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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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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가난과 삶. 지금도 전세계의 3분의 2인 40억 인구가 연 소득 3천달러 이하의 가난 속에서 힘겹게 생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굶주림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이런 환경 속에서 살고, 고통을 받고 있다. 실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경험이다. 우리는 대부분 굶주림을 잘 모르는 세대지만, 바로 앞 세대가 굶주림과 전쟁으로 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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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가난과 삶.

지금도 전세계의 3분의 2인 40억 인구가 연 소득 3천달러 이하의 가난 속에서 힘겹게 생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굶주림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이런 환경 속에서 살고, 고통을 받고 있다. 실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경험이다. 우리는 대부분 굶주림을 잘 모르는 세대지만, 바로 앞 세대가 굶주림과 전쟁으로 힘들었기에, 간접적인 경험으로 조금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이런 경험이 전무하기에, 배고픔과 가난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어떤 사회던지 가난은 남아있고, 그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느 나라든 빈민의 삶이란 비슷한 찢어지게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하루 하루를 걱정하는 삶이겠지만. 저자가 직접 경험하면서 느낀 바를 사실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아직까지 지독한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한번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웰은“위건부두로 가는 길”에서는 관찰자의 모습이었다면, 이 글에서는 그의 실제 체험을 기록한 글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라보는 자신 그리고 가난과 세상을 차분히 보여준다. 어쩌면 이 글도 러포르타주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파리에서 가난한 이들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여관과 선술집일 것이다. 말이 여관이라고 해도 집단 합숙소 비슷한 상황이고, 선술집은 싸구려 술집이기에 인간의 본 모습을 보여 준다. 술에 취한 사람은 체면이나 양심은 잠시 던져 버린다. 선술집의 “외상은 죽었다.” 이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우리도 이 비슷한 “외상 사절”보다는 좀 더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이 막바지에 다다른 사람들에게 외상이란 곧 공짜를 의미하는 것 이기에, 아니면 언제 저 세상으로 갈지 누가 알겠는가?

 

파리빈민촌은 다들 빈민이기에, 별난 사람들의 집합소라고 생각했지만, 그들도 우리들의 모습일수도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부(돈)는 사람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가난은 이들을 일반적인 행동 규범에서 해방시킨다. 더 이상의 나락은 없을 것이다. 가난의 느낌을 “온 몸으로 번지는 공포와 기쁨이 반반 섞인 그 전율”이라 말한다. 가난이라면 정말 생각도 많이 했고, 평생을 두려워해왔고, 조만간 닥쳐온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이제야말로 진짜 밑바닥까지 왔다고 깨달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의외로 기쁨에 가까운 안도감이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 굶주림과 배고픔은 우리를 더 이상 참다운 인간으로 아니 인간다운 모습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배고픈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싸구려 여인숙과 노숙에서의 생활 그리고 사람들. 재산을 가지지 못하는 이들, 마직막까지 가진 모든 것들은 전당포로 보내고, 그들의 모든 것들을 하나 하나씩 맡긴다. 결코 찾지도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지만, 언젠가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오늘 하루 아니 한끼를 해결한다. 우리에게는 남아 있는 것은 이제 이 초라한 몸과 걸친 옷 그리고 굶주림이다. 배고픔은 사람을 완전히 무뇌로 만들어, 동물의 본성만을 남긴다. 더 이상 맡길 것이 사라지면 노숙으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다 어렵게 얻은 호텔의 접시딱이 생활, 당시 파리의 호텔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한마디 “호텔의 주방은 내가 알거나 상상했던 어떤 곳과도 달랐다.” 밖에서 보는 것과 자기가 직접 속했을 때, 그것도 일꾼 중에서도 가장 하급인 접시닦이는, 최하위이다. 직위가 너무 낮아서 책무의 불이행 등으로도 고소 당하지 않는 위치이다. 그를 기다리는 끝없는 일은 몇 리터의 포도주를 마시고 큰 손상을 입기 전에 술기운을 땀으로 빼내는 능력은 이들의 생활이 주는 보상의 하나이다. 나름 웨이터들은 꿈을 꾼다 언젠가는 나도 돈을 모으면 저 사람(손님) 흉내를 낼 수 있을 거야. 그에 비해 요리사는 예술가이지만, 그의 예술은 청결에 있지 않다.

 

주위에 대한 무심함과 고됨을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살인으로 인한 소란으로 잠을 낭비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우리는 스스로 근사한 세상의 근사한 주민이 아니라 궁색하고 비참하게 취한 저임금 노동자라는 것을 인식했다. 삶의 피곤은 모든 상황에서 단절시킨다. 모든 비천한 일은 노예적이고 기술이 없다 그리고 딱 살아있을 만큼을 보수로 받는다. 그러기에 다른 노력을 기울일 힘과 관심이 없다. 무익한 노동을 영속시키려는 이런 본능이 근본적으로는 대중에 대한 공포일뿐이라고 믿는다. 매일을 생존을 위해서만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은 인간을 인간임을 잃어 버리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자유는 자신들의 자유에 위협이 된다고 상상하는 것 밖에는 없다. 하지만, 이런 삶들이 있기에 사회는 잘 짜여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겉으로는 절대로 드러나서도, 존재하지도 않는 삶이다.

