 평범한 내 이웃들에 대한 애정을 꼭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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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로 단숨에 한국 만화의 새로운 주역으로 자리잡은 만화가 최규석의 최신작.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의 가족을 직접 취재하여 쓰고 그린 자전적 이야기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60년을 소리 없이 그러나 건강하게 통과해온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삶을 역사에 비추어 담담하게 추적하는 우리 근현대사에 관한 사려 깊은 기록이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로 대한민국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 최규석의 어린시절 자전적 만화로, 작품 속 시대의 궁핍함과 모지람은 옛부터 다른 여러 매체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익숙한 것이었지만 그의 만화에서는 새삼 어떤 씁쓸한 전률같은 것이 느껴진다. 만화 속 인물들이 나의 부모님같고 할머니 같으며 이모와 고모, 삼촌같이 느껴진다. 그 옛시절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작품들 중에 따스하고 정감어린 추억과 동무들에 훈훈해지는 것들을 많이 접했던 나로서는 작가의 진실됨과 가슴을 우울하게 톡. 쏘는 과거 현실적인 표현들이 못내 불편하기만하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별개로 이 작가의 만화는 역시 최고다. 나 아는 선생님께서 최고의 작품은 사람을 울리는 작품이라 했다. 최규석의 만화는 사람의 마음을 울게 만든다. 나는 흰쌀밥에 간장만으로 배를 채우던 적도 없고, 기르던 강아지가 쥐약넣은 음식을 먹고 죽은 뒤 바로 가족에서 괴기취급받던 경험도 없다.술 때문에 몇날며칠을 집에 안 들어오는 아버지를 본 일도 없고.... 라고 생각했는데, 어라? 나의 어릴적을 곰곰히 다시 떠올려 보니 IMF이후 고기와 국을 치우고 마르고 짠 반찬들로 하루하루 먹었던 것과 몰래 기르던 닭이 다 커버리자마자 할머니와 엄마의 손에 닭도리탕이 되어버린 기억이 있다. 아버지야 술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에 빠지셔서 집에 안 들어오시는 일은 현재까지도 진행중 이지만. 그 밖에 아파트 공터에 따로 텃밭은 꾸리던 할머니와 메주를 쑤어 베란다에 걸어놓던 풍경이 아련아련 떠 오른다.
다시금 찬찬히 보니 사람사는게 그게 그거다 싶다. 물론 이 책속의 답답함에 비하면야 나는 지금 호강도 이런 호강이 없다. 여자로 태어나 어디 대학은 사치니까 돈벌라고 하는 사람이 있나 꿈도 희망도 여자니까 그만두라고 하는 사람이 있나, 연애 안해도 지집아가 왜 저러냐는 소리와 맞선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밥도 뜨시게 잘 묵고 전쟁통에 사람피를 보는것도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안심하는것이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의 위안감이 든다. 타인의 안타까운 에피소드가 힘을 낼 원동력이 된다는 것도 아이러니 한 일 이지만, 어쨌든 이 작가의 만화를 보고 있으면 힘을 내고자하는 마음이 커진다. 난 절대 밑바닥까지는 가고싶지 않다고, 열심히 하고 싶고 부모님도 호강시켜 드리고싶고 조카들에게도 떳떳한 어른으로 보이고 싶다고. 작가의 우울함이 담긴 작품을 보면볼수록 그 의지는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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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은 내가 편애하는 만화가이다. 그가 그린 거의 모든 작품을 다 보았거나 소장하고 있을 것 같다. 그중에 하나 빠진 것이 이 대한민국 원주민인데 그의 개그 감각은 익히 알고 사랑하지만 표지만 봐도 저 아버지가 자유분방하게 폭력을 휘드를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왠지 꺼려졌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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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대한민국 원주민
저자 : 최규석
가격 : 원가 11,000원 ( 구입가 : 0원 )
이유 :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빌릴 때 바로 옆에 같이 있던 책.
독서 후 : 작가 '최규석'의 자서전격의 만화 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는 어릴적 경험이 약간 다르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다른 세대'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나는 85년 생이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해서까지 소로 논을 갈았던 기억이 있다. 불때는 부엌은 그보다 한참을 더 있어야 보일러로 바뀌었다.)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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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최규석은 이런 말을 한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라 놀림 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찾아들 것이고 이런 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쉬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참 힘들게, 어렵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사서 고생이라는. 그러나 한 편으로 작가라는 사람이 이 만큼의 고민과 숙고없이 어떻게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쓰고 그릴 수 있으랴! 이런 경험과 눈과 마음을 가졌기에 그에게서 '습지생태 보고서'와 '100℃'와 '송곳'이 나올 수 있었으리라.
