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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고독하다. 혼자이건 누구와 함께건, 또는 어린 시절을 연장한 어른이건 가족을 이루고 있는 어른이건, 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건 아니건,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이건 그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든 말이다. 그래서 여기 조경란이 선사하는 위로의 책이 있다. 그건 간혹 사랑이 되기도 하고 우정이 되기도 하고 문학이나 철학 등의 책이 될 수도 있고 그 책의 작가나 또는 독자가 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그녀는 이미 우리에게 외로움과 고독의 치유를 <식빵 굽는 시간>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고소한 빵 냄새로 우리를 위로하듯이 말이다. 또한 세련된 문체로 깔끔한 문학을 선사하던 조경란이 정열적이고 치명적인 사랑과 성애를 음식을 통해 최고로 지독한 복수를 하는 <혀>로 이어 놓았다. 그리고 이번엔 문학과 철학으로, 책과 글쓰기로 연결시켜 준다. <풍선을 샀어>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니체의 학문 속으로 들어갔던 여자와 공포증을 앓고 있는 젊은이의 권리가 스스로에 대한, 타인에 대한 위로이다. 따로따로 외롭고 고독하던 너와 내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관습과 질서에 얽매여, 잊고 있던 우리의 권리가 바로 그 위로이다. 따로 홀로 떨어져있던 동안 잊고 있었던 권리를 되찾는 게 바로 그 위로인 것이다. 너와 나는 그럴 권리가 있는 것이다. ‘J, 너는 실수할 권리가 있고 도움을 청할 권리가 있고 분노를 느낄 권리가 있고 울 권리가 있고 놀랄 권리가 있고 마음이 변할 권리가 있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J, 너 자신을 즐겁게 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타인을 미워할 권리가 있어. 마지막으로 나는 말했다. 그리고 J, 너는 운전을 할 권리가 있어. (...) 내가 가진 권리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에게는 아프다고 말할 권리가 있고 책을 읽을 권리가 있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그에게 의지할 권리가 있고 진실을 말할 권리가 있고 잠을 잘 권리가 있다. 나에게는 토마스의 위로와 충고에 저항할 권리가 있고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고 J를 생각해도 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책이 있다. 철학과 문학이 있다. 그래서 <형란의 첫 번째 책>에선 ‘쓴다는 건 종이 위에 나를, 나의 표상 하나를 거기에 내려놓는다는 게 아닐까요.’라는 여자의 말이 마치 자신의 삶에 대한 책을 자신이 쓰는 듯한 느낌을 주며, 길을 잃고 헤매는 남편에게도 메시지를 전해준다. ‘시간이 흐른 후 나도 나의 삶을 살았다, 썼다, 그리고 사랑했다, 라고 짧게 요약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아주 실패한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쓰야키 씨, 혹시 그를 만난다면 이렇게 전해주시겠어요? 그가 맨 처음 글을 쓰기로 했을 때, 그것은 삶을 위해서였다는 걸 부디 잊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위로를 만나기도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에서는 작가를 만나고 작가의 얘기를 듣는다. 마치 그녀를 보고 그녀의 말을 들으며 스스로 위로를 받듯이. 또한 ‘내가 만약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면 내 인생은 그냥 빈 종이로만 남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작가에게 이별을 고하고 스스로 안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2007, 여름의 환>에서 이 위로의 방법은 바로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변호하고 숨어버리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하는 내 거짓말은 온전히 내 것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가지 분류 중 거의 모든 사항에 속할 만큼 다양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아무 이유가 없을 때가 많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거짓말쟁이는 진정한 미식가처럼 혀로 음식을 맛보거나 말을 밖으로 뱉어낸 후 입술이 맞닿은 뒤에 탄성이 이어지는 정교한 소리에 큰 만족감과 기쁨을 느낀다.’<마흔에 대한 추측>에서는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변화를 느끼고 그에게도 위로가 되는 ‘나’가 있다. ‘닥터 현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귀를 열자, 이야기가 열렸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그것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그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를 그 세상 속에 넣을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그에게도 나 자신 세상의 창구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조경란은 이렇게 말한다. ‘책 자체가 좋습니다. 위안과 힘이 되는 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책을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서 저는 사랑의 가능성과 일상적인 것들 안에 감추어진 변화의 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꽃 피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말하고, 그것을 글로 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풍선을 샀어>, 이 작품집으로 한편 고독해졌지만 또 한편 그 고독에 대한 위로를 배로 받았다. 외롭고 힘들 때,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벽이 나타났을 때, 도무지 나를,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어딘가로 숨어버리거나 홀로 우는 대신 풍선을 불어보자. “후후훕, 훕훕-” 그러고 나면 온 힘을 다해 풍선을 불었듯, 앞으로 나아갈, 변화를 가져올 어떤, ‘삶의 특별한 의지’가 생기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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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번 리뷰는 그다지 좋은 내용이 없으므로 조경란씨를 좋아하시거나 조경란작가님은 절때 읽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 뭐 그런다고해서 별다른 내용이 있는것은 절때 아님...--ㅋ
풍선을 샀어.
