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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를 읽었다. 거의 10년 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우리나라에 출판이 되냐 마냐 했던 기억과.. 19세 라고 빨갛게 인쇄되어있던 겉표지가 생각난다. 내용은 생각이 안나고 그저 성적으로 잔인하게 표현되어 있던 몇몇 장면들만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이후로도 그의 책들을 몇몇 읽었지만 내용이 생각나는 책은 별로 없다. 그저 냉소와 잔인하거나 노골적인 표현정도만 생각난다. 왠지.. 그냥.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었을텐데..
솔직히 처음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는 '미소(smile) 수프' 인줄 알았다. 제목에 신경 안쓰고 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야.. 아! 미소 수프..! 라고 깨달았다. 일본의 거의 모든 음식에 같이 나오는 된장국. 미소수프.. 가장 일본적인 이미지.. 그런건가?
여하튼 이 책에서도 류의 그 생생하고도 끔찍한 묘사는 계속된다. 인체손상에 대한.. 살해에 대한..
그래도 뭔가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고 있다. 그 끔찍한 표현들이 그 의미를 더욱 높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정도로..
'고양이 실험'에 대해 나온다. 실험상자 안의 고양이는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것으로 교육을 받는다. 어느정도 교육이 되고 난 후에 같은 버튼을 눌렀을 때 전기충격이 오게 하는거다. 가치관의 혼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고양이는 결국 정신이상을 일으킨다. 한결같지 않은 반응. 돈을 밝히는 정치인과 사업가들을 매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명품에 목숨을 걸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외치던 사람들이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고.. 어쩌면 이런 한결같지않은 반응들이 모든 사람들을 정신병으로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닐까? 그 극단적인 결과가 아마도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는 프랭크일것이고.. 일본의, 아니 현대의 개인주의는 이러한 현상을 더 부추겼을 것이고..
우리나라의 된장국과 일본의 미소시루.. 굳이 제목에 빗대어 내용에 빗대어 얘기해보자면 이렇다. 우리나라의 된장찌게는 (물론 찌게와 국은 좀 다르지만) 된장이라는 양념안에 다양한 재료들이 제각기 한몫을 하면서 어울어져 하나의 '찌게'를 만들어내지만, 일본의 미소시루는 된장이 주재료이고 고명으로 올라가는 것들은 그저 떠있는 부재료에 불과하다. 그리고, 잠시만 그냥 두면 된장이 분리되어 가라앉아버린다. 개개인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된장찌게, 하나의 재료를 위해 형체가 없어지거나 무시되는 미소시루.. 뭐.. 그냥 그렇다고..
..일본인은 다른 민족에게 나라를 점령당하거나 학살당하거나 나라를 빼앗겨 난민이 되거나 독립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죽거나 하는 역사적 고난을 맛보지 않았다.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서도 전장이 되었던 곳은 중국이나 기ㅣ타 동남아시아 나라들, 태평양의 섬들과 오키나와뿐이고 일본 본토는 그저 공습이 있었을 뿐이었다. 눈앞에 적이 나타나 육친을 살해하거나 여자를 폭행하거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당한 적이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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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 이어 읽은 무라카미 류의 작품.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엔 멀고 희미하게 느껴졌던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지금은 무언가 잡힐듯 말듯 하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무라카미 류는 말한다.
개인이 정신은 말이 되지 않는 비병을 지르고 있다. 그 비명을 번역하는 거이 문학의 사명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상상력은 말할 것도 없이 새로운 시련에 부딪힐 것이다. .. 그리고 번역하는 일이 현대 사회 공동체의 붕괴 속도를 따라 잡을 수가 없다고..
문학이라는 것을 이렇게 정의 하는 것은 저자의 말을 듣고 나는 충격과 왠지 모를 감동, 그의 작가로서의 사명을 느꼈다.
그리고 그 전에 읽었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나 이번에 읽은 <미소 수프>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더할 수 있었다.
