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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 책『침대와 책』을 읽고 한동안 독서에 대한 권태를 느꼈었더랬다.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던 나였기에 그녀와 뭔가 통할 거라고 생각을 했었던 거다. 그러나 첫 장을 펼치면서부터 좌절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다른 사람들의 책 이야기와는 뭔가가 다른, 또 책에 관한한 무한한 넓이와 그만큼이나 깊은 그녀의 책에 대한 열정이 겨우 후다닥 책이나 읽고 리뷰나 긁적이는 나의 수준하고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히 그녀와 만나게 되는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기대를 했었다지. 그녀를 만나면 그녀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거야. 설마 이토록 많은 책들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닐거야 운운. 그러나 나의 소박한(?) 기대는 과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버렸다. 그녀처럼 글과 말이 같은 사람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처럼 말을 할 때마다 적재적소에서 튀어나오는 온갖 다양한 분야의 책제목과 인상 깊었던 구절까지 도대체 저 작은 머릿속에 어떻게 들어 있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나의 독서 방법에 제동을 걸었고 이건 책을 읽는 방법이 전혀 아니다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작심삼일, 언제 내가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그녀를 잊고 내 방식의 독서를 다시 취하면서 끊임없이 투덜대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녀가 두 번째 책을 냈을 때는 절대로 안 읽을 생각이었다. 분명 그 결과를 내가 알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이번에도 그녀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독특한 형식의 인터뷰, 그녀만의 개성이 훨훨 살아 넘치는 글을 다시 읽으면서 아니나 다를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글 쓰는 것은 정말 재능이 있어야 하는구나! 아니 책을 읽는 것에도 재능이 필요하구나! -.-;
이번 책은 그녀를 나두고서라도 충분히 좌절 모드에 빠지기 쉽다. 왜냐하면 인터뷰를 한 작가들은 작가니까 그렇다하더라도 다들 어릴 때부터 엄청난 독서량들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어릴 땐 신나게 노는 것만이 어린이답다 라고 생각하고 놀았던 이가 한 명도 없다. 그러니 나는 도대체 왜 책을 안 읽었던 게야? 부터 시작하여 이 분들은 왜 이리 책만 읽고 산거야? 하는 비아냥까지. 아무리 책에 의한, 책에 관한, 책 이야기를 한 인터뷰였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열심히 뛰어놀아 체육과라도 갈 것처럼 주변 어른들에게 기대를 심어줬던 나는 이도저도 아무것도 되지 못한 한심함에 심히 기가 죽었다.
인터뷰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한 사람들이었다.(물론 그렇기에 인터뷰를 했겠지만) 진중권은 마크 트웨인에게 짓궂은 유머 감각을 배웠다고 털어 놓고, 활자 중독자의 증세까지 보인 정이현은 《에이브 전집》88권을 다 읽었다고 한다. 임순례는 동화책을 건너뛰고 중학교 때 세계 명작에 빠져 교과서가 시시해져버리게 되었으며, 문소리에게 소설가의 꿈을 살짝 키워준 것은 ‘테스’를 맛깔나게 읽어주던 선생님과의 편지교류에서였고, 책벌레였던 박노자는 겨우 여섯 살 나이에 고대그리스사에 빠져있었다. 어쩜, 다들!
에필로그에 그녀는 오르한 파묵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그 덫에 걸린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덫이 책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복잡하고 신비로운 인간의 속성이었다고. “(…)결국 어떤 책을 사랑하느냐는 그 사람의 속성, 그 사람의 자존감, 그 사람의 희망, 그 사람이 꿈꾸는 미래, 그 사람이 살아온 삶, 그 사람의 포용력,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히 짚어주기 때문이다.”
책에 관한 책이야기는 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덫을 놓는다. 그기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이야기라면 거의 흥분 상태에 이르게 된다. 『침대와 책』에서 뽑아 놓은 그녀의 추천 책들은 아직도 리스트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데 또 한 가득의 책들을 리스트에 밀어 넣고 보니 그녀는 오르한 파묵의 덫에 걸렸다지만 어쩐지 나는 그녀의 덫에 걸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읽어야 할(읽고 싶은!) 숙제를 한 가득 가슴에 안은 채 한숨 한번 내쉬고는 책을 덮었다. 다시는 그녀의 책을 읽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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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속삭여 줄게’ 이 감성적인 제목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선택했었다. 그저 가벼운 여행기로만 알았는데 런던을 속삭여 준다며 정혜윤은 무려 130권 정도의 책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빨간 2층버스를 타고 트라팔카 광장과 웨스트민스터 사원등을 여행하는 줄 알았는데 정혜윤은 명소에 대한 소개보다는 역사를 말하고 있다. “런던을 알고 있다면 이정도의 책은 읽어야지”라고 강의를 하는 것 같다. 독자는 그 강의를 들으며 졸리면 “뭐 이런 책이 다 있어"라고 호통을 칠 것이고 ”이 무식“하면서 지성이 각성하면 감동을 주는 책이다. 그래서 정혜윤의 책은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하다.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도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저작의도를 한눈에 알게 해준다. 더군다나 책 표지는 무척 감성적이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집에서 보았던 남폿불이 서재의 어둠을 밝히고 책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가냘픈 몸매의 여성이 보인다. 더군다나 이 사진은 존재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김아타의 작품이다. 남폿불 앞에서 책을 읽어 보았다면, 아니 한 밤중에 책 한권을 들고 날밤을 새운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의 표지를 보며 존재에 앓았던 젊은 날의 한 때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소제목이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이다.