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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 - 국부론 - 보이지 않는 손" 거의 동의어라고 봐도 무방한 단어들입니다. 실제로 국부론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단어들과 이에 대한 내용은 학교 혹은 신문, 방송을 통해서 접해보셨을 겁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국부론의 내용과 아담 스미스가 주장했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은 자본주의의 이론적 토대임과 동시에 시장자유주의 논리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이론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번에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알았고 믿어 왔습니다. 덕분에 아담 스미스에 대한 인식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국부론에 대해서 저와 같이 생각하신다면,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자유시장체제 옹호자들에게 속아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개입없이도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는 아담 스미스의 주장을 "텍스트"만을 인용하여 자신들 주장의 논리의 근거로 사용합니다.
제가 위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닌 "국가의 개입"을 강조한 것은 국부론을 이해함에 있어서 국가의 개입이 어떤 것이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스미스가 없애자고 주장한 국가의 정책은 오늘날과 같은 시장 규제 정책과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대항해 시대를 통해서 개척된 식민지 및 타국과의 무역을 통해서 "금"을 모으는 것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킨다고 하는 "중상주의" 사상이 널리 퍼져있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국가는 금을 모으기 위하여 몇몇 특정 상인 계층에게 대외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하는 시장개입을 하였던 것입니다. 국부론에서 국가의 개입을 없애자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국가가 일부 계층에게만 부여한 "독점권"을 철폐하여 수출/입 상품을 생산, 소비하는 대다수 국민의 부와 국가의 부를 높이자는 주장입니다.
국부론이 출판될 당시 금 모으기에 주력했던 경제상황과 금융산업에 열광하고 있는 현대의 상황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스미스는 국가의 부는 상업활동을 통한 금의 축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민을 부양할 수 있는 농업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조업의 발달을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오늘날 제조업 보다는 금융산업에 치중해서 나라의 경제를 일으키고자 하는 세태를 그 당시에 이미 경계했던 것 입니다. 이 외에도 화폐의 대한 개념, 국가의 해야할 일 등등 근, 현대의 경제학 이론에 영향을 미친 좋은 내용들이 많고 이것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국부론에 대한 책 리뷰를 보면 아마도 제가 쓴 내용과는 반대되는 내용들이 많을 겁니다. 대체적으로 자본가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책이라는 내용일텐데요. 직접 읽어보시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아마도 그네들이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국부론을 읽어보지 않기 때문이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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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이 해마다 하는 노동은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모든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을 공급하는 근원적 자원이며, 그 필수품과 편의품의 재료는 그 노동의 생산물이거나, 그 생산물을 가지고 다른 여러 국민에게서 구입한 물품이다. 11 아담 스미스는 노동이 생필품을 만드는 자원이라 보고 있다. 지금의 인적자원 개념의 원류로 여겨진다. 노동을 자원으로 파악하는 관점. 이 개념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부분은 고대 그리스의 경우에는 경제적 자원 생산을 위한 일체의 노동이 노예들의 일이었기 때문에 논의의 변두리에 있었다는 점에 있다. 덕이 무엇인지,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동안 노동의 생산성은 논외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소크라테스가 아담 스미스의 책을 읽었다면 뭐라 했을까 그러나 이 비율은 어떤 국민에게 있어서도 두 가지 다른 사정에 의해 규제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첫째로 국민의 노동이 일반적으로 적용될 때의 솜씨·숙련도·판단력에 의해, 둘째로 유용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 수와 그렇지 않은 사람 수의 비율에 의해 규제된다. 11 노동이 자원이라면 노동력의 솜씨, 숙련도, 판단력 등은 생산물의 수량과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노동력을 솜씨, 숙련도, 판단력의 세가지 차원으로 분석하였다. 