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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이란 1894년 전봉준이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못이겨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농민운동이라는 정도만 알고있었다. 그런 동학을 이야기책속에서 은강이게게 배웠다. 은강이는 동학운동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나이의 아이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동학도로 오해받고 억울하게 죽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전봉준에게로 이끈걸까? '이리 죽을거였으면 제대로 싸워나 보고 죽을걸'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신다. 그렇게 복수를 생각하며 혁명에 끼어들게 되고 이것이 정의로운 일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한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고 옆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보며 나도 죽을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지만 참아낸다. 은강이는 산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동학혁명의 최전방에서 살아갔던 것 일까.. 분명 희망을 찾으려 했던걸까?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어른들의 말때문이였을까? 이 책을 보면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하고 사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동학혁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 농민의 삶을 들여다 볼수있다. 천한 신분제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했다. 거기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 나라가 망하던 말던 힘센 외세를 끌어 들이는 나만 살면 된다는 무한 이기주의를 보면서 백년이 넘은 지금이나 그때나 어찌 그리 변함이 없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려운 백성들을 돌보는 것이 그들의 몫이거늘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권력도 없어지거늘 이리도 무식한 행동들을 하는지 읽으면서도 가슴이 아려왔다. 마지막 은강이 죽는 그 순간엔 가슴이 쓰리고 눈시울이 벌게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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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동요입니다 이 노래를 모르시는 분들은 없으실 테죠?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도 중학교 시절 문학 시간에도 나왔던 노래인데요 이 노래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 없지만 동학농민운동(1894) 때에 일본군이 푸른색 군복을 입어 파랑새는 일본군을 뜻하고 전봉준이 녹두장군이라 불리었던 점을 보아 녹두밭은 전봉준 동학 농민군을 상징하고 청포 장수는 백성을 상징한다는 것이 유력하다는 걸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 앞에서 달달달 외웠던 기억나네요 최근 S 본부에서 방영한 '녹두꽃'이라는 드라마로 동학농민운동이 다시 관심받고 있지요 동학농민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민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싸워야 했던 이복형제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라고 알려진 드라마를 한 번도 시청한 적은 없지만 그 드라마의 원작이 된 책을 알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에 초판이 발간되었으나 탁월한 작품임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푸른책들에서 개정판으로 되살려 낸 이후 스테디셀러로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윤희 작가의 [네가 하늘이다]입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만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던 동학농민운동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이윤희 작가의 재해석이 돋보인 [네가 하늘이다] 이야기와 동학농민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제 이이기 지금부터 시작해볼게요^^ 사실 제가 이 책의 첫 장을 넘긴 게 3주 전이에요 첫 장을 넘기고 절반까지는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순식간에 읽어갔는데 절반 이후부터는 책을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니.. 