 

가난과 굶주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속의 사람들. 러시아인 웨이터 보리스의 허세와 러시아 망명단체의 사기. 구두쇠 루콜과 유대인 그리고 폴란드인 이야기에서 쓴 웃음을 우리에게 준다. 또한 프랑스인들에 대한 편견, 좋은 음식과 맛을 알아본다는 생각 하지만 그들 또한 속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 것 등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영국으로 돌아 오지만, 프랑스의 경험으로 영국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사람들을 감싸는 옷은 강력하다. 우리는 그의 옷으로 그를 파악한다. 흔히 우리의 속담에 잘입은 거지 동냥도 잘 받는다는 말처럼, 파리를 다녀온 뒤에는 런던의 모든 것이 매우 괴상하게 보였다. 영국인 부랑자들은 비천하고 질투하는 자칼의 성격을 가진 것 같다. 이것은 아마, 불결한 모조식품으로 생활한 나머지 그는 정신과 육체마저 열등한 재료로 구성되어 버린 것 같다. 그의 인성을 파괴한 것은 배고픔과 영양실조 일뿐이지 타고난 악덕이 아니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길거리화가는 걸인이라는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며 걸인이라고 해서 무슨 가책을 느끼거나 고민을 하는 것을 거부했다. 구걸은 합법적이고, 걸인은 무익한 직업, 기생충이지만, 상당히 무해한 기생충이다. 하지만, 부랑인이라는 망령은 계속 이어진다. 문학작품에서 부랑인들은 더럽고, 게으르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안 좋은 것은 거의 다 가져다 부친다. 왜, 그들은 이런 삶을 경험하지도, 알지도 못하는데. 왜란 이유는 필요가 없는 걸까? 그들이 왜 지금 이 상황까지 왔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거의 처음부터 이러했다. 자신들과는 먼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자선에 기대 사는 노숙의 삶이지만, 자선을 받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은인을 미워한다. 받는 사람들을 위한 자선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자선이기에 어떻게 보면 그들이 주인공인지도. 그래도 안주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곧 생존의 길이니. 우리의 눈에도 많이 보이는 노숙자들 그들에게 밥과 옷을 제공하는 종교, 봉사단체의 자선 행위. 사진이 필요한 사람들은 무슨 무슨 단체의 현수막 아래에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과 대조를 이룰 지면을 장식할 좋은 장면을 얻기에 주력한다. 이런 자선보다는 자활이 중요하지만 당장의 배고픔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에 이런 밥도 고마운 것이다. 자활의 길은 멀고, 험하다.

 

 부랑인의 삶은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함께할 사람이 없고,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수가 없다. 성적 굶주림, 어쩔 수 없이 강요된 게으름, 배고픔, 불편함이 모든 것들을 견디어 내야 한다. 과연 해결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가? 작은 해결책으로 구빈원 등에 작은 농장이나 채소밭을 운영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일을 해서 음식을 구할 수 있게 하라. 일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면 어느 정도의 가난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한다. 아니 굶주림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한 마디 던진다. “가난의 언저리까지 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조금 가난하게 살았다. 우리 앞의 세대는 우리보다 더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가난에서 벗어 났다고 생각하고 싶어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가난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이기에 가난을 알지 못한다 아니 외면하고 싶다. 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현실은 이 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의 상층과 하층. 일을 해봐야 밥만 겨우 먹고 사는 저임금,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삶을 연명하는 젊은이들의 희망의 사라짐, 노숙자들이 늘어나는 현실. 자살과 범죄는 증가하고, 빈민은 증가하고 있고, 젊은이들은 88만원 세대라는 유행어처럼 희망을 잃어 버리는 시대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버틸만하지 않는가? 기회는 있다 도우면서, 조금 줄이면서 서로서로 나누면서 행복하게 살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한다. 이들은 남이 아니다. 나의 가족이며 형제이며, 친구들이다. 나누어 사는 삶, 내가 약간 적게 쓰고, 내가 약간 더 베풀고,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삶이 그렇게는 멀지가 않다.

 

오웰은 대부분 우리에게 문제를 던져 준다. 그리고 그 문제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해답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번에 그가 던진 화두는 ‘가난’이다.

YES마니아 : 골드 p*******t 2011.03.30. 신고 공감 10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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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그것이 궁금했다!
"밑바닥 그것이 궁금했다!" 내용보기
'오웰이 1928년부터 1932년까지 5년여 동안의 밑바닥 체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이다.'    '밑바닥 체험'이라는 어휘에 대해 2가지가 궁금해졌다.    밑바닥 체험은 무엇일까?  밑바닥 체험을통해 난 무엇을 느끼게 될까?  그에대한 궁금증은 쉬이 풀렸다. 내용자체가 소설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 해주면서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식이기에 단숨에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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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이 1928년부터 1932년까지 5년여 동안의 밑바닥 체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이다.'

 

 '밑바닥 체험'이라는 어휘에 대해 2가지가 궁금해졌다.

 

  1.  밑바닥 체험은 무엇일까?
  2.  밑바닥 체험을통해 난 무엇을 느끼게 될까?

 그에대한 궁금증은 쉬이 풀렸다. 내용자체가 소설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 해주면서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식이기에 단숨에 술술 읽힌다.

 

 1.그는 파리에서는 '접시닦이' 영국에서는 '부랑자' 라는 이름의 밑바닥 체험을 했다.

 

 2.그의 체험에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이야기와 사건에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체험을 자세히 묘사함과 동시에 그가 느끼고 체험했던 경험을 토대로 현사회를 비판하고 사회적 구조에대한 변화를 모색해야한다는 그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의 체험은 대공황과 맞물린 시기인 1928년~1932년이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걸인이나 부랑자의 모습이 아니라 신사모에 양복을 곱게 차려입은 위의 인물들일 것이다.

 

 '이제는 돈 있는 척하고 꾸미는 일도 끝이 났다.'

 

 '내가 가방째 잡히려는 옷가지는 20파운드넘게 주고 산 것이고 상태도 양호했다.10파운드의 값어치는 있다고 여겼고 거이에 4분의 1이면 250프랑에서 300프랑이었다.못해도 200프랑은 받으려니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고 기다렸다.'

