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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화려한 신라 금관의 모습에 흠뻑 빠져들었던 나는 관련 서적을 읽어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찾아보니, 두어 권 정도밖에 없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한국 문화재를 폭넓게 다루는 책에는 빠지지 않는 문화재가 신라 금관인데, 막상 금관만을 다룬 책이 거의 없다니. 그나마 그때 기준으로 출간되었던 책도, 어딘지 변죽만 울리고 만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아쉽고, 허전하지만 그 텅 빈 느낌을 어디에서도 채울 길은 없었다.
신간 코너에 꽂힌 이 책을 보았을 때, 난 책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뛴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몸소 실감했었다. 아아, 드디에 신라 금관을 제대로 다룬 책이 나온 모양이구나! 책 제목만으로도 몇 년이 넘도록 텅 비어 있던 그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독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행복하게도, 이 책은 내 기대하고 막연히 예상한 것보다 훨씬 깊고 방대하며, 놀라운 세계를 펼쳐내 보였다.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재라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신라 금관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금관은 세계에 십여 점 정도 발견되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신라 금관이라는 것은 꽤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라 금관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자세로 신라 금관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저 신라 금관이 열 점도 되지 않아, 숫자가 부족해서라고 이야기할텐가?
...그런데 그게 정말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는 하는 걸까? 사리장엄구나 향로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논문이 나오고, 충실한 연구단행본까지 나오는데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은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지만, 본 내용의 취지나 전개를 보면 <신라 금관의 통념을 규명한다>가 더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이 책은 우리가 신라 금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이런저런 사항들은 논거가 빈약하며, 허술한 논리와 추론에 바탕을 둔 결과물이라고 역설한다. 단지 통설을 깨뜨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논리적이고 일반상식으로 잘 이해되며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19세기 초반 즈음까지만 해도, 과학계에서는 쟁쟁한 과학자들이 풀지 못하던 문제를 아마추어가 변칙적으로나마 정답에 접근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당시는 한참 과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여건만 되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고급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과학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과학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양한 발상을 배출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다른 이유로는 고정관념이나 지식에 기존 연구자가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기 떄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적의 섞인 예측과 달리 학계에서는 은사나 직계 선배, 연구동료의 견해라는 이유만으로 기존 학설의 논박을 꺼리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통설에 알게 모르게 발목을 잡혀 거기에 얽매이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기존 학설을 완전히 뒤집는 문화재가 새롭게 발견되어도 통설이 곧바로 수정되지는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얼마 전 <백제금동대향로>를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아시아 대륙의 온갖 문화와 문화재를 넘나드는 책을 쓴 사람이 철학과를 나왔다는 것을 알고 정말 놀랐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학과나 고고학과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개 전문학과에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깊게 파고드는 법만 가르치기 마련이니까. 깊게 파고들되 넓게 보지 못하는 것과 넓게 보되 얕게 파는 것- 둘 중에 택일하라면 어느 쪽이 차라리 나을까? 아주 가끔 나오는 넓고 깊게 파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개중 가장 나은 선택인 것일까?
여기에다 고정관념까지 더해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하기야 산소를 처음으로 발견한 프리스틀리는 막상 죽을 때까지 플로지스톤설을 지지하고 있었다지 않던가. 산소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프리스틀리였지만, 산소의 존재에서 플로지스톤설이 옳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한 사람은 라부라지에였다. 그리고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어딘지 아이러니하게도, 화학 역사의 월계관은 라부아지에에게 씌워졌다. 부설이 길어졌는데, 요컨대 방대한 지식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신라 금관 연구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고스란히 나타났다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발전을 억제하고 잠재력을 깎아내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문화재 자체의 의의마저도 축소하는, 다방면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때로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신라 금관의 이야기들은 '일반 상식의 눈'으로 바라보아도 오히려 우리를 깎아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뻔한 것을 어째서 이때까지는 몰랐던 걸까. 누가 이미 이야기한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데에만 익숙하고, 스스로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신라 금관의 원류를 중앙아시아 지역의 민족 문화에서 찾는 시도에 대해 저자는 어려하다 못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왕이 쓰는 왕관조차 독창적으로 만들지 못한, 문화적으로 열등한 민족이라도 되느냐고 성토하는 대목에서는 울분마저 느껴진다. 읽다 보면 어느덧 그런 저자에게 공감하게 된다. 생각해 보니 어딘가 개운치 않기는 하다. 어째서 신라 금관 연구는, 어느 지역의 어떤 유물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를 '구명하는 연구'에 집중되어 있었던 걸까?
특히 '몽고 등지에서 한국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려 한다면, 그 증거가 될 연구결과가 한국 사학계에 지극히 많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소름까지 돋았다. 이 문장만 보면 자칫 자문화나 자민족 중심주의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앞뒤 문맥을 짚어가면서 읽으면 그 반대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한국 문화재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부분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찾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었다. 그것은 언제나 '한반도가 영향을 받았다'는 결론으로 수렴되고는 했다. 저자가 어째서 신라 문화를, 다른 것도 아닌 왕관을 다른 나라에 문화적으로 복속시키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냐고 성토할 만하다.
