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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선생의 고전으로 불리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이 이상하게 나는 잘 읽히지가 않는 거였다. 그런데 서양의 그림들을 접하면 할 수록 이상하게 우리의 그림에 대한 갈증이 들었고, 그와 관련된 책을 찾던 중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이 최순우 선생님의 책이었다.놀라운 것은 이 책의 내용들은 지금 씌어진 것이 아니었음에도 전혀 촌스럽거나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치 지금의 우리들이 그림을 바라보는 혹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슴에 담아 두고 새겨 둘 만한 버릴 것이 없는 알토란같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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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다는 것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보고 느끼면서 저절로 느껴지게 되는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의 고택을 방문하는 순간, 고즈넉함, 오롯한,여유로움, 평화, 편안함의 색깔이 어떤 느낌인가를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바람에 들려오는 풍경소리에,마루에 걸터앉아 책을 읽는 순간,바람에 쏟아 내는 햇살의 살랑이는 움직임을 느끼는 순간 그 단어 하나하나의 감정들이 전달 됨을 느낄 수 있었다.
미술이든,음악이든,예술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기본은 그것에 대한 학문적지식이 아니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큰 용기로 받아들였다.우리의 그림이 두려웠던 건 예술적이지 않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이기도 했고,자주 대면하지 못했던 탓도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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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퍽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이 철철 넘치는 작가의 화려한 글들을 읽다보면 자부심과 긍지가 불뚝불뚝 솟아 오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고미술과 건축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정보는 꼭 미술 전공자가 아닌 감상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탁월한 어휘선택으로 마치 눈앞에 미술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문장이 간결하고 아름다워 글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꼭 한 번 읽어보시라, 후회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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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의 아름다움의 본질은 우리 문화재의 진가는 어디에 있을까? 고려청자 연화문 매병, 고려와 조선을 잇는 청화백자, 임진왜란 후 일본인 극찬한 다완 등 오늘날 그 가치를 매기가가 어려울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 우리 문화유물에 깃들어 있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단지, 오랜 시간을 견뎌온 사람의 창작물이기에 주목받는 이유도 분명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그 창작물에 담긴 정신으로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명품을 만들어낸 우리 민족의 삶과 그들로부터 만들어진 창작물은 분리되어 생각해서는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일찍이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며 그 진가를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던 혜곡 최순우(1916~1981) 선생의 중심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보인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우리 문화재가 담고 있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최순우 선생이 아름다움으로 우리 것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다.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글을 모아 엮어 낸 책이다. 최순우 선생이 아름다움에 주목하며 그런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생각하여 밝히고 있다. 최순우 선생이 주목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은 특별한 무엇이나, 특정한 사물에 깃들어 있는 공통된 아름다움이다. ‘달 그림자 노니는 영창, 먼 산 바라보는 굴뚝, 서리 찬 밤의 화로, 가냘픈 연두빛 무순, 가을비에 촉촉이 젖은 낙엽의 스산함’ 등이 그것이다. 최순우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20여년이 지났고 이 책이 출간 된지도 10여년이 훌쩍 넘었다. 이는 시간이 지난 이야기에기에 자칫 고리타분하거나 시대성이 뒤떨어질 수도 있음을 염려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기우임을 밝히고자 한다. 본질적 내용에 있어서 오히려 이 시기에 우리가 심사숙고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다. 위에서 최순우가 주목했던 아름다움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속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아름다움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이기에 문화재 역시 필연적으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첫눈에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이나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봐야 하는 근시안적인 신경질이 없으며, 거칠고 성글어 보여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시원하고 대범하면서 담담하고 조촐하다" 최순우 선생의 우리 것에 대한 이야기다.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의 조형미를 벗어나거나 억지로 헤치는 것을 삼갔던 우리 민족의 성정이 그들이 만들어낸 창작물에 고스란히 담겼을 것이다. 