 

 전당포에 옷가지들을 건네주고 70프랑을 받으며 거절당할까봐 따지지도 못하고 돌아섰다는 그의 이야기에서 말해주듯 영국인이였던 그는 이런 젊잖은 모습이었을거라 상상하며 읽었다.

 

 프랑스에서 그와 함께 한 친구는 '보리스'라는 인물로 아주 긍정적인 성향을 지닌 자이다.

 보리스와 함께하면서 옷꾸러미를 전당포에 맡기고, 함께 굶어가며, 함께 일자리를 찾아 헤메며, 보리스가 호텔에 취직했을땐 음식을 훔쳐다 그에게 먹이고 그에게 접시닦이 일자리를 구해준다. 그 접시닦이 일을하면서 그는 호텔에 존재하는 정교한 신분 제도에대해 낱낱이 서술하고 있다.

 

 

 그는 '키피준비실 종사원'으로 호톨 직원 중에 가장 밑바닥이었으며 누구나 반말을 하고 욕을 한다. 그리고 호텔에서 벌어지는 요리사가 음식을 다룰때 비위생적으로 다루고 요리시간을 단축하기위해 주방을 더럽히는 그러한 세세한 묘사 속에 그는 말한다.

 

 ' 접시닦이 그들의 일자리는 미래의 전망을 주지 않고, 강렬하게 피로하게 하며, 또한 동시에 기술이나 중요성도 갖지 않는다. 이런 일은 튼튼한 여자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성질의 일이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끊임없이 서두르고, 장시간 노동과 탁한 공기를 견디는 것이다. 그들은 이 생활을 탈출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급료로는 한 푼도 모을 수 없고, 일주일에 60시간에서 100시간의 노동이 다른 일에 훈련할 시간을 남겨주지 않기때문이다. 그들이 희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야간 경비원이나 화장실 청소원 같은 약간 덜 힘든 일을 찾는 것이다.' -p102

 

'이것이 접시닦이의 도덕에 관한 나의 첫 교훈이었다. 이때 양심의 가책을 느꼇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 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왜냐하면 큰 호텔은 종업원에게 아주 무자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이 필요한 만큼 고용하고 해고하고 또 성수기가 끝나면 모든 곳에서 종업원의 10퍼센트나 그 이상을 해고한다. 또 그들은 불시에 그만두는 사람을 대체하는 데도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왜냐하면 파리는 실직한 호텔 종업원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p78

 

현대의 접시닦이 = 장시간의 노동과 최저 급료, 불안한 일자리 = 비정규직 근로자들, 일용직 근로자들

 

'접시닦이는 노예이고, 대개는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일을 하는 낭비되는 노예이다.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그에게 계속 일을 시키는 것은 그가 여가를 얻을 경우에는 위험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때문이다. 그리고 마땅히 접시닦이의 편을 들어야 하는 교육받은 사람들은 접시닦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그 결과로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묵인하고 있다. 내가 접시닦이에 관하여 마하는 것은 그의 사례를 고찰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무수한 유형의 노동자에게도 이것은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p158

 

영국에서 그는 보조와 함께하며 걸인 생활을 하게된다.

걸인의 사회적 지위에대해 그들도 평범한 인간이라 말하며 그들은 일을 하지 않기에 경멸할 만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에대해  본질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

 

일이란 무엇인가?

걸인은 왜 경멸당하는가?

부랑인이 왜 존재하는가?

 

 이것에대한 그의 결론은 이렇다.

'다만 그는 부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직업을 선택하는 실수를 한 것뿐이다.'

'그들도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만 못한 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에서 빚어진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의 생각은 저자의 생각과 다르다.

 물론 그들의 생활방식에서 빚어진 결과라는덴 동감하나, 그들이 그러한 생활 방식을 왜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또한 오웰이 경험한 시대에는 세계적인 대공황을 겪는 시기였고 그의 아이들이 악습을 되물림 받았을 수 있다. 또한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지금의 걸인들을 봤을때 삶을 포기하고 그저 버려진 동물과 같은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키우다 버려진 강아지들은 사람이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을 알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꼬리치며 졸랑졸랑 따라가면서 귀여움을 떤다. 그러면 그 모습이 가엽고 안쓰러워 먹을 것을 준다. 그럼 그걸로 된거다. 그럼 그 강아지는 또 그자리를 지키며 다른 먹을 것을 가진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생을 연명한다.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현대에 청년 실업률이 높은것은 사실이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중소업체에서는 한국직원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들은 몇개월 일하다가 힘들어 버티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소업체의 경우 대기업에비해 근무여건이 아주 열악하고 복지또한 만족할만하지 않다. 말처럼 주5일을 한다는 것도 근무하다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럼 또 더 나은 근무조건을 찾아 이리재고 저리재다 결국 근무한 경력은 없고 나이는 들고....이러한 상황이 물론 전체를 대신하진 않겠으나 대기업의 높은 경쟁률에비해 중소기업에 지원률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가 제기한 특별한 악폐 3가지에대해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방법들에는 동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첫째, 배고픔

둘째,여자와의 접촉이 완전히 단절된다는 것

셋째, 강요된 게으름

 

 여기서 두번째 여자와의 단절로 동성애와 가끔 벌어지는 강간 사건에대해선 제일 걱정스러운 부분이기도하다.

우리나라의 걸인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영등포역이나 서울역에는 알게모르게 이들에게 당하는 강간 사건에 들은 바가 있었다. 특히 영등포역에는 백화점이 많이 입점되어있다. 유통업계는 여성들이 가장 많이 근무하는 곳중에 하나인데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퇴근하는 길에 걸인들에게 강간당하거나 뒤따라오는 일등에대해선 이곳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을 갖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중에 하나라는 것을 본다면 이들이 사회에서 사악한 존재라고 단정짓고 범죄자취급을 할 것이 아니라 저자의 말처럼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지루하고 생기없는 부랑인에서 자존심 있는 인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대한 고민과 함께 사회적인 제도를 마련하되 세금 부담이 없이 부랑인의 지위를 개선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먹지 못하고 놀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에게 자기가 먹을 양식을 스스로 재배하게 한다는 해답이 자동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p276

 

'통틀어 백 프랑을 가지고 있으면 겁에 질려 공황에 빠지기 십삽이다. 그런데 3프랑밖에 없을 때는 아주 무관심해진다.'

