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로 기억된다. 교회선생님으로부터 빌려본 책이 있었다. 그 당시 많은 감동을 받았던 그런 책이다. 하지만 그 후로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책. 이젠 커버린 내가 얼마 전 꿈속에서 교회 아이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이야기해주던 내용이 있다. 바로 “우동 한 그릇”의 내용. 난 꿈속에서 아이들에게 내가 느꼈던 감동을 전해주려 애쓰지만, 그 감동의 전달이 쉽지 않아 애태운다. 잠에서 깬 후 잠결에 꾼 꿈치고는 너무나도 선명하고 또한 책의 내용마저 뚜렷하게 전달하던 꿈속의 내 모습에 무척 신기해하던 일이 있다. 얼마 후 들른 서점의 진열장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어 반갑게 손에 든다. 바로 며칠 전 꿈속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던 바로 그 책, “우동 한 그릇”이다. 서점 주인에게 이 책이 혹 예전에 나왔던 책이 아니냐고 묻자, 예전에 출판된 책이 맞지만 여전히 잘 나간다는 주인 아저씨의 말에 내 꿈속에 나타났던(?) 바로 그 책임을 알고 얼른 사게 된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을 펼쳐들면서 또 다시 맛보게 되는 감동이란! 책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작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배려가 내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준다. 허름한 세 모자의 밤늦은 우동 한 그릇의 주문에도 웃으며 조금 많은 양의 우동을 말아주던 주인아저씨의 묵묵한 인정. 우동 한 그릇을 함께 나누며 삶의 희망을 키워가던 세 모자. 작은 빵집에서 일하지만 그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작은 인정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주려 노력하는 여종업원의 모습.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이 일하는 빵집의 빵을 먹고 싶어한다는 할머니에게 사랑과 인정을 담아 건네주는 모습. 진정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따뜻한 곳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크고 힘찬 어떤 정신이나 힘보다는 이러한 작은 배려와 사랑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책을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지만, 벌써 눈시울을 글썽이게 하는 아름다운 배려의 마음들... 이런 작지만 아름다운 마음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 맛깔 나는 곳이 되어 가는 것이리라. 아무리 세상이 삭막해지고 무서워진다 해도 이런 작은 아름다움들이 모인다면 결국 세상의 어두움은 그 아름다움 앞에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빛깔을 띄느냐 하는 것은 그 누구의 몫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몫임을 자각하게 된다. 정말 가슴을 후끈 달구어주는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책이다. 내가 꾼 꿈은 이런 아름다움을 다시 맛보도록 하기 위한 계시(너무 거창하지만...)가 아니었을까? 책을 덮으며 다시 한번 놀란다. 이 책의 초판은 1989년도가 아닌가! 난 이 책을 어린 시절에 읽었었는 줄 알았지만, 이 때는 이미 내가 대학생이었었는데... 역시 사람의 기억은 이처럼 불완전하고 세월 따라 변해가기 마련인가 보다. |
| 감동적인 소설이라는 우동 한그릇. 중학교 때 선생님이 추천하며 낭독해 주시기도 했던 그 소설. 우리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우동을 안 먹으면 안 먹었지.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족이 우동을 먹던 것 역시, 다시 한 번 결심을 다지는 그런 것이었고. 왜 우리가 이 소설에 감동받아야만 한다고 학교 다닐 때 강요받았는지, 지금도 이해는 할 수 없다. 인간이란 기본적인 사상이라던가 그런 것은 비슷할지라도, 자라온 문화나 환경에 따라 감동이라는 것이 다를 수 있다. 내가 느낀 감동이라는것은, 성공해서 그 가게에 다시 찾아오는 장면밖에 없었다. 그 자리를 비워 두는 주인도, 한 그릇을 셋이 나눠 먹는 가족도 나에게는 감동이라기 보다는 "일본 애들은 저런 것에 감동받는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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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그릇..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구매하게 된 책이었다~ 우선 책을 펴 보았을 때 글이 너무 많지도 않아서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이라도 너무 빼곡하게 글만 써있으면 다가가기 힘든 법이니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언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다른사람은 그 의미를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상황에서는 같은 행동이라도 다른 의미의 행동으로 보일 수 도 있으니~ 문득 나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 어떠한 회사에든 들어가 취업을 하게되고 일을하게 되면~ 늘 다른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단지 의무적인 서비스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서비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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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정의 힘은 얼마나 클 수 있는 것일까.