J, 너는 실수할 권리가 있고 도움을 청할 권리가 있고 분노를 느낄 권리가 있고 울 권리가 있고 놀랄 권리가 있고 마음이 변할 권리가 있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J, 너 자신을 즐겁게 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타인을 미워할 권리가 있어. 마지막으로 나는 말했다. 그리고 J, 너는 운전을 할 권리가 있어.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을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J. 그것은 변화를 뜻하는 것일지도 몰라.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삶의 특별한 의지가 있다면 그건 아마 풍선처럼 둥글고 부풀어 있을 것 같다.
-- <풍선을 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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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샀어 달팽이에게 형란의 첫번째 책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 밤이 깊었네 2007, 여름의 환 마흔에 대한 추측 달걀
'가장 좋은 반찬은 허기(虛飢)다'라는 말이 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몹시도 배가 고플 때 물에 밥 한술 말아 김치 얹어 먹을 때 밥이 무척 달게 맛있다는 걸 느끼는 걸 보면 위의 말이 딱 맞음을 알 수 있다.
책도 그런 것 같다 - 책 뿐만 아니라 매사,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마지못해 시간 떼우기 용으로 손에 드는 책과 이야기에 굶주렸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역시나 그 작가답다싶게 쏙 마음에 드는 책을 손에 쥐었을 때 기쁨은 배고팠을 때 느끼는 허기(虛飢)를 채워주는 물에 말은 밥처럼 모자람이 없다.
단편소설들이지만 참으로 내용이 풍족하고, 몇 번이고 다시 읽어 외워버리고 싶을 만큼 욕심나는 구절도 많고, 슬픈 인물들에 몰입되어 몇 번이나 울컥울컥하기도 했다.
이 책 제일 앞에 실린 [풍선을 샀어]를 다 읽고나선, 밥통에 남아있던 밥을 모두 물에 말아 먹었음에도 미처 허기진 배가 다 채워지지 않아 숟가락 쪽쪽 빨며 또 다른 무언가를 갈망하게 되는 그런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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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감염된듯 지냈다는 말을 하고 싶다- 풍선을 샀어- 두려움, 변화 달팽이에게- 생명 또다시 죽음 형란의 첫번째 책- 상실과 실패 밤이 깊었네- 무채색, 우울 마흔에 대한 추측-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것에 대한 불안감.
조경란의 단편을 읽으며 머리속에 남던 생각들이다.
마음에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대한 상실을 가지고 살아간다는것은 삶의 치명적인 오류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살면서 결핍에서 오는 불안감은 스스로를 캄캄한 코너로 자주 밀어 넣곤했다. 하지만 조경란의 상실과 결핍은 다른것을 들려주었다. 건조하지만 섬세하고 빛나는 아름다운 문체에 홀려 금방 읽어버린 여덟 단편이었다. 책을 다 읽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를 미진한 무언가가 가슴에 남았다. 등뒤로 아픈돌처럼 흘린 땀과 전염병에 감염되 불안하고 유쾌하지 못한 신열과 찝찌름함 같은 느낌. 다 읽고 다시 펼쳐보지도 않을거면서 한동안 책을 품고 다니고 오래 옆에 두고 잠들었다.
