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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악몽연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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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게렝데 가족은 겉으로는 여느 집과 전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게렝데 가족이 중심인 엄마 에노가는 강박적으로 아이들을 위험에서 보호하고자 애쓰고, 그러한 아내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인정해주려고 노력하는 아빠 에반과 밤마다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는 네 아들 브누아, 뤼네르, 기누, 상송이 있을 뿐이다. 엄마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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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게렝데 가족은 겉으로는 여느 집과 전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게렝데 가족이 중심인 엄마 에노가는 강박적으로 아이들을 위험에서 보호하고자 애쓰고, 그러한 아내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인정해주려고 노력하는 아빠 에반과 밤마다 지독한 악몽에 시달리는 네 아들 브누아, 뤼네르, 기누, 상송이 있을 뿐이다.

엄마 에노가는 특히 바다에 대한 심한 혐오감으로 인해 네 아들들을 바닷가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고 수영도 배우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네 아들들은 그러한 엄마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매번 반복되는 바다와 연관된 악몽을 꾸게 되고 헤어 나올 수 없는 공포심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버티어 나간다.

 

잠들기를 거부하는 네 아이들은 점차 지쳐가고 악몽의 덫에 휘둘리게 된다. 이에 형제 중 가장 용감한 둘째 뤼네르는 밤마다 자신의 꿈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결심하고 꿈 속에서 자신의 의지로 악몽을 끝내고자 노력하게 된다. 악몽 속에 매번 등장하는 인물 모르방에 대해 알아보고자 조제 스텐 신부의 도움으로 예전에 ‘해양구조사업소’에서 일했던 에브네제르를 만나게 되고, 소년의 황당한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에브네제르는 자신의 친구이자 아흔이 넘은 할머니 아르델리아를 찾아간다.

 

아흔이 넘었지만 요정같기도 하고 천사 같은 아르델리아 할머니에게서 뤼네르의 악몽 속에 등장하는 악마의 화신 카르덱과 비참하게 죽음을 맞게 되는 아르델리아의 오빠 아벨, 연인 모르방이 백여 년 전에 실존했던 인물들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첫째 브누아, 둘째 뤼네르, 셋째 기누의 꿈이 모두 연결되었음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백여 년에 걸친 비극적인 가족사를 과거와 현재, 도살자와 희생자가 서로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서 악몽의 실체를 풀어나가게 된다.

 

'백년의 악몽' 은 네 아이들이 악몽의 공포를 이겨내고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게 되는 점에서는 성장소설이지만 그 안에 교묘하게 미스터리를 배치를 하여 복잡하지만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큰 장점이다. 중간 중간에 배치된 복선은 곧이어 나올 악몽과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고 각기 다른 하나의 복선들이 모여 결말에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다 읽고도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보고는 아하!!하는 감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던 멋진 미스터리물을 만나 즐거웠다.

r*****0 2008.07.21.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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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과 두려움, 그 근원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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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악몽>..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표지 때문이기도 했다. 검푸른 밤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그리고 심연과 연결될 듯 길게 연결된 사다리.. 그 사다리는 내려가기 위한 것일까.. 수면 위 배로 올라가기 위한 것일까...   악몽을 꾸는 4명의 형제.. 그러나 그 꿈을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스스로 몸부림만 치고 있는데.. 과연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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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악몽>..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표지 때문이기도 했다. 검푸른 밤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그리고 심연과 연결될 듯 길게 연결된 사다리.. 그 사다리는 내려가기 위한 것일까.. 수면 위 배로 올라가기 위한 것일까...

 

악몽을 꾸는 4명의 형제.. 그러나 그 꿈을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스스로 몸부림만 치고 있는데.. 과연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대체로 잠을 잘 자는 편이지만 가끔 오싹한 기분이 들때면 잠을 자는게 무서울 때가 있다. 대개 이런 기분이 들때면 잠을 자고 싶지않다는 이성과 잠에 빠지려는 육체사이에서 굉장한 피로를 느끼고, 오싹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밝고 즐거운 생각한 하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브누아, 뤼네르, 기누, 상송 네 형제가 꾸는 악몽과 그들이 느끼는 고통과 비할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 중 뤼네르가 악몽에 대항하기로 하면서 꿈은 현실과 교차하기 시작한다. 현대인의 몸 속에는 태고적 인간의 지혜가 유전자로 들어있다고 했던가.. 우리가 가진 지혜와 감정은 선대 조상의 지혜와 감정의 누적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꿈이라는 무의식의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네 형제의 어머니인 에노가는 아이들이 꾸는 악몽이 자신의 가계와 연관이 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는다. 그녀 역시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린 소녀일 뿐이다.