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을 만큼 절대적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북해정의 주인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장사를 하면서 그저 친절하게 다소 너그러운 마음씀을 보였던 것이 한 어린아이의 미래를 아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무시하고 존중해 주지 않았더라면 세 모자의 삶이 이렇게 성공적일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심코 말들을 주고받곤 한다. 그 중 어떤 말은 상대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말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말을 하는 사람은 잘 모르는 경우도 있겠으나 말을 듣는 사람은 그 말에 절대적인 영향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 힘을 얻었으며 언제 상처를 입었던가. 그리고 또 나는 언제 그 누군가에게 힘을 주었으며 상처를 입혔을까.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서 북해정의 주인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늘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려고만 하지 자신이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어 보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랑을 베풀기보다는 사랑을 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만을 하고 있다면 과연 누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인가. 북해정의 주인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해야겠다. 나의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생에 긍정적인 힘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큰 보람이 되랴. |
|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그릇'은 철저하게 일본적인 감동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만 소설 속의 주인공이 한국인이었다면 구질구질하게 온 가족이 우동 한그릇을 사먹으려고 가게에 가냐?하는 생각을 할테고, 식당주인도 재수없게 뭐 이런 손님들이 다 있어?하고 생각할 것이다.(괜한 말이 아니다. 일본식당에서는 불고기 1인분도 주문을 받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인분을 시키려고 하면 눈총을 받는다.) '우동 한그릇'에 온 열도가 떠들썩했다가 실화가 아니란 게 밝혀지고 난 이후에는 한 편의 사기극이라고 매도했다는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이 조금 우습긴 하고... 참 기묘한 소설이다. 나 또한 감동을 받긴 했지한 한편으로는 허접한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고... |
| 두 편 실려있죠. <우동 한그릇="">, 그리고 <마지막 손님="">.....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손님쪽에 점수를 더 주고 싶었습니다. 우동 한그릇은....물론 감동입니다. 우동집 주인하며 절절히 마음을 울리는 세모자의 사연..... 그렇지만 저는 마음이 너무 굳어서인가?? 우동한그릇은 분명 아름다운 얘기지만 그닥 마음에 와닿지 않더라구요. 그에비해 마지막 손님은 정말 아름답다!!라고 밖에는 얘기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었습니다. 물론 현실에 이런 이야기가 존재할리는 없겠죠?? 그렇지만 믿고 싶어지는 이야기었습니다. 어딘가 이런 사람도 있을꺼야...하구요. 솔직히 이렇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들...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예전에도 있었을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지만 이제는 이 책처럼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한번씩 읽어 줬으면 좋겠어요. 이 책의 교훈, 잊지 않게요.마지막>우동> |
| 아래 담겨진 서평들을 읽고 나서... 우동 한 그릇은 예전부터 유명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내용을 알고 있다. 우동 한 그릇을 읽고 나서는 너무 빨리 읽었기 때문에 감흥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 이 책이 출간되고 얼마 안되서 읽은 책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 때는 별로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우동 한 그릇"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일본의 명절에는 우동?? 아닌것 같은데.. 암튼.. 그 명절에는 우동인가를 먹어야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그래서 주인공들이 우동을 먹으러 들어간 것이다. 우리 나라 명절에서 팥죽이나 오곡밥, 떡국 등을 먹는 것처럼.. 그래서 아무리 가난할 지라도 그 한그릇을 먹기 위해 가게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가게 주인은 손님이 한 그릇을 시켰기 때문에 손님의 마음에 상처되지 않게 조심스레 한 그릇에 이인분에 가까운 양을 담는다. 우리 정서에는 안 맞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냥 우동값 안받아도 되지 뭐. 또는 그냥 2인분 줄것이지..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인의 정서답게 상대방에 대해 굉장히 배려를 하려고 한다. 그게 설령 겉치레에 불과할 지라도.... 우리의 작은 배려가 다른 사람에게는 큰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작은 사실조차 우리는 잘 이행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각으로 남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우동 한그릇"의 묘미이고 사랑인 것 같다. 타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에서 부터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더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이 일본문화로서의 가치도 있겠지만, 그냥 하나의 이야기로서 읽혔으면 하는 바램도 함께. |