저자는 신라 금관의 세움장식은 사슴뿔에서 딴 것이라는, 기정사실화된 통설에서부터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 흔히 금관과 연관되어 있다고들 말하는 시베리아 샤먼 무관은 19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들인데, 천여 년 전의 신라 금관과 어떤 연계가 있겠느냐고 이야기한다. 게다가 사슴이라니, 어째서 신라에서 사슴뿔을 왕관에 단다는 말인가?
....그러고보니 한국 신화 중에 사슴이 신성한 동물로 등장하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중에서는 없다. 신령한 동물로 설화에 등장하는 경우도 말하는 사슴이 나오는 선녀와 나무꾼 정도이고, 단순히 신령한 동물이라면 금관의 상징으로 쓰이기에는 아무래도 격이 떨어진다. 금관에 쓰일 정도로 신성한 동물의 이야기라면 국가 차원에서 숭상했다는 이야기이고, 관련 신화나 전거가 유실될 가능성도 적다. 삼국전쟁에서 '승자'로 남은 신라의 상황을 따져보면 더욱 그렇다.
잠깐, 고구려 고분벽화나 신라의 온갖 유물 중에서 사슴을 묘사한 것이 있기나 하던가? 생각해보니 이상하지 않은가? 별로 숭앙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지 않고, 신화에도 등장하지 않는 동물의 상징을 다른 곳도 아닌 왕관에다 부착했다고? 여기에다 저자가 제시한, 한 가지의 의문이 덧붙여진다. 신라 왕들이 과연 무당이 쓰는 모자에서 왕관의 모티브를 따올 이유가 있었겠는가?
좀 더 파고들어 보면, 시베리아 무관이 과연 신라에 영향을 주기나 한 것인지도 의문스러워지는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시베리아의 샤먼은 샤먼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저 세계를 나는 것이고, 한국 굿은 신이 내려와 무당에게 깃들이는 것이다. 기본 인식이 다른데, 모자장식 같은 부속물의 영향을 받았을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정말 시베리아 샤먼의 영향을 받아서 금관 장식이 만들어졌다면, 어째서 제정분리 구조가 확립되었을 때 왕이 새삼스럽게 종교적 의례를 위한 관을 따로 제작한다는 말인가? 이쯤 되면 다른 모자도 아닌 왕관을 이국의 작은 부족 우두머리가 쓰는 모자에서 모티브를 따 제작할 리가 없다는 의문은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그럼 '사슴뿔 장식'은 과연 무엇을 형상화한 것일까? 저자는 곧추선 것만이 아니라 구부러진 금관 세움장식도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대목에서 순간 내 머리속을 스쳐가는 한 장의 유물 사진이 있었다. 칠지도! 칠지도와 비슷한 도상이었던 것이다. 칠지도 사진을 몇 번씩 봤고 신라 금관 사진은 수도 없이 봤는데, 어째서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 곧추선 세움장식이 나무를 본뜬 것이라는 이야기는 곧잘 하면서, 구부러진 세움장식도 나무일 것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던 걸까?
그리고 금관띠의 구멍에 대해서 보다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금관띠의 구멍은 '장식을 달려다가 잘못 뚫었던 흔적'으로 설명되었고, 이것이 금관이 부장품이라는 강력한 증거로 제시되고는 했다. 실제로 사용했던 관이라면 실수 같은 게 용납될 리 없다고, 금관띠를 만드는 것은 비교적 쉬운 공정인데 굳이 구멍 뚫린 것을 쓴 것은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난 이런 설명들을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받아들였다.
저자는 그렇게 거대한 무덤을 건축하면서, 다른 부장품도 아닌 금관을 급히 만들었다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무덤을 건조하고 있을 동안에 만들어도 '비교적 쉬운 공정의 금관띠'를 만들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일상용품보다 훨씬 공들여 제작하는 부장품에, 굳이 하자 있는 물품을 넣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장식이 매달리지 않은 금관띠의 구멍은 무엇일까?
저자는 '금관 안에 겹쳐 쓰는 내관을 끈으로 고정한 구멍'이라고 추정한다. 금관 속에 내관을 겹쳐 쓴 모습은 여러 차례 보았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풀기 힘든 문제일수록 정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하던가. 너무 멀리 돌아가면 오히려 답이 보이지 않게 되고, 가까이에서 조금만 눈길을 달리해 바라보면 정답이 보인다. 내가 이때까지 읽은 책 중 '발상의 전환'이라는 말의 뜻을 가장 절절하게 느꼈던 책은 다름아닌 바로 이 책,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라고 감히 단언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의 굿을 무조건 '코리안 샤머니즘'으로 영역하여서, 외국 학계에 한국 굿이 샤머니즘의 아류로 여겨지게끔 한다는 대목에서는 울 뻔 했다. 이것만큼 저자가 걱정하는 경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화가 또 있을까? 문화재에서 주체적인 부분을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외국 세력과의 연결점을 찾는 데에만 부산한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적어도 자문화 중심주의로 흐를 가능성은 없다고 안도해야 하나, 아니면 우리 조상이 일군 문화를 깎아내린다고 통탄해야 하나. |
|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신라 금관만큼 아름답고 정교한 금관은 찾기가 힘들겠지요. 그래서 신라 금관을 보기 위해서 우리나라에 찾는 외국관광객들도 많은 편이랍니다. 이 책은 이러한 신라 금관의 기원을 들추어본 도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도서들의 인기가 대체로 없는 편이지만 앞으로는 더 인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