 

'가난할 때 커다란 위안이 되어주는 기분은 또 있다. 아마 돈에 쪼들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했으리라고 믿는다.그것은 이제야말로 진짜 밑바닥까지 왔다고 깨달을 때 느껴지는 기쁨에 가까운 안도감이다. 거덜난다는 말을 자주 해왔지만 이게 바로 거덜난 거이고 그런 판국인데도 견뎌내고 있다. 이런 기부은 많은 걱정을 덜어준다.'-p27

 

나또한 이런 안도감을 느껴본적이 있다. 이것이 밑바닥이라고 확신했고, 더이상 잃을 것이 없었기에 두려움이 살아지자 오히려 편안했다. 그리고 남은 건 하나였다. 그것은 '이상과 현실간의 타협' 이었다.



c*****d 2010.04.15. 신고 공감 7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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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부랑자의 자존심'을 걱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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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 버스 터미널은 나와 인연이 깊다. 고향이나 여행을 갈 때 자주 이용했고 군복무 시절에도 꼭 거치는 정거장이었다. 역 앞 횡단보도는 늘 혼잡하다. 가는 버스, 서는 택시, 뛰는 사람으로 뒤엉켜있다. 그 와중에 횡단보도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구걸하는 부랑자들이다. 처음 상경했을 때는 한 사람이었는데 몇 년 전 두 명으로 늘었다. 한 사람은 서서, 또 다른 사람은 찬 바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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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 버스 터미널은 나와 인연이 깊다. 고향이나 여행을 갈 때 자주 이용했고 군복무 시절에도 꼭 거치는 정거장이었다. 역 앞 횡단보도는 늘 혼잡하다. 가는 버스, 서는 택시, 뛰는 사람으로 뒤엉켜있다. 그 와중에 횡단보도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구걸하는 부랑자들이다. 처음 상경했을 때는 한 사람이었는데 몇 년 전 두 명으로 늘었다. 한 사람은 서서, 또 다른 사람은 찬 바닥에 앉아 찬송가를 들으며 구걸한다. 매번 그들을 볼 때마다 "돈을 줘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만 한 번도 준 적이 없다. 늘 마음만 불편하다.

 

그러던 가운데 건대역에서 '동서울터미널의 부랑자'를 보았다. 벌이가 안 되거니 하고 무심히 지나가려 했지만, 몇 년 사이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실물 경기 악화와 지독한 경쟁이 그들을 거리로 몰았을 테다. 마침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보며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조지 오웰 몸으로 글을 쓰다 

 

조지 오웰은 영국의 명문사립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이듬해 미얀마로 간다. 그는 그 곳에서 5년 간 식민지 경찰로서 일한다. 하지만 억압자로서의 위치가 그에겐 고통이었다. 후일 그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나는 속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청난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그는 결국 식민지 경찰을 그만뒀고, 귀국해서는 사회적 약자인 하층 노동 계급에 관심을 둔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그가 1928년부터 1931년까지 파리와 런던을 돌아다니며 영어 교습, 접시 닦이, 부랑자 생활을 하며 몸으로 쓴 글이다. 1929년 미국 대공황 전후 유럽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파리의 70년 전 모습과 한국의 오늘날은 비슷한 점이 많다. 12시간이 넘는 근로시간, 겨우 입에 풀칠할 만큼만 주는 급여,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일을 해야 인정받는 억압적인 노동환경이 그것이다. "좁은 통로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서로 부딪히고, 고함을 지르고, 이 지하실에 처음 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치광이들의 소굴이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노동 환경이 얼마나 척박했던지 그는 노동자의 '욕설'을 변호한다. "실제로는 이 말다툼이 일의 과정상 필요한 일부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른 모든 사람들의 게으름을 비난하지 않으면 (작업) 속도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할 때 '성교하다'란 뜻의 "푸르트"말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열악한 근로환경에 대처하는 자세가 그들을 "악마처럼 분노하고 욕을 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빈곤의 무한 반복

 

그들이 분노한다고 해도 곧장 집단 행동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세상을 뒤집을 '상상'을 하기에 그들은 매우 지쳐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가시간이 매우 적다. "그들은 딱 살아있을 만큼의 보수를 받는다. 생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만일 접시닦이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한다면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처우 개선을 위해 파업을 했을 것이다." 마치 군대에서 간부가 별 이유 없이 병사에게 삽질을 시키는 것처럼, 고용인은 피고용인에게 생각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 생활을 탈출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급료로는 한 푼도 모을 수 없고, 일주일에 60시간 100시간의 노동이 다른 일에 훈련할 시간을 남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현장에서 스스로 '실험쥐'가 되어 변하는 심리상태를 섬세하게 기록했다. 그는 런던의 접시닦이 생활을 청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계속 일하는 사람이 파리의 음식점에는 수천 명이나 있다고 생각하면 과로할 때 자기연민의 좋은 치료제가 된다." 보통 사람들은 가혹한 업무에도 자기만 겪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일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다. 부당하다는 처음의 감정은 서서히 무뎌진다. 또 '천역자의 자부심'이란 모순이 드러난다. 천역자란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들은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미덕으로 삼는다. 만약 일손이 비었을 때 천역자는 늘어난 일거리에 화를 내기보다 1인 2역의 역량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마치 지독한 훈련에도 "힘들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군인처럼 자기의 본분이라 여긴다.

