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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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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은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상 매우 기쁜 날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으로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의 시성식이 거행되었던 것이다. 보통 시성식은 로마에서만 거행되는데 예외적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시성식을 거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해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그렇다면 1784년이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해라는 것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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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은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상 매우 기쁜 날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으로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의 시성식이 거행되었던 것이다. 보통 시성식은 로마에서만 거행되는데 예외적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시성식을 거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해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그렇다면 1784년이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해라는 것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버지를 따라 북경을 방문했던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돌아오면서 천주교서적을 많이 구해와서 이벽 등에게 전해주었고 그를 한동안 연구한 그들이 참 진리임을 깨닫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교하여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고 교회공동체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선교사없이 책을 통해서 신앙이 전해졌고 자생적으로 교회가 성립된 유일한 나라가 조선이었고,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에 시작되었다고 전해져왔었다.

그런데 근래 20여년 전부터 다른 주장들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크게 두가지로, 하나는 변기영 몬시뇰의 1779년 천진암 강학 기원설이고, 또 하나는 프랑스의 메디나에 의한 1592년 임진왜란 기원설이 그것들이다. 천진암 기원설은 권철신이 제자들에게 경전을 강의했던 강학에 이벽이 찾아가서 합류했고 그곳에서 당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던 서학도 연구하였다는 기록에 의거한다. 현재 천진암에는 한국천주교 발상지라는 이름으로 100년 성당이 건축되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 기원설은 그 당시 일본으로 끌려갔던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그들이 조선에 다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천주교의 시작은 임진왜란 때부터이며 그 훨씬 뒤인 1779년이나 1784년에 자생적으로 발생하였다는 것을 비난한 것이다.

1779년 천진암 강학 기원설은 너무 국수주의적인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벽이 참여했던 그 강학에서 실제로 서학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당시 이미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들을 세심하게 찾아가며 반박하고 있다. 강학이 초기 유교 정신을 연구하던 성호 이익의 제자 권철신이 이끈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뜻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서학서적, 아마도 [천주실의]와 [칠극]이었을 것이며 그를 통해 이벽은 갈증이 심해져 이승훈에게 서학서적을 부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승훈이 세례를 받는 상황을 설명한 여러 편지글들을 보더라도 이승훈이 처음에는 수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조선으로 돌아가기 전에 세례를 받을 때도 준비가 덜 된 상태여서 주저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강학에서 이미 교회가 시작된 것은 아니고 이승훈이 전해준 서적으로 이벽등이 오랜 기간동안 공부하고나서 확신을 가지고 선교하기 시작하였으며 많은 이들이 이에 동참한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결국 1779년이 아니라 이승훈의 세례 이후인 1784년이 조선 천주교회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는 권철신, 권일신 형제가 살고 있던 양근지방이라는 것이다.

반면 메디나의 1592년 임진왜란설은 프랑스 예수회의 공을 내세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당시에 죽어가는 20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었다거나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고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있으며 일본에서 신앙을 지속하다가 순교한 사람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땅에서의 일이고 그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계속 신앙생활을 했다는 기록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에서도 그런 사실을 알아보기위해 매우 노력했으나 전해져오는 이야기도 없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한국에 돌아온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지않았거나 개인적으로만 하다가 다른 가족에게조차 전해지지않은 채로 생을 마감한 게 아닌가 추측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메디나의 글은 억지 주장이 많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문헌 연구를 정확히 하지않는 등 문제점이 많아보였다. 


저자인 윤민구 신부님은 교회사가 전공은 아니지만  로마에 있을 때 103위 시성을 위한 청원자로 일하면서 교황님의 초기 교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위해 자료를 전달하면서 이 연구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위의 두 가지 다른 주장들을 접하고, 그에 따른 사료들을 연구하면서 정확한 내용을 알려야한다는 생각으로 본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간단한 주제이면서도 내용은 꽤 방대하여 매우 자세하게 서술되어있다. 이런 책을 내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부분부분 매우 자세하게 사료를 분석하고 의견을 정리해서 더 이상 연구할 게 있나싶을 정도로 명확하여 그동안 짤막한 지식으로 혼란스럽던 생각들이 모두 정리되어 후련해졌다. 

문헌연구라는 걸 어떻게 하는지도 덤으로 구경(?)했고,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가 쓰여진 이면에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차이와 그렇게 된 연유도 대충 알게되었으니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들, 일례로 달레는 한국땅을 밟아보지도 않은 사람인데 어쩌고......하는 비난섞인 표현이 왜 나왔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정약용의 묘지명과 은밀히 전해졌다는 짧은 기록들, 조선왕조 실록,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글, 북경에 있던 여러 성직자들의 편지글들 등 기록에 관한 힘을 다시 한번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꽤 두꺼운 논문식의 책이었지만 매우 몰입해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모호한 표현이나 어색한 전개없이 아주 자세하고 명확한 기술로 읽는 맛이 뛰어났다.

YES마니아 : 로얄 k********i 2011.09.14. 신고 공감 3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