아이들이 꾸는 악몽을 살펴보면 첫째 브누아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한 어머니의 꿈을, 둘째 뤼네르는 배 안에서 사지가 절단된 채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꿈을, 기누는 자신을 향해 죽일 듯이 덤벼드는 말의 형상을 본다. 이 셋다 죽음의 공포를 꿈으로 꾸고 있는데, 이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맞서려는 마음을 가질 때 악몽에서 해방이 된다.

어느 사회든 금기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런 금기는 또 다른 공포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에노가가 아이들을 바다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맞서서 키웠다면 아이들이 악몽을 꾸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고야의 "사투르노"였다.


 

이 그림은 고야의 1823년 작으로 하늘의 지배권을 빼앗기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아들 5명을 먹어치운 고대신화를 바탕으로 그려졌다. 그림의 사투르노는 전혀 개운해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없어지면 자신의 위치가 확고해질텐데도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번민이 가득하다.

에노가 역시 자신의 집안의 난폭한 기질과 바다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해 아이들을 공포로 밀어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과 사랑, 바다와 어머니의 의미가 서로 연결되고 흩어지면서 마치 안개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하나의 사건을 각 등장인물의 생각과 시선으로 제시하면서 마치 퍼즐을 맞춰나가는 듯한 전개 역시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오랜만에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이렇게 한 가족내에 발생하는 사건을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제시하여 퍼즐을 맞춰나가듯 전개한 작품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브루노아 배리의 <레이스 읽는 여인>이다.

 레이스를 통해 다른사람의 미래를 읽는 휘트니가 사람들... 가족 사이에서 정신병 판단을 받고 다른 지역에서 살고있던 타우너는 그녀의 할머니 에바의 실종소식을 듣고 고향인 세일럼으로 돌아온다. 쌍둥이 자매 린들리가 자살한 이후 환각과 기억상실에 시달리던 타우너는 고향에서 서서히 기억을 회복하는데...

처음에는 그러저러한 소설이려니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 책이었다.

 

추신..

백년의 악몽을 쓴 저자 가엘 노앙은 2007 신인작가 발굴 프로그램인 '레지당스 뒤 프르미에 로망'에 이 작픔으로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신인답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탁월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j****r 2009.02.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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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보다 깊은 두려움을 이긴 아이들
"바다보다 깊은 두려움을 이긴 아이들" 내용보기
물결치는 바다 위에 검은 배 한 척. ‘백년의 악몽’이라는 제목은 마치 수면 아래에서 떠오른 유령처럼 보인다. 바다 밑 암흑엔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을까.   이야기는 잠자는 시간을 1분이라도 늦추고 싶어하는 한 소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년 이름은 브누아, 잠자리에 들기 싫어하는 이유는 여느 아이들처럼 텔레비전이나 게임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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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치는 바다 위에 검은 배 한 척. ‘백년의 악몽’이라는 제목은 마치 수면 아래에서 떠오른 유령처럼 보인다. 바다 밑 암흑엔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을까.

 

이야기는 잠자는 시간을 1분이라도 늦추고 싶어하는 한 소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년 이름은 브누아, 잠자리에 들기 싫어하는 이유는 여느 아이들처럼 텔레비전이나 게임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매일 밤 잠든 자신을 괴롭히는 악몽이 두려워서다. 무서운 영화를 보거나 이상한 상상을 한 후 며칠 모습을 나타냈다가 이내 사라지는 일시적인 악몽이 아니라 아주 어려서부터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끈질긴 형벌이다.

악몽을 꾸는 건 브누아뿐이 아니다. 그의 동생 뤼네르, 기누는 물론이고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상송까지도 정도의 차만 있을 뿐 저마다 각기 다른 악몽에 시달린다.

엄마 에노가는 강박적으로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한다. 특히 바다 곁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면서 아이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지만 그 위험천만한 꿈으로부터는 구해주지 못한다. 잠 속에 빠져들면 각자는 홀로 그 공포와 무기력감을 겪어야만 한다.

