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먹해졌다는 표현이 있다. 우울함과 안타까움을 동반하는 표현일꺼다.
'텐더니스'를 읽고 난 내 마음이 그랬다. 아마, 이 책은 요즘 내가 스스로 하고 있는 운동... 읽고 난 후 오랜 시간 후에나 리뷰를 쓸 그렇지 않다면 리뷰를 쓰지 않고 넘어갈 책이였거만 ㅠ.ㅠ
어제 저녁 3시간 남짓의 독서를 끝내고 나서
이 책이 서스펜스일까?
그러나, 이 책을 서스펜스라고 부르기엔 부족함이 있다. 연쇄살인범 '에릭'도 그렇지만 '로리'도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들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는 법을 알지도 못한다. 그저, 삶의 불행에 상처받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돌이키는 대신 삶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래서 불행해지지만.. 애초에 태어날때부터.. 그들의 환경을 10대 청소년들이 가져야할 관심과 행복에서부터 멀어져있으니..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로리'의 순수한 열정이 모든 것을 갈라버렸다. 완전히, 돌이킬 수 없도록...
누군가와 소통하기 보다 스스로의 환상에 빠져있길 좋아하는 소년 에릭.
에릭에게 망각보다 먼저 찾아온 소녀, 로리. 처음 시작부터 절대로 맞닿을 수 없었던 에릭과 로리의 사랑이 하루 종일 날 먹먹하게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
|
"지나친 부드러움은 오히려 고통이 된다." 소설은 그렇게 칼란 지브란의 말로 시작한다. 십대가 처한 세상의 어두운 현실을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로버트 코마이어의 '텐더니스'는 제목처럼 강박적으로 '부드러움'을 찾는 십대의 그 여자, 그 남자의 이야기이다. ![]() 그 여자의 이름은 로리 크랜스텐. 십대의 그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안정된 삶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떠돌이 인생. 엄마와 나의 삶은 그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일거리를 찾아 떠나거나, 아니면 어차피 깨지고 말 남자들의 약속을 쫓아다니는 것이다.'(p. 19) 진짜 아버지가 일찍 죽어버린 뒤로 엄마가 둥지를 틀었던 남자들은 두 가지 중의 하나였다. 가정 폭력을 휘두르거나 로리에게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거나. 그랬기에 로리의 삶은 늘 위태로웠고 때문에 로리의 '부드러움'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은 한 마디로 안정에 대한 희구에 다름 아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안정을 가져다 줄 부드러움을 가지기 위해 집을 떠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드롭이란 락커의 입술에 키스하기 위하여. 결국 그녀는 목적한 바를 이룬다. 그토록 집착했던 것을 이루었으나 커다란 공허함만 남는다. 왜냐하면 로리에게 있어서 집착은 그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집착이라는 상태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상은 그저 집착을 더 가열차게 움직이게 할 증기기관차의 화로에 넣는 석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이유가 있었다. 그녀에게 결정적으로 부드러움의 집착을 가져온 원초적인 만남이. 로리의 집착은 그 첫 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집착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첫 부드러움을 주었던 대상을 향한. 살면서 느꼈던 유일한 부드러움과 타인의 자애에서 비롯된 안정감을 준 소년을 향한. 집착은 그녀에게 러브 레터였다. 로리는 우연히 TV에서 남자를 본다. 로리는 놀란다. 바로 그 남자였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의 집착을 낳게 한 장본인. 이제 로리는 그 남자에게 키스해야 한다고 집착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에릭. 평범한 남자는 아니다. 그는 십대 나이에 부모를 살해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의 실체 전부는 아니다. 사실 그는 연쇄 살인범이다. 지금까지 다섯 명의 소녀를 살해했다. 그가 부모를 살해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연쇄 살인을 덮기 위해서. 그는 학대 받은 끝에 어쩔 수 없이 살해했다는 정황을 남겨 짧은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다. 