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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도서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 책의 제목을 보게 되었는데, 우리 집 아이들이 모두 십대라서 눈길이 갔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저자라는 사실이었다. 재빨리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니 한국어판이 출간된 지 6개월 이상이 지났지만 서평 하나 없는 것이었다. 칙센트미하이 같은 대가의 책이 인기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의문이 하나씩 해결되었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에 서둘러 책을 읽다가 중간쯤에 1985년 10월부터 1986년 5월까지 이른바 경험표집법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앞으로 돌아가 속표지를 보니 원서도 1993년에 출간된 책이다. 적어도 30년 전에 수행한 실험 데이터로 20년 전에 낸 결론이란 말이다. 시의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이 책을 읽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을 듯싶었다. 내용 구성 자체가 전문적인 연구 논문 수준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회과학 논문들에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수행한 200명이 넘는 십대 영재들에 관한 5년간의 종단 연구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연구가 여러 제약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점은 이 책에서 다양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표본 집단의 외적 조건이 미국 중서부에 있는 준 교외 지역사회만의 전형일지라도 재능 있는 십대들의 심리학적 과정(관심과 동기의 역학)은 전 인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예술이나 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미래를 보장받은 듯했던 많은 개인이 흥미를 잃고 평범한 기술을 요하는 직업에 안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바로 사춘기와 청소년기라는 것이다. 사춘기란 대부분의 사람이 주의라는 자신의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그리고 가장 해볼만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최초의 시기이기 때문에, 아이가 아무리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건 혹은 그 성과가 아무리 출중했건 사춘기는 재능 발달의 평탄한 과정에 사회적, 심리적, 지적 도전이라는 신선한 배터리를 장착하기에 의미 있는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수학, 과학, 음악 같은 전통적인 분야에서 재능을 인정받는 다수의 청소년을 연구함으로써 모든 아이에게 유익한 점을 많이 배울 수 있으며, 이 배울 점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아이에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흥미진진한 연구 주제임에 틀림없는데,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연구 결과들도 당연한 듯 보이지만 일견 흥미롭다. 이 책은 재능을 소중하게 여기고 최대한 발전시키는 사회에 사느냐, 아니면 잠재력이 정체하고 실현되지 않는 사회에 사느냐 여부가 아이들에게 막대한 차이를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 청소년들의 동기는 또한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공부하고 연습하는데 기울이는지는 대부분 부모가 제공할 수 있는 물질적이고 감정적인 지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몇 가지 오해도 바로잡는다. 예를 들어, 숙련된 운동선수, 예술가, 장인, 과학자들은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는 게 매우 즐겁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즐거움과 재미에 관한 이야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 능력을 최대치까지 활용하는 이들은 과제의 어려움과 도전을 즐기는 것이지 재미있는 것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은 즐거운 경험과 마주칠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겁먹었을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다른 이들은 무의미하다고 위험하다고 느낀 경험을 매우 즐거운 것으로 바꿔놓은 데 종종 성공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주특기인 몰입이나 주의집중, 즉, 이른바 플로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하고 있다. 한 사람의 주의 구조를 재능발달의 열쇠로 간주하는 하는 이유는 인간이란 주의를 집중하지 않고는 어떤 새로운, 혹은 어려운 과제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플로와 재능발달 측면에서 어떤 십대가 소질 있는 영역에 몰입해 플로를 경험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을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향상시킬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걸 즐길 것이며 결국 이러한 재능 계발은 내적으로 보상을 주게 될 것이라 언급한다. 그리고 하버드대 교수 하워드 가드너가 정의한 대로 이 책도 역시 재능이 개인적 특성과 함께 문화 영역(특정 범위의 성과를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규정하는 규칙 체계), 그리고 사회 분야(어떤 성과를 가치 있게 여길지 아닐지 결정하는 임무를 가진 사람들과 제도로 이뤄짐)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어떤 청소년이 해당 영역(수학에서 알고 있는 공리, 규칙, 절차)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관계와 수량의 정신적 조작에 능숙하다 해도 재능 있는 수학자가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이의 성과가 일반적으로 그 문제에 관해 사회로부터 전문 지식을 인정받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어떤 영역에서 명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특성은 생물학적으로 획득했을지 몰라도 그것을 재능으로 승인하는 것은 문화의 특정 요구나 가치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구축된다는 것이다. 