이는 또한 그들의 창작물이 어떤 곳에 놓고 보고 즐기려는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렇게 일상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라 믿는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성정이 바로 아름다움의 근본이기에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아름다움의 전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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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의 글은 잘 알려진 대로 조촐하고 담담한 미덕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쓸어내려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 정도라면 누구에게나 권할 만하며 거듭해서 읽어도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어 이렇게 일부러 글을 남긴다. 편집부 이름으로 책 머리에 달아놓은 고약한 머리말 때문이다. 그 머리말을 쓴 사람에게는 유치한 영탄조가 내내 문장에 묻어나며 편안하고 담박하게 독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편집자의 글에 충실한 겸손함의 미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머리말을 쓴 사람은 스스로 자신이 문장깨나 쓰는 사람이거니... 하고 내세우는 잘난 척을 가지고 있거나 그 잘난척이 무의식 중에 내면화되어버린 딱한 문장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이 학고재의 주간되는 손철주 씨일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이 글을 읽는다면 머리말을 바꾸어 주길 바랄 뿐이다. 그것은 최순우가 이르고자 했던 수수하고 의젓한 아름다움을 해치며 정면으로 위배되는 머리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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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수년전 예능프로에 출현한 유홍준 교수로부터였고, 이 프로가 방송되기 훨씬 전에 구매했으면서도 그때껏 한 번 펼쳐보지 않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임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러고 나서도 <무량수전...>을 읽은 건 훨씬 뒤였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도 민망한 행보를 했던 나인데 달랑 <무량수전....> 한 권 읽은 것으로 무척이나 '최순우'라는 이름과 친숙해진 듯 느껴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주저없이 사들었다.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대부분 60~70년대에 신문 같은 인쇄 매체의 지면에 발표한 짧은 글들을 주제별로 모아놓았다. 최순우 선생님의 책으로는 두 번째 책인데 여전히 우리 것을 살피고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남다른 감식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이 책은 국보니 보물이니 하는 대단한 것들은 다 놔두고 우리가 아름답다고 평하지 않는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있어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최순우 선생님의 진심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최순우 선생님이 유독 '내 것의 아름다움'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진심으로 내 것을 아끼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며, 둘째,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딱 어울리는 '어휘력'을 지녔기 때문이지 싶다. 잘 알지 못하는 단어들이 속속 쏟아져나오는데 일일이 다 사전을 찾아보지는 못했다. 사전 찾아 읽다가는 읽는 맥이 다 끊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몇 단어들을 사전에서 찾아보면서 '딱' 어울리는 뜻을 가졌다며 절로 무릎이 쳐지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내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내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표현해낼 적절한 '말'을 미처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최순우 선생님의 글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진심'이 잘 느껴져서 좋다. 무엇이 어떻게 아름다운지를 지식적으로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그 낱낱의 아름다움을 꼭꼭 씹듯이 하나하나 써내려갈 때 그 글자마다에 새겨진 듯한 진심, 누군가는 "최선생은 옛날 것은 모두 좋다고 하시지."라며 조롱해도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밝히려는 의지, 그리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 알지 못했던 것을 알려주는 그 친절이 나는 좋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새롭고 모두 새로 알아가는 무지한 나일지라도 나무라지 않고 조곤조곤 설명해주시는 그 인내심이 좋다.
여전히 안목을 지닌 선생님들의 친절한 안내가 아니고서는 전통의 '창살무늬' 하나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지만, 이런 책을 통해 우리 것을 한 번 둘러보고 나면 저절로 뿌듯해지고 세상이 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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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곡 최순우 선생님의 글은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접하게 되었는데, 전체적으로 담백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사는 고장에 개성삼걸의 추모비가 있는데, 최순우 선생님도 우현 고유섭 선생님 문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그분의 추모비는 없어서 의아하기도 하다. 이 책은 2002년에 초판 발행되어 나느 2013년 11쇄를 읽었다. 몇몇글들은 다른 책에서 본 것도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분 리뷰에서도 지적했듯이 내용은 좋으나, 편집은 좀 아쉽다. 사진자료는 흑백이고, 종이는 너무 얇은...(어떤 분은 이런 종이는 과거에 화장실에서 썼다는 혹평도....)
