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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제라르 드 빠르듀 주연의 영화로 처음 접한 시라노는 본 지 20년이 가까와지는 지금까지도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화'로 꼽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고의 영화가 아니라 주인공 시라노가 최고의 캐릭터인 것이겠지요.
17세기 프랑스 귀족으로 실존 인물인 시라노는 실제로 뛰어난 시인-작가이며 군인이었고 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풍자하며 자유롭게 살다가 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합니다. 에드몽 로스탕은 이 실존인물 시라노에게 몇가지 장치들을 덧붙여 더욱 매력있는 캐릭터로 창조해 냅니다. 그것은 못생긴 외모와 죽도록 사랑하는 여인. 두 가지입니다. 영화의 원작이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이란 것을 안 이후 도서관 등에서 번역본 책을 찾아보았으나 국내에는 출판된 적이 없거나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난 100년간 가장 많이 공연되고 영화화된 희곡 중 하나,라는 설명이 붙으면서도 일반 소설이 아닌 희곡이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책으로서는 그닥 환영받지 못한 것이겠지요. 아무튼 그랬던 작품이 엉뚱한 기회로 새롭게 출판이 되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신작 소설 발매에 맞추어 보조자료 개념으로 함께 출판됨)
희곡을 구하면서 원작에 추가된 영화적 설정들이 있을거라 생각을 했습니다만 영화로 보았던 위트 넘치는 대사들과 세세한 설정들은 희곡에 이미 있던 것이로군요. 원작의 대사량이 영화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영화상의 번역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되었던 단어들이 원래 표현으로 되돌려지고 각주로 이해를 돕는 방식으로 편집되어 원작의 표현들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시라노의 유언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단어가 영화상에서는 "나의 허영"이라고 번역이 되어있어서 저는 그냥 그런가 보다. 참 절묘한 유언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번역본에는 "나의 장식 깃털"이라는 구체적인 사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원작 표현이겠지요.'장식 깃털'이라는 단어는 허영보다 훨씬 더 많은 추상적 의미들이 담겨질 수 있습니다. 기사의 자존심, 의기로운 허영, 불의에 맞서는 용기 등등 말이지요. '허영'이라는 단어에 홀려 그동안 시라노 시라노 노래를 하며 지내왔는데, '나의 장식깃털' 이라니.
시라노 인물 묘사도 늘어난(?) 대사량 덕인지 훨씬 생동감있고 세밀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제라르 드 빠르듀가 연기한 시라노는 매력도 있었지만 그 눈빛이 주는 뭔지 모를 신비감이나 투박함, 약간은 허무주의적인 색이 끼어있었죠. 원작의 시라노는 제라르 드 빠르듀의 시라노 보다 더 시니컬하고 날카로운 맛이 납니다. 물론 그 세상에 맞서는 묵직함은 동일합니다.
