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말할 나위 없는 최고의 음반이다. 과거 호로비츠가 보여줬던 음색과는 사뭇 다르다. 과거의 것이 올먼디가 들려주는 '필라델피아 사운드'와 역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호로비츠의 밀고 당기는 '1:1 대결양상'을 보여준다고 하면 이 음반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조화'라 볼 수 있다. 그 조화 속에 아르헤리치의 '광기'는 내가 글로 옮겨낼 자신이 없다. 체격좋은 서양의 여러 남성 피아니스트들도 힘겹게 치는 이 대곡을 1악장부터 3악장까지 시종일관 숨막힐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해가면서 연주하는 그녀에게 일종의 경외심을 표할수 밖에 없었다. 흔히 고정관념이지만 여류피아니스트들은 감수성 풍부하고 섬세한 타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들 많이 하는데 아르헤리치는 그것을 반박이라도 하기위해 존재하는 듯한 연주자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서 보이는 투박한 타건과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 듣고 있는 사람마저 그 빠르기에 압도되어 다른 생각을 할 여유초차 없는 위압감을 생각하면 이 음반은 과연 '초일류 연주'로 분류 될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3악장-마지막 단 1,2분 정도-에서는 다른 어떤 음반보다도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아름답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일종의 정신적 오르가슴을 가져다 주는 그런 음색이다. 아르헤리치 음반에서 보이는 오케스트라의 미숙함은(그녀에 비해) 찾아 볼수 없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3번은 도외시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공연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크레믈린의 종소리라 불리는 협주곡 2번이 더 뛰어나서 그런가? 나는 아니라 생각한다. 2번이 대중성을 얻은 이유는 둘로 볼수 있는데 3번을 뛰어나게 연주할수 있는사람이 얼마 없어서가 하나의 이유고 다른하나는 3번이 어렵기 때문이다. 3번은 내게 클래식 입문반으로 남들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만큼 누구보다 많이 들었다고 말할수 있는 곡도 이 곡이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처음 들었을 당시에는 그렇게 좋은걸 당연히 몰랐다. 바흐의 대위법적인 '정형성'을 쉽게 찾을수 없었고 또 그렇게 대중화된 곡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3달 동안 cdp에 그것만 넣고 계속들었는데-다른 음반을 살처지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게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김춘수의 詩처럼 말이다. 하나의 의미로 내게 들려왔다. 예술의 타락은 대중의 편협으로 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과연 음악이 대중성을 얻었다고 해서 그 인기에 걸맞는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편하게 쉴생각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진정으로 음악을 좋아하고 또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음반이 아닐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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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샤인,1996>에서, 주인공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마치고 일어서는 순간... 주인공은 쓰러지고야 만다.
무엇이 그를 쓰러지게 했을까?
영화를 보고 난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다시 한 번 접하게 됐다.
차분히 음악을 들으려고 했다면, 그것은 너무나 큰 착각이었을까? 듣는 내내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역시 '악마의 교향곡'이라 불리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아르헤리치의 훌륭한 연주였다. (라이브레코딩이라 연주 도중 역사적인 명반에 몇 차례 역사적인 기침이 나오기도 하지만...)
씨디 구성은 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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