누나 생각이 나 한 권 보냈다. 나도 한 권 사서 소장하려 했으나 마누라, "더 이상 책 둘 곳이 없으니 사지 말라!"며 단호히 거부. 자신도 도서관에 가서 보겠단다. 아무리 그래도 집에 책 한 권 둘 곳이 없을까? 일단 사 놓으면 뭐 어쩌려고! ㅎㅎㅎ
원주민, 감동적인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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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최규석은 이런 말을 한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라 놀림 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찾아들 것이고 이런 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쉬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참 힘들게, 어렵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사서 고생이라는. 그러나 한 편으로 작가라는 사람이 이 만큼의 고민과 숙고없이 어떻게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쓰고 그릴 수 있으랴! 이런 경험과 눈과 마음을 가졌기에 그에게서 '습지생태 보고서'와 '100℃'와 '송곳'이 나올 수 있었으리라. 원주민, 감동적인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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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같은 시대를 살지만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제 서른의 초반(1977년생)인 작가의 자전적 만화하는 사실에서 더욱 그 내용이 이슈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원주민’의 내용 전부를 느끼고 공감 할 수는 없었지만 나 역시 시골에서 자라 가난을 느끼며 자라서일지 그저 이야기려니 그냥 넘겨버릴 수만은 없었다. 그저 배운 게 없고 무식해서 아이들이 죽어 나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남편에게 맞고 삶의 위협을 느껴도 그저 삶이 그런 것이려니 당연하게 생각했던 어머니.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를 포함한 우리의 어머니들도 살아온 환경이 그러했기에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해서 시장에서 생선을 사다 걸어 다니며 일일이 집에 가서 이른바 방문판매를 하는 장면을 봐도 인건비도 있으니 이윤이 당연히 남아야 하는 것인데 2천원에 사서 2만원이 남았다며 속이 콩닥거렸다는 그 어머니를 누가 감히 무식하다며, 왜 그렇게 살았냐며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런 어머니의 아래에서 자란 작가이기에 글을 읽으며 마음이 아픈 장면들이 많았지만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시골 특유의 정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6남매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으며 장남이기에 받았던 특혜와 장녀이기에 강요당해야 했던 희생의 차이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참 사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아마도 없는 살림에서도 장남에게 주어졌던 부모님의 노력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 역시 가난했지만 막내인 나에게는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셨는지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게 해 주시려 노력하셨다. 물론 시간이 한 참이나 지나 서른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된 깨달음이다. 또래 도시의 아이들은 그보다 더한 것들도 다 받고 자랐겠지만 별 거 없는 시골에서 자식 기죽이지 않게 입히고 공부시키셨다. 서평을 써야 하는데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니 나도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나보다. 부모님과 비슷한 이야기만 나와도 울컥 울컥 눈물이 난다. 자식이 뭐라고, 삶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힘들게 희생만 하시며 사셨을까. 자식이 느끼는 부모님은 그렇게 굵은 손위에 박혀버린 살들과 상처처럼 아프기만 한데 가끔씩 손을 잡으며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니들 착하게 잘 커주고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가정 꾸리고 사는데 뭐가 서글퍼. 엄마랑 아빠는 그저 니들만 잘 살면 그걸로 됐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희생이 삶이 되어버린 부모님.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자식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아주 조금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것도 같다. 아주 조금은.
도시와 시골. 배운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세월이 지나 더욱 철저하게 갈린 상층과 하층.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부모의 직업과 부의 척도. 고백하자면 시골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을 원망한 적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기에 그런 바보스런 원망은 이제 던져버리기로 했다. 글로는 전달하기 힘든 가슴속 뭉클함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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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있던 시절.. 같이 지내던 미군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의 하나는 '빨리빨리' 였다. 군대식 문화에 속도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저 단어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겠지만 우리 나라의 국민성 자체가 급하게 돌아가는 저 속도성을 가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우리 나라의 근대는 불과 1세기 만에 다른 나라의 몇 세기 분의 격동적인 시간을 겪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은 격변 속에, 또 다른 빠른 시간을 살아가는 현재 때문에 거의 잊혀져 가고 있다.
이 책읜 저자인 최규석은 평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만화를 그리는 작가인데, 나보다 두 살 정도 어리다. 때문에 그의 부모와 조부모의 삶과 시간은 나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을 깡시골에서 보낸 적이 있었기에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해주었더니 어떻게 그것이 동시대의 이야기가 되느냐고, 일제시대 백년전 이야기가 아니냐고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렇듯, 우리는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그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삶과 사람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산다. 최규석은 그 시간과 삶을, 특출날 것도 없었기에 그냥 묻혀질 그 이야기들을 부모님과 누나들의 삶을 통해서 자전적 이야기로 꺼내어 살려내고 싶었을 것이다.
힘겨운 어린 시절, 지금 보면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의 삶을 지나 지금 현재는 수퍼에서 회사에서, 학원에서 요즘의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작가의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짠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짠함은 안타깝고 동정의 짠함이 아니라, 공감되고 더불어 느끼는, 어찌보면 나 자산과 내 가족들에게도 던져줄 수 있는 짠함이다.
우리와 우리네 부모님의 삶의 역사. 그들의 삶이 지금의 삶을 만든 역사임에 원주민이라 칭함에 깊이 공감가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