탁월한 과학자 소질을 지닌 아이는 과학 영역이 제대로 발달하고 그 분야의 게이트키퍼들이 활발하게 새로운 인재를 찾고 있는 문화가 아니면 그 재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이 책은 또한 연구 대상이 된 학생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석 결과를 제공해주고 있다. 여기서 눈길을 끌었던 내용들이 많은데, 이를테면 수학 영재들은 표준검사에서 높은 수학적, 언어적 능력을 보여준 데 반해, 전체 학업 성적은 과학에 뛰어난 또래에 비해 다소 뒤쳐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마도 과학이 언어적이면서도 수학적인 조사 양식의 융합을 수반하지만, 수학은 재능에 대한 보상을 누리기 위해 언어적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 해석한다. 또한 가정 내에서의 정교한 언어 구사, 부모의 독서, 그리고 교육을 향한 광범위한 문화적 태도는 모두 아이가 학교 환경에 잘 적응하는 데 강한 영향을 주며,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재능 발달을 위해서는 더 필수적인 요소인데, 재능 발달을 가치 있게 여기는 부모는 흔히 재정적으로뿐만 아니라 사생활 및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한 효용성 관점에서도 막대한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부모의 소득과 학력은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초기 혜택이 지나고 나면 고등학교 시기의 재능 발달에는 더 이상 기여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이어서 재능 있는 십대들이 자신과 동성인 평범한 또래보다 성적 태도에서 좀 더 보수적이고 성적 매력에 대한 자신감이 덜하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이러한 보수적인 성적 태도의 가치는 수학, 과학, 음악, 운동, 미술에 더 많은 에너지를 허락한다면서 재능 있는 십대들이 보여주는 성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억압의 징후라고, 또는 20세기의 가공할 망령이라고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또래의 에너지와 시간을 점령한 인위적으로 불타오르는 성적 관심에 끊임없이 참견해야 할 필요에서 해방된 아이들이 바로 재능 있는 십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일반적으로 재능 있는 아이들은 지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주변 세계로부터 얻는 정보를 적극 수용하며, 그와 동시에 뛰어나게 잘하려는 유난히 강한 욕망을 표출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참아내며, 다른 이들을 이끌고 사건에 반응하기보다 통제하기를 좋아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자신의 업적을 내보이고 타인의 관심을 얻으려는 커다란 욕구를 갖고 있으며 평범한 십대들보다 자기 자신의 가치나 평가에 의문을 갖는 경향이 덜하다고도 언급하고 있다. 이런 속성의 핵심은 재능 발달과 관련해 인지적, 동기적, 사회적 도전은 물론 특화된 분야의 도전에 아주 적합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능 있는 십대들은 평범한 또래보다 자신을 약간 덜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데, 아마도 재능 계발이 요구하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일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또 하나 눈길을 끌었던 내용은 재능 있는 학생이 더 많은 수업을 듣지만 수업 외에는 일반적인 학생들과 같은 양의 시간을 공부하는 데 쓰기에 좀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것 같다는 것과 재능 있는 학생들이 시간이 날 때 일반적인 학생들보다 TV를 더 많이 보는 편이란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이 재미있는데, 평범한 집단에 대한 데이터는 1970년대 말에 수집했고, 재능 있는 집단에 대한 데이터는 1980년대 중반에 수집했기에 그 동안 VCR이 널리 보급된 덕분에 짐작하건대 과거 청소년들보다 TV를 더 많이 시청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어서 일반 청소년들은 재능 있는 청소년보다 2배나 더 자주 집안 일을 하며, 재능 있는 십대들은 평범한 십대들보다 일주일에 약 5시간 더 많이 혼자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또한 재능 있는 학생들은 수업, 공부, 독서, 운동과 게임에 참여할 때 평범한 또래보다 비교적 높은 수준의 집중을 보고했지만, 집안일, 사교, TV 시청처럼 부담이 덜한 활동에서 그들의 집중 수준은 평범한 학생들보다 한참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확실히 재능 있는 십대들의 주의 구조는 과제의 복잡성에 따라 다양해서 필요할 때는 상승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하락한다는 점에서 한층 효율적이라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특히 십대는 혼자 있을 때 슬퍼하고 불안해하며 따라서 가능한 한 고독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과학과 수학에서의 진지한 연구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혼자 있는 긴 시간을 견디는 게 매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은 관련 정보를 처리하는 인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혼자 작업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포기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물리학, 화학, 생물학, 수학의 고급 수준에 도달하면 이들 영역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학생들이 해당 과목에 노출되는 시기에는 이런 내적 보상을 거의 얻을 수 없다는 게 문제라 한다. 대신 대부분의 학생은 심지어 재능을 타고난 학생들조차 과학과 수학을 엄청난 불굴의 끈기로 맞서야 하는 어렵고 불가사의한 과목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교사들은 비일비재하게 내적 동기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과학에 통달하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분명히 재미도 없다는 믿음을 영구화하는데 일조한다고 언급한다. 