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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본다면 무슨 즐거운 일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인 듯 보인다. 그렇지만 실상은 전혀 즐겁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실직한 가장, 실패와 파산, 위장 이혼, 아내의 어딘지 모를 불쾌한 아르바이트와 노름, 딸의 원조교제, 그리고 가장의 자살로 이어지는 모양은 흡사 IMF나 그때보다 더하다고 평가받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인 듯 보인다. 상처투성이에, 실패의 연속 그리고 죽음! 어쩌면 이 책은 겉으로 읽혀지는 스토리만 본다면 이것이 전부 일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들은 ‘죽음’과 만나면서 조금 달라진다. 그는 죽음에 대해 스스로 자료를 모으고 준비를 한다. 그렇게 지내던 그의 환상은 어느 날 염라대왕과의 대면을 보여주고 자신의 과거를 TV화면에 드라마처럼 되돌아 보게 되는데 그의 일상은 변태적인 매매춘을 제외하면 모두 일반적인 삶이다. 매일하느 출근, 결재의 연속이다. 그의 그런 삶에서 매매춘은 조금은 해방구 역할을 하는 듯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의 삶을 보면서 비웃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우리네 인생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 것을 ...... 누구에게나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죽음과 마주하여 메멘토 모리를 외친다. 그런 외침과 그의 담담한 죽음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이것은 그와 만나고 죽음을 생각하는 내내 가져야 할 질문일 것이다. 이 책은 펄프픽션시리즈 중 1권으로 작가의 변함없는 상상력과 번뜩이는 재치 그리고 세상을 보라보는 조금은 다른 시선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의 참 뜻을 이 순간에 다시 새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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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픈 소설을 읽었다. 시대의 아픔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보금자링니 가정이 이렇게 쉽게 해체되어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이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고통을 감수해 내야 하는 이 시대의 비극이 고스란히 책 속에 있다. 가장의 실직, 퇴직금을 주식에 투자해서 모두 날려버리고 빚으로 인하여 아내에게 아파트를 주고 위장결혼을 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현실로 이어져 실제 이혼을 하게 된다. 여름 한낮은 더위를 그대로 흡수하여 불볕더위를 실감케 하는 옥탑방의 한 구석에 한 남자가 누워 있다. 일주일 이상을 단식을 하고(단식은 어떤 위대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는 이것을"엔돌핀 프로젝트"라고 칭한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목 졸려서 죽을 때의 얼굴엔 웃음이 있다고 한다. 그는 숨참기를 연습한다. 2분이라는 시간이 흐르도록 숨을 참으면서 어떤 희열을 느낀다. 무언가 알 수벗는 힘에 이끌려서 미래도 보고 과거도 본다. 몸은 가벼워지고 자신의 앉아있는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고 자유로이 떠 다닌다. 과연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연습인 것일까? 사람이 이생에서의 끈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놓아 주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더할 나위없이 편안해 질 것이다. 그 순하고 순한 아내가 노름판에 가고 그것을 인해 아파트마저 날려 보리고 아내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억눌린 기억의 파편이 아내를 노름판이라는 탈출구를 찾게 만든 것이었을까? 그리고 딸 아이의 원조교제,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자신의 지나온 생을 쭉 돌아보게 되는데, 지나 온 생을 돌아보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나 또한 지나온 삶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지만 이제 살아갈 날에 부끄럽지 않으면될 것이다. 이남자처럼 엔돌핀 프로젝트를 통해서 향기로운 향기가 몸에서 풍겨나게 되고 결국은 그로 인해서 행복한 죽음으로 접어 드는 것 보다는 엔돌핀이 넘쳐날 것처럼 행복함을 선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갈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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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어깨 위에 앉은 나비가 인상적이다. 현실의 그와 다르게 금방 날아갈 듯한 나비. 나비를 의미하는 프시케는 영혼이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영혼. 발달된 과학으로 밝혀진 인간의 삶과 죽음에도 인간의 영혼이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마치 아름다운 그녀 프시케처럼. 영혼이란 있는 것일까. 죽음은 육체의 끝일뿐, 우리의 영혼은 다른 미지의 곳을 향한 여행을 계속 하는 걸까.
얼마 전 촐라체로 호평을 받은 박범신 작가의 신작 소설이 나왔다. <엔돌핀 프로젝트>(중앙북스.2008)는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짤막한 분량의 중편이지만, 내용이 담은 깊이만큼은 여느 장편소설에 비겨도 아깝지 않다. 다름아닌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담고 있기에.
회사에서 명퇴하고 주식으로 돈을 날리고, 하나뿐인 집마저 빼앗길까 이혼하고 옥탑방 작은 방에서 살아가는 "그". 그에게 유일한 삶의 위안이란 한 주에 한번씩 이어지는 중3 딸의 방문뿐이다. 그러나 이제 오지 않을 거라는 딸의 한마디와 오는 이 없는 한 주의 주말 뒤 모든 게 귀찮아진 그는 먹기를 중단한다. 그렇게 12일,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그. 그는 자신의 몸에서 분리되어 하늘로 떠오른다.
간접적인 죽음을 느낀 그는 그 향기를 잊지 못해 다시 한번의 단식을 감행한다. 그리고 4일, 그는 기억 속 묻혀진 동생의 죽음을 따라간다. 아직 인세에 회한이 남아있다면 올 수 없다고 그를 돌려보내는 동생을 기억하며 그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고향에 발을 디딘다. 그러나 그의 무엇도 남아있지 않은 고향을 떠나며 하나하나 기억의 잔재들을 끄집어낸다.
