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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이 책에도 한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어린 대학생 진희는 효민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그는 운동권의 핵심 맴버이다. 그렇게 효민을 사랑한 나머지 진희는 거짓 정신병자가 되어 정권에 의해 효민이 갇혀 있는 병원에 잠입한다. 거기에서 그녀는 김재문이라는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진희는 김재문의 영역 안에서 안도를 하지만, 효민을 향한 운명적인 사랑을 거역하지 못한다. 이야기의 핵심을 과도하게 줄여보자면 이렇다는 것이다.
도대체 사랑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만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한다. 진실한 사랑에 대해, 거짓 사랑에 대해, 아픈 사랑에 대해, 사랑의 희열에 대해, 사랑할 수 없는 절벽같은 상황에 대해, 그럼에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대해...
하지만 내게는 이상야릇한 버릇이 있는데, 어떠한 사랑의 내용이든 내가 원하는 순간에, 내가 하고 있는 사랑에 빗대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하면 가는비에 젖을 마음이 소나기 아래에 한참 서있었던듯 젖게도 되고, 눈물 한 방울이면 족할 슬픔이 통곡으로 바뀌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진희를 향한 김재문의 안타까운 갈구에 맞닿아 내 마음이 통곡이 되고, 소나기에 흠뻑 젖은 것도 실은 그런 탓이리라. 효민에게 절실히 맞닿아 있는 진희의 마음을 보면서 아팠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효민과 진희를 떼어놓으려는 김재문의 안타까운 감언이설에 분노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카페인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처럼 사랑 또한 중독성이 강한 유형무형의 무엇이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게다가 사랑 중독은 숨어들어 치료받을 병원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효능이 탁월하다는 신약 개발 소식도 접해본 적 없다. 그저 시간이 이 무서운 중독성 질병의 유일무이한 치료제라고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소설은 그저 그렇다. 내가 만약 글쓴이를 알지 못한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내 기억의 자장 밖에서 탄생하고 소멸해갔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미미하나마 작가인 그녀를 알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 읽는 수밖에... 그것도 일말의 애정을 가지고 읽기 위해 애쓰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대도 칭찬을 아끼지 않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아마도 글을 쓴 하루비라는 아이디의 그녀가 언젠가는 이 글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개인적으로는 꽁꽁 숨겨두고 읽지 말기를 바라지만) 작가는 작가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사소한 몇 가지의 장점은 지니고 있되, 다른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두루두루 무용한 단점 또한 지니고 있다.
자의식의 과잉이나 달큰한 감정의 남발, 불필요한 설명과 거듭되는 묘사로 인한 어거지 클라이막스 등은 작가가 대중소설(실은 이 부분에 대해 좀더 많은 생각을 기울였다. 대중이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대중이 쉽게 가슴 찡할 수 있는 상황을, 다수 대중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쓰는 것이 왜 이류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난 맨날 이 모양이다. 아씨...)의 벽을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했다.
하지만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내 생각은 이렇다. 소설을 읽는 자는 물론이려니와 쓰는 사람도 즐거울 것(그것이 제아무리 슬픈 이야기라 할지라도). 따라서 양자가 공히 즐거울 수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좋은 것 아닌가. 비판받을 것은 비판받으면 그만이고, 나머지는 그저 알아서 즐겁자, 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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