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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대한 예의'라는 이 책의 제목에 끌렸다(평창 형님에게 빌린 책이다). 이 책은 '환경과생명'이라는 잡지의 글들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23편의 글들이 있다. 다양한 저자들만큼 다양한 방면, 다양한 내용의 글들이 읽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이 글들에는 일관된 방향이 있다. 대략 이런 것들이다. - 인간으로 인해 자연은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 이것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 돈을 목적으로 돈을 버는 경향이 있다. 그것보다 사람을 위해 돈을 벌고 쓰는 것이 좋다. - '빨리빨리' 이라는 삶이 강요되고 있다. 느리게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 욕망을 줄이고 소유를 줄이면 자유롭고 행복하다.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글들은 현재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환경 파괴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나타낸다. '개발'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 그리고 비판없이 권력자들의 요구에 따라가는 순응주의를 비판한다. 인류는 현재 브레이크없이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자동차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인류는 현재 짧고 굵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에 있는 글들은 인류가 길고 가늘게 살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는 글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의 공통된 생각은 이런 것들인 것 같다. - 지구는 현재 인류의 것만이 아니다. 수많은 생물들과 공생하는 것이고 잠시 빌린 것뿐이다. 그래서 현재 인류는 지구를 깨끗이 쓰고 미래 인류와 미래 생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욕망을 절제하고 소비를 줄이고 돈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 -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도 살기 힘들다. 생명의 가치는 소중하다. - 중앙 정부나 권력자들에 의해 획일화된 가치관과는 다른 지역중심의 느리고 단순한 삶을 추구한다. 이 책은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와 우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소비 만능주의로 인해 황폐해진 정신세계에 대한 비판과 우려도 있다. 점점 인간은 자연과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 나온 장자에 나오는 혼돈의 우화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나에게 기존의 내 생각들을 강화해주는 역할을 한 것 같다. 이 책에서 자신을 어쩔 수 없는 도시인으로서 환경주의자가 될 수 없음을 고백한 글이 있는데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심정이다. 정신적으로는 내가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긴 쉽지 않다. 그나마 분리수거에 신경을 쓰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전기, 가스 등)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도시의 삶을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소비적인 경향이 이미 내 안에 굳게 자리잡고 있어서 쉽게 고치기 힘들다. 내 안에서 두 가지 마음은 치열하게 싸운다. 편리한 도시의 소비적인 삶을 살고 싶은 마음과 지구와 동식물들, 후손들을 위해 좀 불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몇 시간씩 고민할 때가 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인지, 이것이 없으면 내 삶이 불행해지는지 생각해볼 때가 있다. 이렇게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울 때도 있지만 쓸데없는 시간낭비는 아닌 듯 하다. 이 책은 좀 더 불편하고 단순하고 느린 삶이 필요하다고 나에게 반복하여 강조한다. 그게 왜 필요해? 라고 나에게 물어본다. 그것이 단지 덜 오염된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이것도 어느 정도 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논리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그럼 내가 지구와 후손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구? 왜 그래야 해? 난 많이 즐기고 싶은데? 사람들에게 변화와 행동을 이끌어내려면 더 강한 논리가 필요하다. 단순하고 더 불편하고 느린 삶은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정말 그럴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이 책 역시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빠른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마치 집단적으로 빠른 삶을 사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자동차로 지나다니던 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런 적이 있다. 그 길을 자동차로 수십번 지나다녔지만 못봤던 많은 것들을 나는 걸으며 발견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못보고 지나쳐 왔다. 우리가 못보며 지나친 것들 중에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이 있을 수 있는데도.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빨리빨리 살아왔다는 것은 생각없이 살아왔다는 것과 통하는 면이 있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중에 한 명이 하루 일과 중에 나를 위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봤다고 한다. 