책장을 넘기기가 무서웠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네가 하늘이다]는 하늘 아래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삼시 세끼 배부르게 먹으며 내가 노력해서 일한 만큼 아니 그 절반만큼이라도 지키며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들이 뺏기고, 억울하고, 억눌리고, 짓밟혔던 그들의 삶을 바꾸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모았던 희망을 같은 사람에게, 같은 동족에게 처절하게 배신당하고, 짓밟히고 호시탐탐 침략을 노리는 세력들에게 몰살당하는 전쟁의 현장을 열한 살 은강이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전라도 지역은 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 되었으나 조선의 농민들은 정부에 많은 세금을 내야 했고 관리들의 수탈도 심했기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어요 이 무렵 ‘사람은 모두 평등하며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교리를 내세워 전파된 동학은 농민들의 억울한 마음을 크게 흔들었는데요 그러던 차에 전라도 군수 조병갑의 수탈을 참다못한 농민들이 전봉준을 중심으로 고부 관아를 습격해 고부 민란을 일으켰고 관아를 점령한 전봉준은 정부에 대하여 조병갑의 횡포를 시정할 것과 외국 상인의 침투를 금지하라는 등의 요구 사항을 제시한 결과 정부로부터 폐정을 시정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10여 일 만에 해산했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뀔 거라는 사람들의 희망.. 양반도 노비도 없는 세상 보리밥 한 그릇이라도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농민들은 부푼 희망을 가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전봉준이 마을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던 서당에서 배움을 받던 은강이는 농민군이 해산한 후 동학에 참여하지도 농민군에 참가하지도 않은 아버지가 억울하게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고 돌아가시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단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곤장을 맞고, 억울한 마음에 맥없이 목숨을 내려놓는 걸 보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한자락 거들기나 할 것을..." 하며 억울해 하는 마지막 말을 들으며 훈장 전봉준을 찾아 농민군부대로 찾아갑니다 그곳에는 부모를 잃고 떠돌다 일 년에 한번 농사가 시작하는 날 노비에게 나누어주는 떡을 받아먹고 노비가 된 솔부엉이도 주인댁 아가씨를 바라보았다는 이유로 욕을 들어야 했던 갑수도 있었습니다 모두 은강이와 한마을에 살던 이웃들이었습니다 정부의 시정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부 민란을 조사하러 온 안핵사 이용태가 민란 관련자들을 역적죄로 몰아 혹독하게 탄압하여 동학농민운동 봉기의 원인이 되었지요 조선 정부는 청에게 원군을 요청하여 청나라 군대가 아산만에 상륙하고 조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청나라와 일본 그 어느 쪽이든 조선에 군사를 보낼 시 전쟁의 시작을 의미해서 다른 한쪽에서도 군사를 출병한다는 톈진조약으로 일본도 조선에 상륙합니다 그야말로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된 것이지요 농민군의 2차 봉기는 삼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동학군의 해산에도 불구하고 1차 봉기를 빌미로 조선에 입성한 일본군은 내정간섭을 강화하였고 경복궁에 침입하여 고종을 감금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킨 후, 갑오개혁을 강행하였는데 일본의 행태를 전해 들은 전봉준은 일본군 척결을 위해 봉기하였지만 민중봉기가 확산되자 정부는 군을 출병시키고 일본에 출병을 요청하여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하였습니다 국왕을 가두고 남의 나라를 빼앗으려는 일본을 내쫓으려 일어난 백성을 도적 놈의 도움으로 진압하다니 정말 무능력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닐 수가 없는데요 단지,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그들의 바람을 무엇이 왜 그토록 잔인한 방법으로 꺾고 죽여야만 했었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2차 봉기 당시 가장 큰 역이 있었다는 삼례는 제게도 익숙한 곳이에요 전주가 친정인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다가 부모님의 고향인 전라도로 이사를 간 게 열두 살이었고 터를 잡은 곳이 '삼례'입니다 공교롭게도 삼례에 처음갔던 나이가 은강이와 같은 나이였네요 삼례는 지금도 동학농민운동 2차 봉기했던 9월이 되면 농민들이 집결했던 그곳에 빨강 파랑 빨강 파랑 노랑 깃발이 넓은 공터에 휘날려요 대나무로 만든 죽창도 꽂혀있고, 농기구들도 꽂혀있고요 삼례 터미널 부근인데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 깃발을 보면서도 그냥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제 올가을부터 다시 그 깃발들을 보게 되면 마음이 참 아플 것 같다는.. 120여 년 전 그분들께 참 감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친정집은 농민군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 전주성을 향해 총을 쏠까 두려워 감사 김문현이 성 밖 백성들의 집에 불을 질렀던 그 동네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도 용머리고개라는 지명이 남아있는 그곳 전주성은 따로 남아있지 않지만 서문이라는 지명도, 풍남문도 남아있는 그곳은 한옥마을이라는 관광지로 변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되었는데 그곳이 농민군들의 피로 물들었던.. 