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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소설을 극으로 옮긴 구로자와 아키라의 명작. 광활한 로케이션만 보더라도 영화를 찍는 데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들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지도를 제작하는 서양인과 산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는 동양인의 만남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또 인간이 자연의 일부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돌아보게 다. 모든 사물을 의인화하여 부르며 '좋다', '나쁘다'가 판단하는 기준의 전부인 순박한 이 사냥꾼은 뛰어난 지혜와 삶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연륜을 발휘하여 젊은 군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데루수 우잘라는 현대 사회에서는 동양에서도 더이상 보기 힘들어진 유형의 천연 자연인이다. 영화는 그들의 우정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아주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위태로웠던 만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는 인종, 나이, 계급을 뛰어넘는 인생의 벗으로 교감하게 되었다. 데루수 우잘라가 점차 시력을 잃어가게 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몸이 재산이었던 데루수가 시력이 감퇴하여 더 이상 동물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이 호랑이를 다치게 해서 콩가(골디인이 믿는 신)가 자신을 벌주려 한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대장 아르세니에프(유리 솔로민)의 권유를 받아들여 도시로 나가 그의 집에서 기거하게 된다. 하지만 철저히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이 갑작스레 문명 안에 놓이게 되었을 때 일상에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강에 물이 널렸는데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하고, 천막이 아니라 꼭 상자(집) 안에서만 잠을 자야 하고, 장작이 필요해 공원의 나무를 베어도 안 되고, 사람들 때문에 총을 길들일 수도 없는 도시 생활이 그에게 어울렸을 리가 만무했으며 결국 데루수는 다시 산을 향해 떠난다. 그의 안전을 위해 대장이 선물한 총은 결국 그가 목숨을 잃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고 그가 묻힌 무덤은 개발에 밀려 결국 묘자리를 찾아볼 수도 없게 되어 버린다. 지금 묻기엔 이미 고리타분한 질문이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명에 젖어 자연을 잊거나 그 안에서 벗어나서는 인간이 결코 살 수 없다는 사실이라는 걸 구로자와 아키라는 말하고 있는 듯 하다. 60-70년대 일본영화를 보면 당시 일본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비해 얼만큼 앞서 있었던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남한이 '잘 살아보자'며 삽질하고 있을 때 일본은 러시아 땅으로 날아가 문명과 자연을 논하는 영화를 찍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데루수 우잘라가 항상 따지는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고민하는 자가 한발씩 앞서나가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자연 앞에 뚝 떨어뜨려진 인간의 작은 모습을 익스트림 롱 샷으로 종종 비추며 인간으로 하여금 겸손해 질 것을 촉구하는 그의 화법이 참으로 우직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같이 봅시다!
2009/03/06 - [신씨의 culture 리뷰] -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 (1996, 안소니 밍겔라)_전쟁 중 가능한 사랑의 유형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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