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8)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6%
  • 리뷰 총점8 14%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9.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다산, 그 넉넉한 품에 안기우다
"다산, 그 넉넉한 품에 안기우다" 내용보기
전남 장흥에서 13년째 칩거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한승원 작가가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의 삶을 그린 <흑산도 하늘 길>, <초의> 그리고 <추사>에 이어 올해 역사소설 <다산>을 발표하면서 대망의 4부작에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정조 임금을 다룬 역사드라마 <이산>이 인기리에 방영이 되면서 조선 후기 위대한 계몽군주였던 정조에
"다산, 그 넉넉한 품에 안기우다" 내용보기

 

전남 장흥에서 13년째 칩거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한승원 작가가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의 삶을 그린 <흑산도 하늘 길>, <초의> 그리고 <추사>에 이어 올해 역사소설 <다산>을 발표하면서 대망의 4부작에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정조 임금을 다룬 역사드라마 <이산>이 인기리에 방영이 되면서 조선 후기 위대한 계몽군주였던 정조에 대한 조명이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정조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로 빠뜨릴 수 없는 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다.

 

그는 정조의 아버지였던 사도세자가 억울하게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던 해인 1762년에 지방관을 역임한 정재원의 네 번째 아들로 태어난다. 어려서부터 지필을 가까이하고, 학문에 능했던 정약용은 조선시대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절대군주인 정조와 긴밀한 연을 맺기에 이른다. 당시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야기했던 노론에 대항하여, 권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젊은 남인 출신의 유능한 선비군을 양성하려던 정조와 정약용의 만남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국을 통해 밀려들어오는 서양문물 특히 서양 가톨릭을 지칭하는 천주학의 대유행에 맞서, 종래 조선왕조의 국시로 받들어져 오던 주자의 성리학을 지키기 위해 수구 노론파 관리들과 지식인들은 개혁적 성향의 남인들과 첨예한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천주학을 신봉하는 남인계열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맹자>, <대학> 그리고 <중용>에 나오는 천명(天命)의 개념을 천주학의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하면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혁파하고 사민평등이라는 당시 기존체제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이념들이 대유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 정약용 형제들도 예외는 아닐 수가 없어서 마테오 리치가 저술한 <천주실의>를 통해 천주학을 접하게 된다. 여기에서 미래의 그들의 비극이 잉태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역사소설 <다산>은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먼저 경남 장기와 전남 강진에서 18년간의 긴 그리고 언제 죽음이 닥쳐올지 모르는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유배생활을 마치고 끝내 살아 고향땅 두물머리 소내 땅을 밟은 정약용. 부인과의 60번째 결혼기념일날, 그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신산한 삶을 플래시백을 통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어가며,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나아간 뒤에도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아 정약용은 관계에서도 승승장구를 거듭하게 된다. 하지만,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그만큼 짙어지는 법. 대쪽 같은 성품으로 부패한 관리들을 처벌하고 상소를 마다하지 않는 정약용의 올곧은 성품 때문에 그만큼 많은 정적들을 만들게 된다. 다산과 평생의 악연을 만들게 되는 서용보가 대표적인 예이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노론계열 관리들의 모함과 질시로 중앙정계에서 물러나 충청도 홍주의 금정으로, 그리고 황해도 곡산 등의 좌천성 외지근무를 하게도 된다. 하지만 이런 기간에도 언제나 백성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유가사상에 입각해서, 백성들을 위한 공평무사한 정치의 도를 베풀고, 스스로 깨닫게 된다. 자신을 극진히 아끼는 정조 임금의 배려로 다시 중앙정계에 복귀하게 된 정약용. 하지만 재위기간 24년을 동안 많은 개혁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하던 정조 임금은 악성 종기로 끝내 죽게 되고, 그 때부터 정약용을 든든하게 지켜 주던 바람막이가 걷히면서 고통스러운 삶이 시작된다.

 

정조 사후, 나이 어린 순조가 즉위하게 되면서 그동안 정조 치세 하에 숨을 죽이며 때만을 기다려 온 노론의 영수인 심환지·서용보 등은 정순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는 동시에 천주학을 믿어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정조 대에 총애를 받던 신하들에 대한 숙청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가환, 정약용 형제를 비롯해서 이승훈 등 그야말로 일거에 자신들의 정적인 남인들에게 치명타를 가한 노론은 남인의 상징적인 인물인 정약용을 죽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모색한다.

 

개인적으로 솔직히 말해서, 다산에 대해 기나긴 유배생활로 대변되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는 정도 밖에는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소설 <다산>을 통해, 그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조망을 다시 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한승원 작가는 치밀한 고증과 방대한 조사를 통해,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들에 기반을 해서, 공식 역사기록에는 빠져 있을 다산의 개인적인 고뇌와 울분과 같은 부분들을 무리 없이 깔끔하게 재창조해내고 있다.

 

중앙정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정약용이 정조의 죽음으로 단박에 몰락하고,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천주학을 신봉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억울한 모함을 받아 국문을 받고 사경에 이르러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신의 깨달음과 배움을 후대에 전해야 한다는 선비로서의 처절한 사명감의 인식은 그의 삶의 존재이유였다. 당당한 사대부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대한 다산의 사랑과 천착은 고향에서 천릿길 떨어진 강진 땅에서 기나긴 유배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1권 서두에서 다산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자와 <천주실의>의 저자인 마테오 리치와 상상 가운데 만나게 되고, 그들이 제공하는 약을 서로 섞어 마시게 된다. 이것은 마치 영화 <메이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주는 빨간약과 파란 약을 고르게 되는 니오의 선택과도 같다. 이것은 천하 만물의 운용의 진리는 온전히 성리학에서 유래했다고 믿었던 조선시대에, 그렇다면 그 진리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에 대한 대답을 천주학에서 찾았던 다산의 갈등과 고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울러 다산이 살아가는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던 주류 노론과의 긴장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역시 소설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작가는 “연두색 머리처네”라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을 등장시킨다. 미스터리한 이 여인의 존재는 다산에게는 구원자로써, 또는 자신을 죽음의 파멸로도 이끌 수 있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끝까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함으로 소설의 역사적 기반을 허물지 않고 자연스러운 퇴장을 유도한다. 또한 소설의 말미에 등장한 초의선사 역시, 유가는 물론이고 도가와 불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에 통달한 다산과의 이어지는 선문답을 통해 다산이 가진 학문의 깊이를 은근하게 드러내 보여 준다.