처절했던 역사적인 곳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은 관군 토벌대에 의해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그 하루 동안 죽은 농민군은 이천육백 여명 토벌군 사상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관군 토벌 대장은 보고문에 그날의 노획품을 이렇게 썼습니다 총 15자루, 환도 9자루, 창 42자루, 탄약 2짐, 깃발 10여 폭 이천육백 여명의 농민군들이 가지고 있던... 신식 조총과 화약과 폭탄에 대항했던 무기들입니다 맨몸으로 죽음과 맞섰던 사람들... 무엇이 그들을 죽음도 두렵지 않게 만들었을까요? 마흔한 살의 전봉준과 열두 살의 은강이는 관군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됩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종로통에서 목을 베어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려달라 마지막 말을 남기고 법무대신은 개인적으로 당신들의 죽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당신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명복을 빌어줍니다 그리고... 은강이...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왜 전쟁터에 끼어들었냐고 비아냥대는 일본 영사의 질문에 은강이는 조선 천지에 전쟁터가 아닌 곳이 없어서 라고 대답합니다 피하려고 했으면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피할 수 없었... 왜? 부모님이 계시지 않나? 돌아가셔..... 일본 영사는 간악하고 야비한 목소리로 은강이에게 잘못을 빌면 용서해주겠다 말합니다 너는... 어리니까... 잘못했다고 말하면 저 문을 걸어서 나갈 수 있게 해줄게! 일본 영사는 웃으며 방문을 활짝 열고 열을 셉니다 은강이는 눈을 감습니다 눈을 감아도 열린 방문이 보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끓여주는 소고기 국물에 미역이 잔뜩 들어간 미역국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던 솔부엉이 얼굴이 너무나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자식만은 개백정 소리 듣지 않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겠다던 막동이 얼굴이 생때같은 자식을 둘이나 모래밭에 생매장 시켜야 했던 끝돌이 아버지 얼굴이 소 대신 쟁기를 끌던 여자아이의 목에 도드라졌던 파란 실핏줄이 똑똑히 보였습니다 '잘못했다고? 우리가?' 은강이는 천천히 눈물 젖은 눈을 들어 일본 영사와 눈을 마주칩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습니다 은강이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아니, 끝내 뜨지 못했습니다 원해서 뛰어든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피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었지만 사람으로 살지 못했던 세상,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이름조차 가지지 못했던 삶 돌아갈 곳이 있었다면... 보호해 줄 사람들이 남아 있었더라면... 소 한 마리 값에 열 명의 노비를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더라면... 평생 소를 키웠지만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고기를 먹어보지 못하는 억울함이 없었더라면... 배가 고파서 노비들만 먹는 떡을 받아먹고 노비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고작 열한 살의 은강이가... 농사밖에 모르는 농민들이 전쟁터에 나설 일을 없었을 테지요 지금도 금수저, 흙 수저로 나뉘고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삼시 세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노력하면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혁명이라 불리지도 못하고 '동학농민운동'이라 불리지만 당신들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을 기억하겠습니다 이 땅의 개혁이 그대들의 손에서 시작 되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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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국어 공책을 넘겨보다가 ‘달콤한 소금이란 있을 수 없듯이 좋은 전쟁도 있을 수 없다.’는 글을 발견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생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녀석이 벌써 이런 공부를 하는구나, 하는 감회와 함께 여러 생각이 밀려들었다. 마침 <네가 하늘이다>의 마지막 한 장을 넘기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소설 <네가 하늘이다>는 마치 그때 그 일 년여의 시간이 그랬던 것처럼 길고도 슬프고 아팠다. 눈물이 한참이나 흘러내렸다. 세상에 대한 울분과 무기력증이 다시 온몸을 휩싸고 조여드는 느낌. 여전히 우리는 당시의 농민군이 죽어가며 바랐던 세상이 아닌, 억울함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신분에 의한 차별이 돈에 의한 차별로 대치되었을 뿐이며, 또 외세의 압력 또한 양상을 달리하여 횡행하고 있으므로. 그리하여 아직도 서러운 시절을 사는 우리에게 농민군이라는 이름은 참 슬프다. 추수철을 피해 봉기하는 농민들. 주먹밥 한 덩이를 입에 넣으면서도 그것도 못 먹는 어린 아들을 생각해야 하는 아버지. 그 흰옷 입은 사람들이 죽창 하나 꼬나들고 들판을 달려 일본이 가져온 신식 총에 맞붙었다. 