놀랍게도 5분도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동안 헛살은 것 같았다고 한다. 느리고 불편하고 단순한 삶은 그동안 못봤던 또 다른 행복을 줄 것이다. 지구는 인간들로 인해 오염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물도, 공기도, 흙도 예전같지 않다. 이런 것들은 생명의 근원인데 그것이 오염될수록 인간도 오염될 것이다. 인간은 그 근원을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는 단 하나다. 심각해져야 한다. 지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 스스로를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굵고 짧은 삶을 살지 아니면 가늘고 긴 삶을 살지 선택해야 한다. 나는 이 책으로 인해 내 안에서 싸우고 있는 두 마음들 중에 가늘고 긴 삶을 사는 쪽으로 기울었다. 느리지만 건강한 삶, 단순하고 불편하지만 여유있고 행복한 삶, 덜 소비하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욕망을 절제하는 자연과 가까운 삶, 적게 소유하되 많이 존재하는 삶. 이런 삶을 살고 싶다. 이것이 내 생각이고 이 책은 이 생각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 생각대로 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시간날 때마다 집안을 둘러보며 내게 필요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찾곤 한다. 그래서 하나 둘 필요없는 것들을 버리거나 다른 이에게 준다. 느리게 사는 삶은 같이 사는 삶, 나누는 삶, 여유있는 삶을 주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지금 인류는 위험한 길로 가고 있으니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경고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세계가 겪고 있는 불황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이 있으면 겨울이 있듯이 경제가 항상 활황일 수는 없다. 지금같은 불황의 시기에 덜 소비해도 덜 욕망해도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조금 덜 바쁘게 살고 조금 덜 벌어도 조금 더 불편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런 삶이 존재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아직 우리가 많이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이 책에 그런 삶을 사는 생태 공동체 얘기가 나온다. 그런 삶에 대한 불안이 내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삶에 대한 불안이 많이 사라졌고 그런 삶을 위해 행동해 보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의 글에서 '국토보안법' 이라는 용어가 신선했다. '행복 = 소유/욕망' 이라는 공식이 신선했다. 혼돈의 우화를 성경, 샤머니즘, 엔트로피와 관련짓는 것 역시 신선했다. 박남준 시인의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박광숙 작가의 강화도 겨울 걷기 이야기를 읽으며 미소지었고, 이안영님의 여성의 입장에서 육아 교육 공동체 이야기, 주요섭님의 정읍 지역 자치 공동체에 대한 생각, 강제윤 시인의 일본 공동체 아타라시키무라 방문기를 읽으며 공동체에 대하여 생각했다. 이문재 시인의 글에서 이 문명이 어떻게 두 손과 두 눈을 빼앗아갔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온 자크 러끌레르크의 '게으름의 찬양', 스코트 니어링의 책, 나까무라 히사시의 '공생의 사회, 생명의 경제', 에리히 얀치의 '자기 조직하는 우주', 프리고진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읽어봐야겠다. ------------------ 이 책을 읽고 두 가지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1) 유서를 써봐야겠다는 것. 2) 반딧불이의 중간숙주가 달팽이라는 것. 그래서 달팽이를 없애면 반딧불이도 없어진다는 것. (2013-05-08 추가) ------------------ 인간(humanus)이란 말도 흙(humus)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듯, 결국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그 본디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이란 말이다. 살아 있는 것들 치고 땅에, 자연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목숨을 부지해 갈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14쪽) '삶과 죽음에 관한 티베트의 책'을 쓴 소기얼 린포체는 어느 대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죽음을 들여다 볼 때, 혹은 실제로 죽음이 하는 일을 받아들일 때, 그것은 우리의 삶을 섬세하게 하고, 살아 있는 시체처럼 그저 생존만 하는 하찮은 상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의미를 찾아내고 진정한 우선 순위를 가려내도록 도와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찮은 활동과 사소한 관심거리로 삶을 가득 채우고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대면하지 않게 된다. (16쪽) 그래서 적게 소유하되 보다 많이 존재하는 삶을 사는 것, 그 길이 먼저 간 선배의 꿈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20쪽) 그리고 이들이 주장하는 생활 수칙이 있다. 우리는 '점점 더 가난하게 살고', '점점 더 불편하게 살고', '점점 더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해가 바뀔 때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는 식량과 에너지로 땅과 흙을 살리고 생태적으로 온전한 땅을 우리 후손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33쪽) 요즘은 밭에 심어 놓은 채소가 채 자라기도 전에 상인들이 몰려와 밭뙈기채로 계약을 하게 되는데, 계약 조건에는 출하할 때까지 농약을 몇 회 이상 쳐야 한다는 약속이 붙어 있는 터라 채소를 재배한 농민은 시기에 관계없이 그 약속만 실행하면 책임을 다하게 된다. (39쪽) -> 이런 조건이 있는 줄 몰랐다. 