게다가 그 무시무시한 꿈은 현실과 완전히 분리되지도 않는다. 매번 반복되는 데다 깨어나서도 꿈에 있던 장소의 냄새가 실제로 맡아지기도 한다. 마치 영혼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꿈속 세상에 다녀온 것처럼. 브누아가 꾸는 꿈은 한 여자가 선원이던 남편이 바닷물에 휩쓸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딸과 함께 불행한 선택을 하는 내용이고, 뤼네르는 매일 꿈속에서 악마 같은 선장 카르덱과 한쪽 얼굴이 일그러진 모르방이라는 사내, 또 흉측한 몰골로 배 밑바닥에 갇힌 또 다른 사내가 등장한다.

이 반복되는 악몽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건 둘째 뤼네르다. 매번 수동적으로 시달리기만 꿈속 이미지와 자기를 괴롭히는 인물을 기억해두었다가 현실에서 어떤 단서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 꿈의 비밀을 밝히고 종지부를 찍고 싶어서다. 뤼네르는 신부 에브의 도움을 받아 아르델리아라는 할머니를 찾아가고, 자기 꿈에 나타나는 인물이 그녀의 기억에 아로새겨져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인물들이었음을 알아낸다. 아르델리아를 만나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면 그날 밤 꿈을 꿀 때 그 사실을 확인하고, 또 꿈속에 현실을 개입시킴으로써 이야기는 점점 새 국면을 맞이한다.

중반부까지는 점점 복잡하게 꼬여만 가던 이야기가 어느 시점부터는 실타래 풀리듯 궁금증이 해소된다. 그런데 그렇게 진실이 명쾌하게 밝혀질수록 마음은 복잡해지고 슬퍼진다.

하나하나 실타래가 풀어지면서 한 가족이 거쳐 온 100년 동안의 업보가 드러난다. 그리고 소년들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악몽이 사실은 자기 자신과 분리할 수 없는 실체였음을, 자기 핏줄의 악몽 같은 현실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강의>를 굳이 읽지 않더라도 꿈을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한 정신분석학 이론은 낯설지 않다. 꿈은 억압된 욕망이나 트라우마의 발현이라고 여기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꿈은 거기서 한 발짝 더 깊이 들어가 유전되는 트라우마와 업보에 관해 이야기한다.

망망대해에 홀로 작은 배를 띄운 듯 외롭고 두려운 싸움을 하는 소년들의 모습은, 측은하면서도 흥미롭다. 또 밝혀지는 비밀을 통해 선과 악, 사랑과 증오는 칼로 자르듯 구분할 수 없으며,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칼자루는 자기 자신이 쥐고 있는 것 아닐까.

특히 뤼네르가 악몽을 떨치기 위해 그 악몽 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드는 길을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뜻 깊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고통과 혼란이 찾아올 때 무작정 회피하려고만 들면 그 괴물은 그림자처럼 쫓아온다. 그러나 용기를 갖고 정면으로 마주대할 때 태양의 밝은 빛 이면에 있는 내 모습을 확연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환상문학으로 분류되나 보다. '2007년 레지당스 뒤 프르미에 로망' 환상문학 부문 수상작이니 말이다. 환상문학이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같은 판타지문학과 어떻게 다른 건지, 검색해봤더니. 판타지문학은 배경과 등장인물 모두 상상의 산물이지만, 환상문학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사건과 인물들이 겪는 환상 속 이야기를 뜻한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고 보니 환상문학이 어떤 계통을 말하는 건지 어렴풋하게나마 감이 잡힌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선보인 바가 없다는데 프랑스에는 환상문학 부분 상까지 있으니 부럽다.

 

 

z******7 2008.07.0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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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초보자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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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라는 장르를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책이든, 영화든.   간혹 미스터리인 줄 모르고 봤다가, 영화 내내 긴장한 탓에 영화가 끝난 후 녹초가 되는 경험을 몇번 하고 나서 미스터리는 참 힘든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다. 그렇기에 '미스터리'라는 딱지를 달고 나온 '책'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었다. 영화의 장면은 순간이지만, 독서는 스스로 장면을 그리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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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라는 장르를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책이든, 영화든.

 

간혹 미스터리인 줄 모르고 봤다가, 영화 내내 긴장한 탓에 영화가 끝난 후 녹초가 되는 경험을 몇번 하고 나서 미스터리는 참 힘든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다. 그렇기에 '미스터리'라는 딱지를 달고 나온 '책'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었다. 영화의 장면은 순간이지만, 독서는 스스로 장면을 그리며 하는 것이기에. 