무엇이 기억을 봉인하고, 그를 인세에 묶어두었는가. 그 깊고 고통스런 여정을 풀어내는 작가의 입담은 너무나 잔잔해 그 일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 보인다. 어쩌면 책을 읽는 사이 모르게 와서 앉은 파란 나비가 고통과 아픔만 거둬갔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세상에 남긴 미련들을 수거하는 그의 모습은 스스로 죽음을 마련해가는 다소 비현실적인 아우라를 내보인다.
죽음.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 지점에 그는 자기 스스로 한 발 한 발 걸어간다. 그리고 도달한다. 너무나 평온하게. 그의 죽음을 보고 있자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화로워 보여 그 것이 우리가 알던 그 죽음인가 싶기도 하다. 언제나 말로만 죽음을 삶으로 데려올 때 삶이 완벽해진다고 하는 우리들. 그러나 우리에게 죽음이란 자연스럽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죽음을 늦추고 막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할 뿐. 그런 우리에게 박범신은 통렬한 한마디를 날린다. "이 모순덩어리들아, 지루해죽겠는 삶 대신 한번쯤은 진정으로 죽음을 느껴봐"라고. 그의 신작 <엔돌핀 프로젝트>는 잔잔하게 때론 속엣것을 다 토해내듯 혐오스럽게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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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삶의 종착역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삶을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하나 세상과의 결별이고,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의연해지기 쉽지 않다. 하지만 여기 자살을 하려하는 중년의 남자는 적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듯 하다. 오히려 그는 한번뿐인 죽음을 연습하고 즐김으로서 그 행위를 자신의 삶의 마지막 축제로 만들려 하는 것으로꺼지 보이기 때문이다.
일평생 한직장에서만 일을 했던 그에게 회사가 준 선물은 권고사직이었고, 그는 퇴직금으로 조금씩 주식투자를 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38평 아파트라도 지키기 위해 그는 아내와의 위장이혼을 선택하고 그는 어느 옥탑방에 혼자 앉아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곳에서 그는 단식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호흡을 멈추기 시작하면서 정체모를 향기와 함께 기분좋은 어떠한상태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찾아오고 있는 딸 애린의 모습이 보이지는 그는 그것을 환영이라 생각한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듯한 환영속에서 둥둥떠다니던 그는 진짜 자신을 찾아온 딸에 의해 퍼뜩 눈을 뜬다. "너무나 단세포적인 삶이었어!"
"그 무엇이든, 회한이 남아있다면 아직 여기 올 준비가 안 된 거예요."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중견작가 박범신의 <엔돌핀 프로젝트>는 얼핏보면 실직에 이은 이혼 그리고 혼자만의 칩거생활을 하는 중년가장의 외로운 죽음을 그리는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죽음보다는 주인공이 스스로 죽음에 다가서는 과정에 주목해 봐야 할듯하다.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그 과정을 연습하기까지 한다. 결국 무엇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느냐 보다는 그가 맞이하는 향기로운 죽음의 의미에 우리들의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그가 가부좌를 틀며 근사한 작명이라 생각한 <엔돌핀 프로젝트>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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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박범신 작가님을 좋아한다. "모든 작품을 다 읽었어요!" 당당히 외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읽지는 못했어도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아, 나는 이 작가 문체나 이야기의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드네.'싶은거.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 아니었다 싶은 게 아니고, 제목을 보고 기대했던 것과 정말이지 전-혀 분위기가 달라서 좀 당황했다.
'엔돌핀'이 뭔가, 딱히 어려운 과학용어를 들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기분이 상당히 좋을 때에나 엔돌핀이라는 말을 쓴다고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내 기대를 글속의 '그'는 완전히 저버렸다. 비록 그는 그 엔돌핀 프로젝트라고 일컫는 것에 대하여 상당히 만족하고 꽤 알찬(?) 시간을 보낸 것 같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은 엔돌핀은 커녕 우울증에 걸려버릴 것만 같다.
'그'는 죽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죽음의 문턱에서 느꼈던 희열과 안도감, 그 어떤 깨우침을 다시 경험하고자 자꾸 생의 문턱에 다다르려하고 그는 그렇게 안락한 죽음의 직전상태를 '엔돌핀 프로젝트'라고 명한다. 물론 이는 내가 보는 관점이고, 그는 딱히 죽을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가 뭐라 부르든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엔돌핀을 찾을 테니까.
그렇게 그가 죽음을 가까이한 극한의 상황에서 보이는 여러가지의 과거들은 그에게 선심쓰듯이 그의 과오와 후회들을 한아름씩 선사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욱 더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후회'를 내가 설마..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줄기차게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다. 내가 보기에 그가 하는 모든 행동과 망상과 여타의 다른 것들도 당연히 모두 '후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일생동안 크게 후회한 것들의 목록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
결국 책이 교훈은 준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인생을 살자고. 비록 그는 실패하고 영원한 꿈과 엔돌핀의 세계로 나아갔을지라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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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능력이 없는 가장으로써...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몽환의 세계에서...였을 뿐이었던 것이었던 것일까? ㅋ 아무튼, 좀체 작가의 메세지를 캐치하기가 어려웠다. 내용은 쉬웠는데, 아니 어려웠나? 주인공이 사는...몽환의 세계?...글쎄...주인공은 대체 왜 그런 엉뚱한 상상의 곳에 서있는 것일까? 책이 작고 가벼워 금방 읽어 내려갔던 책... 전체적으로 좀 우울하면서, 희망보다는 현재 우리 가정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