이 단편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싶다. 이야기 하고 싶다고 원하는 만큼 가슴은 답답했다.
이 답답증이 가슴에 옮아오고 부터 일상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버려버리고 싶은데 무엇을 찾아봐도 백신이 될수 없다.
쿵하고 눌러 앉아 버린 무거운 풍선하나 날려버리길 원하는데 모든것 앞에서 그저 무력하다. 그래서 무척 피곤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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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글을 쓰는 작가, 당연 모든 작품이 같을 수는 없다. 같아서도 안 될 것이다. 조경란을 떠올리면, 아무말 없이 곁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를 만나는 듯한 느낌, 가만 마주 앉아 켜켜히 쌓아둔 슬픔을 가져갈 것 같은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글 때문이리라.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소설, ‘나의 자줏빛 소파’, ‘불란서 안경원’을 참 좋아한다. 장편도 만났지만, 단편에서 느껴지는 조경란의 글이 더 좋다. 풍선을 꼭 사야할 것만 같았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유독 떠나는 이, 남겨진 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나를 지켜주는 이들은 언젠가 모두 나를 떠나고 만다.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부재이거나, 사랑의 이별, 그래도 남겨진 이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어김없이 하루를 맞이하고 살아내야 한다. 매번 그녀의 소설에는 요리가 등장하고, 나이가 등장한다. ‘풍선을 샀어’ 에서 독일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어린 조카와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여성 화자가 많았던 기존의 소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남성 화자가 등장하는 두 소설, ‘달팽이에게’ 와 ‘달걀’ 이 갖는 변화는 크다. 예상할 수 없는 아니, 치유할 길이 없는 알츠아이머, 파킨슨, 치매라는 질병을 안고 사는 소설 속, 고모, 엄마, 이모.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내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가족의 죽음, 부모를 대신해 나를 키워주고 지켜주던 고모, 이모의 죽음을 말하지만, 결국 남성 화자를 통해 여자를 이야기한다. 고모라는 여자, 이모라는 여자, 그들이 사랑한 여자들에 대한 초상이다. 남편을 찾아 낯선 도시에 지도 한 장을 의지하며 길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형란의 첫번째 책’. 형란에게 지도는 남편에게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할머니가 손녀인 나를 떠나보내는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손녀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작가의 전작에서도 항상 결핍은 있었다. 다만, 그 전작들에서는 결핍, 그대로로 남았다. 이 소설집에서는 부재를 채울 수 있는 긍정, 희망을 보여준다. 부드러워지고, 느슨한 느낌을 받는다. 어쩜 작가 역시 삶에 대해 떠남에 대해 좀 자유로운게 아닐까 싶다. 쓴다는 건 종이 위에 나를, 나의 표상 하나를 거기에 내려놓는다는 게 아닐까요. 이것은 보잘것없는 지도 한 장에 불과하지만 이 얇고, 가벼운 한 장 종이 위에 나는 나의 첫번째 표상을 내려놓았어요. 그러므로 이것은 나의 첫번째 책입니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단 한 권의 책과 조우할 수 있듯이 이 지도 또한 누군가와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서로 다른 곳에 있지만 1월의 편서풍과 7월의 무역풍 속에서 우리는 간은 바람과 같은 기후로 살고 있듯. 우리의 은밀한 의식은 이 한 페이지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119~120 쪽 인간의 고독, 우울함, 내면의 출렁임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밤이 깊었네’, ‘마흔에 대한 추측’은 가끔씩 소리 내어 웃거나 울고 싶은 우리네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소설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독일에서 니체를 공부하고 돌아온 이도 독일로 사랑을 찾아 떠나는 이도 홀로 남겨졌지만 우울을 이겨내려는 몸짓들도 다르지만 하나의 모습이다. 고립되지 않고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려 애쓰는 흔적들이 조경란의 변화인지 모른다. 서른을 노래했던 작가, 이제 그녀는 마흔을 노래한다. 치열한 삶, 둔탁하면서도 날카롭던 그녀의 글을 떠올리기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떻게 할까. 그녀의 책을 만나면서 나 역시 내게 올 마흔이라는 초상을 그려본다. 모나지 않기를, 혹여 두려움이 닥쳐오더라도 나만의 풍선을 기억하고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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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은 어딘지 푸석푸석하다. 윤기가 없는 소설들에는 바짝 마른 건기의 냄새가 가득하다. 