암튼 미술관련해서 눌와나 창비에 비해 약간 아쉬움이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아주 만족했으니 더 한 마음이 드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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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최순우 사실 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잘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전통미를 촌스럽다고 생각하거나, 의식적으로 거부하지도 않는다. 하루의 대부분을 서구적으로 배열된 사무실에서 보내다 보니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는 책이나 공예품, 서화를 볼 때면 생경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 낯설음 속에 뭔가 모르는 익숙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 머리가 답답하면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가는 소쇄원이나 식영정, 그 시원한 나무 마루에 누워 처마를 바라보면 하늘과 닿아 있는 처마의 모습이 “참 잘 빠진 곡선이다” 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그 곡선의 모양이 예전부터 눈에 익은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외국 미술품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는 우리나라 고려청자를 볼 때, 엄청나게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집안 한 구석에 놓아두면 자연스레 어울릴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책의 처음 몇 장을 넘기면서 사실 그렇게 잘 읽히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냥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넘겨져 왔던 조그마한 도자기, 창문의 모양과 조각들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경탄하는 작가의 감수성이 잘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미스터 초밥왕'과 같은 일본 만화에서 주인공이 초밥을 먹으면서 그 감동을 표현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정도는 조금 덜하지만 비슷했다. 우리나라 전통미가 그만큼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했고, 예술적 안목이 부족한 스스로의 무식을 들어내는 것이기도 했다. 책을 점점 읽어가면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는 우리나라 전통미학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작가의 일상을 통해 정이 많고, 순수한 작가의 영혼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책 읽는 방법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바꾸었다. 용담꽃의 기다림의 미학을 담은 글을 읽고 나서는 인터넷에서 푸른 용담꽃을 찾아 보기도 하고, 이명욱의 <어초문답도>를 출력해서 책 사이에 끼워 두기도 하고, 간송 전형필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간송 미술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했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초심자에게는 그림에 대한 설명만으로는 부족하고 직접 그 그림을 눈으로 볼 때 더 잘 이해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구절은 역시 “바둑이 이야기”와, 맨 마지막인 “조선의 미남미녀” 부분이다. 바둑이 이야기는 작가가 6.25 전쟁 이후 다시 찾아간 서울 집에서 다시 만난 강아지 “바둑이”에 대한 이야기다. 이후 바둑이는 작가와 함께 피난 생활을 하며 4년 동안 작가에게 가족과 같은 일체감을 느끼게 해준다. 영특한 바둑이를 탐내던 몹쓸 옆집 총각이 훔쳐 30리나 떨어진 곳에 묶어 두었는데, 그 먼 길을 작은 강아지가 주인을 찾아 돌아왔지만 얼마 안 되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다. 나도 강아지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잠깐 유기견을 한 마리 위탁받아 키웠던 적이 있었다. 닥스훈트의 피가 섞인 까만 강아지를 난 까뮈라고 부르고 좁은 자취방에서 티격태격 거리면서 세 달 남짓 지냈었다. 결국 넓은 마당이 있는 조건 좋은 주인에게 입양을 결정되어 터미널에서 새로운 주인에게 넘겨주고 돌아오는데 생전 잘 짖지도 않던 녀석이 “컹컹” 큰 소리로 짖어 댔다. 순간 마음이 찡 하게 울리고, 코끝이 싸해졌다. 돌아보면 더 짖을 것 같아서, 애써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서 텅 빈 까뮈의 집을 치우는데 기분이 묘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배변 습관이 들지 않아서 힘들었던 적이 더 많았지만 나와 까뮈 사이에 묘한 끈이 생긴 것 같았다. 이런 것을 인연이라고 하나보다. “조선의 미남 미녀”는 조선시대 그림에 등장하는 남/여를 소개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풍채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삽화와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사진이 없었던 시절이라, 그 시대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모양새는 그림을 통해서 밖에 알 수 없기 때문에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예전에 그림들을 볼 때 그냥 스쳐지나가듯 넘겨버렸던 주변 인물들을 그 사람의 옷차림이나 표정 등을 하나씩 놓고 보니 그림 읽는 맛이 더 재미있었다. 당시, 중국의 그림을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유행이자 암묵적인 룰이었다고 하는데 그 룰을 과감히 깨트리고 우리네 삶을 그렸던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선생의 자유로움와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 이 둘을 대상으로 한 소설책(바람의 화원/이정명/밀러언 하우스)이 출판 되었다고 하는데 인연이 닿으면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 |