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등 그 이름만으로도 자체 발광하는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책이 이들의 인생을 만들었구나!" 라며 감동하며 첫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스타벅스의 로고에 새겨진 사이렌의 유혹 때문에 커피숍으로 가는 것처럼 이 책도 그런 유혹이 있을 것이란 당연한 기대감을 갖는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은 어떤 이의 인생을 책으로 엮어본 작은 전기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한 개인이 책과 만나는 지점에 관한 이야기가 주축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쓰다보면 책에 대한 헌사가 될 것이란 예감이 듭니다. 이마므라 쇼헤이의 영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에서 관능적인 여인은 다리 건너편에서 큰 소리로 연인을 부릅니다. 어서 오라고 나랑 몸을 섞자고, 다리를 건너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관능적인 여인이 책이었던 사람들, 그들 앞엔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라는 유혹 때문에 이 책은 감각적으로 읽을 줄 알았다. 그런데 유혹의 강도가 너무 센지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물론 관능적인 유혹을 많이 당한 식스펙의 남성이라면 이런 유혹을 즐길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난 “아이고 머리야!”라며 이 책을 읽었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머리 아프다고 리뷰 쓸 수도 없고, 포기 하자니 위캔드에 한 약속이 떠오르고……. “그래, 수건에 어름을 넣고 찜질 하면서 쓰면 낳겠지!” 라며 자신을 달래본다. ‘무릎팍 도사’라는 프로를 보면 얼마나 재미있나 공지영씨도 그 프로에서 자신의 어둠조차 감동적으로 표현했기에 그 유혹에 빨려 들어갔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공지영을 재미로 만날 수 있다면 오산이다. 공지영만 그런 것이 아니라 11명 모두 재미없다. 왜냐하면 정혜윤은 무릎팍 도사의 강호동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그녀는 분명히 강호동과 같이 인간적인 친분을 가지고 인터뷰이들을 만났을 것이다. 유쾌한 수다가 있었고 책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책속에는 인터뷰이들의 인간적인 이야기보다는 정혜윤 자신의 이야기가 주된 관점으로 나타난다. 나쁘게 말하면 인터뷰이보다는 인터뷰어의 이야기가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정혜윤이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 책에 대한 해설, 끊임없이 반복되는 책에 대한 인용 때문에 이 책이 머리가 아픈 이유다. 이 책의 맨 뒤에는 부록으로 ‘그 혹은 그녀의 책들’ 이라며 인터뷰이들이 삶에 영향을 주었던 책의 목록이 약 250권 정도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정혜윤이 이들과 인터뷰 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든지 이 책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 ‘런던을 속삭여 줄께’에서도 책 목록이 너무 많아 일부러 세어 보았더니 130권쯤 된 것 같다. 더군다나 이 책의 목록 가운데 내가 읽은 책은 열 개의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헤아릴 정도니 나 자신이 얼마나 기가 죽었을까 이렇게 정혜윤은 놀라울 정도의 독서력과 정보력,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책읽기의 달인이다. 그러나 정혜윤은 혼자 논다. 그녀는 혼자 즐거워하고 독자들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는 불친절함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가 인용하는 문장은 너무 길고, 많아 산만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 이 책의 30% 정도는 인용구절로 이루어진 것 같다. 그러기에 내가 알고 싶었던 인터뷰이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 자신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인터뷰이들의 삶에 책이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그들에게 책은 어떠한 존재인지 알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너무 소홀히 다루어져 있다. 제목처럼 그들의 삶을 바꿔논 한 책을 집중적으로 소개해 주었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흡입력이 있고 또 편안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란 바람이 있다. 이 책은 한번 읽고 “아! 머리 아프다”라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왜냐하면 독자가 준비가 되었다면 이들과 함께 책에 대한 수다를 떠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속에 편린처럼 빛나는 잠언들도 꽤 눈에 보인다. 이것만 잘 캐낸다 할지라도 머리 아픈 것은 졸지에 사라질 수 있다. 공지영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책속에 길이 있고 구원이 있었어요. 나는 살기 위해서 책을 읽었어요. 결국 그것들이 나를 이끌어냈어요’ ‘우리 모두는 늘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혀놓고 피고석에 앉아 우리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 잡혀 있다.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되었다. ‘너 자신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 자신뿐이다 ’라는 안셀름 그륀 신부의 말에 그녀의 삶이 바뀐 것을 보면 확실히 그들에게 한권이 책은 소중하다. 장 그르니에의 이 말도 소중하다. ‘저자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깨달음이 시작되는 것이 독서’인 셈이다. 이 말 꼭 외워야겠다. 자신의 분야에서 자체 발광할 수 있는 이름이 된 밑바탕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책이 관능적인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 책을 사랑했고, 또 그 책을 통해서 인생의 전환점을 이루었다는 것 자체가 이 책을 통해 얻는 교훈이자 도전이다. 세상에는 읽어야할 책들도 많다는 것과 또한 그들 앞에서 너무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 때문에 열등감도 가질 수 있지만 아직도 삶은 진행 중이니까 얼마든지 기회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혜윤이 인용한 이탈로 칼비노의 글은 참 매력적이다. ‘그들은 모두 어딘가 나보다 우월하고 고귀해 보이며, 또 그들과 비교해볼 때 내가 보잘 것 없게 보이도록 하는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 중 누구와도 나 자신을 바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소중한 나의 모습을 격려하며 나를 부르고 있는 관능적인 여인에게로 돌아가서 살을 섞고 싶다. 