 

하루가 다르게 더워져 가는 이 여름, 말년에 이른 노대가의 역작 <다산>을 통해 자신과 대척점에 서 있던 이들도 품으려고 했고, 우리네 민초들의 삶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역경 가운데서도 치열한 삶을 살았던 다산의 그 넉넉한 품에 안겨 보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h******1 2008.06.16.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산(茶山)의 민본주의(民本主義) 철학
"다산(茶山)의 민본주의(民本主義) 철학" 내용보기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1권 P. 4) 다산(茶山) 정약용. 학창시절부터 수없이 들어온 이름. 얼마전 TV 드라마 이산을 통해서 그의 모습이 조금은 드러나기도 했다. 실학자, 수원 화성, 다산초당, 유배 생활, 그리고 그가 남긴 많은 저서들.. 그의 이름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이외에도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사실들과 인간
"다산(茶山)의 민본주의(民本主義) 철학" 내용보기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1권 P. 4)

다산(茶山) 정약용. 학창시절부터 수없이 들어온 이름. 얼마전 TV 드라마 이산을 통해서

그의 모습이 조금은 드러나기도 했다. 실학자, 수원 화성, 다산초당, 유배 생활, 그리고

그가 남긴 많은 저서들.. 그의 이름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이외에도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사실들과 인간 다산의 깊이를 이 책은 이야기한다. 茶山 이라는 그의

호는 그가 18년이라는 시간동안 유배되어 있던 다산 초당에서 유래되었다. 강진에서

차나무가 많이 자생하던 만덕산을 마을 사람들은 茶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곳에서 차를

즐기고 깊이를 마시고, 그 정신을 배우던 정약용을 사람들은 茶山 이라 불렀고 나중에

그는 그것을 자신의 호로 삼게된다. 백성과 민심과 함께하는 가까운 사람, 다산(茶山)

그런 그의 모습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영혼과 육체의 고통이 없으면 세상도 없습니다.

                       그 고통을 비틀어 꼬면 빛이 됩니다."  (1권 P. 15)

<다산>은 임금 정조와의 관계와 붕당정치, 다산의 4형제의 관계와 천주학, 관리생활

과 유배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백성들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아들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야기의 가장 큰 줄기는 천주학과 백성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이다. 실학자이면서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은 그 해

1762년 태어난 그는, 일찍 부터 서학(西學)에 눈을 뜨게 된다. 정조의 총애를 받지만

반면 그를 숙적으로 생각하는 노론 서용보와 정순대비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그를 극진히 사랑하는 정조, 수원에 화성을 지어 세자에게 서울 정부를 맡기고 자신은

화성을 경영하겠다던 임금, 장용영을 중심으로 강한 군대를 양성하여 청나라에게도

굽신거리지 않고 독자적인 해양강국을 만들겠다던 정조의 포부속에 정약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노론의 득세, 그리고 천주학 탄압의 와중에 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갖은 고초를

겪게된다. 정조의 죽음 이후, 노론은 약종을 죽이고 약전과 약용을 유배보내게 된다.

이 책의 주요 줄거리의 하나가 바로 1801년에 있었던 신유사옥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후 강진에서 거문고를 생각나게 하는 '연두색 머리처네' 여인과의 애틋한 사랑도

불러오고, 혜장과 초의 스님과의 운명적 만남도 이어진다. 이곳에서 목민심서와 방례초본

과 같은 유명한 저서를 남기기도 한다. 혜장의 죽음, 둘째형 약전의 죽음, 막내아들과

어린 조카의 죽음 등 18년동안 안타까운 유배지 생활이 이어진다. 그 속에서 백성과의

많은 교류와 민의를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된다. 목민심서에서 보이는 목민관의 도리와

경세유표에서 볼수 있는 나라와 임금의 길, 그리고 흠흠신서를 통해 백성들의 억울함이

없도록 죄를 다스리는 사람들의 인정과 덕치를 이야기한다. 이런 저서들의 근본이 되는

그의 사상은 바로 인본(人本)인 것이다.

"대게 모든 배우는 사람에게는 큰 병통이 세가지 있는데... 첫째로,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 하기 마련인 병통이 있다. 둘째로, 글 짓는 것이 날랜 사람은 글들이 들떠 가볍게

드날리는 것이 볕옹이다. 세째로 깨달음이 재빠르면 정밀하지 않고 찬찬하지 않고

막되고 덧거친 이 폐단이다." (2권, P. 77)

다산이 소년 황상에게 한 말이다. 배우는 이들이 경계할 병통을 말하고 있다. 우리 삶에도

많은 깨달음을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고 백성과 소통하는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다산. 주자학과 천주학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번뇌하던 그의 모습이 새롭다.

정조의 문체반정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도 책속에 보인다. 서양의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인

남인을 보호하고 노론을 견제하기위해 원시유학 경전속으로 회귀를 명한 문체반정의 숨겨진

의미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속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속 뒷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실학자, 재상으로서의 다산의 모습보다 조금은 인간적이고 백성과 가까운

그런 다산의 모습이 엿보인다. 서학(西學)을 일찍 접하면서 인본사상(人本思想)에 눈을

뜬 다산에게 천주학, 주자학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본주의(民本主義) 철학 이었는 지도

모른다. 민본주의철학이 가장 우선시되고 나머지는 그것을 설명하는 도구였지는도 모른다.

백성과 같은 꿈을 꾸던 선비, 그가 바로 다산 정약용 이다.

