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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통속소설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그 속에서 ‘통속’이 아닌 ‘진실’을 봤다. 통속의 외피를 쓰고 켜켜히 감춰둔 진실의 실타래를 끊임없이 풀어내고 있는 이 「귀비의 여자」. 내가 「귀비의 여자」를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다. 귀비에게 남자는 제가 가진 상처와 슬픔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가면 쓴 위선자다. 강간범에 다름없거나(연옥의 삼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어울리지 않는 추행을 일삼거나(도덕선생, 국어선생), 대가를 지불하면 그만이라는 비뚤어진 의식의 인텔리(송민하)이며, 귀비의 남편 최동철 또한 왜곡된 성의식으로 인해 자기 번민에 허덕이다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해버리고 만다. 하나같이 자기 기만자이다. 하지만 이런 위선 앞에 귀비는 한없이 너그럽다. 자애롭다. 무구한 자연을 닮았다. 귀비는 남대문 노숙자를 품어주었고 심지어 자신을 짓밟고 거쳐간 사내들을 위로했다. 귀비 앞에서 모든 남자는 가여운 생명일 뿐이다. 가여운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그 한 가지 순일함으로, 사랑만으로 귀비는 기만을 넘고 가식을 넘는다. 날 것과 맞닥뜨리게 한다. 구도섭이 끝내 자신의 삶이 절름발이에 불과했음을 깨닫듯, 백억대 자산가라는 외피를 벗고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든 건 귀비가 가진 생명의 힘인 것이다. 구도섭이 깨달음의 댓가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돈'을 귀비에게 선물하지만 귀비는 잊는다. 귀비는 순간을 즐기고 몰입하는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다. 소멸을 겁내지 않고 물같이 세월같이 쉼없이 인연을 엮어 나가는 귀비. 귀비는 곯아터진 삶을 숨긴채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을 연민한다. 위선과 가식을 훌훌 벗어던지고 원초적 자연성으로 위선이라는 가시밭길을 거뜬히 넘는다. 귀비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여자다. 하지만 귀비의 원초성에만 빠져들고 말 일만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날 선 외침은 일견 잦아들은 듯 보이지만 이경자님이 추구하는 주제의식은 여전히 한켠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바로 ‘피의 역사’라는 상징으로 말이다. 이 점 허투루 보아넘기지 말자.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아들에 아들로 이어지는 피의 미래를 보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귀비의 시어머니를 통해 여전히 환기시키고 있다. 무섭도록 끈질기게, 이 점 중요하다. 작가의 집요한 문제의식을 확인하는 일이야 말로 왜 내가 이경자님의 작품을 계속 읽어야만 하느냐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점 달라졌다. 위선과 가식에 맞서는 태도다. 한없이 품어안고 끌어안고 사랑하고 몰입하고...넉넉한 품으로 모든 걸 그러안고 가보자는 걸일까? 「귀비의 남자」, 두께는 얄팍하지만 곱씹을수록 얄팍한 인생살이를 넘어서는 넉넉한 깊이가 새록새록 엿보이는 수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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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지 않는 사랑
처음엔 이경자 작가라길래 누군가 했다. 소개글을 읽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절반의 실패'를 쓴 이라고 한다. 그녀가 일본영화 '감각의 제국'을 우리나라에 정식 개봉하기전에 구해다 보고 영원과도 같은 남녀간의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에 대하여 그 합일의 꿈같은 느낌을 글로 표현해보고 싶었다는게 창작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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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의 '귀비의 남자' 속 주인공 '귀비'는 가부장적 위계질서 속에서 고통 받지 않은 한없이 자유롭고 천진난만한 여자의 모습이다. 작가가 던지는 성(性)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작가의 소설에 등장했던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이 아닌, 자유롭고 천진난만한 중년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귀비는 성 자체를 즐긴다. 오직 남성에 대한 욕구로 부담없이 몸을 섞고 쉽게 잊는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몸을 인식하는 것이다. 일종의 존재의 방식이다. 책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문학평론가인 정호웅교수의 '이경자론'에서 지적했듯이 '귀비의 남자' 는 지금까지 보여준 이경자소설과는 상당히 다른 작품이다. 작가가 밝혔듯이 이 소설은 분명 통속소설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통속소설을 비천하게 그리는 건 소설가이며 비천한 통속적 삶을 살게 하는 건 제도이지 처음부터 비천한 통속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했다....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귀비'이다. 가부장적인 남자의 전형성을 가진 당나라의 황제 '현종'을 사로잡은 여자 양귀비에서 성(姓)을 떼어버리고 이름만 훔쳤다....양귀비는 제도화되지 않은 여자라는 것이다.현종은 양귀비가 가진 그 근원적 자연성에서 위로받고 안식을 얻었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저자의 서문에서)
귀비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딸과 함께 살아간다. 의사였던 남편은 의료 사고 이후 정신병을 앓게 되면서 요양원에 들어간다. 귀비는 주말이면 남편이 있는 요양원을 찾지만 허깨비에 불과한 남편을 만나고 돌아갈때면 늘 엇비슷한 혼란에 휩싸인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에 빠져 영화가 끝나고도 일어서지 못할때와 같은 기분이 든다. 시간이 흘러도 남편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귀비는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지게 된다.