 

조지 오웰의 밑바닥 생활은 하루하루가 투쟁이다. 주머니 속 동전 하나까지 챙기며 겨우 버틴다. 그러다 결국 런던에서 부랑자로 떨어진다. 모든 부랑자 구호소는 하룻밤만 재워준다. 20여 킬로미터를 걸어 새로운 구호소를 찾아야 한다. 식사는 곰팡이 핀 빵에 마가린을 발라 먹으면 다행이고, 굶기가 일쑤다. 당시 노숙의 형태가 이색적이다. 첫 번째 강변 둑길 노숙이다. 런던의 법 상, 거리에서 밤을 새는 건 상관없지만 잠이 들면 불법이다. 다행히 강변 둑길은 예외다. 강 건너 편의 광고 조명과, 추위 때문에 잠자기가 쉽지 않지만 거리의 길바닥보다는 낮다. 두 번째 밧줄 의자다. "숙박자들이 긴 의자에 줄지어 앉은 다음, 담장 밖을 내다보듯이 앞에 쳐놓은 밧줄에 몸을 얹는다." 새벽 다섯 시에 관리자가 와서 그 밧줄을 풀어준다. 싸지만 숙박료도 내야한다. 세 번째 관 침대다. 관 같은 궤짝에 들어가서 잔다. 벌레들이 몸으로 들어오면 피할 데가 없어 힘들다고 한다. 관 침대는 우리나라의 쪽방의 조상 쯤 돼 보인다.

 

문제는 자존심이야, 멍청아 

 

그들에게 구호소를 더 많이 지어주고 시설도 개선하면 될까? 조지 오웰은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지루하고 생기 없는 부랑인을 자존심 있는 인간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가하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편안함이 증가한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또 동사무소에서 계절마다 잡초를 제거하는(런던에서는 건설에 쓰일 돌을 부수는 일을 했다) "일을 위한 일자리", 즉 단발성 일자리로는 그들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빈곤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일이 주어져야 한다. 즉, 경제적 지위 상승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경제 파국의 상황에서 '부랑자의 자존심'까지 챙기는 조지 오웰의 품이 넓기도 하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지도층은 새가슴이다.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는커녕 인턴을 늘려 취업을 유예시키고 소득별 차등 무료급식으로 무료급식을 받는 아이들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려 한다. 책은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대신 실천적인 자기 다짐으로 끝맺는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선거가 코앞이다.

 

h*********y 2010.05.0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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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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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볼때는 아름다운 대도시들. 그 이면에는 밑바닥 생활자들의 곤궁한 삶이 감춰져 있다. 삶의 리얼리티는 그곳에 있었다. 영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조지 오웰은 집을 나와, 파리의 밑바닥 삶을 체험한다. 인간과 삶에 대해서 너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국으로 돌아가서는 부랑자들과 함께 하면서 가난한 삶이 주는 불안과 좌절감. 타인들의 멸시와 수치. 갖가지 차별과 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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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볼때는 아름다운 대도시들. 그 이면에는 밑바닥 생활자들의 곤궁한 삶이 감춰져 있다. 삶의 리얼리티는 그곳에 있었다. 영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조지 오웰은 집을 나와, 파리의 밑바닥 삶을 체험한다. 인간과 삶에 대해서 너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국으로 돌아가서는 부랑자들과 함께 하면서 가난한 삶이 주는 불안과 좌절감. 타인들의 멸시와 수치. 갖가지 차별과 속임수를 본다.  

 

파리에서 벌레가 들끓는 방에서 살았던 그는 돈이 떨어져 옷가지를 전당포에 싸게 넘긴다. 돈이 생기면 당분간은 안심이 되어, 배를 불리고 돈을 벌 궁리를 하는데, 그가 사는 여관은 시끄럽다. 서로 싸우고 도망친다. 투숙객들은 하나같이 밑바닥 생활자들. 파리의 빈민굴은 별난 사람들의 집합소이다. 하수구 청소하는 남자, 엽서 장사꾼, 창녀, 술꾼. 그들은 타성에 젖어 있어, 반듯하게 살려는 노력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영어교습으로 근근이 먹고 살았던 그는, 일이 끊겨 러시아인 친구 보리스를 찾아간다. 전직 러시아 군인이었던 그는 웨이터로 생활하고 있다. 웨이터만 해도 하루에 몇 백프랑은 벌 수 있고, 여자친구도 사귈 수있다면서 행복을 꿈꾸는데, 웨이터도 아무나 얻기 힘들다. 보리스 또한 일이 끊겨 쉬고 있었는데, 며칠 굶은 상태였다. 그래도 그는 태평하다. 친구들이 도와줄거라면서 희망차게 말하지만 모두들 돈이 없다는 답변 뿐. 오웰은 러시아 공산주의자들과 만나 기사를 써주면서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러다가 호텔에 접시닦이로 취직한다. 욕먹으면서 일하는데, 이곳은 직업은 뚜렷한 계급주의였다. 지배인, 주방장, 수석 웨이터, 웨이터, 접시 닦이, 커피 준비실. 상하에 따라서 보수가 나뉘어져 있다. 커피준비실에 있던 그는 호텔 직원 중 가장 밑바닥이었고 누구나 그에게 반말을 했다.

 

시간에 쫓기며 좁은 구역에서 열기를 참아내며 일한다. 호텔은 손님들의 돈을 가로채기 위해 재료의 질을 떨어뜨렸고, 종업원은 호텔의 음식을 훔친다. 수위는 종업원들의 추가 급료를 훔치고. 돈을 벌면서 이들은 매주 술을 마시며 사회생활에 참여한다. 접시닦이는 노예같은 삶이었다고 회고한다. 딱 살아있을 만큼만 보수를 받는다. 유일한 휴일은 해고이다. 나중에 식당에서 일하다가, 영국인 친구에게서 정신박약자를 돌보는 일을 얻은 그는 일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떠난다.