그리고 그 침대에서 빠져 나오지 말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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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에세이중에서 상당히 무거운 에세이를 읽었다. 그래서 책을 수령하고 오늘에서야 마지막장을 덮게 되었지만 책을 덮고 난 지금도 내겐 어려운 내용들로 가득한 책인것 같다. 서평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대략난감하고 막연한 감을 주는 책인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이 좋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나 같은 이에게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특히 11명의 인사들이 읽어다는 책의 내용은 정말 이해하기 조차 만만치 않는 책들이 대부분이라 뭐라고 해야 할지 걱정이 되는것이 사실이다. 처음 진중권님의 내용을 보면서 미학쪽에 관심이 있어서 인지 몰라도 대충은 공감을 할 수 있었지만 갈수록 태산이었다. 마지막 박노자교수의 내용이 그나마 이 책을 읽은 보람이라면 보람이랄까 싶다
결국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무엇일까? 다름아닌 인생의 반려자 내지는 동반자같은 책 한 권쯤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고 그런 책 한권이 한 인생을 어떻게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가 하는 점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 지금의 시대는 한마디로 미디어의 홍수시대이다. 그리고 인스턴트같은 정보와 각종 광고로 인해 우리가 하루에 접하는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런 시대가 아니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간다고 여길 수 없는 그런 시대인지도 모른다. 과연 이런 시대에 활자화된 서적을 손에 쥐고서 몇시간 아니 어떨때는 몇일을 소비한다면 경제적 논리로 보아선 비 합리적인 소비형태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비합리적인 면을 더 존중하는 밉기지 않는 부분이 있다. 책이란 무엇인가?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면서 인류의 모든 사고와 철학이 활자화된 책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전의 시대에도 책이 존재했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도 인류가 멸망하는 그 순간 까지 책은 출간될 것이고 또 어느 누군가에 의해 읽혀질 것이다. 아마도 책과 인류만큼 오래된 동반자도 드물것이다. 예로부터 오래될 수 록 좋은 것 중에 책이 한 몫을 차지한다. 누군가에게는 장식장을 멋지게 장식해주는 장서로서의 역활도 하고 또 누군가에는 그 장식물중 단 한권이라도 맘 놓고 읽으수 있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간에 책은 그 사람들에겐 소중한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책중의 주인공이나 책중의 드라마틱한 삶, 또는 책중의 사랑, 이별을 은연중에 모방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 만큼 책의 위력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속에 들어앉아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럼 이런 책과 어떻게 동거를 해야 잘 하는 것일까? 정답은 없다고 본다. 이 책의 인사들처럼 다소 어렵지만 상당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책과 친해보는것도 방법일테고, 아니면 만화책을 보더라도 그 책에서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도 있을 것이다. 다만 책에 대해서 정보의 습득이니, 타인의 경험을 간접체험하니, 감동을 받느니 보다는 책을 통해서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과연 제대로 되고 있나 하고 한번쯤 되물어볼수 있는 여유를 가질수 있었으면 한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한 밤중에 잠에서 깨어 서가앞에서 책을 찾고 있는 모습 자체로 삶의 등대같은 역활을 해주는 책을 보는것 같다면 너무나 비약적인 발상일까 싶다. |
![]()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책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어떤이에게는 부모가 잠잘때 읽어주었던 백설공주가 그 만남의 시작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학교에 들어가서야 만날수 있는 교과서가 책과의 첫 대면일지도 모른다.
책과의 첫 만남 이후 책과의 동행이 삶에 스며들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영 이별 하거나, 가끔씩 만나거나, 혹은 한동안 지워버렸다 다시 만나는 사람이 있기도하다. 우리는 책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사람일까?
책 좋아하는 사람이랑 수다 떨기, 책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사랑하기, 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따라 하기, 책에 나오는 음료와 음식 먹어보기, 책에 나오는 음악 찾아 듣기, 책이 알려주는 장소 가보기, 읽었으면 행동하기 등 자칭 '책 행동학'의 창시자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작가소개)
그녀의이름은 정혜윤, 그녀의 직업은 CBS라디오 PD이며,또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독한 독서광으로 2007년 '침대와 책' 이라는 책에서 책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방대한 지식을 나눈바 있다. 바로 이책이 그녀를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문제작 이기도 하다.
'침대와 책'이후 그녀가 선택한 책은 바로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이라는 부제를 가진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이다. 이 책은 부제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정혜윤 그녀가 만난 11인의 독서가들에 책에 대한 이야기 이다.
정혜윤 그녀의 이름이 없더라도 11인의 독서가들에 대한 이름만으로 이 책은 어느덧 읽고 싶은 책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
어렸을 때 아버지가 누나에게 사준<강소천 아동 문학 전집>으로 책읽기에 입문했다던 진중권, 그는 마크 트웨인의 책을 통해 짓꿎은 유머감각을 배웠으며, 애드거 앨런 포의 전집은 최근 다시 구입했을 만큼 그의 광팬이라고 한다.
