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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쓴 글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인용했다. 이 책은 강력한 한 마디를 포함하고 있다. '부를 때 가야 한다.' 이 책의 시작이자 끝이다. yes 24의 초대권으로 방문한 2017 서울국제도서전 전시장에서 그녀의 책을 만났다. 처음엔 '카페 이탈리아'였고 그 다음이 '그 여름의 포지타노'였는데, '카페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정보가 많았다면 '그 여름의 포지타노'는 글과 사진이 보여주는 진솔함에 마음이 끌렸다. 중심과 여백의 차이랄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 옆에 두 책 다 놓여 있다. 둘이 잘 어울린다.
지역의 랜드마크에 대해 그 건축 구조와 역사를 소개하지 않아도, 그 일대를 다 돌아다니지 않아도 작가가 자신이 선택한 작은 터전에서 겪은 작고 큰 경험들, 이렇게 '책'으로 나올 수 있게 만들었던 그 애정어린 기록들이, 이 책이 가진 힘이다. 요즘같이 여행서 출판 시장이 레드 오션의 정점으로 향하며 항구를 꽉 채운 배들로 웬만해선 새 배가 끼어들 틈을 볼 수 없는 이 시기에도 출판을 해낼 수 있을 만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일상의 소소함이 지닌, 그치지 않는 매력이련가. 물론 이건 일상의 소소함이라기보다는 일상이 된 여행의 소소한 기록일 게다. 레몬 향수를 뿌렸을 때 오감으로 떠오르는 과거의 흔적들은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켰을 때 불러내는 풍경처럼, 알라딘 램프에서 지니가 바라던 소원을 성취해주는 것처럼, 프루스트가 마들렌과 홍차를 마시며 과거를 환기하는 것처럼 아득하면서도 생생하다.
남부 이탈리아 해변을 가면서 어떻게 환상과 기대 없이 그 고된 길을 떠날 수 있으랴. 그러나 남부 이탈리아 해변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남게 되는 것은, 여행 준비 기간동안 그들이 품은 설렘과 기대가 그 여행이 주는 의미로 다 끝나 버리도록,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허를 찌른 한 문구가 생각나는 것 뿐일 게다. 환멸. 그리고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느끼는 이중의 소외. 아름다움 앞에 서면 뭔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에 어울릴 만한 모멘트를 만나서 추억으로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대부분은 그런 추억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명 패션잡지 기자로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 취재를 왔다가 아도니스같은 외모의 잘생긴 이탈리아 청년을 만나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두루두루 이탈리아 남부를 경험하며 18년 동안 꿈 같은(?) 세월을 보낸 금발의 늘씬한 호주 미녀 이야기는 아말피의 낭만이 연상시키는 최극치의 이야기를 현실로 보는 재미를 주지만 - 물론 영어권 사람들 특유의 과도한 긍정주의와 그 세월의 끝에 맞게 된 씁쓸한 결말과 이별 후 그 시절을 되짚어 보며 좋았던 추억을 정리해 책으로 나누게 되었다는 사실은 잠시 제쳐둔다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로망이 된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주로 다루는 내용들, 그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현실로 일어난 이야기로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니, 남들의 것과 자기의 것을 비교하지 않는 소신, 아름다운 해변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눈과 그곳에서 들이마실 수 있는 공기와 맛, 그리고 소소한 경험에서 영원을 만끽하는 충만을 얻지 못한다면 그곳에 가봤자 그 아름다움 앞에서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소위 아름답다는 곳은 나의 것도 똑같은 아름다움 속에 포함되지 못하게 될까봐 물러나기도 한다. 이런 환멸은 파리에 여행을 온 일본인들에게 퍼진 어떤 히스테리 증상으로도 나타난 바 있고, 파리지엥들이 파리에 살면서 겪는 신경증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이 눈앞에서 보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비해 자신들의 삶이 너무 보잘것 없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경쟁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선의의 경쟁이든 악의의 경쟁이든 늘 밀어붙이는 힘이 없어 밀려나는 내게, 악의의 경쟁은 물론이고 선의와 생존의 경쟁에서도 나를 밀치고 올라간 사람들을 향해 좋은 감정이 찾아올 수 있을리 없다. 그런 감정에 매몰된 나를 보면 오히려 경쟁에서 물러났을 때보다 스스로 자신을 더 안 좋고 하찮게 보게 된다. 나보다 다른 사람의 존재가 너무 압도적으로 보이는 탓이다. 사실 사람들 사는 것 다 정도의 차이일 뿐 똑같은 데 말이다. 그렇게 혼자 뒤처지는 것이 싫어서,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을 뚫는다. 하지만 그런 곳에 가다보면 눈썰미가 대단한 한국인들이 그곳에 가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제 풀에 꺾이고 만다. 분명 이건 이중으로 패하는 싸움이다. 뭔가 이 구질구질한 태도의 변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 아예 나를 한계짓게 부르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날아오르고 싶다. 도약하고 싶다.