달리고 달려 미처 적진에 닿기도 전에 사정거리가 긴 그들의 총에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책을 덮으며, 아스라한 기억 속에만 남았던 노래 하나를 떠올렸다. -기나긴 밤이었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 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어든. 불타는 녹두 벌판에 새벽빛이 흔들린다 해도 굽이치는 저 강물위에 아침햇살 춤춘다 해도 나는 눈부시지 않아라.- 이런 1894년의 봉기를 무어라 불러야 하나. 힘없는 백성이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보국안민’ 네 글자 아래 후손에게만은 이런 삶을 물려주지 않으리라 떨치고 나선 그날을. 운동? 전쟁? 양편으로 나뉘어 총을 쏘아대고 숱한 목숨이 스러졌으니 전쟁인 건가? 흔한 말로 내전이라 해 버리면, 그럼 이 역시 ‘나쁜 전쟁’이었던 걸까? 아니다. 그건 혁명이었다. 전에 동학혁명이란 말을 자주 했었는데, 이제야 혁명이란 이름이 입에 붙어왔다. 그래, 혁명이다. 그것도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한 혁명이다. 그들의 피와 함께 그 뜻이 조선 땅에 뿌려져 세상을 바꾸는 불씨를 당겼으므로. 혁명은 사람이나 집단을 상대로 한 싸움이 아니라 잘못된 세상, 체제에 대한 싸움이다. 하지만 많은 억울한 목숨이 세상을 떠났다. 와중에 숱한 ‘아이들’도 목숨을 잃었다. ‘죽은 어미의 젖을 빠는 어린아이’가 부지기수로 생기는 것이다. 세상 가장 눈물 나는 장면이란 바로 그런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동학농민혁명은 저 닳아버린 이름 ‘전쟁’이 아니었다.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아야 한다며, 그것이 모든 옳은 것을 대변한다고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그건 <베니스의 상인>에서나 통하는, 비참한 샤일록을 곯려주기 위한 계략일 뿐이다. 그날 흘린 숱한 피와 안타까운 넋을 부정하는 편의주의일 뿐이라는 생각을 이 책으로 해보았다. 그 피와 넋은 그야말로 좋은 세상을 위한 해방의 거름이었다. 울부짖음이었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은 성공한 혁명이었다. 민족의 개념이 허물어지고, 바야흐로 전 지구적 공동체의 개념이 대두된다 해도 나 같은 무지렁이에게는 아직은 먼 이야기이다. 나는 ‘우리’라는 말이 동심원을 그리며 확대해 갈 때 가장 안쪽 것밖에 아직은 감싸 안지 못한다. 그래서 꽤 먹고살만해진 대한민국이, 가장 안쪽에 자리하여 아직도 눈물겹다. 맨주먹으로 일어난 그들, 동학농민군의 소원이 세월을 넘어 내 가슴에 와 박혔다. ‘좋은 전쟁’은 없어도 ‘바른 혁명’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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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지금으로부터 110여년전 그리 오래되지않은 역사속에 우리가 살고있는 이땅에 과연 어떤일이 일어났었던가 ? 구한말 외척의 세도아래 한없이 약해진 왕권과 서구열강의 문호개방 그리고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첨예하게 대립된 두세력사이에서 이땅의 민중들을 고달플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우리영토를 향한 일본과 청의 야심은 더욱더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리고 있었다.
역사는 승리한자들에겐 더없이 너그럽고 실패한자들에게 참으로 인색하다. 그래서일까 동학혁명또한 실패한 민중봉기로 아주 짧은 소개로만 그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근대에 넘어올수록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사실들이 많기때문일까 바로 바라보며 평가하는데 참으로 인색하다 싶은마음인데 갑신정변 임오군란등 급박한 우리의 근대화의 물결속에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맞선 민중봉기로 짦막한 지식만을 단편적으로 만나곤 했던것이다.
자신들의 권력잡기에만 급급한 양반들과 외척의 실권앞에 무기력해질대로 무기력해진 조선왕조의 실정으로 핍박박고 고통받던 민중들은 하늘아래 귀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는 사상아래 하나로 뭉쳤다. 자신들의 세력을 혹시 빼앗길세라 책읽는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사람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것이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던 사람들 을 향한 분노가 1894년 2월 고부 관청을 습격 탐학 시정과 외국 상인들의 침투 금지를 요청하면서 시작된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일으킨 민중봉기였지만 고통스런 핍박아래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뭉친 순순한 마음이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수락한다는 신임부사의 약속만을 믿고 1차봉기의 성공에 만족하며 해산까지 하게 된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한게 아니었다. 백성을 마음을 읽을줄 몰랐던 조선왕조와 끝까지 양반의 세력을 놓고실지않았던 세력가들에게 민초들이 제시하는 요구조건들은 한낱 공허한 울림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철썩 같이 믿었던 약속들이 고부 핵사 이용태의 횡포로 더욱 가혹하게 돌아오며 그들의 긴 1년여에 걸친 아픈 투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이른다. 권력의 뒤안길에서 뼈빠지게 일을해도 가혹한 세금과 악행으로 벗어날수 없었던 가난과 극복할수 없는 신분의 벽에 가로막힌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했던 민초들은 네가 하늘이다라는 동학사상앞에 하나가 되고 있었다.