 

다산 초당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전에 강진군수를 지내셨던 윤동환 선생님이 초당 아래

입구에서 찻집과 기념품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벌써 7~8년전으로 기억하는데 그 분이

다산기념사업회인가 회장님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분이 지으신 정약용 선생님의 책자를

한권 사고, 사인을 받아온 책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다산초당을 처음 정약용에게

빌려준 분은 윤 단이라고 한다. 해남 윤씨들이 다산초당을 소유하고 그곳을 관리하고 있는것

같다. 다산 초당은 단순히 다산의 유적지를 넘어 백성과 소통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했던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곳이리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다산의 교훈은 앞서 말했던

민본주의(民本主義)라 생각된다. 국민을 위한다는 공약이 난무하지만, 선거철만 끝나면 귀를

닫아버리는 정치권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생각된다. 소통의 부재, 현시점에서 우리

나라의 가장 커다란 장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산 선생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겠다.

'다산비결'이라는 말로 책은 시작된다. 저자의 종증조부의 책속에 담긴 세상을 바꾸려 했던

다산의 비결, 정치와 경제, 신분제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담겨있는데, 결국 그 내용 또한

민본주의에 다름아닌것 같다. 그의 사상과 마음속에는 언제나 백성을 생각하는 그 마음, 단지

그 마음 하나뿐인것 같다. 5년여의 긴 집필작업과 많은 고증문헌들을 통해 새롭게, 조금 더

가까이 우리곁에 다가온 다산. 어두운 시대 빛이 된 지도자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흐리기만

한 우리 현실에 필요한 지도자상을 기대하게 된다.

각고의 노력과 많은 땀속에 새롭게 태어난 다산의 모습을 통해 그 시대를 읽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희망을 일깨우게 된다. 거대한 산이라기보다 우리에게 보다 친근한 뒷동산의 모습을

통해 다산(茶山)을 바라본다. ^^

e****e 2008.06.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절망 속에서 싹튼 희망, 근대
"절망 속에서 싹튼 희망, 근대" 내용보기
절망 속에서 싹튼 희망, 근대      한승원의 소설 다산을 1. 자연과학고에서 1권을 읽었고, 2권은 울산중부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읽어서 대강의 시대적 분위기는 파악하고 있었다. 출판사는 랜덤하우스 2008년 작품이고 4쇄발행. 발행량은 대략 3만에서 4만 수준으로 추정됨 작가인 한승원 선생은 이 작품이외에도 정약전에 대한 소설<흑산
"절망 속에서 싹튼 희망, 근대" 내용보기




절망 속에서 싹튼 희망, 근대
     한승원의 소설 다산을

1.

자연과학고에서 1권을 읽었고, 2권은 울산중부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읽어서 대강의 시대적 분위기는 파악하고 있었다.

출판사는 랜덤하우스 2008년 작품이고 4쇄발행. 발행량은 대략 3만에서 4만 수준으로 추정됨

작가인 한승원 선생은 이 작품이외에도 정약전에 대한 소설<흑산도 하늘길>
초의 선사의 책은 <초의>로 형상화,

또<추사>란 소설을 집필. 이 소설은 그의 일련의 시리즈의 마지막에 해당함.

 

 

 

2.

사실 나는 역사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설은 당대의 문제에 대한
당대의 인물로 그려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여서 그렇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작품으로 좋아하는 것은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향수>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즐겨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이덕일의
<정양용과 그의 형제들>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고,

대가인 한승원 선생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3. 절망적 상황과 조선

자신의 주변 사람이 말에 사지가 찢겨 죽는 상황, 혹은 자신의 형이
목이 잘려 죽는 상황이라면 보통 사람은

어떻게 그 현실을 받아들일까? 다산 정약용이 마주한 상황은 이와 같은 철저하게 절망적 상황이었다.

소설<1984년>에 묘사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모든 글들은 검열되고,
정적들은 자신을 핍박해 들어온다.

언제 자신에게 사약이 내려질지 모르는 상황, 그 상황속에서 다산은 버티고 있었다.
카프카는 이런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악어의 입안에막대기를 하나 세워두고 그 안에 앉아 있는 상황>. 

이와 같은 비참한 상황이 바로 다산이 마주한 세월이었다.

 

하지만 다산을 핍박한 절대 권력은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또한 과거로의 회귀였다.

그 당시 절대권력이던 노론이 행한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선의 종말이
그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1862년 대원군이 집정하기 전까지 조선의 상황은 삼정의 문란으로 썩을대로 썩은 상황이었다.
그 단면을 이 소설 <다산>에서 다산의 시 <애절양>에서 잘 알수 있다.
자신의 남근을 자른 사내의 이야기가 애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정약용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다가올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희망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2.희망은 어디서 왔는가?

그렇다면 그 희망이란 것은 무얼까? 그것은 근대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노래하는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 

그도 아니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 그도 아니면< 보통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상이었다.
하지만 그것 하늘에서 거저 떨어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다산의 학문은 기실 북학파가 북경으로 부터 수입한 학문이 주류였다고 생각한다.
저 북경의 서점에서 엄청난 양으로 사들이던 서책에서

결국 다산의 학문이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그의 학문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 한 지류가 작가 한승원이 주장하는대로

천주학이다. 그 천주학이란 무엇이까? 그것은 천부인권 즉 하늘로부터
보통 사람들에게 부여된 인권이다.

작가는 이것을 아래처럼 말한다.

 

<그것은 <논어><맹자><중용> 속의 '천명'을 주자처럼 본연지성으로 읽지 않고 천주학에서
말하는 '하늘의 명령'이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천지 우주의 율동이 절로 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지 것이라 여겼으므로
봄의 풀과 꽃, 여름의 신록,

가을의 열매, 겨울의 혹한 속 휴식을숭엄한 축복으로 받아들 일 수 있고,
하느님과 늘 함께 살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으며, 절망과 허무속에 빠지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도록 올바르게 다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268쪽>

 

 

 

3. 변화와 수구

변화해야 할 때 변화하지 않으면 수구가 된다. 이 소설<다산>에서
<주역>이란 이름으로 그렇게 여러번 거론된 것도

우주와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는 지식인, 혹은 새로운 학문의 받아들임,
새로운 지식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역이란 변화의 학문이고,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대응력이다.
다산은 변화를 수용했고, 노론은 변화를 거부했다. 마찬가지로

다산은 변화를 수용했는데, 대원군은 일부분만 변화를 수용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가 결국 진보를 가져온다.

