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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 화
이 형 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아름다운 이별을 기대하며 여행을 떠나던 적이 있었다. 이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늘 홀로 떠났던 여행. 여행지의 사람들과 풋사랑처럼 정들고 뒤돌아설 때 한 줄기 눈물을 기대하는 여행. 내게 여행은 이별의 기억을 간직하는 짙푸른 슬픔이었다. 그랬다. 여행은 시인이 노래하듯, 가야할 때를 기약하고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내 여행의 기억은 만남보다 이별이 먼저 떠오른다. 책의 맨 뒷장을 펼쳤다. 내가 그랬듯 작가의 이별을 먼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별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얼마 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에서 그가 보여준 풋풋한 감상과 아마추어 작가다운 신선함에 한껏 매료되었었는데...... 몽골 초원을 향하여 떠났던 그의 여행은 바람과 말과 초원과 칭기즈칸과 별과 먼지,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의 반복과 기성작가의 못된 습성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하지만 조금 부풀려진 감성, 옅은 미소를 떠올릴만한 과장된 표현에서 독자는 자신의 현실을 잊고 작가와의 여행을 기꺼이 허락할 수 있건만..... 작가의 감성이 메마른 탓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한 권의 책을 낸 그가 기성작가의 흉내를 내고 싶어서였을까. 자신의 느낌과 억지춘향으로 지면을 채운 인용문이 뒤섞여 여행의 감흥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여행지에서 메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썼음직한 글들도 간혹 보이지만 그마저도 다른 인용문들에 가려 빛을 보기 어려웠다. 지금은 작고한 조병화 시인이 자신의 회갑을 기념하여 발간한 책에서 앞에 쓴 내용을 수없이 반복하며 지면을 메운 모습을 접한 후에 다시는 그분의 책을 사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책을 덮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쓸 말이 없을 때는 한줄의 글로 줄일줄 아는 용기가 작가를 작가답게 하지 않을까? 자신의 욕심으로 꾸민 한 권의 책보다는 한줄의 메모가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실 때가 있음을 그는 몰랐던 것일까? |
내 삶의 바탕화면 ![]() 저게 뭐더라.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바탕화면이었다.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바람이 다듬은 선 고운 언덕, 완곡한 에스라인의 푸른 초원과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 그리고 흰구름. 나는 그 바탕화면을 좋아한다. 푸른 초원과 파란 하늘 그리고 흰구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단순함으로 되돌아와 잠시나마 눈과 마음의 쉼을 얻곤 했다. 내 삶의 바탕화면은 무엇일까. - 신영길의《초원의 바람을 가르다》중에서 - * 내 삶의 바탕화면은 무엇일까. 이 시간 저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탁 트인 푸른 초원, 맑고 푸른 하늘, 흰구름의 모습일까, 아니면 검은 땅, 흐린 하늘, 탁한 먹구름의 모습일까? 누구든 찾아와도 어머님 품처럼 따뜻한 곳일까, 열 때마다 얼음처럼 차갑고 메마른 곳일까? 사람은 누구나 바탕화면이 있습니다. 그가 하는 말, 몸짓, 발걸음 하나에 얼핏얼핏 투영되어 나타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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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출근을 해서 컴퓨터를 켠 후 제일 처음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메일을 확인하는 일이다. 활기차게 시작해야 할 아침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반갑지 않은 스팸메일로 꽉 차있는 메일을 확인하는 이유는 매일 하루를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내가 「고도원의 아침편지」와 함께 한 세월 역시 만만찮다. 그런데 올해 여름 즈음인가 몽골로의 여행을 함께 할 가족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담은 편지를 보았다. 몇 해 동안 꾸준하게 진행되어 온 여행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나는 처음 듣는 소식이어서 생소했다. 며칠을 ‘몽골로의 여행은 얼마나 멋질까’만 상상하다가 잊어버렸었는데, 도서관에서 이 책 《초원의 바람을 가르다(2008.7.3. 나무생각)》를 발견하면서 몽골로의 여행을 다시 상상하게 되었다. 이 책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 다녀온 2006,2007년 두 차례의 기록(p230)을 담았다. 《초원의 바람을 가르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바라보며 걷는 기분, 그리고 말에 올라타 달리는 기분을 만끽하게 만든다. 초록의 풀들로 덮여 있는 나지막한 언덕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곳에 가면 포장된 나를 벗어던질 수 있고 그래서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오롯한 나의 자아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이 책은 몽골과 몽고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몽골의 당당했던 역사와 너무나도 당당했기에 지금까지 고되기만 했던 몽골 민족의 삶이 더욱 서글퍼 보이는 현재까지의 역사를 보여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오해했을 수도 있는 몽골민족의 역사를 알려준다. 그들은 비난받을 행동 그리고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없지만, 지금까지 숨죽여 살아야만 했던 어쩔 수 없었던 그들만의 역사를 보여준다. 저자는 ‘초원에는 시계가 없다.’는 문장으로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어디선가 우리가 느끼는 물리적인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십대 일 때 느끼는 시간과 삼십대 일 때 느끼는 시간이 다르듯이, 도시에서 느끼는 시간과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서 느끼는 시간은 분명 다르리라. 근심, 걱정을 털어버리고 희망을 갖고,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몽골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느껴질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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