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액션-전투장면들을 볼 수 있다는 면에서 영화의 매력은 충분히 남아있습니다만, 멋진 대사와 캐릭터들이 책으로 손에 들어왔다는 즐거움이 참 큽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연극도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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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ano de Bergerac :: Edmond Rostand 얼굴은 잘생겼지만 지적이지 못한 남자와 외모는 별로여도 머리는 좋은 남자 중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사실 이런 양극단의 질문은 좀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이,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선 여러 경우의 수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가령, 전자가 머리는 나쁠지언정 순박한 품성을 지녔고 후자가 더 똑똑할지언정 까탈스러운 성향을 갖고 있다면 그땐 또 어떨까? 지성이 배려심을 좀더 담보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서라면 당연히 후자를 택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시라노는 엄밀히 말하면 지성이 뛰어나다기보다 감수성이 뛰어난 쪽에 더 가깝다. 풍부한 감수성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채로와 지성 또한 뛰어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럼 질문을 바꿔서, 감수성이 적은 남자와 많은 남자 중에 고르라면? 성향이 극단적으로 나타난다면 어느 쪽이든 단점은 있겠지만 굳이 고르라면 단연 후자가 낫다. 사실 이렇게 고르고 나서도 왠지 겸연쩍어진다. 지성 있는 남자를 택하든 감수성 좋은 남자를 택하든 내 허영이 고스란히 투사 되어서다. 어느 쪽이든 택하는 순간 사람 그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하기보다 '나에게 얼마나 이익인가' 를 두고 잣대질 했다는 게 드러난다. 마치 TV 리얼리티쇼의 '짝고르기' 방송을 볼 때의 민망한 기분과도 같다. 사람이 사람을 고를 때 어느 조건이 특별히 요구된다면 그건 그만큼 자신에게 그 부분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외모 컴플렉스를 느껴서 외모 좋은 사람을 고르고, 지적 컴플렉스를 느껴서 머리 좋은 사람을 고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많이들 자신과 비슷한 수준을 고른다고들 생각하지만 열등감을 완전히 배제하고 짝을 고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그래서 그러한 내 생각엔 과도한 이상형의 조건은 결국 자기 비하나 자기 기만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자신을 떠받들어 주길 바라는 록산의 여자로서의 허영과 그런 그녀를 시라노가 어떻게 한결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함에서 시작되었다. 이 희곡에서 그려지는 록산은 같은 여자가 보기에 참 부끄럽다. 자신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별반 표현을 안하면서 상대는 본인을 얼마나 숭배하는지 끊임없이 표현해달라 조른다. 외모보다 마음을 보게된다는 록산의 성장은 일견 대견한 일이지만, 그것도 결국은 자신에게 얼마나 잘해주느냐 하는 이기적인 관점에 의해서다. 그나마 그 받은 마음을 평생 소중히 간직한다는 점이 록산의 순수한 장점이랄까. 시대적인 배경탓도 있겠지만 록산의 어리광과 요구, 허영은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게 나와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것이면 마음 편히 비난이라도 하겠지만, 불편하다는 건 결국 내 안에도 그런 부분이 없잖아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렇다. 여자는 참 표현받기 좋아하는 존재다. 아니, 무리한 일반화는 안하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은 인정 안할 수가 없다. 록산은 풍부한 감수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스스로 채울 수가 없어서 누군가 대신 채워주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 나 자신을 비추어 보았을 때, 스스로 생각하기에 상대에 대한 애정 표현이 인색하지 않다고 생각함에도 상대에게 비슷한 수준을 요구하는 것으로 봐서 갖고 있는 감수성보다 모자란 감수성이 더 많은 것 같다. 애정결핍이 더 많은 애정을 내보이려한다는 논리다. 그에 반해 시라노는, 외모보다 마음이 읽히기를 간절히 바랐음에도 정작 스스로는 자기보다 표현도 부족하고 어떤 면에선 단순하기까지 한 록산을 그저 외모 하나로 한결같이 사랑한다. 시라노처럼 지성, 감수성, 거기에 재치까지 두루 갖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겐 눈길 한번 안주고 오로지 록산만 평생을 사랑했다는 건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조금 앞서서 해석해본다면,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외모 컴플렉스 때문에 미모가 뛰어난 록산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사랑의 신의를 지킴으로 자기 가치를 실현 시켰던 것은 아니었는지. 록산이나 시라노나 자기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상대에게 갈구했다는 건 사실 인류 보편적인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없는 부분을 가진 상대를 찾아 그를 통해 완전히 채우고 그것으로 나의 온전함, 가치를 완성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시라노는 마지막 유언을 록산에 대한 사랑의 한마디가 아니라 [나의 장식 깃털] 이라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희곡은 한 남자의 열렬하고도 지고지순한 짝사랑 이야기라기보다 세상의 평가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당당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로서 더 깊은 감명을 준다. 비록 조롱받는 외모로 태어났어도 자신을 사랑하고 삶에 최선을 다했던 시라노야말로 최고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문득 든 질문 한가지. 남자들에게라면, 얼굴은 예쁘지만 그닥 지적이지 않은 여자와 미모는 없어도 뛰어난 지성의 여자 중 어느 쪽을 더 많이 택할까? 여자들에게는 허영의 기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면 남자들에겐 지배욕을 가늠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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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가장 낭만적인 남자의 이야기이다.
