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이 책 대단하다. 에도 시대 문화사인데 조닌이 아니라 무라비토(村人, 농민) 위주다. 책은 일본 에도시대 농촌민들의 의식주, 교육, 문화, 여가생활, 여행 등등을 놓고 근세 일본의 대중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밝혀 준다. 심지어 문방구까지 다룬다.
그 과정 추적이 흥미롭다. 마치 프랑스 아날학파의 미시사 서적을 보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서당 격인 당시 일본 촌락의 사설 학교를 다루는 부분을 보자. 사학자는 지역 별로 몇 개나 되는 학교가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끙끙대다가 마을 사원의 경내나 길거리에 있는 비석을 조사한다. 제자들이 스승의 은덕을 찬양하는 송덕비로 세워준 비석을 찾아내어 지도 위에 표시한다. 그래서 에도 시대 가즈사, 시모우사, 아와 삼국에 3300명에 이르는 선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어이쿠, 재미있어라.
책은 정치, 경제 위주로 서술하지 않는다. 대중들의 일상과 일생을 다룬다. 덕분에 그놈이 그놈같은 이름을 가진 그놈이 전쟁을 일으키고 권력을 잡고,,,, 하는 정치사 위주의 역사서와 다르게 우리의 일상 생활, 우리의 문화사와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같은 대상을 다루는 다른 역사서에서 읽지 못했던 부분이 곳곳에 나온다. 예를 들자면, 가옥 설명하는 1장에서 도코노마 설명 부분.
그러나 오랜 기간 낮에는 판자문을 열어서 실내와 자연이 일체가 되는 가운데 생활해온 사람들에게 장자로 차단된 고독한 공간에서의 생활은 견딜 수 없었다. 이에 자연을 불러내는 동시에 실내 공간을 풍요롭게 채색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이렇게 해서 도코노마가 마련된 것이다. - 129 ~ 130쪽에서 인용
다른 일본문화사 책에도 에도 시대의 가옥에 대해 장지, 다타미, 도코노마 등등을 설명하기는 하지만 이책에서만큼 전후좌우 인과관계, 거기에 얽힌 일본 민중의 심성까지는 설명하지 않았기에 읽으면서 군침이 돌았다. 게다가 저자가 정말 꼼꼼하게 관련 내용을 다 서술했다. 덕분에 다른 책 읽다가 안 풀려서 끙끙대던 부분에 관한 정보를 뜻밖에 많이 찾아냈다. 일본의 대중 된장 산업의 시초와 제사 공장 여공들의 연관성이라니! 나는 저절로 흐르는 침을 닦으며 읽어야만 했다.
흑백이지만 지도, 사진, 도표 등 자료가 다양하게 필요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인지 500페이지 두꺼운 책이 지겹지 않게 술술 읽힌다. 주석도 꼼꼼하게 달려 있어서, 모르는 인명이나 사건이 나와도 바로바로 그 페이지에서 알아가면서 읽을 수 있다. 정말 성실하게 만든 책이다. 뒤편 책 날개에 인쇄된 동아시아 지역 출간 목록을 보니 어머나, 빵빵한 것! 소명출판, 이 이름을 기억해 두고 열심히 사서 읽어야겠다.
일본 문화사에 관심있는 분께 강추.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보다 구입해서 신나게 줄 쳐가며 읽을만한 책이다. 프롤로그 부분인, 에도 시대 개관만 읽어도 책값이 아깝지 않다.
(참, 이 책의 문방구 부분에 의하면 종이의 한 종류인 미농 지(美濃 紙)는 당시 미노 쿠니(美濃 國)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단다. 그동안 난 겨우 종이일뿐인데 아름다움이 얼마나 농후하면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하고 궁금해했더랬다. ㅋㅋ )
|
|
술술 읽을 수 있다. 어떤 부분은 흥미롭게 어떤 부분은 무심히 넘기면서. 주제와 관련된 자료가 많이 또 상세하게 실려 있어서 쓰임새에 따라 다양하게 쓰일 수 있겠는데 나 같은 단순한 독자라면 흥미가 생기는 부분에만 멈춰서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잘 모르겠다고 여겨지는 내용은 그냥 넘겨도 좋겠다.).
일본 소설을 즐겨 읽으면서 일본의 의식주가 어떤 배경으로 발전해 왔는지 궁금한 적이 많았는데 그런 내용을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현대의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될 자료로서 근세라는 시대에 일본인들이 어떻게 문화를 이루어 내고 향유했는지 꼼꼼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다만 내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읽는 순간을 넘기고 나면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 다음에 일본 소설을 읽을 때 다시 떠올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안타까움이 있기는 하지만.
귀중한 그림이 많이 실려 있는 것 같은데 그림의 크기가 작고 내용은 세밀하여 나로서는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게 좀 답답했다. 일본 그림에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처지라 막 보고 싶다는 그런 간절함은 아니고, 이게 뭔 내용일까 싶어 궁금하기는 한데 알아볼 수는 없어 답답하다는 그 정도. 그런 후에 넘기고 나면 또 금방 잊혀지는 그런 정도.
일본인 이름, 고유명사가 참 안 외워진다. 소설을 읽을 때도 자주 느꼈던 건데 사람 이름도 헷갈리고 지명도 헷갈리고 다른 고유명사도 헷갈리고.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글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으니까 읽는 동안에는 괜찮은데 다 읽고 뭘 좀 하려고(말하거나 쓰거나) 하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발음이 나를 곤혹스롭게 만든다.
하이쿠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잘 모르지만 하이쿠라는 글이 일본인의 정서랑 아주 잘 어울려서 문화를 말할 때는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주 어느 한 부분 인용되지 않는 곳이 없었고, 다양했고 신선했고 재미도 있었다. 따라서 지어 보고 싶을 만큼. 간결한 형식에 풍부하면서도 은근한 함축미를 살리는 글.
대중문화를 알리는 내용이기는 한데 일반 대중독자보다는 전문독자에게 더 도움이 될 책이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