그가 노렸던 그대로 된 것이다. 그가 저질렀던 연쇄 살인에 그는 전혀 연루되지 않았고 세상은 동정의 시선마저 보냈다. 그는 키득거렸다. 그의 연기에 다들 속은 것이다. 아니, 한 사람은 속지 않았다. 프록터 경위. 그는 에릭이 감옥에 있는 3년 동안, 1년에 네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와서 에릭에게 말한다. '너는 괴물이야.'라고. 에릭도 로리만큼이나 강박적으로 부드러움에 집착한다. 에릭의 살인은 그 집착의 결과다. 그는 어릴 때 고양이 목을 꺾을 때 부드러움을 느낀 뒤로 내내 그것을 얻으려 찾아 다닌다. 즉 그에게 부드러움이란 다름아닌 죽음이다. 아니나 다를까 생명있는 모든 것을 금이라는 무생물로 만들어버리는 마이더스의 손과도 같이 그는 부드러움을 찾아낼 때마다 족족 죽여버린다. 소멸. 대상인 존재가 제거되지 않고서는 에릭은 부드러움을 얻을 수 없다. 반면 로리는 대상인 존재는 온전히 보존된다. 그렇게 같은 집착이지만 결과는 다르다. 실은 만나지 말았어야 할 그 여자와 그 남자. 하지만 잔혹한 운명은 그들을 만나게 한다. 결국 로리가 에릭을 찾아온 것이다. 처음 에릭은 로리를 몰라보았다. 그러다 기억해 내었다. 가장 처음으로 소녀를 살해했던 날 철로에서 만났던 어린 계집아이였다는 것을. 로리는 프록터 경위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첫 살인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것이다. 프록터 경위의 수사와 감시가 아직도 시퍼런 칼날처럼 자신을 향해 있는 상황에서 로리의 존재는 자신에게 지극히 위험하다. 결국 에릭은 그녀를 제거하기로 한다. 그런데 '텐더니스'는 로맨스다. 로리가 에릭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로리는 그 사랑이 목숨을 건 사랑인지도 모르고 그저 한껏 드러내기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부드러움의 집착을 낳게 한 그 남자는 궁극의 부드러움을 가져다 줄 남자였던 것이다. 로리는 그것을 느낀다. 그가 그토록 찾던 절대적 안정을 줄 것이라고. 그 확신 때문이었을까?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에릭도 스스로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취향도 아니고 찾고 있는 부드러움도 아닌데 에릭은 그녀를 쉽게 제거할 수 없다. 에릭은 그 이유를 정확히 몰랐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알 수 있다. 에릭이 로리를 쉽게 제거하지 못하는 까닭은 늘 괴물이었던 에릭은 로리를 처음 만났던 날의 그 잠깐 동안 유일하게 인간으로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렇다. 로리는 그가 오래도록 방치하고 있었던 '인간다움'의 환기였던 것이다. 그는 비록 무의식적이었지만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집착하던 부드러움의 정체가 진짜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 아니라 '인간다움'임을. 모든 인간적인 감정들, 눈물과 자애로움인 것을. '텐더니스'는 그러한 이야기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사랑 이야기. 더구나 남자는 연쇄 살인범. 결말이 좋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이 과연 비관적인지는 모르겠다. 로버트 코마이어는 냉정한 현실론자다. 그는 로리의 바람인 절대적 안정이 결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며 오직 죽음만이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삶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수면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수면은 잠시도 제자리에 있을 수 없다. 어제의 안정이 오늘의 불안이 될 수도 있다. 시간따라 항상 끊임없이 움직이며 예측과 안정이 결코 허용되지 않는 수면은 오직 시간이 정지했을 때라야 절대적 평온을 얻을 수 있다. 프로이트도 그걸 잘 알았기 때문에 우리에겐 본질적으로 죽음 충동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 영겁에 걸친 정지의 시간으로 들어갈 때 마음에 과연 무엇을 담고 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타인의 따스한 자애로움을, 또 어떤 누군가는 비정한 지옥만을 담고 갈 수도 있다. 삶의 진짜 의미는 바로 거기서 결정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로리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로리는 그 순간 오직 자애로움의 기억만 안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코마이어가 그 때의 공간적 배경을 물 속으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물의 생명이 물에서 비롯되듯이 물은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생명과 부활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에릭은? 