이렇게 십대가 수학에 몰두할 때는 흥분을 경험하는 게 더 어려우며, 소질을 타고난 몇몇 학생은 수학이 너무 추상적이고 실생활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고 불평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의 추상적 아름다움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청소년들에게도 그 내적 보상을 경험할 수단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컴퓨터라 한다. 거의 모든 수학 영재는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프로그램 언어를 발명하고, 게임과 유용한 프로그램을 설계하면서 엄청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과학과 대조적으로 음악, 운동, 미술은 우수한 플로 활동이라 한다. 이것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내적으로 보상을 준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집중된 몰입을 바로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어쨌든 재능을 실행하는 게 지루하거나 스트레스를 주기만 한다면 청소년들은 절대 그 소질을 계발하지 않을 것이라 언급한다. 수학과 음악,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유사한 영역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거기서 마스터해나가는 것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과정 자체가 매우 만족스러울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러나 학습의 다양한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어른은 흔히 재미가 최고의 교사라는 사실을 잊는다고 말한다. 어떤 과목에서 십대들의 흥미를 끌려고 할 때 우리는 학습을 위한 지렛대로서 경이감과 즐거움을 사용하기보다 지식의 장래 유용성을 강조하거나 당근과 채찍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중반부 이후에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 하나가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통합과 분화의 논리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통합은 반드시 순간적인 감정적 만족감으로 발현되고, 분화는 불협화음의 감정이나 미래의 행동과 변화를 요구하는 도전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통합된 교실은 응집력 있고 안정적이며 그 구성원을 응원하지만, 분화된 교실은 좀 더 개인주의적이고 특화되어 있으며 경쟁적이라는 말이다. 저자의 주요 이론은 이러한 통합과 분화가 적절히 조화된 복합적인 체계가 최적 경험과 재능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통합된 체계는 단기적 성장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지만 이런 시스템은 닫혀 있고, 미래의 변화를 참작하지 않는다면 정체를 가져올 것이라 언급한다. 특히 과학과 수학은 통합 없는 분화의 위험에, 미술과 음악, 체육은 분화 없는 통합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술 영재들이 미술을 하고 있을 때나 음악 영재들이 음악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수학과 과학 영재들은 수학이나 과학을 하고 있을 때 덜 행복하다고 말했다는 것이 그 증거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육자와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 중 하나는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해서 강화할 필요가 있는 입장을 구축하는 것이라 한다. 결과적으로 어떤 십대도 즉각적인 외적 보상과 장기적인 외적 보상 모두 없이는 재능을 발달시킬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아동기 이후부터 줄곧 즉각적인 외적 보상에 중요한 타인(부모, 교사, 또래)의 인정, 칭찬, 응원이 있어야 하며, 어떤 십대도 재능 영역에서 작업하는 것을 즐기지 않으면 재능을 발달시킬 수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가족 지원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재능 있는 아동의 양육 부담은 단지 한 명의 부모가 감당하기에는 통상적으로 너무 버겁다고 말한다. 게다가 아이로 하여금 그 재능을 집요하게 계발하도록 영감을 주는 데 필요한 모델링은 추정컨대 두 명의 상호 보완적인 부모가 최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떤 가정 환경이 청소년들에게 최적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늘날 불과 10년 전하고 조금 다른 대답이 나오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부모로부터의 분리와 독립에 대한 청소년들의 점증하는 욕구라는 전통적 사고는 부모와의 재조정된 상호 의존을 통해 십대들이 더욱 유능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성장한다는 개념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발달은 점차 자율뿐 아니라 부모하고의 애착과 연계가 높이 평가 받는 환경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말이다. 앞서 언급한 통합과 분화 관점에서 통합적인 동시에 분화되어 있는 가정 환경은 너무나도 많은 정신적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보통은 가능한 한 어떤 때라도 피하게 되는 공부 같은 진지한 활동을 아이들이 즐기게끔 도울 것이라 말한다. 고도로 어려운 도전 활동을 즐기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양의 심리적 에너지를 요구하게 되는데, 십대에게 지지를 보내고 한결같다는 느낌을 주며 자녀가 열심히 하고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도록 독려하는 가족은 도전 과제를 찾고 그것을 정복하는 주의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방향을 학교 쪽으로 틀고 있다. 우리 시대 대부분의 학교에서 표준화한 교과 과정의 불행한 부산물은 교사의 역할이 정보 기술자로 하락했다는 것이라 언급한다. 교사들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근면하고 창의적이기까지 한 지식 공급자는 될 수 있지만, 현역 수학자나 과학자나 음악가와 같이 해당 영역에서 작업하는 것을 즐기는 개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실전과 공식적 가르침 간의 균열은 교육 기관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 한다. 수세기 동안 재능 발달의 지배적 모델은 현역 스승과 견습생 제자 사이의 상호 관계 수립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 제도는 단점도 있지만 중요한 혜택이 있다고 강조한다. 