'희곡 시라노'는 읽는 이를 믿고 과감하게 생략과 비약을 하고 있고,
록산누의 사랑을 얻어 내기 위해,
그림자 역을 하는 시라노와 표면에 드러나는 얼굴인 크리스티앙 한순간의 호탕함을 위해 가진 것을 전부 던질 수 있고, 남자라면
현실적인 얼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망설이지 않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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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라는 소설의 주인공인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실존인물로 에드몽 로스탕은 총 5막에 걸친 희극으로 탄생시켰다. 처음 이 소설을 봤을때 든 생각은 시라노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를 봤냐면 그건아니다 시라노라는 단어의 뜻이 무척 궁금하던차에 이책을봤고 그래서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시라노는 단어가아닌 이름이라는걸 책을 읽고 알게되었다.
시라노는 자신의 사촌인 녹산을 짝사랑한다. 그는 자신의 외모에대한 컴플렉스로 자신감을 상실했다 사라노의 표현으로 보자면 어딜 가든 나보다 15분은 앞서 가는 이코가 있는 한, 추녀한테 사랑받는 것조차 나에겐 꿈이나 다름없네, 그런데 내가 누굴 사랑하느냐고? 남들보다 조금더 긴 코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조차 못하고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록산을 느끼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이유로 몽플뢰리를 미워하고 그를 경멸하는데 록산은 그런 시라노를 찾아와 크리스티앙을 사랑한다고 그도 자신을 사랑하는것 같다고 전쟁에나가는 그를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시라노는 녹산을 슬프게 하지 않기위해 연적인 크리스티앙을 보살피겠다는 약속을한다. 시라노가 고민했던게 외모 남들보다 큰 코였는데 녹산이 사랑을 느끼는 크리스티앙의 외모는 수많은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큼 뛰어난 외모다 결국 시라노는 자신의 외모로는 녹산의 마음을 잡을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되다. 우습게도 외모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크리스티앙은 언어 그러니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재주는 타고나지 못했다. 그러고보면 신은 공평하다고 말해야할까 어찌되었든 이를 비관하는 크리스티앙에게 시라노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빌려준다. 녹산이 받은연애편지는 시라노의 글로 녹산은 크리스티앙의 아름다운 언어에 매료되 그를 만나기를 원한다. 문제는 크리스티앙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것 녹산에게 들킬위기에 처하지만 시라노가 숨어서 대답을하게되고 위기를 모면한다. 사랑은 위대한것 녹산은 전쟁터까지 연인을 찾아오지만 그녀를 기다리는건 슬픔뿐이다.
외모에대한 편견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것같다. 그런대 시라노가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코뺴고 그가 부족한게 뭐가있는가 말이다. 글속에서 시라노의 표현을보자면 음유시인보다 더 아름다운 말들이 술술흘러나온다 시라노의 표현을 읽다보면 연애사기꾼으로 나서도 되겠다 싶은데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게 너무 안타깝다. 아이러니한 사랑이라고 말하고싶다. 녹산이 15년뒤에 자신을 찾아온 시라노와의 대화중 그날 자신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게되고 자신이 사랑한게 누구인지 깨닫는순간 사랑이 떠나버린다.
역시 사랑은 표현하는자의 목인것 같다 시라노가 조금만더 용기를 냈더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혹시 짝사랑을 하고 계시다면 용기를내서 사랑을 표현해 보시길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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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줄 알고 샀는데 |
| 연극으로 영호로 여러차례 보았던 시라노 드 벨쥬락을 책으로 읽는다... 사실 연극을 보면서도 그 다양하고 재치있는 대사가 즐거웠었기에, 이 책도 그런 재미를 충분히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사 하나 하나를 음미하며 과거의 장면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읽었던 책... 하지만 뭔가는 어색하다... 역시 번역의 문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