몰락한 양반으로 무차별적인 관군의 총칼아래 아비를 잃어버린 열두살 어린나이의 은강이를 동학군으로 만들어버리고, 가난해서 밤도망을 갈수밖에 없었던 끝돌이와 백정이란 신분앞에 한없는 냉대와 무시속에 살아온 막동이, 머슴이란 이유만으로 나이어린 양반집 자제로부터 반말과 멸시를 당해야했던 갑수와 솔부엉이 그들의 사람답게 살고싶다는 지극히 작은 소망들이 일반 백성들에게 총과 칼을 쥐게 만들고 있었던것이다.
자신들이 무지랭이라고 한없이 깔보고 있던 민중들도 다알고 있던 사실들인데 일본이 청이 우리 영토를 향한 검은 야망들을 그들은 왜 읽지 못하고 있는걸까 ? 양반을 빼앗기느냐 나라를 빼앗기느냐의 선택에서 양반을 선택했던것은 아닐까? 나라야 어찌되건말건 자신들의 세력만은 인정해준다 라는 사탕발림에 넘어간것은 아닐까 " 썩을대로 석은 벼슬아치들, 힘없는 조선조정, 하루하루 목습을 이어가는 것조차 힘겨운 백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조선을 침략하려는 왜국세력들...... 이 어둡고 냉담한 현실을 개혁하기엔 그들의 동기가 너무도 순수했고 그들에겐 너무도 힘이 없었던것이다.
자신의 백성을 죽이기 위해 일본의 군대를 끌어들인 우리의 세력가들과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를 통째로 삼키려는 일본의 숨은 야욕에 의해 우리 백성들은 너무도 허망한 죽음에 이르고 있으니 그 수많은 영혼들의 한을 어찌말로 표현할수 있을까 동학혁명속에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담겨있단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는데에 대한 한없이 죄송스러워지고 이제라도 바른 역사알기를 통해 그 속에 담겨져있던 숭고한 사상들에대한 깊이있는 고찰로 그들의 넋을 달래야함을 깨닫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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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늘이다>는 동학농민운동을 그린 청소년용 역사소설인데 600쪽이 넘는다. 그렇지만 그때 상황을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 상세하게 묘사해서 중간에 책을 덮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동학은 1860년 최제우가 창도한 종교로, ‘보국안민 광제창생(輔國安民 廣濟蒼生)’을 기초로 천주교인 서학에 대칭되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에 일어난 반제·반봉건·근대화운동으로 농민전쟁, 동학란, 동학혁명, 동학농민전쟁, 갑오농민전쟁 등으로도 불린다. 동학농민운동에는 동학의 조직을 이용한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개혁지도자를 중심으로, 농민·도시민·소상인 등 봉건사회 해체과정에서 몰락한 계층이 광범위하게 참여했다. 이 작품은 동학농민운동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몰락한 양반의 자제인 은강이, 백정, 서자, 가난한 농민 등 민초들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 청소년독자들에게 그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주고 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더 간절했던 것은 ‘만인의 평등’보다는 ‘따스한 밥 한 그릇’이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소박한 바람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보루인 죽음을 걸고 농민군에 가담하게 된다. 무기력한 조정에서는 이런 농민군을 처리하기 위해 외세에 의존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도 가슴을 치게 하는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대의를 생각하기보다는 각 개인의 안위를 더 중시해서 나온 결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역사에서 그런 어리석음이 한 두 번이었겠는가.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한다. 현재 시국 상황도 굉장히 어지럽다. 밤마다 이어지는 촛불집회와 동학농민운동과는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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