흐르는 물결에도 진리가 있고 스쳐 가는 바람결에도 가르침이 있다. 마음 가득히 차고 넘치는 무모한 욕망을 비워 내고 빈 가슴으로 자연을 바라보자. 끝간데 없이 펼쳐진 대자연 속에는 우리와 같이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함께 살기 원하여 손짓할 것이다. (42쪽)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개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장마가 지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가뭄이 들 것을 알았다. 또 까치가 집을 지을 때 남쪽으로 입구를 내면 된바람이 강하게 불 것이고 북쪽으로 입구를 내면 마파람이 불 것인 줄 알았다. (69쪽) -> 신기하다. 첫째,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째,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째,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은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째,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여섯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째,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째,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그리고 기가 막힌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를 하는 곳이라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마지막 열 번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이것은 '거창 고등학교의 직업 선택 10훈'으로,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글이다. (83~84쪽) 돈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를 인간을 위해 돈을 이용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95쪽) 나의 그런 삶이 세상을 바꿀 것인지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 생태적 영성은 바람과 같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생명의 바람은 시냇물에서 강으로, 그리고 결국은 거대한 바다로 터져 나갈 것이다. (114쪽) 우리 속담에 '총총들이 반 병'이라는 말이 있다. 병에 무엇을 부을 때 급히 하면 반밖에 채울 수가 없다는 뜻이다. (121쪽) -> 이런 속담이 있는 줄 몰랐다. "현대 산업 사회는 광신적 종교 집단이나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온갖 생명 시스템을 먹어치우고 독살하고 파괴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차용 증서에 우리는 서명하는 셈이다. (...)우리는 지구상에 사는 마지막 세대라도 되는 양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 (123쪽) 국가적, 세계적 단위에서의 보편적인 변화를 기획하는 것은 별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도처에서 한 세대가 씨 뿌리기의 실행을 해 가면, 그 첫 세대가 흙으로 돌아갈 즈음 새로운 삶의 희망이 곳곳에서 굳건히 뿌리내렸음을 볼 수 있지 않을까? (141쪽) 막스 베버(Max Weber)는 근대를 특징짓는 자본주의의 생활 방식을 다음의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소유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을 윤리적으로 용인하는 생활 방식이 바로 자본주의이다." (146쪽) 바른 소비를 방해하는 것으로는 우선 언론 매체의 집요한 광고 세뇌, 유행과 유명 메이커 상표에 대한 환상, 아름다움에 대한 착각을 들겠습니다. (155~156쪽) 아울러 그런 소품의 재활용에서 나아가 묵은 가구와 새 가구가 조화된 실내 장식 연구와 독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게 꾸민 친환경적 인테리어 책 발간, 가구의 간단한 수리 방법이나 페인팅 기술 강좌, 중고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 제시 등 실용적인 것에 더욱 힘써 주길 환경 관련 단체들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161쪽) -> 공감되는 내용들이다. 그러자 원효는 "낙엽이 한창 떨어지는 가을에는 그렇게 마당을 쓸어서는 안 되느니라. 가을 마당을 쓸 때는 낙엽을 약간 남겨 두어야 하느니라. 너도 앞으로 가을 마당처럼 살고 가을 마당을 쓸 듯 학문을 해야 하느니라"라고 일렀다고 한다. (202쪽) ('民'은 원래 두 다리가 끈에 묶인 고대 노예의 상형이라고 합니다). (229쪽) -> 몰랐었다. (자치(自治)라는 말 대신에 자양(自養) 같은 새로운 표현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self-governing'보다 'self-organizing'이라는 표현이 더 맘에 듭니다). (229쪽) 얀치의 표현을 빌자면, 내 안에 있는 '우주의 마음'이 영성입니다. (231쪽) 제 생각에 문화란 '마음의 무늬'입니다. '문(文)'은 보통 '문채(文彩) 문'이라고 하는데, 이 문채가 바로 무늬입니다. 또한 문이라는 글자는 사람의 가슴에 새긴 문신의 상형이라고 합니다. 천문(天文)은 별자리와 같은 하늘의 무늬를 가르키는 것이며, 지문(地文)은 땅의 산과 들과 강과 바다의 모양새를 가리킵니다. (231~232쪽) -> 문화란 '마음의 무늬'라니, 신선하다! <단어> 1) 된바람(69쪽): 뱃사람들의 은어로, 북풍의 이르는 말. 2) 마파람(69쪽): 뱃사람들의 은어로, 남풍을 이르는 말. 3) 거개: 전체에 가까운 수효와 분량. 그런데 이토록 파멸을 초래하는 논리, 즉, 경제, 성장, 개발, 발전이라는 것은 거개가 돈을 버는 것을 의미한다. (92쪽) 5) 사갈시(蛇蝎視): 매우 싫어하고 미워하다. 이와 함께 노동 운동을 사갈시하는 풍토 역시 곧바로 환경 파괴의 길로 통함을 부인할 수 있을까. (212쪽) <의문> 1) 기껏 내세울 만한 것이라고는 지난 1992년의 리우 환경 회의에서 채택한 이른바 '환겅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ESSD)'이라는 것이다. (221쪽): '환겅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