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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9번을 처음 들었을 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중구난방 튀어나오는 음표들, 한 악장 내에서도 천변만화하는 악상들, 분위기. '이건 뭐지?'가 첫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말러 9번의 여러 음반을 경험하던 중에 바비롤리의 이 음반은 그런 혼란스러움이 품고 있는 극한의 아름다움을 펼쳐보여줬습니다. 1악장의 첫 주제가 울려퍼지는 순간 갑자기 내 가슴이 저릿하게 아려왔습니다. 마치 내가 일상에 매몰된 채 까맣게 잊고 지내던 과거의 소중한 무언가가 가슴 켜켜이 쌓여있는 세월의 덮개를 뚫고 불현듯 인사를 걸 때 느껴지는 어떤 회환처럼. 언제, 무엇때문에 그런 행복을 느꼈는지 상황 자체는 다 잊었지만 그 순간의 가슴 벅찼던 감각만 남았다가 갑자기 내 마음에 짜르르 되살아나는 순간의 그 설레임.
9번 교향곡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 많은 선배 작곡가들 때문에 9번 교향곡 쓰기를 두려워했던 말러가 그런 공포를 감수할 만큼 꼭 토해내고 싶었던 감흥이 뭐였을까? 아마도 인생을 되돌아보면 섬광처럼 빛나는 찰라의 행복들 아니었을까? 그 아름다운 순간을 망각속에 묻어둔 채 떠나기가 너무 아쉬었던 것 아닐까? 바비롤리는 그런 말러의 심정을 절절히 그려내는 것 같았습니다.
말러 9번에는 거장의 명반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 아쉽게도 전설이 된 카라얀의 실황반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2장에 Top Price다 보니 가난한 저로서는 엄두가ㅜㅜ
하지만 말러의 고뇌가 물씬 풍기는 아바도의 베를린필반, 너무도 사랑스러운 번스타인의 로얄콘서트헤보반, 이보다 드라마틱할 수 없는 마데르나의 BBC 심포니반, 군더더기를 찾을 수 없는 깔끔한 래틀의 베를린필반까지 들어봤는데요, 모두 명성만큼이나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저보고 한장만 고르라면 바비롤리의 이 판을 선택하겠습니다. 다른 연주로는 그 가슴 아픈 행복감을 이 만큼 느낄 수 없을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