 

이 책, 역시 미스터리인 줄 몰랐다! 책을 집어들고 중간 정도 읽을 때까지의 기분은 미스터리 영화를 보고 나온 것처럼 뭔가 속은 느낌이었다. 내가 둔감한 것일까? (읽고 나니 알게 된 것이지만) 제목에 '악몽'이라는 키워드가 있고, 그림이 뭔가 신비스러우면서도 으스스한 느낌이 나는 것이 - 게다가 표지의 그 물결무늬라니!!! - 장르적 성격이 있음을 파악했어야 하는 것인데. 날이 더워지니 판단력도 흐려졌는지.

 

그러나,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단숨에(!) 읽고, 처음의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쉽게 '미스터리'라는 장르로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요소'는 충분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몽과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늘 바라보지만 어찌할 수 없는 엄마(악몽의 근원),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악몽의 정체... 하지만 악몽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미스터리의 느낌보다는 대하서사극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수십년전 바다에서 삶을 펼쳤던 바다사나이들의 야망과 고된 삶, 그들을 기다리는 여인네들의 기다림. 참혹한 전장(세계 1차대전)에서의 비인간적인 살육극과 그로 인해 미쳐버린 병사들의 모습. 아이들 각자의 악몽이 먼 옛날 조상들의 한(限)과 퍼즐처럼 맞춰지며 이어지는 이야기. 이는 단순한 '미스터리'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아닐까.

 

그리고 이 소설을 미스터리로만 볼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하기만 한 인물이 없다. 절대악으로 보이는 카르덱마저 아르델리아의 추궁에 두려움을 보이며,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임을, 살아남기 위해 그랬음을 항변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소설 속에서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인간은 바로 카르덱인 것 같다. 가장으로서, 선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그에게 악역을 맡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도, 결국, 나약한 인간이었다.

 

셋째 아들 기누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 이후 변화한 큰아들 브누아와 사건 당사자 기누, 그리고 악몽의 정체를 밝히여 용감하게 나섰던 뤼네르, 악몽에 시달려 왔지만 그것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소년들, 이 소설은 어찌 보면 미스터리보다는 성장소설에 가깝다.

 

호러에 가까운 끔찍한 장면에 낚여 이 책을 섣불리 '장르문학'으로 치부할 뻔했으나, 다행히 작가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파악하며 모처럼 가슴 벅찬 독서를 경험하였다.

s*******6 2008.07.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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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의 깊은 바다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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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춘기 시절에는 성장통을 겪는 것 같다. 그 성장통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구별짓고 새롭게 도약하여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열병에 걸린 적이 있을 것이다. 몸에 열이 심하게 올라 이불 속에 누워 끙끙 앓으며 식은땀을 흘릴 때, 나는 악몽을 꾸었고 그 옆에서 엄마는 내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 놓으셨었다.   이 소설은, 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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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춘기 시절에는 성장통을 겪는 것 같다.

그 성장통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구별짓고 새롭게 도약하여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열병에 걸린 적이 있을 것이다.

몸에 열이 심하게 올라 이불 속에 누워 끙끙 앓으며 식은땀을 흘릴 때,

나는 악몽을 꾸었고 그 옆에서 엄마는 내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 놓으셨었다.

 

이 소설은, 어릴 때의 그 아련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한 소설이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세상이 더욱 크고 광대해 보이는데-

그 속에서 살아 나가라고 운명과도 같이 내게 요구하는 그 느낌.

자궁에서 빠져나와 탯줄이 끊기는 그 막막한 심정 같은.

 

 

이 소설은 먼 옛날 조상으로부터 전해온 기억이 세 아이들을 괴롭히는 데서 시작한다.

악몽. 늦잠을 자도 모자랄 나이에 잠자리에 들기를 무섭게 만드는 무서운 이미지들.

그 이미지는 프랑스 브르타뉴의 거칠고 깊은 바다의 이미지와 함께 맞물려 독자에게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한다.

 

줄거리 역시 매우 탄탄하고 흠잡을 데 없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칭찬하고 싶은 것은 단연 소설이 그리는 분위기와 이미지이다.

 

 

꿈과 현실이 뒤섞이고, 악몽과 계시가 맞물리는 소설.

아름답다.