진중권이 독서에서 가장 중시 하는 것은 추천 도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진중권이 책을 읽는 이유는 감동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P30-
활자 중독증이 걸릴만큼 책읽기를 사랑한 정이현, 책을 읽었더니 칭찬을 받더라? 라며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던 변영주, 책을 읽을 때 만큼을 아무도 내게 일을 시키지 않았기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던 신경숙, 세살때 오빠의 책가방을 뒤져 한글을 익혀 몇년후 선데이 서울을 보며 놀았다던 공지영 각자의 책과의 만남을 읽으며 왜 다들 어렸을 때 부터 책에 파묻힐 수 있었던 걸까? 라는 생각에 나는 조금 의기소침 해졌다. 아마 이 책에서 임순례의 글이 없었다면 나는 진정 좌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렸을때 부터 지독히 책을 좋아하고, 책과의 만남이 용이 했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임순례의 책과의 만남은 고등학생이 될 무렵 겨우 한두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던 나와 비슷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위해 동화책을 사주는 그런 정상적인 가정은 아니었죠. 텔레비전도 없었고 동화책 한 권 굴러다닌 적이 없으니까 친구들이 동화책 이야기를 하거나 만화영화 이야기를 해도 전혀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지 못했어요-P112-
그런 그녀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도서관이 있는 중학교에 입학한 후 부터이다. 뒤늦게야 책읽기에 입문한 그녀는 책을 통한 새로운 세계와 매력에 한동안 푹 빠져 이해도 못했던 토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발자크와 모파상의 책들을 읽었다고 한다. 이후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고, 선생님들께 공부 잘하는 아이로 좋게 찍힌 안도감 때문인지 숙제를 안해갔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정혜윤이 폭소를 터트렸듯 나 또한 숙제에 얽힌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대폭소를 터트렸다.
숙제를 안해가도 공부를 잘해서 심하게 맞지는 않았어요. 나중엔 선생님들도 그냥 좀 괴팍한 애라고 생각했고 나도 '그냥 맞고 말아 몸으로 때워' 이렇게 생각했죠. .......한문숙제 같은건 4번 쓰는 게 숙제였다면 그다음엔 두배로 8번, 16번,....512번까지 간 적이 있는데 그쯤 되면 선생님도 나도 포기했죠-P119-
이 책은 뚜렷한 기억이 나는 책이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로인해 새로운 책들에 대해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지식인 11인의 책에 대한 회상, 그들이 추천한 책, 그들의 책과의 만남 모든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데 상당히 불편한 느낌을 떨치기 힘들게 한 사람은 바로 정혜윤 그녀 였다.
물론 정헤윤이 만남사람, 그녀의 눈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잠시뿐 온통 정혜윤 그녀 스스로가 감상에 젖어 이 분이 이책을 얘기하니 이 책이 생각난다면서 본인이 생각난 그 책에 대해 적지않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이런 그녀의 글쓰기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는 흐름을 놓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가 떠오른 책들에 대한 그녀의 감상은 이 책은 어떠하다 라는 추천에 개념보다 그녀 스스로의 아주 지극히 추상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그녀의 자서전에 지식인 11인에 인터뷰를 조금씩 인용한 느낌마저 들어 무엇이 주인지를 모르겠다.
이 느낌은 지극히 주관적인 책읽기의 후기이기 때문에 나만 불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불편했다. 도대체 그녀가 모르는 책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정도로. 그리고 11인의 지식인들의 책과의 만남이 더 알고 싶은 갈증이 나는 것 또한 참기 힘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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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덫에 걸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덫이 책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복잡하고 신비로운 인간의 속성이었다. 그러므로 사람과 책이 만나는 지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한한 힌트를 준다. 왜냐하면 책이란 다름아닌 사랑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고 결국 어떤 책을 사랑하느냐는 그 사람의 속성, 그 사람의 자존감, 그 사람의 희망, 그 사람이 꿈꾸는 미래, 그 사람이 살아온 삶, 그 사람의 포용력,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짚어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세계가 두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을 읽고 왠지 어렵지만 산뜻하고 매력적인 정혜윤님의 글쓰기 스타일이 싫지는 않았으나.. 그 보다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몇몇 인물에 대한 관심 때문에 접하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저명인사들의 삶의 이력 안에 어떤 책들이 숨어있는지가 매우 궁금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몇몇 인물이 더 그랬다.
재미있었던 것은 책과 그 책을 읽는 사람의 관계에 대해 기술한 짧은 문장이 주는 느낌이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책을 좋아하느냐가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것.. 당연한 이야기같아 보이는 이 말이 내게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며 읽은 책들이, 난 읽어본 적이 한 번도 없거나 읽었어도 별로 좋아라는 느낌이 들지 않던 책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여기서 나는 내 자신이 타인에게 느끼는 끌림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별로 긴 사유없이 이끌어 낸 결론은 '나는 나와 매우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는구나..'라는 것.
이를 '미지의 것에 대한 동경' 내지는 '지적 호기심'이라 설명하면 너무 점잖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더 노골적으로 들쑤셔봐야 스스로에게 상처주기 이상은 아니기에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상념의 끝에 떠오른 것은 예전에 읽은 적이 있던 전경린 작가의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의 마직막 문장이었다.