변화에 더불어 교환이 필요하다. 변화와 교환 혹은 나누어 주기,
열린 자세등등이 결국은 조선을 변화시킬수 있는 힘이었다.

하지만 노론은 그것을 거부했고, 다산은 그 희망의 싹을 후세에게 물려주었다. 그
것이 지금 한국의 어느 정도의 근대화된

현실이라고 하면 안될까?

 

 

 

4. 작가 한승원 선생의 고민

선생이 마주해야 했을 고민은 다산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
이르는 험난한 길이었을 것이었다. 다산은 기실 따지고 보면

유학자였으며, 소설에 나온대로 불교, <주역>, <천주교>등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학문의 깊이에 이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불교, 유교, 천주교를 아우르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으리라. 특히 한문에 대한 높은

소양을 갖추지 않는다면 정약용이 이룬 학문적 성취에 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한승원 선생은 다산을 소화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 짓는다.

 

<선생(다산)의 사상과 철학 속에는 주자학과 천주학이 공존공생하고 있다.
선생은 주자학을 비판하긴 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천주학을 버렸다고 했지만 그 요체를 가슴에 새겨 담고 있다.
옷감을 재단하는 가위에 비유한다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철학과, 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을 가새질러 포개고, 그 한가운데사북으로 박혀 있다.

선생은 주자학과 천주학이라는 양날의 거대한 가위로써
세상을 재단하여 읽어내고 새로이 디자인한 것이다.

그것이 선생의 삶의 모양새이고 모든 저서들이다.>318쪽

 

 

 

 

5. 어려운 소설에 대한 깔끔한 정리

이 소설이 어려운 이유는 이유는 소설을 재미있게 하는 어떤 긴박한 스토리 라인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재미있는 스토리라인 대신에 다산의 사상적 발자취를 쫓는 어려운 작업이 남아 있었다.  
그런 작업은 대체로 지루하고 읽는 사람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작가 한승원 선생은 이런 어려운 일을 나름대로 깔끔하게 다듬어서 선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깔끔하게 그리고, 절대로 깊이를 잃지 않는 방법으로 다산을 뒤쫓았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칭찬받을 만 하다. 한승원 선생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런 저런 병치레로 몸이 천길 밑바닥으로 가라않고 부정맥이 나를 괴롭힐 때, 나는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에게 ' 이 소설만 끝내고 잠들게 해주십시오'하곤 빌곤 한다. >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부분이다.

 

 

 

5.

이 소설이 보통 사람에게까지 

읽혀지는 지금이야 말로 다산이 꿈꾼 근대가 아닐까?

 

k****k 2011.07.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산...정약용
"다산...정약용" 내용보기
첫 장을 넘기면 『다산』을 13년에 걸쳐 집필했다고 나오는데 그만큼 이 작품이 사실에 근거한 팩션(Faction)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읽는 내내 작품 곳곳에서 느껴지는 종교적인 색채는 조선시대에 정약용이라는 학자가 왜 유배를 당하게 되고 실학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18년 유배생활과 조선 땅의 헐벗고 굶주린 민초들을 향한
"다산...정약용" 내용보기

첫 장을 넘기면 『다산』을 13년에 걸쳐 집필했다고 나오는데

그만큼 이 작품이 사실에 근거한 팩션(Faction)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읽는 내내 작품 곳곳에서 느껴지는 종교적인 색채는

조선시대에 정약용이라는 학자가

왜 유배를 당하게 되고 실학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18년 유배생활과 조선 땅의 헐벗고 굶주린 민초들을 향한 사랑

5백여 권의 저술로도 해소되지 않던 진리에 대한 목마름을 통한

정약용 선생의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

 

이러한 선생의 마음은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나에게 와 닿았다.

그러하기에 2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다산 정약용 선생은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현재의 위정자들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시름과 아픔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세상을 바뀌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행동 하고 있을까?

 

정약용 선생처럼 백성을 위하고

바른 정책이라면 소신을 가지고 자리에 안주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을 바로 세우는 진정한 목민관이

우리 사회에도 있길 바래본다.

 

끝으로 언제나 좋은 책.....아낌없이 방출해주시는 꿈꾸는 현자님께 고맙습니다.

덕분에 늘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쌩유~~~

a*******1 2009.06.29. 신고 공감 0 댓글 27
리뷰 총점 종이책
다산1/한승원
"다산1/한승원" 내용보기
시대를 일깨운 웅대한 역사의 산... 다산 정약용거문고의 여섯 줄은 누에고치 2만여 개의 실오라기들을 겹겹이 비틀어 꼬아 만든 것으로 그 소리는 이만여 누에고치의 합창이라 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18년 동안의 유배생활에서 500여권의 저서들은 하나하나가 그의 고통을 비틀어 꼰 빛살들이고 중천으로 날아가는 깃털 찬란한 혼의 새들이라 표현했듯이
"다산1/한승원" 내용보기
시대를 일깨운 웅대한 역사의 산... 다산 정약용


거문고의 여섯 줄은 누에고치 2만여 개의 실오라기들을 겹겹이 비틀어 꼬아 만든 것으로 그 소리는 이만여 누에고치의 합창이라 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18년 동안의 유배생활에서 500여권의 저서들은 하나하나가 그의 고통을 비틀어 꼰 빛살들이고 중천으로 날아가는 깃털 찬란한 혼의 새들이라 표현했듯이 이 책에서는 그와 그의 둘째 형인 정약전이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된 배경과 강진유배생활을 어떻게 이겨 냈는지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기전에 그의 다른 작품인 <흑산도 하늘길>을 읽어서일까, 그 책은 그의 형인 정약전을 다루고 있다. 그의 유배생활을 자신이 직접 본 듯한 생생한 표현으로 그의 감정 하나 놓치지 않고 잘 그려냈기도 했지만 다산을 연구하다가 쓴 책이라 그런지 이 책과도 연결이 되어진다.유배지를 벗어나라고 형의 호를 <손암>으로 지어 주고는 들어가면 나오는 것이라 하였지만 끝내 형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 만다. 그런 형을 보아서일까 더 강하게 마음을 다잡아 살아 남으려는 의지가 더 엿보인다.