솜씨, 숙련도, 판단력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진다는 관점은 교육과 연결된다. 소크라테스와 같이 올바름의 관점에서 교육을 보는 것, 아담 스미스와 같이 자원의 최대한 활용을 위한 솜씨, 숙련도, 판단력의 증진을 도모하는 것. 이러한 것들은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각기 조화를 이루는 관점이라 하겠다. 인간은 올바름을 추구하는 동시에 물적 생산을 통해 삶을 지속한다. 올바름은 자원으로서의 노동력이 훌륭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잡이와 같고, 바른 안내를 통해 자원으로서의 노동은 공동체를 살리는 생산을 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건 노동이란 자원이 올바르게 기능할 때 생산은 누구에게나 이득이 될 수 있다. 사회가 진보함에 따라 학문과 사색이, 다른 모든 직업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계층의 시민들의 주요하거나 유일한 일과 직업이 된다. 또한 다른 모든 직업과 마찬가지로 이 직업도 다수의 다양한 분야로 세분되어 그 하나하나가 특정한 집단 또는 특정한 종류의 학자에게 직업을 제공하고, 또 학문에 있어서의 이 직업 분화도 다른 모든 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술을 개량하고 시간을 절약한다.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의 특정한 부문에서 더욱 전문가가 되어 전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늘어나고 전문 지식의 양도 크게 늘어난다. 22, 23 노동의 생산력을 높여주는 분업화의 원리는 학문과 지식 세계에도 들어오는데, 우선 전문적으로 학문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다음으로 학문별로 세분화된 전공분야가 존재함을 지적한다. 학문 세계에도 지적인 분업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분업화는 기술을 개량하고 시간을 절약해 준다고 한다. 통찰력은 있으나 좀 더 세분화된 분석은 미흡한 내용이다. 학문의 세분화와 발전 덕분에 학문적 지식의 생산량은 늘어난 편이나, 그 기술이 적절하게 사용된다는 보장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다원화되었다. 그러한 형편으로 과학과 인문학 각 분야에서는 일종의 병목현상이 발생했고 학자들 스스로도 지적 한계를 호소하게 되었다. 이런 시기에 등장하게 된 것이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consilience)’ 인지도 모르겠다. 분업화로 인한 학문적 한계를 타개해보자는 심산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분업화가 생산력을 올릴 수도 있겠으나 동시에 생산력을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분업화가 어느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접합되느냐에 따라 그 영향력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통치된 사회에서는 분업의 결과 생기는 다양한 기술 전체의 생산물의 대폭 증가가, 최저 계층의 민중에까지 미치는 보편적인 부를 가져다 준다. 23 아담 스미스는 ‘잘 통치된 사회’라는 전제에서 보편적인 부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이름으로 충분히 해석되지 못한 채 회자되는 아담 스미스의 일면을 보게 한다. 그의 경제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덕감정론’을 동시에 읽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런 관점에서 국부론은 수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이러한 오해는 자신의 이기적 탐욕에 대한 권위 있는 관련 근거를 찾던 이들에 의해 양산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겐 조금만 손을 보면 괜찮을 텍스트인 셈이다. 이런 곡해의 해프닝은 원전 자체를 가까이 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담 스미스를 비판한다. 비판의 대상은 그의 사상을 알면서도 자기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곡해하는 학자와 기업가, 관료이며 동시에 그런 곡해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지적 인내를 경험하지 못한 상당히 많은 대중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만드는 데는 광부, 광석을 녹이는 용광로의 건설공, 재목 벌채꾼, 용광장에 고용되는 숯 굽는 사람, 벽동 제조공, 벽돌 쌓는 노동자, 용광로 관리자, 기계설치공, 단조공, 대장장이, 이런 사람들이 모두 그들의 온갖 기술을 종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24 분업화의 사례를 구체적인 직업과 일을 거론하며 서술하는 장면이 내게는 소설의 한 장면처럼 읽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안나 카레니나’의 장면과 같이 아담 스미스는 가급적 많고 다양한 일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을 설득하고자 한다. 