에릭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위해 단 한 번도 울 수 없던 그가 마지막엔 울게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 결국 그 여자와 그 남자는 자신이 그토록 찾고자 하는 부드러움을 찾은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어째서 로리는 에릭에게서, 에릭은 로리에게서야 가능했을까? 이유는 딱 한 가지인 것 같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무엇보다 지속이라는 시간의 차원을 갖는다. 그러고 보면 서로를 만나기 전에 로리와 에릭이 집착한 대상을 가졌을 때는 모두 순간 속에서 이루어졌다. 로리는 키스라는 짧은 입맞춤, 에릭은 즉각적인 살해. 집착하는 대상을 이루기 전까지 로리는 대상을 직접 만나볼 수 없었기에 자신에게만 골몰할 수밖에 없었고 에릭은 대상을 죽이기 위하여 어떻게 유혹할까 하는 생각만 했다. 단 한 번도 서로의 내면을 교류할 깊고도 진득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이다. 로리와 에릭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한다면 그건 사랑의 위대한 힘 때문이고 그 위대한 힘은 다름아닌 사랑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그러한 관계 맺기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이 책의 질문이기도 한 '부드러움'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도 알 수 있을 듯 하다. 그것은 서로를 만나기 전의 로리와 에릭이 그랬던 것처럼 결코 나의 바깥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렇다. 오히려 그것은 내 안에 있다. 타인의 입장에서 그를 깊이 이해하려 나를 온전히 내어줄 때, 부드러움은 비로소 태어난다. 부드러움은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발현되는 것이다.
|
|
어린 소년 연쇄살인범과 어린 가출 소녀, 그리고 예전의 잘못때문에 괴로워하며 반드시 소년을 잡겠다고 쫓아다니는 노형사, 이 세 명의 시선이 교차하며 작품은 부드럽게 나아간다. 표지에서 깃털들이 날리운다. 끝에 살짝 피가 묻어 있다. 저 피는 누구의 피일까? 모든 부드러움을 갈망한 이들의 피는 아닐까? '지나친 부드러움은 오히려 고통이 된다. 그리고 가장 상처를 잘 입는 부위가 가장 부드럽다.' 이것은 지나친 부드러움 때문에 오히려 살인자가 된 에릭을 두고 한 말이기도 하고 이 작품에서 가장 부드럽게 등장하는 로리를 향한 말이기도 하고 가슴 속에 내내 어린 소녀의 살아있을때의 모습을 담고 산 프록터 경위의 끝나지 않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부드러움을 갈망하는 에릭은 부드러움을 맛보기 위해 소녀들을 살해한다. 처음에는 어린 고양이였다. 그 부드러움을 쥐어짰다. 그리고 더 이상 부드러움을 주지 않는 엄마와 계부를 학대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살인으로 위장해서 살해해 소년원에 들어갔다. 자유롭게 부드러운 여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그는 왜 부드러움에 집착하는 것일까? 왜 보통의 소년처럼 행동하지 못하고 제딴에는 영악함을 연기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쇼핑도 제대로 못하고 카페도 가보지 못한 소년이다. 이 소년에게서 그런 것들, 평범하고 보통의 삶을 앗아간 이는 누구일까? 그것은 에릭의 엄마다. 엄마에게 계부가 생겨 더 이상 자신을 부드럽게 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는 다른 곳에서 부드러움을 충족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에릭의 잔인함, 감정 결핍, 범죄자가 가지는 우월성을 표현할 수는 없다. 로리도 부드러움을 갈망하는 소녀다. 그녀는 부드러움을 갈망하는 동시에 팔기도 한다. 떠돌이 엄마, 자주 바뀌는 엄마의 남자친구, 엄마의 알코올중독은 로리의 성적 자유분방함과 도둑질, 거짓말 등 거리에서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주었다. 광적인 집착이 로리를 에릭에게로 향하게 만든다. 그녀의 집착은 상대방에게 키스를 해야만 끝난다. 그 집착 또한 그녀에게는 또 다른 부드러움에 대한 갈망의 표출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보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드러움', 사랑때문에 잊혀진 단어 '애정', 그리고 '자애로운', 이 단어들은 평범해서 오히려 그녀를 애틋하게 만든다. 