다산1권에서는 강진으로 유배를 가기전까지의 배경이 그려지고 있다. 자식들이 그들 부부의 회혼일을 준비하는 차에 기뻐야 할 날이 그의 제삿날처럼 되고 말았다. 혼미한 정신속에서 먼저 간 혼들을 만나며 그는 지난날을 풀어내고 있다. 어린시절 손님(마마)이 들어 셋째인 약종이 심하게 앓기에 어머니는 다른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그를 따로 떼어 놓고 다른 형제들에게만 정성을 쏟는다. 작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약종이 살아나지만 그 일로 인하여 약종은 다른 형제들과는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처럼 성장을 한다.천재와 천재 사이에 끼여서일까 커나갈수록 더욱 삐따닥하게 구부러진 약종의 생각이나 판단은 훗날 천주학에 빠져 끝내는 다른 형제들에게 그 화를 미치게 하고 자신은 순교를 하고 만다. 

바로 윗형인 약종은 천주학을 신봉하지만 그는 새로운 학문으로 받아 들일뿐이다. 주자학과 천주학을 양면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그는 공자,맹자,주역에 더 깊게 빠져들기도 한다. 그의 학문적으로 뛰어남을 일찍이 알아본 정조는 그를 가까이 두려 하지만 노론세력에 밀려 순탄치 못한 출세의 길을 걷는다. 자신의 뒷배를 봐주던 정조마져 갑자기 죽고나자 그는 그를 주시하고 있던 세력들에 밀려 그와 그의 형제와 주위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인 천주학으로 인하여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그런 이유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되는 약용은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로 글쓰기를 한다.

작가의 생각이겠지만 어떻게 해서 정약용이 천주학을 믿게 되었는지 왜 유배를 가게 되었는지 그가 진정으로 천주학을 받아 들였는지 말해주고 있다. 정약용 그가 지금 시절에 살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새로운 것을 배척하던 시대이고 더구나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천주학은 손님(마마)처럼 여겨져 배척하게 되고 천주학에 물든 자들은 그 뿌리를 완전히 뽑으려 했으니 그 속에서 유배를 가서 살아 남음만으로도 다행으로 봐야할 듯 하다. 그가 만약에 천주학에 빠져 들지 않고 그 시대를 호령하며 임금 곁에서 정치를 더 했더라면 어떻게 변했을까. 그 많은 저서들은 오늘날까지 남겨지게 되었을까. 

다산을 아낀 정조와 둘의 대화에서 인간적인 정조를 그려낸것도 작가의 시선이겠지만 문화부흥기였던 그 시대의 정조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어 읽는 동안 흐뭇하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게 되고 그런 아버지를 잊혀진 왕이 아닌 자신의 아버지로 복원시키려 노력한 정조, 의문의 죽음으로 인하여 천재를 알아봤지만 그 힘이 미치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다산에게는 어쩌면 유배가 더 나은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력다툼속에 있었다면 그의 목숨도 위험했을 터인데 강진에서의 그는 더 빛나지 않았나싶다. 작가가 13년동안 다산에게 매달려 그를 새롭게 부활시키려 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고의 노력이 있어 정약전도 초의도 추사도 그에게서 새롭게 탄생되어 나왔듯이 이 소설속에서 정약용은 새로운 삶을 부여 받은 듯 하다.고을을 맡아 다스릴때는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고 명판관이 되어 바르게 평을 내리고 교우관계며 사상이나 철학적인 문제에서도 자신의 현 위치를 잘 파악한 듯 하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 화려하게 새 세상을 꿈꾸고 이렇게 향사례를 하고 벗을 사귀고 술 대작을 하고 과거 공부를 하고 벼슬을 하고 농사짓고 장사하고 옹기 굽는 따위의 사업이라는 것도 결국 향기롭고 그윽한 그림자 만들기 아닐까요?

사나운 뇌성벽력은 햇빛으로 이기고, 강한 햇빛은 음음한 꽃그늘로
이기고,향기로운 꽃그늘은 물로써 이기고, 물은 달빛으로써 이기고, 달은 해로써 이기고, 해는 밤으로써 이기고, 기나긴 밤은 잠으로써 이긴다.


y******2 2009.06.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웅대한 산의 참 인간적 면모!
"웅대한 산의 참 인간적 면모!" 내용보기
다산 정약용이라는 웅대한 산의 인간적 면모를 보았다. 오래전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를 읽으면서 그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들며 재미있게 읽었던 것과는 달리 그보다 훨씬 적은 분량의 이 책은 다산의 내면을 더욱 엿볼 수 있었던 소설이면서도 그의 사상서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문에서 오랫동안 다산을 연구한 박석무님의 책 소개를 읽고 당장에 이 책을 사서 읽었다. 그 분
"웅대한 산의 참 인간적 면모!" 내용보기

다산 정약용이라는 웅대한 산의 인간적 면모를 보았다. 오래전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를 읽으면서 그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들며 재미있게 읽었던 것과는 달리 그보다 훨씬 적은 분량의 이 책은 다산의 내면을 더욱 엿볼 수 있었던 소설이면서도 그의 사상서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문에서 오랫동안 다산을 연구한 박석무님의 책 소개를 읽고 당장에 이 책을 사서 읽었다. 그 분의 <유배지에서 온 편지>라는 책에서 평소 다산의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삼고 있었던 나로서는 또 다른 어떤 모습의 다산이 그려질까 정말 기대하며 읽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야기의 흐름이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천주학을 받아들였던 다산이 비록 살기 위하여 천주학을 부정하고 배교했지만 깊은 마음 속에 '하늘'의 큰 뜻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처지속에서 선비로서의 사업을 생각하며 후세를 위한 글쓰기에 몰두했던 그가 참으로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초의 선사와의 교우도 마음이 참으로 훈훈해지는 광경이었다. 또 하나의 위대한 인물이었던 초의 선사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다산을 희롱(?)하며 그의 삶을 배우는 모습은 참 스승과 함께 사는 이의 가슴 벅찬 기쁨을 느끼게했다.