| 더위가 무르익는 계절이다. 창문 앞 늘어진 느티나무의 신록색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름의 고유함은 찌는듯한 열기와 그 속에서 빛나는 초록빛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물에게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데 어찌 나라에 그런 고유함이 없겠는가? 故혜곡 최순우님의 이책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우리나라의 고유함을 잔잔히 일러준다. 그리고 그 고유함은 어느새 그자체로 아름다움이 되어버렸다. 아름다움은 준비된 자에게 스스로 모습을 들어내 보인다고 했던가? 나 스스로 아름다움을 보고자 하는 준비만 되어있다면 "정말 좋은 그림을 보게 되면 그만 죽어 버리고 싶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연방 죽고 싶어지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그만큼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쌓여 살고 있다. 비록 여지껏 잘못된 인식으로 남의 것만 아름답다고 추켜세워 결국 우리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읽어버리긴 했어도 말이다. 나또한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의 틀에 박힌 시선을 느끼게 되는 순간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글 중간에보면 초상화에 대한 저자의 바라봄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 그곳에서 저자가 잘생겼다 말하는 그림을 보며 나는 "도대체 어디가 잘 생겼다는 말인가?" 라고 의아해하며 연방 고개를 갸웃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초상화 부분을 보면 미남 미녀에 관한 그의 시선을 읽을 수 있는데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미남 미녀와는 사뭇 다른데가 있었다. 우리는 미남미녀라는 말에서 젊음과 잘생긴 외모만을 따진다. 그 잘생김 역시 서구적인 경우가 대부분임은 두말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미남미녀는 뭔가 다르다. 일단 그 모양새나 생김새를 잘생긴 백자항아리에 비유한 것만 보아도 그가 말하는 잘생김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최순우의 잘생김은 그저 외양만 잘생겼다고 되지 않는다. 거기에 그 생김에 맞는 격이 들어가있고 한껏 멋을 부리되 유치하지 않는 사람. 그의 잘생김은 그런 것이다. 신경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고유의 멋이라고 할까? 남의 것과 비교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만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 오늘날 서구화의 물결에 휩싸여 자란 우리들에게는 높고 곧은 코와 쌍커플진 큰 눈만이 아름다움이되어 버렸지만 혜곡에게는 그것은 그것대로 아름답고, 두툼한 눈두덩이의 작은 눈매와 약간 벌어진 듯한 작은 코역시 우리 본래의 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의 시각은 이것이 옳지 않으면 저것은 그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내것은 내것대로 남의 것은 남의 것대로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말에는 옳다 그르다란 말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즉 아름다움이란 비교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저자가 자신의 입을 빌어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는만큼 보인다 했던가? 아직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의 천한 눈을 부끄러워하며 최순우님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다만 흠모할 뿐이다. 그의 책을 읽고 있는 이순간 나는 사람사는 냄새에 흐뭇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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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내용보다 편집자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저렴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종이의 질과 편집된 책의 질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종이의 질이 정말.. 신문지 같더군요. 그렇게 질을 따지지는 않지만 문고판 도서보다 질이 안 좋아서야 책을 집에 두고 오래오래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불만족의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는 미술 전문가가 아닙니다.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은이가 이런 작품이 어떻고, 저런 작품이 어떻고 할 때 아무런 그림도 없으면.. "그게 뭐지?" 하며 상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대상에 대해서 사진이라도 첨부해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책을 읽는 내내 발생했습니다.(뒷편에는 사진이 좀 첨부되어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은이의 글이 좀 아쉬웠습니다. 우리나라 것에 대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정말 "우리나라 것이니까 아름답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어서 그런 것일까요? 이런것은 이래서 아름답고 저런것은 저래서 아름답고 그런 것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았고, 특별한 지인들(화가 등)의 이야기에서 그 당사자를 소개하는 글이 좀 들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한테 제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유명한 사람이면 몰라도, 한국의 미에 대해서 입문하는 사람에게 마냥 쉬운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