프록터 경위는 사악한 미소에 한번 속았었다. 범죄자, 청소년 연쇄 살인범을 어리고 순진할 거라는 착각 속에 모두가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그때 죽은 소녀의 꿈을 꾼다. 누구도 그렇게 죽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한번 그 사악한 미소를 에릭에게서 봤다. 그만이 알 수 있는 연약한 부드러움과 서글픔으로 위장한 그 미소를. 그래서 그는 에릭을 꼭 잡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에게 당한 소녀들 중 누구도 그렇게 죽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에게 에릭은 '괴물'일 뿐이다. 아무리 에릭이 괴물에 대해 뭘 아느냐고 물어도 그는 이해할 수가 없다. 용서할 수가 없다. 그에게 부드러움은 죽은 자들이 빼앗긴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연쇄살인범 에릭에게 쫓기는 로리와 로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프록터 경위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서스펜스를 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그런 서스펜스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단순하고 간결한 구조와 짧은 언급을 통해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의도적으로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에릭이라면, 내가 로리라면, 내가 프록터 경위라면을 생각하게 되고 진짜 세상에 에릭과 로리가 될 준비를 하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생각해보라고. 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이들을 통해 앞날을 생각해보라고. 그리고 프록터 경위의 모습이 어른들의 모습의 전형은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괴물'이 되기전에 말이다. 된 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니까. 청소년 도서라고 하는데 도무지 나는 청소년이 아닌 이유로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하지 못하겠다. 아마도 그들은 쉽게 감정이입을 하리라. 하지만 너무 나이를 먹은 나는 그저 부드러움 한조각을 주기가 그렇게 어렵더냐고 묻고만 싶다. 자기 자식에게 부드럽고 자애로운 애정을 쏟지 않으면 누구에게 줄 것이며 부모도 하지 않는 것을 누가 그들에게 하겠느냐고 외치고 싶어진다. 텐더니스는 갈망, 집착, 그리고 죄책감이다. 에릭과 로리의 나이때 읽었더라면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덮은 후 텐더니스로 인해 가슴 한쪽이 저릿저릿하다. 내가 너무 많은 부드러움 속에 살아 그것을 못느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
|
10대의 살인마..그것도 한두명이 아닌 부모를 포함해서 5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인 냉혹한 연쇄살인마라는 설정부터 심상치않은 소설 `텐더니스`는 피가 흐르고 잔인한 살해장면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잔혹한 스릴러라기보다는 왠지 목가적인 풍경이 어울리는 다소 이상한듯한 소설이다.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텐더니스 즉 부드러움이란 단어만큼 살인사건과 어울리지않는 단어도 없는듯 하지만 지나친 부드러움은 오히려 고통이 된다는 칼릴 지브란의 말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왜 이런 제목을 지은건지 조금은 납득이 갔다.
엄마랑 살면서 자신에게 은밀한 호감을 보이는 엄마의 새남자를 피해 가출을 하는 15세 소녀 로리는 우연히 방송으로 3년전 자신의 엄마와 양부를 살해해 소년원에서 교도를 받고 나오는 에릭을 보게 되고 그가 몇해전 자신을 구해준 남자라는걸 한눈에 알아본다.
에릭은 어릴적부터 남달리 부드러운것에 집착하다 살해충동으로 발전한 살인마지만 겉으로는 잘생기고 착실한 외모를 가졌으며 공부도 잘하는 이른바 모범생스타일이라 아무도 그의 내면에 이런 잔인한 충동이 숨어있는지 몰랐고 그의 이런 충동은 어린소녀들을 죽이고 양부와 친모를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지만 놀랍도록 침착할뿐 아니라 모든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데로 이끌고자신이 가진 외모의 장점을 이용해서 원하는 바를 쟁취할수 있는 사이코패스이다
아무도 보호해주지않는 어린소녀와 소녀들을 살해하며 자신의 충동을 조절하는 사이코패스소년은 이렇게 만나게 된다.