주로 국사 교과서에서 실학을 집대성한 이로서의 정약용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위대한 인물의 참 인간적 내면을 이해하기위해서라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선비란 이 세상을 가치있는 세상으로 만들기위해 노력하라는 소명을 받아들인 사람이다'라는 말은 그가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였으며 또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였는가를 잘 알게 해준다. 나 자신 비록 선비는 아니지만,단지 책을 읽는 것에서만 끝나지 않고 그러한 소명을 느끼고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함을 느낀다.

j****a 2008.07.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산의 마음을 읽다
"다산의 마음을 읽다" 내용보기
실용주의의 대가 다산 정약용선생님의 일생을 소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국사시간에 다산 정약용의 저서를 이름도 어려운데 달달 외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천주실의니 목민심서니 하는 책들을 무좃건 외우기만 했지만 다산을 읽다보니 그 책들을 쓴 배경들도 알게 되니 정약용선생님이 한층 가까와짐을 느낀다. 한승원님은 다산을 흡모하게 되어 5년간 역사서들을
"다산의 마음을 읽다" 내용보기

실용주의의 대가 다산 정약용선생님의 일생을 소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국사시간에 다산 정약용의 저서를 이름도 어려운데 달달 외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천주실의니 목민심서니 하는 책들을 무좃건 외우기만 했지만 다산을 읽다보니 그 책들을 쓴 배경들도 알게 되니 정약용선생님이 한층 가까와짐을 느낀다.

한승원님은 다산을 흡모하게 되어 5년간 역사서들을 읽고 고증을 한 결과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 소설이라는 하구는 일정 부분 가미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읽으면 될 것 같았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은 주자학과 천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의 인생도 역경의 길을 갔었나 보다. 지금 같으면 종교의 자유가 있다지만 그 때는 나랏님 말씀이 곧 신이니 나랏님 외에 하나님을 믿자는 천주학은 곧 반역자로 취급받기에 충분했다. 

정약용과 이벽 앞에 두 사람의 남자, 천주교의 하얀 사제복을 입은 서양 사람과 붉은 옷을 입고 상투를 조그마하게 튼 중국사람, 그들의 좌판 위에는 약병들과 청자 잔 한 개씩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잔을 골고루 섞어 마신다. 중국사람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자(朱子)이시고, 한 분은 천주실의를 저술한 마테오 리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꿈에서 깨어난다. 이것을 보더라도 정약용은 주자학과 천주학을 모두 받아 들여서 정신세계의 중심으로 삼앗음을 알 수가 있다. 젊은 남인의 한 사람으로 노론과는 다른 생각을 한 정약용을 싫어하는 노론들이 많이 있음에도 정약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주학에 대한 공부를 하지만 결국은 정조임금에 천주학을 부인하고 믿지 않게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상소를 올려 주자학을 멀리 하고 천주학을 비판한 그이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항상 천주가 살아 있음을 정약용선생님도 아시고 나도 알 수가 있음이다.

무릇 종교란 자유가 있는 법, 못 믿게 한다고 마음 속까지 들여다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셋째형 정약종을 비롯하여 천주학파들은 참수형을 당하기에 이르고 정약용은 전라도 오지로 귀향을 감으로써 목숨은 연명하게 된다. 정조의 총애를 입고 화성을 거중기로 건축하는 것에 골목했었던 실학파의 대가 정약용도 천주교로 인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자식들은 과거도 보지 못할 폐가가 된 것이 얼마나 안타까왔을 것인가.

고문을 당할 때도 하나님께 지금을 벗어날 방도를 구하던 정약용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모습과 종교인으로서의 모습을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귀향살이동안 몸은 병들고 외로왔지만 그곳에서나마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지금의 현 상황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는 정약용의 긍정적인 마음을 읽으면서 그래서 지금까지도 위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부재처럼 시대를 일깨운 약사의 웅대한 산임에 틀림없다. 귀향처에서도 성호이익의 책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책을 끊임없이 집필하셔서 후대에 많은 책을 남기신 듯 하다. 그리고 귀향에서도 자식을 걱정하며 자식들에게 사랑이 가득한 서신을 보내셨던 자상하신 아버지의 모습도 엿볼 수가 잇었다. 예전에는 자신과 의견을 달리 한 사람은 모두 죽임으로서 후한을 없애는 일들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우매함을 느낄 수도 있었고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학식을 계속 넓혀 나가는 공부의 자세도 배울 수가 있었다. 한승원님이 집필을 하시는 동안 다산 정약용선생님에 대한 애정이 책의 곳곳에 많이 우러나 잇는 것을 느낀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 나도 정약용선생님에 대해서 연민이 느껴지는데 한승원님은 오죽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목민심서나, 흠흠심서 천주실의를 읽어봐야겠다.

c*****1 2008.07.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산 정약용을 읽고...
"다산 정약용을 읽고..." 내용보기
다산...그의 영혼을 만나다. 정조의 삶을 다뤘던 모방송사 드라마에서의 씩씩하고 호기심많은 이미지때문이였을지도 모릅니다.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아니 조선사를 조금이라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정 약 용 이 세글자를 모르지는 않겠지요.   저는 그저 얇은 소견으로 목민심서의 저자이며 천주교와 관련이 깊은 인물 정도로만 기억하고있던중 그의 삶을 들
"다산 정약용을 읽고..." 내용보기

다산...그의 영혼을 만나다.


정조의 삶을 다뤘던 모방송사 드라마에서의 씩씩하고 호기심많은 이미지때문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아니 조선사를 조금이라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정 약 용 이 세글자를 모르지는 않겠지요.

