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핑 더 벨벳(1998)'은 사라 워터스의 데뷔작이다. 어찌 보면 성장 소설 같다. 굴oyster로 유명한 조그마한 어촌 마을,부모의 초라한 식당에서 굴 다듬는 일을 하던 소녀 Nancy가 파란 만장한 삶을 통해 '자기가 누구인지,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배워나가는 이야기니까. 동시에 이 작품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생생한 풍속 스케치이기도 하며 해피 엔딩이 무척이나 즐거운 레즈비언 로맨스이기도 하다.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그 첫번째는 휘황찬란한 화려함과 뜨거운 열광 뒤에, 깊은 비애를 숨긴 웨스트 엔드 뮤직홀의 세계를 보여준다. 남장 가수 Kitty에게 매혹된 낸시가 키티와 런던으로 가서 겪는 이야기. 낸시는 처음엔 키티의 친구이자 드레서였다가 나중엔 은밀한 연인이자 공연 파트너가 된다. 두 번 째는 키티에게 버림받은 낸시의 런던 뒷골목 체험기랄까? 남장을 한 채 남창 노릇을 하던 낸시는 이어서 부유한 과부 Diana에 이끌려 상류계급 sapphist의 세계로 흘러 들어 간다. 시간이 멈춘 듯한 Felicity Place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극도의 쾌락과 사치를 누리다가,마지막 3부에 이르러 런던 하층계급의 빈궁한 생활과 노동 운동에 헌신하는 사회주의자 남매 Ralph와 Florence를 '만난다'. 그리고 당당한 'tom'들과 뜻하지 않은 사랑까지도.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바로 내 코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생생한 묘사는 무척이나 감각적이어서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뿐인가? 인상적인 크고 작은 캐릭터들과 뻔한 듯 하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 전개는 정말이지 마음을 사로잡는다. 흔히들 얘기하는 page turner란 바로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역시 1부인데, 첫사랑의 마술 같은 순간들이 무대에 대한 매혹과 함께 숨막힐 듯한 황홀함을 선사하는 부분이다. 2부의 노골적인 재미도 괜찮았다. 비록 내가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한 가지 작은 의문은,이 책은 적어도 서른 여덟은 넘은 낸시의 회고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이야기는 스물 다섯에서 황급히 끝나버리는 점이다. 간단한 에필로그라도 기대했기에 굉장히 아쉬웠지만 행복한 모습으로 끝나는 데야 불만이 있을 수 없다. 한마디로 독자의 마음을 빼앗는 에너지가 넘치는 소설이다. ‘페이지 터너’라는 얘길 했지만 실은 한 쪽, 한 쪽이 모두 내 마음을 잡아 끌어서 차마 페이지 넘기가 망설여지는 소설이기도 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