무섭지만 아름답다. 이 두 가지 형용사의 결합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표지를 보고 너무 반해서 덥썩 골라 읽었는데, 정말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진짜 이 책 표지.... 너무 잘 만든 것 같다+_+)

 

 

 

j***e 2008.06.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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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이런 악몽을 꾼다면...
"우리 아이가 이런 악몽을 꾼다면..." 내용보기
이 책을 읽고 느껴지는 것은 이런 것이다.   1. 앞뒤가 꼭 맞게 잘 짜인 소설. 그래서 대략 백년의 시간을 오르내리며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퍼즐을 맞추어가는 재미가 있다.2. 그야말로 사건이 쉴새없이 전개된다. 바다에서, 육지에서,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들. 긴장, 충격, 그리고 복선의 지뢰밭이다.3. 그래서 한마디로 재밌다.4. 그래서 여름밤을 노린 스릴러인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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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느껴지는 것은 이런 것이다.

 

1. 앞뒤가 꼭 맞게 잘 짜인 소설. 그래서 대략 백년의 시간을 오르내리며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퍼즐을 맞추어가는 재미가 있다.
2. 그야말로 사건이 쉴새없이 전개된다. 바다에서, 육지에서,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들. 긴장, 충격, 그리고 복선의 지뢰밭이다.
3. 그래서 한마디로 재밌다.
4. 그래서 여름밤을 노린 스릴러인가 하고 읽다보면 알게 된다. 이것은 뜻밖에도 성장소설이다.

 

같은 성장소설이지만, <리버 보이> 같은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리버 보이>가 소년기의 아름다운 경험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는 자기계발 류의 성장소설이라면, 이 책은 끔찍한 스릴러와 서스펜스가 결합된 성장소설이다. 꿈과 희망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 원한과 복수의 어두운 터널을 거쳐 마침내 어른이 되고 희망으로 나아가는 소설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읽고 간접경험을 통해 성숙해질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훈적 성장소설이 아니라, '과연 청소년기의 성장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어쩌면 어른을 위한 성장소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용기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용기. 책 속에서 열네 살의 뤼네르의 용기는 결국 동생을 구하고 집안의 트라우마를 제거하고 자신의 길을 찾는다.

 

게랭델 가의 네 형제는 밤마다 반복되는 악몽에서 몸부림치며 깨어난다. 아이들의 엄마인 에노가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매사에 근심이 많아 아이들을 과보호 속에 키운다. 그에 대한 반발일까, 아이들은 밤마다 겪는 자신들의 고통을 엄마와 의논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노가는 모든 것을 눈치 채고 있고, 아이들의 고통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으로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네 형제 중 가장 용기 있는 아이 뤼네르는 악몽의 정체를 밝히기로 결심하고, 악몽 속에서 기억해낸 단 하나의 이름 '모르방'을 단서로 하여 악몽과 현실 사이의 끈을 추적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델리아라는 백살이 다 된 노파를 만나게 되고, 이제 이야기는 아르델리아가 청순한 소녀였던 그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간다.
1900년대 초,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조그만 어촌 마을. 원양 어업이 이들의 생계수단이다. 남자들은 봄에 고기잡이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다가 겨울이 되기 전에야 집에 돌아온다. 악천후, 낙후된 기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선상의 엄혹한 규율과 바닷사나이들의 거친 심성. 병으로 또는 사고로 또는 의문의 사건으로 죽어나가는 선원들이 비일비재했던 당시. 그럼에도 남자들은 바다를 그리워하며 계속 바다로 나갔고, 여인네들은 네 계절 중 세 계절을 가슴 조이며 남편이나 아들을 기다리는 피가 마르는 삶을 살았다.