「그 후로 내 마음은 다시는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끊임없이 모르는 사람들에게로 향해간 오랜 이주... 그후 내가 그나마 좋아한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언제까지나 긴장감을 주는 어려운 사람과, 나와 아주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날 연루가 없는 단 한 번 스치는 사람들이었다.」 전경린의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中에서
이 책은 「세계가 두번..」 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고전작품과 그 작품을 둘러싼 여라가지 이야기에 더하여, 그 작품을 읽었을 당시의 인터뷰한 저명인사 들의 느낌, 또 그 작품이 자신들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다보니 역시 이 책을 접하는 독자의 내공이 책과의 공감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독서의 이력이 일천하거나 분야가 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재미도 없고, 쉽지 않을 수 있는 책이다. 나 역시 일천하기도 한 독서이력이 분야까지 약간 다르기도 해서 힘들게 집중해서 꼭꼭 씹어 읽지 않고는 제대로 소화해내기 힘든 책이었다라는게 솔직한 고백이다. 마치 고기를 잘 못 먹는 사람이 커다란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경직된 얼굴로 긴장을 잔뜩 한 채, 조심스레 고기를 천천히 씹어 삼키듯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은 우리에게 '교양'이 되고, 요즈음의 책들은 왜 대부분 시덥잖은 것으로 치부되는지에 대해 가볍게 의문을 가져보았다. 훨씬 더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더 많은 작가들이 존재하며.. 글을 쓰기 편하게 해준 다양한 문명의 이기들이 존재하고, 또 글을 써가면서 먹고살 수 있는 방법도 훨씬 다양해진 요즈음인데.. 조목조목 따져보면 내린 스스로의 졸속한 결론은 '현재는 실제보다 폄하되고 과거는 실제보다 더 화려하게 포장하는 「집단적 편견」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수십년에서 수세기의 시간이 흐르면 현 시대에 쓰여진 '명작 고전'이 한·두개쯤은 존재할런지도 모른다. 아니, 내 졸속한 결론을 전제하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분명, 이 책은 재미있었지만, 이제 이런 책은 그만 읽어야 좋지 않을까 싶다. 글쓴 이의 영향을 받아 고전이나 명작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도, 소개된 책들을 애써 따라 읽어가며 공감대를 넓히려 애쓰는 짓도 어쩜 바른 독서의 태도는 아닐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책은 그런 내 생각에 연막을 치고 눈앞에 무엇을 씌울 정도의 매력을 가지고 있고, 난 그 매력 앞에서 자꾸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유혹에 잘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유혹을 사전에 차단하는 지혜도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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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책읽기의 개인사가 있기 마련이다. 그 개인사는 현실의 역사만큼이나 굴곡질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인생에 큰 파동을 일으킬만한 위력을 지닌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질 않고도 인생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흔하다. 그들의 저 만족스런 표정을 보라. 그건 잠시 내 주위의 지인들 면면을 머릿속에서 돌려보면 간단한 답이 나온다. 그들은 책을 읽질 않는다. 시간이 남으면 어떻게 그 시간을 KILL(죽일까)를 고민한다. 그러고도 어떤 안타까움이나 조바심을 찾아볼 순 없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 둘을 비교해 본다한들 확연히 그 차이가 드러나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어느 술자리에서나 사석에서 이야길 풀어놓는걸 보면, 한 사람의 영혼의 무게가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흔하다. 술기운에 말을 잘할 수는 있겠지만, 잡담,험담의 수준을 넘어서질 못한다. 그것이 그들의 한계다. 대화의 소재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눈높이가 필요한 경우가 그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생의 마인드로 아이들은 업그레이드 된다. 그러나 어른들은 왜 그러질 못할까?
4,50의 나이에도 무협지나 만화에만 빠져지내는걸 취미의 일종으로 여길 순 있다. 취미 생활은 여유로움과 피로의 회복을 인생에 제공하는 유익한 활동이니까. 그러나 공자님이 선언하신 인생의 꼭지점, 불혹과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도록 공상과 재미만 추구하는 인생은 누가보아도 가볍고 철없는게 아닌가?
정혜윤 CBS PD의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는 한 프로 독서가가 어떻게 책과 인물, 인생에 대해 색다른 변주를 보여주는지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이 사회 유명 작가, 영화감독, 배우 등의 책읽기 편력에 대해 들려주는 듯한 책이지만 정혜윤은 이같은 단순한 서술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친분으로 그들을 인터뷰하고, 책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정혜윤의 책에 대한 지식과 동경, 집착, 기억 등과 버무려지는 과정을 거친다. 한 인물의 책읽기의 편력에서 시작한 서술은 지은이의 책에 대한 느낌으로 기술되고, 마무리 된다. 그 사이에 실제 인터뷰이(Interviewee)의 목소리는 잦아지고, 인터뷰어(Interviewer)의 톤이 높아진다.