즉, 이 제도는 수련에 부적합한 이들을 일찍이 판별하고 능력 있는 제자에게는 기술에 헌신한 스승을 모방할 수 있는 기간을 하사했으며, 아울러 스승은 제자들의 싹트는 자아에 심오한 영향을 주고, 대부분의 경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전통에 의해 제기된 문제에 대처하도록 그들의 삶을 개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스승의 역할이 한 분야의 현역에서 정보 전달자로 크게 진화해왔기 때문에 근대 학교 교육의 기풍은 바로 이런 확장되고 변혁하는 관계의 발전을 무너뜨렸다고 지적한다. 대신 근대적 교과 과정은 심지어 예술에서까지도 정보의 전달을 몰개성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다양성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가 매우 특화되고, 프로그램화하고, 간결해졌다는 것이다. 독특한 개인의 다양한 재능을 천천히 함양하는 게 아니라 대량의 학습자에게 사실들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을 강조하는 표준화한 교과 과정 안에서 교사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목표는 결국 탈 인격화한다고 말한다. 이는 외적인 대규모 성과 지침, 획일적 서비스 태도, 그리고 특정 인물의 관심사를 전달하는 것으로부터 교과 과정의 차단을 강조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교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데이터를 제시한다. 재능 있는 아이들과 평범한 아이들 모두 교실에서는 주의 집중이 상당하지만 동기는 꽤 낮다고 한다. 의무적인 수업은 학생의 기술 숙련도와 심리적 행복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다른 지표를 추월하고 침체시키는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제도권에서의 역할을 뛰어넘는 역량을 갖춘 교사라 지적한다. 다음 단계의 도전에 맞서도록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한편으로는 완벽함을 추구하다 좌절했을 때 거의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학생의 성마른 성향을 참아주는 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교사의 기술은 주로 추상적 상징체계를 학생들에게 중요한 문제로 변모시키는 데 달려있다고 언급한다. 이런 교수법을 특별히 구별 짓는 것은 타이밍과 속도감, 개입할 때와 빠질 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실수를 개선시키는데 도움을 줄 정보로 변모시키는 방법에 대한 이해라 말한다. 또한 불안정한 아이들의 새롭게 부상하는 욕구를 인식하는 비범한 능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이 지식 추구를 즐기지 않는다면 학습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는 순간 한쪽으로 치워질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교사들이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뿐 아니라 학습의 즐거움에 불을 붙이는 방법을 확실히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이 진정으로 교육받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기저기에서 현재의 교육 관행을 질타하고 있다. 지식을 논리적 요소로 분해하고 가능한 한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정보를 제시한다는 목표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교육가들이 집착하는 것은 학습자들이 그걸 어떻게 경험할지와 무관하게 특정 이론의 개요를 쫓는 일이라면서, 한편으로 상업 미술과 방송 편집의 영향을 받은 교과서는 가장 현란하게 시선을 끄는 방식으로 정보를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고 언급한다. 알록달록한 보충설명, 온갖 서체, 생생한 사진이 학생들로 하여금 그 내용의 일부를 흡수하길 바라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다수의 필사적인 교사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개인기에 호소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그 뒤에 더욱 도전적인 방법을 바로 바로 내놓지 않으면 곧 학생들의 관심이 다시 떨어져나갈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의 교육에는 학생들로 하여금 계속 배우고 싶게끔 만들고 갈수록 힘든 지적 도전을 감행하게끔 하는 내적 동기에 대한 건전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내적으로 보상을 주는 학습이 성장과 숙달을 경험하게 하고, 자기 능력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는 느낌을 창출한다면서 말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저자의 연구결과를 종합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연구가 밝혀낸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다른 연구자들도 보고했거나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과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학문적으로는 통합과 분화의 복합성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고 말한다. 즉, 심리학자와 교육자들이 인위적으로 떼어서 반대편에 서게 했던 성취욕 대 순수한 호기심, 협소화한 집중 대 새로움에 대한 개방성, 외적 동기 대 내적 동기 등 많은 반의어들이 재능 있는 사람과 그들의 환경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 말이다. 결국 우리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심리적 복합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언제나 아이가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발견한 다음, 점진적으로 어려운 도전을 던져주면서 자연스러운 흥미와 호기심을 알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확장시켜주는 것이 바로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제공해주면서 그들 스스로 자기 주도적 학습과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안착시켜주는 일이라 언급한다.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지만, 그 결과는 생각보다 너무 상식적인 것이었다. 만약 현 시대를 기준으로, 또 대상 범위를 우리나라와 같은 아시아권 학생들로 넓혀보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