이런 절박한 삶의 조건은 '악인'을 낳았고, 이 '악인'으로 하여 대를 이어오는 비극이 탄생되었다. 아이들의 엄마 에노가는 이 비극을 피하려고 어릴 때 가출하여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하늘이 무심하게도 비극은 이제 다시 에노가의 자식들을 덮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백 년 전에 죽은 조상들의 영혼이 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것일까? 무엇을 호소하려고? 묘자리라도 잘못 쓴 것일까? 그리고 끝에 가서 악몽은 왜 갑자기 사라지는가? 뤼네르가 무슨 활약을 했길래?
뤼네르는 활약을 한 게 아니라 깨달은 것이다. 뤼네르는 악몽과 싸우면서 일종의 '삶의 비밀'을 깨닫는다. 이 비밀을 알고 나면 우리가 진정한 어른이 되는 그러한 비밀. 이 소설은 그래서 성장소설이 된다.
아르델리아가 소녀적부터 한평생 증오했고 뤼네르의 꿈 속에서 뤼네르를 괴롭혔던 '악인' 카르덱은 사실 거친 바다를 이겨내야 살 수 있었던 당시의 환경에서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잔인하고 난폭했으나 그것은 많은 선원을 통솔하는 선장으로서 요구되는 필요악이었다. 오히려 그것은 삶의 의지이자 강인함, 무조건 살아남고자 했던 생명력이기도 했다. 카르덱이 아르델리아의 오빠에게 한 짓(그 끔찍한!! 어쩌면 이 모든 업보의 시작이 되는!)도 극한의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카르덱의 '원죄'가 이 모든 비극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비극은 '업보'이고, '업보'는 거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거친 애증과 욕망의 산물이었다고 해야 한다. 직접적으로는, 아이들의 엄마 에노가가 감싸안고 있던 '죽음'이 아이들이 악몽의 원인이라고 해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했던 한 여인의 신경증이 오히려 삶을 멀리하고 죽음을 불렀다는 아이러니!

뤼네르는 이 모든 것을 깨닫는다. 이야기의 끝 부분에 그가 바닷가 동굴에 갇혀서 하룻밤을 지내는 장면이 있는데, 이 기이한 하룻밤은 뤼네르를 결정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과거와의 화해. 그를 도와준 미지의 그 사내는 모르방일까, 카르덱일까? 작가는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리고 뤼네르는 집안의 금기를 깨고 뱃사람이 되기로 한다. 서먹했던 형과도 마음을 트게 된다. 이제 악몽 따위는 없고, 있다 해도 전혀 무서울 게 없을 것이다.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용기를 지녔으므로.
 

j******s 2008.06.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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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통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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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동안 많은 세월을 잠으로 보내는 우리들은 현실과 꿈의 경계선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늘 달콤한 꿈을 꾸고 싶지만 때론 무서운 꿈을 꾸고 가슴 두근거리는 느낌과 함께 잠을 깰 때도 있다. 브누아, 뤼네르, 기누, 상송 네 아이들처럼 매일 악몽을 꾼다면 잠드는 것이 아마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악몽.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아마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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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동안 많은 세월을 잠으로 보내는 우리들은 현실과 꿈의 경계선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늘 달콤한 꿈을 꾸고 싶지만 때론 무서운 꿈을 꾸고 가슴 두근거리는 느낌과 함께 잠을 깰 때도 있다. 브누아, 뤼네르, 기누, 상송 네 아이들처럼 매일 악몽을 꾼다면 잠드는 것이 아마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악몽.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아마 미쳐버리지 않을까. 이 악몽의 세계에서 놓여날수만 있다면 죽음도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기누를 보며 점점 옥죄어오는 악몽의 실체를 외면해 버리고 싶다.

 

뤼네르는 매일 꾸는 악몽에 맞서겠다 다짐한다. 꿈을 꾸고 난 후 사라져버릴 꿈들의 조각들을 수첩에 기록한 뒤 그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모두 생존해 있는지, 실존했던 사람들인지조차 알수 없지만 허스키한 목소리의 남자가 부른 이름 "모르방", 이것을 단서로 뤼네르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의외로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 일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고 왜 그토록 어머니 에노가가 아이들이 바다로 가는 것을 금지했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된다.

 

뤼네르가 꾸는 악몽은 자신이 탄 보트 옆에 온 "마리 루이즈"란 배를 타게 되면서 갑판 바닥에 있는 "아벨"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늘 선장의 손에 의해 이 갑판 바닥에 떨어지게 되며 꿈에서 깨어나게 되는 뤼네르. 팔과 다리가 없고 조각조각난 얼굴을 가진 이 "아벨"이라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늘 두렵다. 하지만 뤼네르는 꿈에서 깨어나서도 "아벨"은 물론 갑판의 뚜껑을 여는 "고티에, 랑벡"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꿈이란 깬 순간에는 모든 것이 기억나지만 점차 희미해지므로 기억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오직 기억나는 것은 "모르방"이라는 이름뿐.