정말 좋은 책은 빈틈없이 완벽하게 채워놓은 책이 아니라, 오히려 숨 쉴 틈을 남겨주고 그 틈을 독자에게 메우도록 허락하는 책, 그 자신의 상상력을 펼치고 꿈을 심어주는 책, 그리고 공감으로 초대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아이를 키워 독립된 어른으로 사회에 내보내는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그 역할을 맡아야 하지 않을까. '내놓음' 그것이 작가가 된 사람과 감수성과 필력이 대단한 사람들을 가르는 차이일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거품이 빠진 포지타노를 작가와 함께 경험하고 살다온 것 같다. 너무 아름다워서 멀게만 보였던 포지타노가 한 번쯤은 가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정겨운 마을로 보인다. 작가가 총대를 메고 그녀 안의 생각을 책 속에 조심스럽게 꺼내 풀어놓은 부분이 공감을 이끈다. 아마 눈앞에서 상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뭔가 내가 그 사람의 자의식을 받아내는 도구로밖에 생각되지 않았을 것 같고, 내게 소외를 준다고 생각했을 말이었을 게다. 하지만 저자는 자의식을 독자에게 투영시키려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다. 반대로 공개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소중한 생각을 총대를 메고 대신 해 준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것으로만 고이 싸서 아무도 모르게 꼭꼭 보관하지 않고 독자에게 초대한 것이다. 우리가 모두 하고 싶으나 눈치를 보느라 할 수 없었던 말을 시원스럽게 그 속에서 꺼내 긁어준 것이다. 상대가 눈앞에 없어서 나도 내 자의식을 투영할 수 있는 책에서 그녀가 꺼내놓은 생각을 들으니 전혀 불편하지 않고 나의 마음도 그 생각에 합치게 된다. 그래서 공명하게 되고 가슴 속에 감동으로 와닿게 되는 것 같다.
서두와 마지막 글이 마치 책을 열고 덮는 것처럼 서로 대칭적으로 이어진다. 서두에서 여행을 떠나라는 어떤 소리가 그녀를 겨냥하고 있는 총구를 점점 당겨왔다면, 말미에서는 그 여행지가 나를 부를 때 그 여행지가 내 마음 속에 담기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 나도 마음 속에 찾아온? 담고 있는? 여행지가 있긴 한데, 첫 출발이 별로 좋지 않다. 그렇다면 이건 무슨 메시지일까. 여행지가 나를 부르며 어떤 균형 법칙에 의해 나중에 좋은 결과 얻으라고 처음엔 시험대에 올려놓은 것인가, 아니면 내 욕심을 정죄하고 마음 속에 떠올린 것을 하지 말라고 막는 것인가. 후자를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여행은 끝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보았는가.
그래, 무엇이 맞는 것인지는,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는 사실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읽어주고 상상할 수 있게 초대해주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주는 충만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좋은 여행을 하기 위한 마음, 준비, 그리고 태도를 책 속에 그 내용들을 풀어놓는 저자의 사고에서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여행을 하기 위하여 그 점은 정말 닮고 싶었다. 사실 이 점은 출판시장에 그들의 저서를 내놓을 수 있었던 모든 여행자에게 품는 마음이기도 하다.
저자는 '여행은 여행자와 여행지가 둘이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고, 나는 '여행은 여행자와 여행지가 같이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도 묘한 시각 차이가 느껴진다. 내가 쓴 '같이'를 ('같이'는 마치 여행지에게 의무를 지우는 느낌이다, 혹은 포섭하는 느낌? 여행지를 여행자와 같은 주체로 만들려다 도리어 주체의 well-being이 한층 더 의미있게 자리매김되도록 헌신하기 위한 객체로 떨어뜨리는 느낌이랄까. '같이'라는, 함께 한다는 이 정다운 초대의 말이 오히려 때 아닌 기만으로 떨어지는 순간이다. 이 '여행지'가 헌신을 다해 이행해야 할 의무 앞에서 상대 앞에 서 있던 나의 모습을 비추어보게 된다) 나도 작가가 쓴 것처럼 '둘이'로 만들어보고 싶다. 마치 두 친구가 이마를 맞대고 소곤거리는 것처럼, 훨씬 더 알콩달콩하고 가깝고 정겨운 느낌이다.
아, 그리워라. 그리움을 부르는 여행지,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 여행이란...... 그리움을 따라 나서는 것이려나. 인생이 여행과 같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인생도 서로 그리움을 부르고 응답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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