이같은 서술 방식은 책읽기의 프로답게 독특하고 능란하다. 이 책에서 소개한 인물들을 보라. 한 시대를 주름잡고 있는 독서가들 아닌가?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은희경, 신경숙, 박노자. 이들이 읽은 책과 그 책에서 갈피처럼 꽂아놓은 시간의 기억들과 보조를 맞추기란 서술자의 풍부한 독서량과 이해력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혜윤은 그들 못지 않은 책읽기의 프로라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러나 눈에 거슬리는 게 없는 건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이나 책의 표지를 훑어보면서 독자가 기대했을 것과는 판이한 정혜윤 식 서술 방식에 대한 불만이 제기될 수 있겠다. 독자는 아무래도 정혜윤의 독서 편력과 인생사보다는 여기에 인터뷰 된 인물들의 책읽기 편력에 더 관심이 많았을 테니까. 곳곳에 보이는 몽환적인 정혜윤의 문장들도 눈에 거슬린다. 내가 흔히 흥미롭게 보아오는 신문의 작가 인터뷰 기사 만큼의 깔끔함과 생동감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작가의 인터뷰에서조차 서술자가 지나치게 개입해 자의식을 흘려 놓는다면, 주인공은 보이지 않고 작가만 설쳐대는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물론 이 책의 미덕은 충분하다. 서술의 깊이과 변주의 능란함은 엄청난 독서량과 지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처음부터 끝까지를 채우고 있는 것또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책에 대한 애정과 책읽기에 대한 열정이다. 덧붙여, 그들이 선택해 읽었던 독서목록의 폭을 충분히 벤치마킹할 필요성이다. 독서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전을 읽지 않고, 베스트셀러에나 기웃거리며 통찰력 있는 독서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선도적인 독서가들의 책읽기 여정에 덧붙여, 그들이 선택한 책 목록을 친절하게 책의 뒷편에 묶어둔 것은 독자에 대한 배려로서 감사할 일이다.
이 시대 내노라하는 작가이자 감독이자 배우들인 그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독서가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능수능란한 책읽기는 개인적인 인생사에 따라 다른 길을 걷고 다른 목록을 취하고는 있지만, 저마다 도달한 곳은 한 인간이 일군 개성적 세계이며, 그 세계가 보여주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책안에 길이 있다, 라는 걸 그들의 삶은 확실히 증명한다.
이 책이 몇가지 흥미로운 사실과 재미있는 착각을 제공해준 것도 언급해야겠다. 진중권이 초경량 비행기로 비행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 더군다나 거금을 주고 초경량 비행기를 아예 사 버린일은 놀랍고 부러운 일이다. 김탁환이 어렸을적 앓었던 지병으로 한 때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 그것이 그의 문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을거란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박노자의 이름이 러시아의 아들이란 뜻을 갖고 있다는 사실, 국내에선 일자리가 없어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에서 교수 자리를 얻었다는 점. 그리고 착각 하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의 저자가 선혜윤씨(개그맨 신동엽의 아내)라고 생각한 나의 무지. 그래서 왜 재밌는 남편 얘기는 하나도 없을까? 라는 불만이 가끔씩 일었다는 점. 검색해보니, 그건 나의 우스운 착각이었다. 정혜윤씨는 CBS PD, 선혜윤씨는 MBC PD였다. :>
2009.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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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이 낸 네 권의 책 중에서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의 표지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든다. 반면 책의 내용은 가장 마음에 안 든다. 독자의 입장에서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든다, 안 든다 말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일인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가 문장력이나 필체의 문제는 아니다.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독서량 그리고 감각적인 문체는 이미 첫 번째 책인 「침대와 책」에 ‘관능적’으로 표현되었으므로.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가 ‘개인이 책과 만나는 지점에 관한 이야기가 주축이 될 것이고 어떤 이의 인생을 책으로 엮어본 작은 전기 정도가 될 것 같다’는 정혜윤의 설명은 맨 끝까지 읽을 때 까지도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언급한 ‘한 개인’이 혹시 자기 자신을 지칭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누군가를 인터뷰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자기 자랑만 하는 호스트host같은 느낌이다. 온통 그녀의 생각과 느낌과 그녀가 읽고 인용한 책의 구절들뿐이다. 그녀의 유년기에 대한 고백이 실린 프롤로그부터 이미 평범하지 않다. 이렇게 거창한 프롤로그는 처음이다. 메리 포핀스가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집에 있을 건가요?”란 아이들의 질문을 받지 “바람이 변하기 전까지”라고 대답하고 정말로 하늬바람이 불던 날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장면엔 너무나 압도돼서, 바람의 방향은 어떻게 변하나 보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내 인생 최초로 서해안의 하늘에 노을이 빨갛게 지는 걸 봐버렸고, 그게 어쩌면 내가 지구의 아름다음과 제대로 직면한 첫 순간이 아닐까싶다. p.10 단어도 그녀의 감정도 모두 과잉 상태인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느낀 바는 그렇다. 11인의 인터뷰 사이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인용 때문에 집중할 수 없었다. 산만하게 느껴졌다. 꼭 그녀처럼 발자크와 존 치버와 니콜 라피에르를 읽어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차라리 정혜윤이 읽은 구절 뭐 이런 식으로 편집해서 따로 책을 내면 좋았을 것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그녀가 읽은 책의 인용문들에 주눅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상당히 피곤해졌다. 마치 공통화제가 없는 수다쟁이와 두 시간 동안 엘리베이터에 꼼짝 없이 갇혀있었던 느낌이랄까.. 도서관에 가서 놀아본 사람은 다 알거 예요. 아무 데나 가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면 다른 책의 인용으로 이뤄진 게 책이란 걸 말이죠. 그래서 독창성이란 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자기식으로 배치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어요. 들뢰즈 책을 보세요. 들뢰즈는 99퍼센트 남의 말을 다시 한 것입니다. 그의 독창성은 바로 배치입니다. p.30 진중권이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독창성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자기식으로 배치하는 것이라면 정혜윤은 독창적인 사람이다. 감각적이고 도시적인 문체로 글을 쓰는 정말 멋진 작가이다. 다만 그녀가 ‘과유불급’이란 단어를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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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대한 열망에 다시 불을 붙이는 책.