남달리 집착이 강한 소녀 로리는 에릭을 만나자마자 그의 본성을 깨닫았지만 두렵다기보다는 그의 내면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을 해치지않을거란걸 알수있었기에 그와의 위험한 동행을 감행하게 되고 오래동안 억눌렀던 살인에의 충동을 가진 에릭이지만 로리에게만큼은 자신도 몰랐던 보호본능이 작용한다.
그래서 둘은 세상으로부터 달아나듯 길을 떠나지만 처음본 순간부터 에릭이 살인마임을 그것도 잔인하고 냉혹한 살인마의 본능을 가진 것을 알고있었던 늙은 형사 프록터는 에릭이 풀려난 후에도 끝까지 그의 뒤를 추적하며 그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며 그들을 추적한다.
분명 에릭은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사람을 죽였고 또 기회만 되면 다시 사람을 죽일수 밖에 없는 위험한 아이임을 알지만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못했던 아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의지하며 마치 여행하는것처럼 길을 떠돌고 그런 그들이 혹시 실수를 할때를 기다리며 뒤를 쫓는 어른들이 나쁜 사람들인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두 사람의 모습은 조용하고 평화롭기까지하다.
이렇게 목가적인 풍경에 익숙해지고 그대로 영원히 두사람이 떠났으면 좋겠다 싶을 즈음 느닷없는 반전으로 뒤통수를 친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복잡한 트릭이 숨어있는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로리와 에릭의 관점에서 번갈아가며 쓰여진 이 책`텐더니스`는 고요함속에 아슬아슬함과 긴장감을 보여주고 뻔하지않은 결말로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기대하지않아 더 매력적이었던 스릴러~ |
|
로버트 코마이어, 조영학 역, [텐더니스], 황금가지, 2008. Robert Cormier, [TENDERNESS], 1997.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면 큰 거부감이 있다. 나의 아동-청소년기가 그렇게 유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로버트 코마이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고, 청소년 문학가로 소설 [초콜릿 전쟁](비룡소, 2004.)이 유명하다고 한다. 소설 [텐더니스]는 부드러움을 소재로 가출 소녀와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그동안 읽은 청소년 성장 소설은 매우 건전했는데, 수영이나 달리기... 등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부드러움을 향한 집착과 갈망을 이야기한다.
나는 다시 그 갈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것은 아마 내게 부드럽게 대해주는 사람일 것이다. 싱클레어 선생님은 언젠가 교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 가지 단어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로 아름답게 느껴졌던 유일한 단어는 부드러움(tenderness)이었다.(p.22-23)
로라(로렐라이 크랜스턴)는 집착이 강한 15세 소녀이다. 아빠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엄마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매번 남자가 바뀐다. 제대로 되지 못한 환경은 가정폭력에 노출되고, 떠도는 생활로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다크 뮤직을 하는 가수에게 집착하고, 언젠가 우연히 만나 친절을 베푼 에릭을 사랑한다. 자기의 집착을 이루기 위해 집에서 나오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집착이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다.
에릭은 고양이들부터 시작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새끼 고양이였다. 그는 고양이들을 끌어안고 쓰다듬고 털 밑의 가냘픈 뼈의 감촉을 느껴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약하디약한 뼈들. 너무 세게 안거나 쓰다듬으면 그대로 분질러질 것 같은 놈들이었다. 처음에는 고양이들을 안고 쓰다듬어 주기만 했다. 너무 예뻐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냥 쓰다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에릭은 두 팔로 고양이들을 끌어안고 두 손으로 얼굴을 잡은 다음, 그들의 몸이 부드럽게 꺾여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런 방식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너무나 부드러운 느낌.(p.41)
에릭 풀레는 몸에 학대의 흔적을 남기고 친모와 계부를 살해했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는 부드러움을 갈망하며 세 명의 소녀를 더 죽였다.) 성인이 아니라 정상참작으로 소년원에 수감된다. 곧 있으면 18세이고, 3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데... 자유롭게 될 때까지 욕구를 감추어야 한다. 함정에 빠져서도 안 된다.