 

그는 부랑자 구호소로 들어가게 된다. 교도소와 비슷한 곳이었다. 부랑인들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형편 없었다. 쇠락해져 있었고 일부는 병에 걸렸다. 그와 짝이 된 패디는 전쟁에 복무하다가 공장에서 일했고, 그뒤 실직하고 부랑자가 되었다. 그는 부랑인이라는 것을 지독하게 부끄러워했지만, 부랑인의 습관이 몸에 배었다. 이들은 자기연민에 빠져있다. 길바닥 화가인 보조를 알게 된다. 그는 가난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발을 다쳐서 길바닥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돈이 생기면 간이숙박소에서 지내고 떨어지면 노숙을 했다.

 

오웰은 부랑인 관리 실태 문제를 언급한다. 부랑인을 제대로 먹이지 않고, 하루만에 다음 구빈원으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18시간을 길 위와 감방안에서 보낸다. 부랑하는 순간 독신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열거하면서 점점 부랑습관이 고착화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d******m 2015.10.10.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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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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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대단한 소설이었다. 그전에 대단한 작가였다고 해야 할까.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려 주는 소설이다. 읽기를 잘했고, 읽지 않았으면 서운했을 뻔한 그런 소설로 올려 둔다.   이런저런 개인 사정으로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는 작가. 그 체험을 소설 형식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에세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절실한 경험들이 담겨 있다. 가난, 정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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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대단한 소설이었다. 그전에 대단한 작가였다고 해야 할까.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려 주는 소설이다. 읽기를 잘했고, 읽지 않았으면 서운했을 뻔한 그런 소설로 올려 둔다.

 

이런저런 개인 사정으로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는 작가. 그 체험을 소설 형식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에세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절실한 경험들이 담겨 있다. 가난, 정녕 지긋지긋하고 무서운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가난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 가난하게 살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의지, 그 마음을 활활 불태울 수 있을 정도로 격렬한 거부감을 확실하게 받는다.

 

그러나, 가난이라는 게 마음만 먹는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설에서도 작가는 말한다. 부랑인들이 부랑인이 되고 싶어서 부랑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고. 게으른 것도 아니고 무책임한 것도 아니고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단지 일자리를 얻지 못한 것뿐이라고. 일만 할 수 있다면,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아무도 부랑인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지구 반대편 이야기가 아니다. 백 년 전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사람 사는 게 어찌 이리도 비슷한 것인지,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소름 돋는 느낌이다. 다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것, 그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삶의 일부는 어쩌자고 이토록 유사한 모습인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어두워지고 있는 요즘. 개인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사회와 국가는 무엇을 갖추어 나가야 하는 것인지. 사회 체제를 믿어야 함에도 믿지 못해 스스로 삶의 수단을 준비하는 개인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청년은 청년대로 일자리가 없다고 하고, 노년은 노년대로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하고, 정년은 연장해야 하느니 당겨야 하느니 입장마다 다르고, 부모 세대로 대접 받고 살자니 자식 세대가 희생하게 되고, 자식 세대를 키우자니 부모 세대가 무너지고. 우리는 역사의 어느 지점에서 중요한 순간을 놓친 것일까.

 

작가처럼 나도 이제 한 가지는 짚어낼 수 있겠다. 오늘 가난한 모든 사람이 가난하게 된 데에는 그 사람에게 온전한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리라는 것. 내게도 시작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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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내가 돈에 쪼들리면서 확실히 배워둔 한두 가지는 짚어낼 수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구세군에게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YES마니아 : 로얄 j***6 2015.03.29.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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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을 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이 작품은 읽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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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하면 어떤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동물농장]? [1984]? ...?  개인적으로는 [동물농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 그의 작품중 가장 먼저 접했던 기억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들은 어떨까? 추측컨데 결국은 그의 '소설' 중 어떤 한 작품을 꼽을 것 같다. 이유라면 조지오웰은 비판정신이 살아있는 '소설가'의 이미지가 강하므로.  하지만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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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오웰하면 어떤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동물농장]? [1984]? ...?
  개인적으로는 [동물농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 그의 작품중 가장 먼저 접했던 기억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들은 어떨까? 추측컨데 결국은 그의 '소설' 중 어떤 한 작품을 꼽을 것 같다. 이유라면 조지오웰은 비판정신이 살아있는 '소설가'의 이미지가 강하므로.
  하지만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어본다면 조지오웰이 사실은 저널리스트로서의 기질이 매우 풍부하며, 사실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맛깔나게 썼음을 깨닫게 될 것같다.

  작품은 르뽀 형식의, 마치 잠입취재같은 형식으로 기록된 에세이다. 1928년~1932년 사이 파리와 런던에서의 말그대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소외받는 극빈층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냄은 물론, 나아가 그네들의 삶이 결국 조금도 개선될 여지가 없도록 방치 및 조장한 정부의 행정적 오류를 꼬집기도 한다.
  하루하루를 최소, 최하의 음식밖에 먹을 수 없으며, 추위속에 지쳐 겨우 새우잠을 자며 연명해가는 수많은 노숙자들 틈바구니에서 조지오웰이 느꼈을 인위의 부조리에 처음에는 공감하며 연민의 정이 들다가 점점 '오늘날 우리 사회 한 부분과 너무나도 닮았구나'하며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 시스템에는 분명 어딘가 고장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동안 의식하지않으면 한국이 아니라 사실은 런던임을, 2011년이 아니라 사실은 1930년임을 자꾸 잊게 되니 말이다. 