 

저는 그저 얇은 소견으로 목민심서의 저자이며 천주교와 관련이 깊은 인물 정도로만 기억하고있던중 그의 삶을 들여다볼수있는 이 기회를 움켜쥐며 책장을 넘기게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했고 기대했던 내용은 그저 어린시절부터 더듬더듬거려 그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과 그를 아껴주었고 그를 이끌어주었던 정조임금과의 일화라던지 세세한 그의 삶의 흔적들을 보고싶다는 열망을 가슴에 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의 회혼일을 맞이하여 세상과 이별을 하려하는 그의 마지막모습과 그 순간에 그가 회상하게되는 유배지에서의 삶이 펼쳐졌습니다.

 

물론 1권을 넘어 2권째로 넘어가며 멸문지화를 막아야하는 인간 정약용과 유배지에서도 학문의 뜻과 후학 및 선비로서 가져야하는 의무와 그것에 대한 실천, 그리고 천주학안에서의 정약용.
이렇게 세가지 면을 엿볼수가있었습니다.

 

소흑산도로 유배를 떠난 형님 정약전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에 저도 덩달아 슬픔을 느꼈고 주막집 쓰개머리 처자의 당돌함과 저돌적인 애정공세에는 제 마음도 두근거렸습니다.
혜장스님의 눈을 밝혀주려는 학자 정약용과 초의스님의 깊은 학문을 진심으로 경외해주는 정약용은 역시 어떤자리, 어떤 장소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않고 학문을 가까이하며 상대를 헤아려주는 넉넉한 품의 진정한 선비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천주학과 뗄래야 뗄수없는 인물인 동시에 그의 생에서의 후반기를 주로 다루었던지라 종교적인 색채도 어느정도 첨가되었지만 사실 너무 편향적인 시선으로만 따라간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가려했고 선비의 본분을 잊지않고 백성을 헤아리려했으며 노론의 집요한 공격속에서도 멸문지화를 막고자 몸을 땅속깊이 낮추었던 인간 정약용을 깊이 느껴볼수있었습니다.

b********c 2008.07.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산 선생이 현 시국에 던지는 듯한 촌철살인의 한마디 !
"다산 선생이 현 시국에 던지는 듯한 촌철살인의 한마디 ! " 내용보기
물(백성)은 배(임금)을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 [다산비결]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내게 '참학자의 표본'으로 여겨져 왔었다. 죄인으로 내려간 유배생활동안 수 백 권의 책을 펴낸 것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던 것,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임금을 섬기며, 백성을 어려워 할 줄 아는 양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를 따르고자 수 많은 책을 펴 낼 수 있게
"다산 선생이 현 시국에 던지는 듯한 촌철살인의 한마디 ! " 내용보기
물(백성)은 배(임금)을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

[다산비결]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내게 '참학자의 표본'으로 여겨져 왔었다. 죄인으로 내려간 유배생활동안 수 백 권의 책을 펴낸 것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던 것,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임금을 섬기며, 백성을 어려워 할 줄 아는 양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를 따르고자 수 많은 책을 펴 낼 수 있게 한 비밀이 있다고 해 지난 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구입하여 읽었지만, 다산선생에 대한 얇은 지식으로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중도에 그만 멈추고 말았다. 읽자니 어렵고, 그냥 두자니 자꾸만 눈에 밟히는 '계륵(닭갈비)'과 같은 책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역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한승원 선생께서 '다산 선생'에 대한 책을 펴내셨다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일찌기 정약전 선생을 다룬 책 [흑산도 가는 길]과 다산 선생의 제자 초의스님을 다룬 책 [초의] 그리고 다산 선생의 후학인 추사 김정희를 다룬 [추사]를 펴낸 적은 있었고 그 책들에서 다산선생을 이야기 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 다산 선생을 주인공으로 책을 냈다는 데 그분의 사명은 다한 듯 마지막 완결을 짓는 것은 아닐까 싶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자인 한승원 선생 스스로가 "드디어 힘겨운 큰 산 '다산'을 넘었다" 고 말할 정도이고 보면 그에게 이번 소설은 큰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인가 보다. 책의 소개글에서 5년간의 연구와 집필, 200여 권의 문헌과 고증자료를 토대로 완성했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 소설은 정적들의 공격으로 경상도의 장기와 전라도의 강진에서 귀향살이를 하게 되는 18년 간의 삶과 유배 이후 노년의 삶을 주로 조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시간을 넘나들며 정약용 선생의 일생이 조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약용선생이 천주교 신사였는가 아닌가 하는 논란에 대해 이 책은 해답을 던져 줄 수 있다고 봐야겠다. 소설인 만큼 저자 스스로도 그 답을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자 스스로가 그의 형 정약종과의 대비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상과 철학은 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 을 가새질러 포개고, 그 한가운데 사북으로 박혀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그것들은 종교임과 동시에 학문으로 삼은 것이다.

 

  가문은 폐족되고, 자신과 형님은 서로 떨어져 유배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한 인간의 절대고독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책쓰기에 몰두했던 다산선생의 학자적 정신에 감동을 받는다. 유배생활동안 만나는 주막집 주모와 연두색 머리처네, [주역]을 대상으로 한 혜장 스님과의 한 판 승부, 그리고 영원한 제자이자 벗이었던 초의 스님까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소설의 흥미를 돋운다. 눈에 보이는 듯, 한 편의 장편 드라마를 보는 듯 읽기에 어려움이 없으며, 페이지를 더할수록 다산 선생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듯 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저자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참고문헌을 수배중에 증조부모가 쓰시던 농 밑바닥에서 발견한 흘림체의 한글로 쓴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다산비결]인 듯 하다 했다. 방례초본의 핵심을 간략하게 적은 책이라고 하나, 한글로 된 점을 생각하면 이는 양반이 아닌 백성을 위해 써진 책이라고 보여졌다. 내용 또한 짐짓 놀랄 만한 것들과 새겨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물은 백성이고, 임금은 배이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정치하고 바꿀 수 있다." 라고 하여 유배생활을 하는 양반으로써는 감히 언급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겼다. 이것은 그가 유배생활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깨우치기 위해 언문(한글)로 쓴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소설의 내용중에도 그런 내용이 있음을 보면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또 하나 주목된 점은 "흥인지문을 서울의 동쪽에 세우고, 숭례문을 서울의 남쪽에 세운 것은 임금이 어짊과 예로서 정치를 펴겠다는 것이다. 착취와 탐학을 일삼는 임금과 관료들은 백성들을 벌벌 떨게 하는 법으로 다스리지만, 자애로운 임금은 백성들을 어짊과 예로써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문구였다. '예禮를 높이 받들어라'는 뜻으로 당시 명필이었던 세종의 형 '양녕대군'이 일부러 현판을 세로로 썼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올해 초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그 현판은 불타서 아래로 내려져 있고, 그 후로 일어나는 국내의 사건들로 인해 온 국민이 떠들썩거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임금이 백성들을 대할 때 '어짊과 예'로 대해야 하는 것을 알아야 물이라 할 수 있는 백성이 배라고 하는 임금이 잘 떠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인데, 배가 풍랑을 만나 심하게 요동치는 요즘의 세태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예감하게 한다.