 

조제 산텐 신부, '해양구호사업소'에서 일했던 에브, 아르델리아 이 세 사람은 아이들의 꿈에 나타나는 악몽의 실체를 현실에서 찾는 역할을 하게 되고 브누아, 뤼네르, 기누, 상송이 왜 악몽을 꾸는지 그 이유도 서서히 밝혀진다. 이 악몽의 시작은 아르델리아와 오빠 아벨, 선장 이봉 카르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모든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아르델리아, 그러나 그녀 자신도 한정된 기억밖에 공유할 수 없고 많은 정보를 지닌 조제 산텐 신부와 에브에 의해 사건의 조각들이 맞춰지게 된다.

 

네 아이들의 부모 에노가와 에반은 왜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일까. 에노가는 아이들이 악몽을 꾸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아이들조차 자신의 일로 부모님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한다. 오로지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해결하려는 아이들. 그래서 더 위험해지는 기누와 뤼네르. 난바다에서 사라진 영혼들이 아이들의 꿈에 나타나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뤼네르의 꿈에 나타나는 아르델리아로 인해 뤼네르의 꿈에 나타나는 유령들이 실체를 가지는 것 같아 더 무섭게 다가온다. 꿈 속에 있었던 바다, 정어리 냄새를 현실에까지 묻혀오는 뤼네르, 해초들을 침대에 끌고 오는 브누아. 더 이상 아이들은 안전하지 않다. 뤼네르는 배에 타기전 사다리에 오르다 바다에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지만 역시 현실에까지 힘을 미치는 꿈 속에서 바다에 떨어지고 살아돌아 올 수 있다고 결코 장담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마리 루이즈"호를 타고 나간 사람들은 그 시체마저 돌아오지 못했지만 뤼네르의 꿈에 나타나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 그저 이 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뤼네르가 알게 되는 것은 아르델리아의 오빠 아벨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그 끔찍한 일들을 알게 되고 자신 또한 이들과 무관하지 않은 사이임을 알게 된 것이다. 솔직히 모든 일들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들이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길 바랬지만 그 느낌을 달리할 뿐 여전히 아이들의 꿈 속에 나타나는 사람들.

 

난바다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피로 맺어진 아이들의 꿈 속에 들어와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무엇이었을까. 억울하게 죽어간 뜻을 알리기 위해? 이미 죽은 이들을 위해서 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건만 이들은 왜 자꾸 아이들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일까. 이점이 이해하기 힘들어 조금 아쉽게 느껴지지만 꿈을 통해 나타난 모든 것들이 이제는 어떤 것이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 그 경계선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뤼네르를 바다로 이끈 사람은 누구일까. 동굴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아버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누구일까. 뤼네르와 브누아가 마음속으로만 공유하는 이 일들을 계속 따라가다보면 모든 전말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아이들의 꿈 속에서 함께 할 자신이 없다.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렸으므로. 그저 이 모든 것들이 꿈이라고 생각해 두고 싶다. 그래야 달콤한 꿈을 꿀 수 있을테니까.