  더럽고 추하고 절망적으로 보이는 부랑자들도 결국은 평범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중에서도 끝까지 유머를 잃지않는 절음발이 화가 패디같은 인간도 있음을 알고서 가지게 된 인간의 자존감에 대한 경외심, 모든게 어려워졌을 때 의식주 문제 중에서 주(住)가 가장 우선순위 문제라는 사실 등등. 수없이 많은 관점을 던져 준다. 

  런던은 그 당시 세계 최고였다. 해가 지지않는 나라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일들이라고는 쉽게 믿기지 않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상기하며 읽어내려간다면 조지오웰이 느꼈을 그 부조리에 공감하며 예나 지금이나 정말 비슷하게 흘러가는 이 부조리에 대해 반성하고 개선의 여지는 없을까 생각해보게 만들 것이다.
  " 꼭 읽어 보자! "

(추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정말 비슷한 작품 - 시대적으로 약 30년 차이를 두고(1902년) 경험한 것 이외에는 너무 흡사한 - 으로 잭 런던의 [밑바닥 사람들]이 있다. 같이 읽어본다면 그 감상이 더욱 풍부하고 깊게 우러나리라 생각한다.

y***s 2011.11.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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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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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이상으로 충격적인 책이었다. 르뽀와 에세이와 소설을 버무린 흡인력있는 소설이다. 가난을 바닥까지 체험하고 전쟁터에 뛰어든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가 봐도 끔찍한 체험을 치밀하고 담담하게 사술했다. 백년 뒤의 자본주의 첨단사회의 시민인 나는 그야말로 안전하게 몸서리를 치며 읽었다. 일종의 아주 약하디 약한 예방주사라고 봐도 되겠다. 이런 게 살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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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이상으로 충격적인 책이었다. 르뽀와 에세이와 소설을 버무린 흡인력있는 소설이다. 가난을 바닥까지 체험하고 전쟁터에 뛰어든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가 봐도 끔찍한 체험을 치밀하고 담담하게 사술했다. 백년 뒤의 자본주의 첨단사회의 시민인 나는 그야말로 안전하게 몸서리를 치며 읽었다. 일종의 아주 약하디 약한 예방주사라고 봐도 되겠다. 이런 게 살아남은 문학의 즉 고전의 가치겠지. 늘 정신과 마음의 근육을 조금씩 단련해 나가야겠다.
YES마니아 : 로얄 m******e 2016.11.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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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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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작가가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얻은 통찰의 기록으로,『동물농장』,『1984년』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첫 작품이다. 아직 위에 두 책들도 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흥미가 생긴다. 작가의 튀지않는 위트와 가끔은 바보가 아닐까 할 정도로 선한 심성이 마음에 들었다. 주변 환경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은 내가 마치 그 시대의 파리와 런던에 있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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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작가가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얻은 통찰의 기록으로,『동물농장』,『1984년』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첫 작품이다. 아직 위에 두 책들도 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흥미가 생긴다. 작가의 튀지않는 위트와 가끔은 바보가 아닐까 할 정도로 선한 심성이 마음에 들었다.


주변 환경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은 내가 마치 그 시대의 파리와 런던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악취, 지저분함, 배고픔, 추위, 불편함... 온갖 더럽고 힘든 것들이 손에 잡히고 보인다.


집이 서울역 부근이라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집부터가 동자동 쪽방촌 부근... 언제 어디서든 자주 마주쳤으면서도 책을 보기전엔 그들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항상 주변에 소주병이나 막걸리병을 달고 사는 그들을 보면 그냥 좀 불쌍하다는 느낌 정도였지, 그 밑바닥 프로세스가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70여년전 파리, 런던과 지금의 서울과 직접 비교하기는 무리겠지만 어느정도는 비슷하리라. 책속에 나오는 7펜스짜리 숙소는 집 앞에 있는 쪽방정도 되려나?

그저 안타깝다... 책을 읽고 좀 알게 되었다지만... 안들 뭐 도울 수도 없고 이게 뭐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저 나 한 사람이라도 더럽고 주정만 부리고 필요 없을 것 같은 부랑자들을 보며 이게 다 썩어빠진 사회 때문이라는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는 데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w********c 2012.09.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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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체험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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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젊었을 때에 경험했던 파리와 런던의 하층민 생활에 대한 자전적 소설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도, 조지 오웰은 자신이 믿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기초해서 썼기 때문에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한 책이다.     부랑민들이 규정상 장기간 보호시설에서 머무를 수 없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상황아래에서 '너무 좋은 시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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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이 젊었을 때에 경험했던 파리와 런던의 하층민 생활에 대한 자전적 소설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도, 조지 오웰은 자신이 믿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기초해서 썼기 때문에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한 책이다. 

 

 부랑민들이 규정상 장기간 보호시설에서 머무를 수 없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상황아래에서 '너무 좋은 시설은 인간을 나태하게 만든다'라는 자아비평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대부분이 정직한 묘사에 할애되어 있긴하지만, 젊은 조지 오웰은 사람을 꽤 이성적인 존재로 보고 또 그렇게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4천원 인생'이란 책이 나왔을 때, 노동자들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했다는 괜찮은 평과 고작 한달동안 체험한 걸로 글을 쓰고 책을 냈다는 비평이 동시에 존재했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체험은 체험이지만, 삶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경험이 되면 어떠한 고통도 견딜만 해진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걸작이지만, 그가 소설을 쓰는 만큼 르포르타주에 재능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점만 주의한다면 이 책은 매우 읽을 만한 책이다. 그 시대의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부랑민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 지에 대해서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료이기도 하다.