제이크 프록터는 오리건에서만 26년을 경찰로 근무했고 그 후로는 이곳 뉴잉글랜드에서 20년을 일했다. 그는 온갖 역경과 훈장과 진급을 통해 끝내 경위의 직위를 얻어 냈다. 자신의 본능과 개 같은 부지런함이 가져다준 성공이었지만 그래도 제이크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오리건에서의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가 자신의 모든 성공들을 무위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p.67)
제이크 프록터 경위는 46년의 경찰 근무를 마무리하는 단계이다. 이제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의 눈에 연쇄살인이 포착된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소년원에 있는 에릭에게 몰입한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그의 눈은 속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추격전을 시작한다.
살면서 지나친 집착을 한 적은 거의 없다. 대상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오히려 싫증을 잘 내는 편이다. 그래서 이 모양으로 사는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로라, 에릭, 제이크 세 사람의 시선으로 옮겨간다. 수기식으로 기록해서 각 인물의 심리 묘사는 뛰어난데, 특히 집착과 갈망, 욕구와 몰입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로라는 친절함에 집착하여 에릭을 찾아 나서고, 에릭은 부드러움을 갈망하며 대상을 찾는다. 제이크는 에릭에게 몰입해서 새로운 범죄를 막아서는데, 얽힌 세 사람의 관계는 광적이다. 아름다운 로라, 친절한 에릭, 투철한 제이크... 이들은 모두 심리적으로 굶주려 있다. 제어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이 안타깝다... |
|
부드러움에 대한 집착이 살인 충동으로 발전한 사이코패스 에릭, 뒷표지에 실려있는 글인데 '에릭 풀레'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키 크고 날씬하며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매력적인 여자', 에릭이 범행대상자를 고르는 평가 기준이다. 결코 '묻지마식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 양부와 친엄마를 비롯한 여자들 총 다섯 건의 사건이 그가 15살에 저지른 것이란 사실이 더욱 끔찍하게 만들어 준다. 양부와 친모 사건은 그가 자백을 해서 쉽게 풀렸으나 나머지 세건에 대해서는 용의자 선상에 오르지도 않았다는 것이 그의 치밀함을 증명해주고 있다.
에릭 풀레: 로라 앤더슨, 베티 앤 터사, 알리시아 헌트 등을 살해한 것으로 예상되는 용의자이자 엄마와 계부를 살해한 범인으로 청소년 보호소에서 3년간 복역했다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18세가 되어 풀려났다. '제이크 프록터 경위'는 에릭 풀레에게 여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의 뒤를 파헤치려 한다. 에릭 풀레에 있어 가장 조심해야 할 인물이기도 하다. 감옥에서 풀려나 이모집에 잠시 머물고 있는 에릭 앞에 나타난 로리(15살/로렐라이 크랜스턴)은 에릭의 죄를 증명해줄수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로리가 어느 편에서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향방이 결정될수있다는 말, '마리아 발데즈'는 에릭이 감옥에서 만난 미모의 여인으로 출소후 다음 범행대상자로 선택한 여인이다.
"미안해요. 어젯밤에 비 때문에 밴에 들어갔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에요." (p.155)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던 것일까? 로리가 머물던 곳을 떠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 날 에릭을 이모의 집을 떠나 자유로이 방랑(여행)할 생각으로 자신의 차를 모는데 그안에서 발견된 것이 로리였다. 집착증이 있다는 로리의 이번 집착대상이 에릭이었으며 그것을 풀기위해서는 그와 키스를 해야한다고. 로리는 어떤 이유로 집착증이 생긴 것이며 에릭은 어떤 이유로 부드러움을 탐하게 된 것일까? "에릭, 난 자기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절대로 배신 안 해 ……." (p.198) 물론 사랑에는 약이 없다지만 부모를 살해한 끔찍한 살인범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기묘하게 느겨진다.