미소 수프에서의 겐지. 그는 곧 나를 의미 하는 듯 하다. 책을 읽는 본인. 독자..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프랭크.. 또 다른 이방인..이자 붕괴하는 현대 사회 그 자체를 대표하는 인물. 아니고 잘못되고 사악한 일임을 알지만 거부하지 못하고 어쩌면 이해하기 까지 하며 일연의 사건을 해석하는 겐지 곧 나 자신은 무사하다는 것에 오히려 안도 혹은 의아해 하고 있다. 그리고 프랭크를 고발할 생각이나 의지조차 없다. 고발하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같이 존재하지만 서로 동화 되거나 교감하지는 않는다.
그저 존재하고 느낄 뿐이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읽으면 머리나 가슴속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떠다다닌다. 하지만 이 느낌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의 소설을 더 읽으면 깨닫게 될까.
그의 소설의 내용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하고 준비하게 한다. 그래서 부담스럽다. 하지만 끊을 수 없는 묘한 매력.
그리고 은근히 빠져들어 공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아무튼.
이 미소 수프에 빠져 있는 동안 나름 즐거웠다. 그의 이야기를 내 식으로 받아들이며 해석하는 일. 이 것은 예전에 몰랐던 소설을 읽는 또 다른 기쁨이다.
그리고 다음 번 그의 작품을 무엇을 읽을 지 고민하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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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의 작품은 정말로 오랜만이거나 아니면 처음이거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다른 작가의 작품들은 열심히도 찾아서 읽었는데. 급하게 이 작가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처음이다. 본명이 무라카미 류노스케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교사였다는 점.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를 했고, 데모를 주동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영화에도 관심이 있었는지 영화도 찍었다고 한다. 참, 여러 방면으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미소수프』를 읽었을 때 나는 뉴스에서 정치인이 내란선동은 유죄, 내란음모는 무죄라는 뉴스를 보고 세금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정말이지 국가는 우리를 뭘로 보는 것일까? 아무래도 『미소수프』에 나오는 프랭크를 만난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이야기만 우리 주변을 채우는 것 같아서 서글퍼진다. 프랭크 -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그 무서운 사람을 우리는 매일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세금도 그렇고 어린이집에서 어린이에게 폭행을 가한 사람도 어쩌면 프랭크의 분신일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무서운 세상이다. 어쩌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문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정말로 이런 생각들을 하면 서글퍼진다. 침울해진다. 프랭크는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천사인지도 모른다. 현실을 보자. 백화점 모녀나 땅콩회항을 한 그녀도 어쩌면 프랭크보다 더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거기에다가 IS에 들어가겠다고 나간 김군의 이야기.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미소수프』의 프랭크보다 더 무서운, 더 잔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가 하루하루 버티고 서 있는 현실의 세계는 어쩌면 작가가 만든 『미소수프』 세계보다 암울한 지도 모른다. 제일 무서운 건 세금 폭탄! 최소한 『미소수프』 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금폭탄은 안 맞으니 말이다. 하하하. 웃고 넘어가야 하나 겐지, 프랭크 살인 장면. 살인 장면이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보일까? 나의 눈에만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내가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일까. 그래서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마치 프랭크가 저지른 살인 장면에서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와 내 고막을 두드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름다운 선울 속에서 피가 흐르고 귀가 잘리고 있었다. 내 눈에는 잔혹해야 할 장면이 아름답게 보였다. 이건 다 무라카미 류의 잘못이다. 절대로 내 잘못이 아니다. -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무조건 남의 탓 정신으로. 프랭크가 미소수프를 먹었다면 그런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미소 - 일본 된장. 쉽게 말해서 된장국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된장찌개가 있다. 나는 이 음식이 참 좋다. 구수한 된장냄새는 왠지 내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표현할 말이 목구멍 근처에서 맴도는 바람에 지금 환장을 하겠다. 아무튼, 프랭크가 미소수프를 먹었다면 달리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의 구수한 정을 먼저 느꼈다면 그렇게 끔찍한 살인은….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류노스케라는 일본의 대 작가의 작품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뭐 이런 이상한 작품이 있지. 글이 흘러가는 게 너무 지지부진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의 질투에서 나온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이 작품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