 

  또한 [다산비결]에는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다. 일을 하고 먹는 밥이 성스럽다. 일하지 않고 먹는 밥은 추하다. 일이나 밥을 착취하는 벼슬아치는 도둑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고, 임금에게는 백성이 하늘이다.

여기에서 현재와 비교해서 생각하건데 온 국민이 먹거리에 관심을 두는 것은 그것을 하늘로 여기기 때문이고, 나라를 평온하게 해야 할 위정자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하여 이토록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 것은 그들이 하늘인 백성을 제대로 받들지 못한 것이므로 그들이 근무태만을 하는 것이고, 이는 곧 일하지 않고 밥을 먹으려 하니 그런 벼슬아치는 도둑이 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백성이 먹거리를 걱정함이 당연하듯, 정치하는 이들은 국민을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 국민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남아있는 아쉬움은 다산선생과 같은 훌륭한 학자이자 선각자가 지금 이땅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며, 가족을 아끼고, 백성을 생각하는 그런 학자이자 양반이 오늘날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아쉬움이 더욱 그를 뒤쫓게 만든다. 미처 다 읽지 못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새로고쳐 읽을 용기가 생겼고, 내친 김에  얼마전 구입한 책 [다산어록 청상]도 함께 읽으려 한다. 얼마전 정조대왕 '이산'을 극화화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정조의 영민함과 부모에 대한 효성, 그리고 백성에 대한 자애로움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지금 시대의 부름은 '다산 선생'를 찾고 있다. 이젠 그를 부를 차례다. 이 책이 그를 찾는데 등불 노릇을 할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t********n 2008.07.04. 신고 공감 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한승원 [ 다산 ]
"한승원 [ 다산 ]" 내용보기
다산은 그동안 내가 짧게 알고 있던 정약용에 대한 지식을  넓히게 된 책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사도세자가 뒤주속에 죽은해에 아버지 정재원과 어머니 해남 윤씨의 사이에서 4남 1녀 가운데 4남으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해맑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책의 시작은 다산 정약용 선생과 부인 홍씨의 60주년 회혼일에  삶과
"한승원 [ 다산 ]" 내용보기


다산은 그동안 내가 짧게 알고 있던 정약용에 대한 지식을  넓히게 된 책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사도세자가 뒤주속에 죽은해에 아버지 정재원과 어머니 해남 윤씨의 사이에서 4남 1녀 가운데 4남으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해맑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책의 시작은 다산 정약용 선생과 부인 홍씨의 60주년 회혼일에  삶과 죽음의 문턱 저편에서 떠오르는 과거 다산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 과거 속 모습에서 다산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속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유배지의 모습이 아닌 정조대왕과의

다산의 모습이었다. 천재 군주와 정말 훌륭했던 학자 다산.. 만약 정조대왕이 일찍 승하하지 않았다면 정약용 외 훌륭한 학자들이 유배를 가거나 죽음으로 물들지 않았다면 노론들이 없었다면 역사속의 조선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더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졌다.

 

다산에서는 정약용외에 정약용과 얽힌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과 정약종. 한국 최초 천주교 연구가였던 이벽. 초의의순. 혜장. 그리고 서용보와 노론들.. 등등 다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빠져서는 안될 인물들이다.

 

다산을 보면 정조가 정말 정약용을 아끼고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정약용 또한 정조를 존경하며 왕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보필했단 것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정조대왕이 일찍 승하하고 노론들에 의해서 많은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며 힘들게 살았지만 나태해지지 않고 그 상황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들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고  국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목민심서 등 여러가지 책을 집필하면서 끝까지 학문에 몰입한 다산 정약용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훌륭하신 사람이 지금 이 시대엔 없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다산 정약용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읽길 강력 추천한다!!!

 

"무덤 절대로 크게 만들지 마라. 사람들의 멋없는 허세가 아비 무덤을 크게 만든다. 허세 좋아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눈치 보지 말고 값비싼 구슬을 구해다가 죽은 아비의 입에 넣으려 하지 말고 널은 가장 얇은 것을 써라. 죽은 아비 어미의, 금방 썩어 없어질 몸뚱이에 호사를 시키려 하는 것은, 그 아비와 어미가 살았을 적에 불효했던 자들의 못된 짓이고, 자기가 복받으려는 불량한 탐욕이다. 비석도 세우지 마라.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어한 뜻은 이미 모두 책에 적어놓았다. 이 아비와 자식인 너희들은 선비이다. 선비의 삶이란 것은 모름지기, 성인의 뜻에 따라 인민을 구제하는 데에 푯대가 맞추어 있어야 한다"

 

- 다산 1권 p 28 "정약용이 아들에게" -

 

 

다산 정약용 선생은 산에 비유하면 수많은 준봉들을 푸른 하늘 속에 깊이 묻고 있는 보랏빛의 영검하고 웅대한 산이다. - 저자 한승원-

YES마니아 : 플래티넘 j*****5 2008.07.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