비 내려야 할 시기가 한참 지나고 또 한 시기쯤이 더 지나서, 찾아왔던 코끼리도 발을 돌리고 물 냄새의 기억마저도 사라진 듯한 메마름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작가의 건조함은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구상의 모든 것이 자연의 일부이듯 소설도 자연의 일부라면, 이제 이 소설들에도 비, 내려야 마땅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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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샀어 :: 조경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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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잡는 순간부터 깊이 푹 빠져들어 한꺼번에 다 읽어버린 것은 아니고, 한 편 읽고 두었다가 또 한 편 읽고, 그러기를 일주일이 지났다. 이 책은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한꺼번에 다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읽으라고, 오래 잡고 있으라고, 하나하나에 빠져 보라고.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오래 전에 이 작가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고, 내 취향의 소설이었다는 기억이 있고, 기회가 된다면 볼 것이다 생각했던 기억이 있고, 그래서 이 책을 읽었는데, 읽고 난 후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마음에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니, 내가 읽은 게 의외로 적다. 나는 뭐했을까.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 보여주는 작가의 내면에 대한 서술, 혹은 눈에 보이는 풍경과 보이지 않는 풍경에 대한 묘사가 참 좋았다. 나는 이런 글을 보면 그저 따라 적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내가 소설가가 아니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읽고 즐기기만 해도 좋은 독자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글을 쓰는 동안의 작가의 아픔이나 고달픔 따위는 모른 척하고 내 마음 짚듯이 구절구절을 짚었다.
살아서 이런 글을 읽고 있는 내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은 외로웠으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내 삶은 외롭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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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집에는 작가의 물음이 하나 흐르고 있다.
여덟 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꿰어놓은 그 물음은 단단하지만 투명하고도 유연한 낚싯줄 같아서 잘 있지만 잘 보이지는 않는다.
잘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잘 있는 그 물음은 우리들의 인생에서도 똑같은 양태로 존재한다. 잘 보이지 않아, 잘 잡히지 않아 잊고 살지만 언제나 잘 있다가 결정적 순간에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물음으로.
<풍선을 샀어>는 '우리는 누구와(혹은 무엇과)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여덟 번 던져본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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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이따금 안개가 차오르듯 정신이 문득 몽롱해지는 것도 여전하다. 내 안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느낌 또한 변한 게 없다. 그러나 나는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진짜의 내 모습이 어떤 것인지, 그것만은 알게 되었다. 달팽이들은 대부분 알에서 깨어난 바로 그 장소에서 평생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어떤 달팽이들은 꼬물꼬물 기어 먼 바다를 건너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희고 둥근 달팽이 알, 그것은 지금 내 눈에 고인 이 눈물을 닮은 것 같다. 고모들이 내 손바닥 안에 쥐여주고 간 것, 나는 기적적인 생을 받아 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는, 고작 지름이 삼 밀리미터도 안 되는 달팽이 알 앞에서 비죽비죽 눈물이나 훔치고 있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달팽이에게'에서
* 나는 돌아가서 남편의 책상 앞에 앉을 생각이에요. 거기 앉아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겠어요. 시간이 흐른 후 나도 나의 삶을 살았다, 썼다, 그리고 사랑했다, 라고 짧게 요약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아주 실패한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쓰야키 씨, 혹시 그를 만난다면 이렇게 전해주시겠어요? 그가 맨 처음 글을 쓰기로 했을 때, 그것은 삶을 위해서였다는 걸 부디 잊지 말라고 말입니다. __'형란의 첫번째 책'에서