정혜윤이 독서가들을 인터뷰하며 <정혜윤 PD의 그들은?>에 연재되는 글들을 보면서 그 글자들을 매번 곁에 두고픈 심정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 내 손에 들어 온 이 책이 이뻐 죽겠다.
연재된 글을 읽을 때도 감칠맛 나는 글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으로 만나니 새삼 정혜윤의 글빨도 남다르다는 것을 또 느낀다. 독서가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정혜윤의 이야기가 놓치기 싫은 문장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배가 부른 책이다. 더불어 수많은 책들의 감탄할 만한 대목의 인용구들과 영화의 스틸컷, 그림, 사진들을 보니 종합선물세트마냥 설레고 포만감이 더하다.
어찌나 이쁜지 표지마저도 보면 볼수록 각각 다른 많은 이야기들을 나한테 해댄다. 신발을 벗고 작은 등에 의지해서 책과 마주하고 있는 저자의 사진은 어렸을 적 책상 아래에 열린 부분을 막아서 만든 나만의 공간을 연상시킨다. 나는 잠도 안자고 그 상자같은 곳에서 읽은 책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습관적으로 책 모서리를 뜯어먹었더랬다. 그래서 책마다 모서리가 쥐 뜯어먹은 양 너덜거렸다. 지금은 책들이 너덜거리지는 않는 걸 보면 자라면서 만나 본 책들의 종이가 영 예전 맛 같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독서를 앞두고 있는 이들은 어떤 글들을 기대하고 있을까?
연재를 읽지 못한 독서가들은 인터뷰의 나열일 것인지 아니면 언급된 책만을 소개할 것인지 지금껏 보아온 책들의 구성을 떠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정혜윤의 글쓰는 방식은 상상을 넘어 독특한 장르로 탄생되었다. 이 책의 매력 중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이 책을 좋아한더라는 식도 아니다. 인터뷰이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사상에 영향을 준 글들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소개받기보다는 그 어떤 책과의 만남에 관한 추억을 듣게 된다. 화자이자 저자인 정혜윤은 자신의 독서이야기와 독서가들의 이야기를 결합해 새로운 에세이를 보여주고 있다. 정혜윤이라는 독서가에 의해 재탄생 된 다른 사람의 독서이야기들인 것이다. (듣다보면 아~! 하면서 지금의 그들이 어떻게 그.들.이 만.들.어.졌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왠지 이 독서가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기분이 들어 므흣(?)해진다.)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이라는 친절한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에세이들의 테마는 책과 사람이다.
글과 밀접한 삶을 살아 온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하나하나의 글들이 완성되었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있는 글들이다. 각각의 글은 정혜윤의 경험과 감상에서 떠오른 책에서 출발해서 인터뷰이들의 삶을 따라 독서경험으로 넘어가고 청자로서의 정혜윤은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가지치고 있다. 이런 일관성 있는 구성이 글들을 완성시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정혜윤의 글을 머무르지 않는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다. 읽었다는 것인지 쓰고 있다는 것인지, 책을 읽어주는 것인지, 지금 자신들의 잉여물에 대한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작업인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진 않으면서도 수많은 가지를 치고 있으며 그 가지는 마치 브레인 스토밍처럼 뻗어나갈 터인데 제법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미지라고 할까?
나도 마치 둥글고 작은 탁자를 두고 커피를 홀짝이며 그들과 대화하는 듯 여기저기 끼어 들면서 글을 읽어나간다. 나도 정혜윤처럼 매우 동감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더랬다. 특히 내게는 임순례 감독의 이야기가 매우 재미났다. 세친구라는 영화로 나는 임순례의 팬이 되어버렸더랬다. 쿨하고 조용한 말투가 들리는 듯 해서 임순례의 이야기는 더 신명나게 읽혔다.
그리고 그들의 도서 목록을 체크해가며 다시 책들을 만져대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처럼 종이를 먹진 않지만... 다시 미친 듯 책들을 탐닉하게 만든 책, 독서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일으킨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가 그랬다. 이 책의 제목은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이지만 혹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이후 삶을 지배할 영혼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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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랜턴 불 하나만 밝힌 채 수많은 책들이 꽂힌 책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소녀의 표지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아래 새겨진 낯익은 이름들....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 이들 11명의 책 이야기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12명이다. 이 책의 저자 정혜윤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이들은 어떤 책에서 태어났을까?