이런 식의 나열법은 그 자체로는 건조하게 기술하는 것 같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미적 섬세함을 반영한다. 화가가 한 순간을 멈추어 화폭에 담듯이 아담 스미스 역시 다양한 일의 세계를 순간에 모아 담아낸다. 그리고 그 일 하나 하나를 개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가 인식하고 있으며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일에 대한 차별적 시각없이 서술하는 장면에서 왠지 따뜻함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감성의 남발일까? 이토록 많은 이익을 낳는 이 분업은, 본디 그것이 가져오는 전반적인 부를 예측하고 의도한 어떤 인간의 지혜의 결과는 아니다. 그것은 그런 드넓은 유용성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 본성 속의 어떤 성향, 즉 어떤 물건을 다른 물건과 거래하고, 교환하고, 교역하는 성향의 매우 완만하고 점진적이긴 하나 필연적인 결과이다. 26 분업을 본성 속에 담긴 어떤 성향으로 본다. 그렇다면 인간의 경제활동은 어떤식으로든 자연스러운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노동 생산물 중에서 자기가 소비하고 남는 부분 모두를 타인의 노동 생산물 중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과 확실하게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각자를 특정한 직업에 전념하게 하고, 또 그 특정한 일에 대해 그가 지닌 모든 재능과 자질을 육성하고 완성하도록 만든다. 28 ‘교환에 대한 확실성’이 일정한 직업을 만들게 된다는 관점. 특정한 자신의 노동 생산력이 일종의 교환 가치를 갖는다는 점을 확신할 때 사람들은 특정 직업을 갖게 되고 그 직업을 통해 자신의 필요를 채워나가게 된다. 아울러 교환을 일으키는 인간의 욕구들은 분업과 경제 활동의 발생을 촉진하는 원동력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빵과 물만으로 배를 채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은 우유, 과일, 설탕, 소금, 고기 등을 욕구한다. 욕구가 다양하고 세분화될수록 교환에 대한 확실성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 사업가들은 이 점을 자극하는데 역점을 둔다. 제품 판매의 극대화를 위해 자연스러운 인간 욕구의 실현을 자아 실현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자신을 실현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의 자동차, 화장품, 시계, 가방, 여행, 휴대폰, 영화, 심지어 책마저도 그런 식으로 마케팅 되어지고 판매되고 있다. 욕구가 불거질수록, 욕구가 거세질수록 교환에 대한 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산업은 세분화되고 발달하며 경제는 활발함을 띄게 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불공정한 교환에서 출발한다. 불공정한 교환은 공항과 불황의 주범이다.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불공정한 교환이 지속되면 한쪽에는 교환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된 화폐가 쌓여가고 다른 쪽에서는 화폐를 갖지 못함으로 욕구를 실현하지 못하게 된다. 교환의 확실성은 증가하나 그것을 실현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면 당연히 시장은 축소되기 마련이다. 구매자가 줄게 되면 기업가는 치명타를 입는다. 아울러 그 전에라도 기업가의 잉여 화폐는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기 보다는 그 욕구를 오히려 방해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아무리 좋은 옷도 한계 효용이 있기 때문이다. 극대화된 욕구의 실현이 주는 만족감은 반드시 한계를 겪는다. 인간이 가진 한계 상황 때문이다. 따라서, 그 자신을 위해서라도 잉여 화폐를 쌓아두는 행위는 어느 정도 제한되어야 한다. 아니 그 이전에 불공정한 교환 활동 자체를 엄중히 단속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와 국가 간에, 기업과 기업 간에, 개인과 개인 간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불공정한 교환 행동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국가는 시장에 강력하게 개입해야만 한다. 특히, 기업이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여 불공정한 거래를 지속하는 행위만큼은 반드시 개선시켜야 한다. 그것 만이 기업도 살고 개인도 사는 길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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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경제학 사상의 토대인 서적 제1편은 노동생산력이 이렇게 커진 원인과, 노동 생산물이 그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상태의 사람들에게 자연히 분배되는 순서를 다루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