y*****6 2008.06.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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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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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악몽은 단순한 성정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꿈을 통해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그 악몽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과거로부터 전해지는 바닷사람들의 비극이 네 아이들의 꿈 속에서 악몽으로 나타나 그들을 괴롭히고 그 악몽이 자신들을 놓아 주지 않을것 이라는 생각에 악몽에 대해 조사를 해서 밤마다 꾸는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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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악몽은 단순한 성정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꿈을 통해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그 악몽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바닷사람들의 비극이 네 아이들의 꿈 속에서 악몽으로 나타나 그들을 괴롭히고 그 악몽이 자신들을 놓아 주지 않을것 이라는 생각에 악몽에 대해 조사를 해서 밤마다 꾸는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용기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사슬을 끊을수 있을지 흥미로웠습니다.
밤마다 꿈에서 악몽을 꾸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악몽을 형제들에게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그 꿈이 자신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형제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밤 마다 잠자는 시간이 두려워 했지만 언제나 악몽은 형제들을 찾아옵니다. 이제는 그 악몽이 막내 상송에게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형제들의 맏이인 브누아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잘생긴 아이로 자랐지만 밤마다 꾸는 악몽 때문에 가족에게서 멀어질려고 합니다.  특히 엄마 에노가와는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엄마에 대한 알수없는 불만을 가진 브누아는 탈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 독립하게 되면 자신과  동생들 그리고 부모와 동일시 되지 않는 곳으로 떠나 밤마다 나타나 괴롭히는 녹색의 물 위에 떠 있는 시체가 있지 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호흡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에서 엄마는 자신들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바다 근처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를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엄마 몰래 바다에 가고 싶지만 엄마가 무서워 그러지 못하지만 왜 엄마가 바다에 가지 못하게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바다를 싫어하는 아내 때문에 아버지 에반은 뱃사람이 되는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아내가 밝히지 않는 집안 이야기 때문에 에반은 고민이었지만 에노가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바다와는 멀어져야 했습니다.
뤼네르는 악몽이 자신이 나이가 많아져도 자신과 함께 머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꾸는 악몽을 형 브누아에게 말하지 못했는데 아마 비웃을것이라 생각했고 동생 기누에게 말하면 엄마에게 말할 것이라 생각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그 꿈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됩니다.
자신의 꿈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바다와 배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바닷사람들의 세계를 알려주는 박물관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관장이 가르쳐준 각 마을 성당의 " 망자의 벽'에 대해 듣게 되고 성당을 찾아가서 모르방이라는 선원에 대해 듣게 되는데 모르방을 찾다가 알게 된 아르델리아 할머니 그녀에게서는 묘한 기운이 나오는데 그녀와 모르방 그리고 뤼네르를 밤마다 찾아와 괴롭히는 악몽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점점 밝혀지는 과거의 진실을 통해 백년이 지나서도 이어져온 과거의 악몽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백년의 악몽을 통해 검은 바다위의 진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a******2 2011.05.24.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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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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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배 한척은 보기만 해도 오싹한 느낌이 드는데이런 모습을 밤마다 꿈에서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하는 생각과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있을까 기대를 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거친 바다에서 사람들의 욕망과 잔인함으로 인해 벌어진 끔찍한 비극이 백년이 지나서도 아이들의 꿈 속에 나타나고 그 악몽을 물리치기 위해 용기있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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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배 한척은 보기만 해도 오싹한 느낌이 드는데
이런 모습을 밤마다 꿈에서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하는 생각과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를 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거친 바다에서 사람들의 욕망과 잔인함으로 인해 벌어진 끔찍한 비극이 백년이 지나서도
아이들의 꿈 속에 나타나고 그 악몽을 물리치기 위해 용기있게 나서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두려움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공포를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성장하고 알지 못하는
두려움에 맞서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통해 짜릿함과 성장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게렝델가의 아이들은 밤마다 무서운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잠드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무서운 꿈을 꾸지 않기 위해 잠자리에 늦게 들어갈려고
합니다.
네 아이들은 매일 무서운 꿈을 꾸지만 그것이 자기만 꾸는 것이라 생각해서 서로에게 말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브누아는 동생은 자신처럼 이런 악몽을 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장남에게만 내려오는
저주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어렸을때 "안돼"라는 말을 자주 하시면서 주위를 주셨지만 정말 중요한 말인 "애들아 잠들지
말거라! 절대로 눈을 감지 마라!는 말은 하지 안않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정말 중요한 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으로 점점 더 엄마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엄마도 아들이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지만 왜 그러는지는 몰랐습니다.
남편은 단지 아들이 사춘기이기 때문이라고 아내를 안심시켰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신에게서
멀어진다는 사실과 분노에 마음이 아픈 엄마와 밤마다 꿈 속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엄마는 바다를 싫어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가게 되면서 학교에서 바다에서 하는 행사가 있으면
엄마는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절대로 아이들을 바닷가 근처에 가지 못하게 했고 그런 엄마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도 그녀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아이들을 지킬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악몽은 브누아, 뤼네르, 기누 그리고 두살이 되지 않은 상송에게도 찾아와 그들의 밤을 괴롭히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뤼네르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악몽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자기가 죽을때까지 계속
악몽에 시달리게 될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탐험기로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발짝 악몽에 다가가면서 만나게 된 아르델리아 할머니 그리고 카르덱 오래전에 일어났던
비극이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그 고통을 지우기 위해 용기를 내서 모험을 하는 아이들을
통해 성장소설이면서 판타지 그리고 스릴감을 한번에 느낄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꾸게 되는 악몽 그 악몽이 계속 반복된다면 하는 상상과 어두운 바다에서 일어났던
공포가 생생하게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m****a 2011.05.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