| 언젠가, 이 우동 한 그릇이라는 글을 통신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글을 읽어가며, 가슴 뭉클했었다.. 나중엔, 애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혼자서 코끝이 시큰해져서 무안해 하기도 했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고객이라는 입장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해준 책 뒤편의 '마지막 손님'도 추천할만 하지만.. 역시, '우동 한 그릇'의 감동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가 보다.. ^^ 누군가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매우 느낌이 좋았다는 말을 적어보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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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즉 그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은 우동집으로서 가장 바쁜 날이다. 누가 12월 31일 아니랄까 봐 우동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동을 먹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빨라진다. 밤 10시쯤 사람들로 가득 찼던 우동집은 금세 조용해졌다. 마감 작업을 할 때 문이 열리더니 엄마로 보이는 한 여성과 아들 2명이 우동집 앞에 서 있었다. 가족은 조심스럽게 우동집 안으로 들어와 우동 1인분을 시켰다. 주방장은 '사람은 3명인데 왜 1인분만 시킬까?'라는 의심 없이 바로 우동 1인분을 준비했다. 왜냐하면 주방장은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 우동을 1인분만 시키는 이유가 보였기 때문이다. 주방장은 조심스럽게 우동 1인분에 우동 반 덩이를 더 넣었다. 세 사람은 사장님의 마음이 담긴 우동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향했다. 그후 새해를 맞이한 우동집은 변함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또다시 12월 31일이 찾아왔다. 작년과 같이 우동집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밤 10시가 되니 또다시 북적했던 우동집은 조용해졌다. 밤 10시가 되니 한 여성과 아들 2명이 우동집 앞에 서 있었다. 한 여성이 입고 있던 체크 코트를 보니 작년에 왔던 손님들이라는 걸 알았다. 세 사람은 우동 1인분을 주문했다. 주방장의 아내는 그냥 공짜로 우동 3인분을 주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주방장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주방장은 세 사람에게 우동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만약 지금 3인분을 주면 다음에 부담스러워서 못 올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주방장은 우동 1인분에 반 덩이를 더 넣어서 세 사람에게 갖다주었다. 세 사람은 우동을 맛있게 먹고 추운 겨울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다음 해의 섣달그믐 밤, 하염없이 우동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또다시 10시가 되자 사람들은 집으로 향하고 주방장은 누군가를 계속 기다렸다. 우동집에는 사람이 없지만 2번 테이블엔 '예약석'이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 10시 반이 되자 어김없이 세 사람은 우동집으로 향했다. 형은 교복을 입고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었던 잠바를 입고 엄마는 여전히 코트를 입고 있었다. 세 사람은 작년과 다르게 우동 2인분을 주문했다. 엄마는 밝은 목소리로 아들 2명에게 말했다. "예전에 아빠가 사고를 내서 피해자에게 피해금을 줘야 해서 빚이 생겼는데, 내년 3월이나 돼야 돈을 다 갚을 수 있는데 지금 다 갚았다." 그 말을 듣자 아이들은 좋아했다. 그러자 동생이 말을 꺼냈다. "사실 저번에 제가 쓴 글이 뽑혀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참관수업이 있었는데, 엄마가 바빠서 종이를 못 드렸어요." 그러자 엄마는 조금 놀랐지만 침착하게 계속해서 물었다. 형이 동생의 글을 읽는 사이 주방장과 아내는 주방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이야기를 다 마친 세 사람은 주위에 있는 아파트까지 들릴 만큼 주방장과 아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또다시 1년이 지나 12월 31일이 되었다. 밤 10시가 넘자 아내와 주방장은 세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 그다음 해도 세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2번 테이블에 예약석을 올려두었지만 끝내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주인장은 세 사람이 앉았던 식탁과 의자를 버리지 않고 이걸 제외한 나머지 식탁과 의자, 외관을 인테리어했다. 우동집에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 식탁을 보고 이상해했지만 사장님은 절대 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하자 사장님은 사연을 알려주었다. 그 사연을 듣고 가게에 우동을 먹으러 멀리서 오는 사람들과 어려운 가정 사람들이 우동을 먹으러 왔다. 사람들은 세 사람을 보려고 밤 10시가 넘어도 집에 가지 않았다. 밤 10시가 넘자 문이 열리더니 세 사람이 우동집에 들어왔다. 정장을 입은 아들들과 양장을 입은 엄마가 들어와 우동 3인분을 주문했다. 그러자 주방장의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세 사람을 2번 예약석에 앉히고 세 사람을 기다린 만큼 우동을 재빨리 만들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가난도 행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 사람은 빚이 있어 우동집에 올 때마다 1인분, 2인분만 시켰지만 항상 밝은 얼굴로 있었기에, 자신이 가난해도 절대로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