a***a 2010.10.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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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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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넘기자마자 욕설로 시작되는 조지 오웰의 소설이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그의 명성에 기대하고 평소 궁금했던 가난한 삶에 대한 생활을 그의 지적이고 교양 있는 방식으로 걸러서 통찰력 있게 가난의 본질에 대하여 깨우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의외로 나는 답을 쉽게 받을 수 없었다. 소설은 주인공이자 자기 자신인 조지 오웰의 생각 보다는 그가 경험하게 된 삶을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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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넘기자마자 욕설로 시작되는 조지 오웰의 소설이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그의 명성에 기대하고 평소 궁금했던 가난한 삶에 대한 생활을 그의 지적이고 교양 있는 방식으로 걸러서 통찰력 있게 가난의 본질에 대하여 깨우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의외로 나는 답을 쉽게 받을 수 없었다. 소설은 주인공이자 자기 자신인 조지 오웰의 생각 보다는 그가 경험하게 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파리와 런던에서의 지독하게 불행했던 삶을 마치며 정리한 그의 생각을 엿보기 전에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에게서 무엇을 얻고 느껴야 하는지 상상도 할 수조차 없었다. 내 세계가 책속의 세계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뜨끔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는데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명량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을 잘 먹은 짐승이나 느낄만한 만족감에 비교했다는 점이다. 나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낙천적인 성격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때는 내 인생엔 나를 절망하게 만들 만한 큰일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며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다고 믿었었는데 최근 경험에 같은 것을 보며 불행을 느끼는 친구를 가까이 느끼고 나니 내 성격의 원인이 어떠했던지 간에 지금은 확실히 그 친구와 내가 결과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선 쉽게 만족을 느끼는 나의 삶이 사실은 사회에 냉혹한 현실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꿈속에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고민했었다. 이것이 내가 뜨끔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는 태어나서 내가 싫어하는 일은 무조건 배척해왔었고 부모님도 그런 일에 내 노동력을 낭비하지 않게 도와주셨다. 엄마는 경제적인 이득을 제외한 목적 없는 고된 일은 내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삶의 철학에 의해 나를 이끈 것이지만 아빠는 단순히 어리고 여린 나를 걱정하셨던 것 같다.

 

“다만 그들도 평범한 인간이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만 못한 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에서 빚어진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말이다.”p. 270

 

빈민들에 대해서는 평소 이렇다 저렇다 고찰을 필요로 할 만큼 내 관심을 끌지 못했었다. 물론 시대적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이 책을 접하기 전 까지는 한 끼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이 실존하리라 의심해 보지도 않았다. 단지 적은 돈으로 아끼고 아껴서 살아야하는 사람들을 빈민층이라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인 행복과 가난은 상관관계가 없고 의지와 희망만 있다면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가난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실 그 단어의 의미만큼 끔찍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왔었다.

나는 육교 위에서 혹은 인도 위에서 불편한 다리 혹은 팔을 보여주며 동정을 사고 돈을 얻는 이들을 보아왔다. 그 중에서는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포함돼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사지가 멀쩡한데 일찌감치 삶의 열정을 잃어버린 그들을 경멸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야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에 학대되어 보이는 것만큼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고 힘이 없이 약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예와 노동자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시대의 노예를 성급히 단정 짓기에는 세상에 대한 내 지식이 너무 보잘것없고 수반하는 경험도 부족하므로 살면서 천천히 정리해 보겠다.

책속에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빈민층이므로 농촌의 빈민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으리라 생각된다. 가족, 친지가 주변에 있는 농총 빈민층과는 달리 도시 빈민들은 가깝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적기 때문에 그 생활을 더 벗어나기가 힘이들지 않았나 싶다. 때문에 노동과 직접적인 관계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런던에서는 종교를 대하는 그들의 방식이 흥미로웠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빈민들은 교회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음식을 주면 무조건 감사하는 마음을 갖을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책을 읽고 알게된 점은 그당시 교회에서는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지 않았다. 빈민들은 음식을 얻어먹는 댓가로 지루한 예배를 드려야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봉사일까? 아니면 거래일까? 빈민들에게 한끼의 식사는 생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공금원임에 틀림없다. 그에비해 교회에서의 예배는 인간에게 정신적으로는 물론 중요하겠지만 상대적인 물리적 중요성이 떨어진다. 교회에서 진짜 원하는것은 부랑인들을 예배에 참여시키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음식을 먹고 싶으면 무조건 원치않는 예배를 들어야 했던 그들의 생활을 봤을때 말이다. 예배시간을 방해하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부랑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나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게 생각하는편이다. 이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당연한일이라고 생각한다. 거대하고 힘있는 단체 '교회'에서 부랑인들에게 거래를 할 기회를 주는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또 하나, 책속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에서 사람들의 도덕성에 대해서 가끔씩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의외로 같은 처지의 친구들에게 후한 인심을 보여준 것이 놀라웠다. 당장 자기 자신의 내일을 걱정해야 할 판에 죽어가는 친구를 위해 빵을 나눠주는 모습, 그리고 보증 없이 쉽게 돈을 빌려주는 모습은 단편적으로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존중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책에서 한 가지 모순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p.197에서 주인공이 친구 ‘패디’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러나 그는 범죄에는 의욕이 없었다.‘ 라며 친구의 도덕성이 배고픔이 낳은 겁 때문이라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후에 p.238에서 ’또 그는 저녁때 빈 자동차 “털이”를 하여 추가로 몇 실링을 벌었다. 이것은 불법이어서 불안정한 일이었지만, 얼마만큼은 벌이가 되었고 돈을 늘려주었다.‘라고 말을 바꾸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조지 오웰은 생계를 위한 범죄에 대해서는 도덕성을 운운할 수 없다고 여겼을까? 아니면 그가 고통스러운 고생끝에 도덕관념을 상실해 버린것일까?

 

전체적으로 책은 재미있었다. 쉽게 번역되어 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며칠을 반대편 세상에 살다온 것 같은 느낌이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어두운 내용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책의 표지와 같이 발랄하고 생생한, 그리고 궁상맞지 않은 책이다.

 

p**********e 2010.10.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