* 마흔이 되면 내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여전이 글이 안 써진다고 투덜거릴 것이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할 것이며 어딜 가서는 마작을 둘 때 그랬던 것처럼 행운이 오는 좋은 자리, 이를테면 남쪽과 동쪽, 굴뚝이 있는 쪽, 겨울에는 따뜻한 불이 있는 쪽으로 기웃기웃 눈치 보면서 먼저 앉으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다.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이 나에게 세게 부딪쳐 왔을 때 적어도 그것이 토끼 때문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좀더 유연해진다면 좋겠다. 내가 갖고 있는 신념이란 게 고착되어 있다면 스스로를 새롭게 발전시켜나갈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추구하고 부딪져봐. 나는 잠깐 망설인다. __'마흔에 대한 추측'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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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작가의 단편을 처음으로 읽었다. 집에 고이 모셔둔 『국자이야기』를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못 읽고 있었다. 그의 책이라곤 겨우 장편 『혀』를 읽은 것이 다이지만 이 책 『풍선을 샀어』를 읽으면서 '참 좋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연륜이란 어느 분야에서나 있게 마련인가 보다. 누구나 한번쯤 반짝할 수는 있지만 그 반짝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고 노력도 필요하고 또 재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에겐 어쩌면 부담스러운 말이겠지만 조경란 작가는 그 반짝임이 사라지지 않는 그런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들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문체와 작가적 장인 정신의 절정!" 그의 초기 작품을 읽지도 않고서 이 말에 백번 공감이 가는 것은 그만큼 그가 보여주는 문체와 구성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는 뜻일 게다.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에서 작가는 유독 '상처'에 대해 말을 많이 한다. 표제작인 「풍선을 샀어」에 나오는 '나'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십여 년 만에 귀국한다. 형제라곤 하나 있는 오빠도 분가하여 이제는 부모만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 '몽테뉴처럼 커다랗고 천장이 높은 원형의 서재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도착하지만 그곳엔 이미 오빠 내외가 육아를 핑계로 들어와 살고 있었다. 겨우 백화점 문화센터의 철학 강좌를, 그것도 선배의 도움으로 열게 되면서 강좌를 들으러 온 공황장애자 J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자살이 자신에게도 미칠 것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그를 공황장애자로 만들었듯이 그녀 또한 한때는 막막한 세계가 주는 두려움으로 힘들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치유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들의 '상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고 말하면서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다른 '상처'에 대한 이야기인 「달팽이에게」와 「달걀」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두 남자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각기 고모와 이모에 의해 키워진다. 그 두 남자의 인생은 어릴 때 목격한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에 의해 그늘이 드리워진 인생을 살게 되지만 또 다른 죽음, 즉 고모와 이모의 죽음으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을 거라는 '치유'를 받게 된다.
작가가 말하는 '상처'는 이 책에서 유독 '가족'과 연관이 있다. 위의 두 작품 외에도 「밤이 깊었네」의 엄마,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의 할머니가 그러한데 독특한 가족 구성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불안들이 결국은 '나'라는 존재와 화해하면서 더불어 가족이 아닌 타인과도 소통하게 되는 '치유'의 과정을 세심하고 은밀하게 혹은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8편에 나오는 주인공 모두 1인칭인 '나'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나'라는 1인칭을 사용하면서 작가 자신의 타인과의 소통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타인과 혹은 독자들과 소통하기 시작한 작가의 심정이 엿보이는 듯했다.
해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2007, 여름의 환(幻)」이다.
"거울, 즉 부드러운 어떤 하나의 막을 통과하면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한 세계가 나온다. 신비한 것은 그것이 분명히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 거울 속으로 한 여자가 걸어 들어간다. 여기와는 다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거울 저편의고요한 삶.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삶. 그런 것이 누구에게나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것이 필요하고 특별히 뜨거운 바람이 훅훅 끼쳐오는 여름이면 더욱 그런 것이다." p1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