이 책은 참 색달랐다. 인터뷰이면서 에세이면서 잡담같은. 묻는 말에 답하고 다음 질문을 하고 또 답하고 하는 그런 경직된 분위기의 인터뷰가 아니라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한 참 수다를 떨며 어린시절 이야기를 했다가 책이야기를 했다가 하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대화에 끼어 그 반짝이는 눈빛을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유년과 너무나도 닮은 그들의 유년 이야기에 놀랐다. 그리고 그들의 앎의 욕구와 사유의 깊이에 또 놀랐다. 이들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린 시절,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 나름대로 책과 강한 정신적 소통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책에 씌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 역시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때로 기억한다. 시장을 가다 우연히 들렀던 서점에서 엄마가 사주었던 한 권의 책. 그 책은 이슬기 저 <주근깨 소녀(지경사)> 였다.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쉴 새 없이 읽었다. 그 책은 나에게 '글을 쓰는 사람' 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한 책이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줄곧 나의 꿈은 작가이다. 여담이지만 그 책을 수소문하며 찾아다니던 통에 저자이신 이슬기 선생님과 연락이 닿아 알고 지내게 되었다. 이 역시 나에게는 책으로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간혹 '니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은 뭐야?" 하고 묻곤 한다. 그럴때면 나는 어김없이 <주근깨 소녀> 라고 말한다. 이것이 나를 만든 책이다. 작가로서의 나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는 나로,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 말이다.
어린시절 나는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도 몹시 좋아했다. 그래서 주로 낮에는 동네에서 놀고 밤에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역시 나에게 책이 온전히 스밀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오로지 활자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그 때 나는 책을 읽었다. 지금도 낮보다는 밤에 더 잘 읽힌다. 학창시절에 한 번은 <안네의 일기>를 읽고(역시 깊은 밤이었다) 나서 기이한 행동을 해서 가족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유난히 목이 탔고 갑갑했다. 나치 정권 아래, 다락방에서의 삶 이야기, 그들의 숨죽인 생활. 비로소 책을 다 읽고 나는 물을 마시러 냉장고로 다가갔다. 불도 켜지 않은 채 까치발로 살금살금. 소리나지 않게 냉장고 문을 열고 조심스레 물병을 집어 들어 병째 마시고는 또 다시 곱사등으로 살금살금. 그러다 주방으로 나온 엄마와 대면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엄마는 내게 왜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답했다. "방금 안네의 일기를 읽었는데 저도 모르게 아무에게도 들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라고. 이 책에 완전히 빠진 나머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졸였던 그대로 행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학창시절,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책과 글로 사람들을 속였다. 여름 방학 과제로 독후감을 써내야 했는데 그 도서 목록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곤 없었다. 결국 나는 책을 읽지도 않고 독후감을 썼다. 글짓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개학이 되고 조회시간에 나는 교단으로 불려 갔다. 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것도 우수독후감상을. 나는 그 짓을 한 번 더 했고 또 교단에서 대표로 상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기고만장했다. 음악감상문을 써내는 과제가 있었는데 다음 시간 음악 선생님이 실망한 표정으로 말씀 하셨다. "어떻게 음악 감상이란 것을 이렇게들 했니. 음악을 한 번이라도 듣고 쓴 것이니?" 말씀을 마치고 이어 나의 이름을 불렀다. 앞으로 나오라고. 나의 음악공책을 집어 들고는 내게 내미셨다. "니가 쓴 것을 읽어 봐"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한 줄 한 줄 읽었갔다. 내 가슴이 곧게 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 음악감상문은 음악을 듣지 않고 곡목과 음악가 그리고 약간의 곡정보만으로 썼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감상문 읽기를 마치자 음악선생님은 "음악 감상문이라는 것은 이렇게 쓰는 거야. 알겠어?" 하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때의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종이 한 장 상을 받아 내려오는 교단에서보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진심을 다해 칭찬을 하셨던 그 선생님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 후로 나는 결심을 했다. '앞으로 다시는 글로 사람을 속이지는 말자'고.
좋아하는 책은? 11명의 그들도 특히나 좋아하는 책이 있었다. 나도 사랑하는 책이 있다. 요한 볼프강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그것인데 초등학교 6학년 짝사랑 당시에 읽었던 책이라서 그랬을까? 나는 혼을 완전히 빼앗겨버린 경험을 했고 그 이후로도 그 책을 읽을 때면 번번히 울게 되었다. 눈물나리만치 아름답고 섬세했던 베르테르의 감성. 급기야 그 책을 모으게 되었는데 지금은 약 40권 정도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역시 언제 읽어도 좋은 책이다. 나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그런데 이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는 나에게 '나와 책과의 만남' 을 아스라이 떠올리게 했다. 책과의 추억 속으로 고스란히 나를 데려다 놓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즐거웠고 '어머? 정말요? 나도 그랬어요' 하며 맞장구를 치고 싶게 만들었다.
이 책을 덮고나서 또 읽고 싶은 책이 늘었다. 《전태일 평전》《공산당 선언》《미학 오디세이》《폭력과 상스러움》《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보이지 않는 도착적 폭력》《세계문학의 천재들》《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왼손을 위한 협주곡》《고독의 발명》《햄버거에 대한 명상》《내가 사랑한 침팬지》《달의 궁전》《다른 곳을 사유하자》《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심판》《화차》《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 그것이다. 이 세상 모든 책을 다 읽는 것이 소원이라는 누구처럼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 책, 적어도 이 책들은 다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책을 읽고 책을 사랑하고 있는 내가 한없이 사랑스럽다. 책과 함께하고 있기에 항상 즐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