오랫만에 문고판책을 손에 들어본다. 160페이지 남짓의 두께에 작은 사이즈가 휴대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출퇴근시 전철안에서 부담없이 볼 수 있는 휴대하기 편한 판형이다. 내용 또한 그리 심각한 내용이 아니어서 읽기에 또 가격면에서도 부담이 없다. '펄프픽션'이라는 시리즈로 이 책은 두 번째 책이다. 최근에 저렴한 가격에 다시 문고판 출판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과거 문고판을 즐겨 읽던 때를 생각나게 한다. 학창시절 방학만 되면 500원 미만의 저렴한 가격으로 당시 삼중당문고, 서문문고, 을유문고 등과 같은 책들을 통해 이광수,김동인, 김유정같은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들과 톨스토이, 토스트예프스키와 같은 대문호의 명작들을 원없이 읽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점차 컬러화하고 고급화한 단행본에 밀려 문고본은 서서히 우리곁에서 멀어져 갔고, 결국 90년대 와서는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가 됐다.책가격도 보통 1만원을 넘어가는 추세로 요즈음 같은 불경기에는 구입해 보기도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시기에 저렴한 가격의 문고판 출간은 환영할 만한 일로 우리나라의 출판사도 꼭 양장본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요구에 발 맞추어 페이퍼북 형태의 책들도 발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펄프픽션시리즈는 다양한 한국 소설들을 소개하는 쉽고 재미있는 소설들을 휴대하기 편리한 작은 판형에 담아,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만들겠다는 출판사의 말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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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비. 아무 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는 여인이자 이 책 '귀비의 남자(중앙북스, 2008)'의 주인공이다. 다른 이들에게 귀비는 의사 남편과 두 남매, 시어머니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행복한 여인으로 비친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그녀의 남편은 의료 사고 때문에 정신병을 얻어 요양원에 간 지 오래다. 시어머니는 애초에 간호사 신분으로 아들을 빼앗아가 미덥지 않았던, 그러나 이제는 집안의 가장이 된 며느리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 집에서는 근면하고 성실한 며느리이자 엄마인 귀비는 밖에서 늘 새로운 남자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귀비는 그러한 행위를 '불륜'이나 '천벌 받을 짓', 혹은 '몸 파는 행위' 등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친구의 삼촌에게 처녀성을 빼앗겼으나, 그녀에게 그 기억은 그저 무미건조한 추억일 뿐이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지만 귀비는 그 누구도 구속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처음 만난 행인, 홀로 작은 포구를 거닐다 마주친 어부, 도로에서 만난 대학생 등. 모두들 귀비와의 연을 맺었어도 끝까지 관계를 지속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귀비의 사고방식과 행동들은 독자들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녀는 누군가에게는 멸시의 대상,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읽는 이들은 거침없는 귀비를 보며 복잡한 심정을 느낄 것이다.
저자 이경자는 주인공의 이름을 '양귀비'에서 따왔다고 한다. 양귀비. 가부장적 남자의 전형성을 가진 당 현종을 사로잡은 여인이다. 책 속의 귀비는 양귀비의 현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제도화되지 않은, 근원적 자연성을 지닌 여인'이라고 칭한 양귀비는 곧 귀비다.
딸 부잣집의 맏딸로,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세월을 살아온 저자에게 가부장적인 위계질서는 피할 수 없는 굴레였을지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귀비의 남자'를 통해 그간 삼켜왔던 성(性)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게 된 것이리라.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내 오랜 질병이 치유되는 기미를 느꼈다."는 말로 이러한 속내를 내비친다.
이경자가 던지는 성담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독자들의 자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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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남자가... 그냥 정말 좋아."
유행의 파도를 넘어서 이제는 점점 뾰족해지고 있는 칙릿 소설의 성담론에 나올법한 대사. 이 소설의 주인공 귀비의 말이다.
하지만 귀비는 잘 나가는 신상 구두나 청담동의 커피숍 정도에 말초신경을 곧두세우는 칙릿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의사였던 남편이 정신병원에 있는 여자. 회복기미가 없는 아들 곁에 여자를 매어두려 전전긍긍 눈치를 보는 시어머니를 둔 여자. 아들과 딸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여자.
여자에게 주어지는 짐을 어깨에 잔뜩 올려둔 귀비의 읊조림.
"난 남자가... 좋아"
소설 속에 흘러넘치는 귀비의 애달픈 웃음처럼 애틋한 한 여자의 몸부림이다.
지긋지긋한 일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여자 귀비의 유일한, 어쩔수 없는 선택적 일탈에 관한 이야기. 귀비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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