로리가 자신의 범행현장을 목격한 목격자라는 것을 알게 된 에릭의 손에서 로리는 과연 무사히 풀려날수 있을까? 책속에는 열 살 미만의 아이 다섯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데릭 레링턴도 등장한다. 그 사건이 제이크 프록터 경위가 해결하지 못한 유일한 오점이자 치명적인 오점이라고. 그것때문에 제이크 프록터 경위가 에릭 풀레 사건에 더 열심히 매달리게 된 것이다. 에릭의 범행을 입증하여 그를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내려는 제이크 프록터 경위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로움(부드러움)을 만킥하며 살아가려는 에릭의 쫓고 쫓기는 행위는 언제 끝나게 될것이며 누구의 승리로 끝이 날런지 궁금해진다. 참~ 로리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승패의 행방이 결정되어지겠지? |
|
얼마전에, 강도짓을 한 어떤 여성 범죄자의 예쁜 얼굴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일명 얼짱강도로 인터넷에서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였으니 황당하기도 하고 참 별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이 사람의 외모에 끌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본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설사 범죄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외국의 어느 조사에서도 잘 생긴 사람이 더 잘 살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까 외모가 인간의 무기중 하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하다.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개탄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여 보았자 본능까지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중 한명인 18살의 소년 에릭이 바로 이런 얼짱 범죄자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큰키에 잘생긴 외모의 미소년. 그가 연기하는 슬픈 미소는 소녀들로 하여금 그가 수감되어 있는 소년원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설치게 만들고, 대중의 동정심을 끌어내어 그가 무고하다고 믿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에릭이 존속살인을 저지르고도 교도소가 아니라 소년범죄로서 소년원에 수감될 수 있었던 것도 다 잘생긴 외모로 슬픈 미소를 연기한 덕택이였다. 18세가 된 에릭은 곧 석방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계부의 끈적끈적한 관심을 받고 있는 15살의 소녀 로리는, 그때문에 상처받을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몇번째인가의 가출을 한다. 로리에게는 어떤 상대와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해버리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집착증 같은 것이 있다. 유명 뮤지션과의 염원하던 키스를 해내고 만 그녀는 티비를 통해 에릭이 소년원에서 석방되는 소식을 접한 직후, 다시 키스의 유혹에 휩쓸린다. 에릭과는 아주 오래전에 딱 한 번 만난적이 있었다. 로리의 기억속의 에릭은 상냥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로리는 그를 만나러 간다.
에릭은 계부에게 학대당하던 끝에 계부와 친엄마를 죽인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은 그 전부터 이미 다른사람들을 해치고 있었다. 부드러움을 갈구하면서 소녀들을 살인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석방되어 자유를 얻은 에릭은 새로운 부드러움을 찾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로 닮은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도 닮은 에릭과 로리. 로리는 스트레이트한 방법으로, 에릭은 굴절되고 비틀린 방식으로 욕망을 해소하려 한다.
무자비하게 살인을 되풀이하는 에릭에게서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동시에 에릭의 갱생을 바라게 되는 것은 그가 가진 왜곡된 강박의 뿌리깊은 원인을 익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운적도 없고 표현하는 방법도 모른다. 비틀린 방식으로 밖에는 그 감정의 결핍을 해소할 줄 모르는 에릭이 이제라도 정상적인 사랑을 배울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순진한 얼굴 뒤에 예리한 직감을 지니고 있는 로리에게 에릭의 감정이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찾아온 라스트는 너무나 쇼킹하고 뜻밖이어서 책을 덮고 나서도 잠시동안 아연실색해 있었다. |
|
텐더니스.. 묘한 제목이다. 무엇이 부드러울까.. 최근의 스릴러 소설들에 비하면 아주 얇은 두께의 이 책에는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여러 모로 궁금해 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한명의 소녀와 한명의 소년의 시점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으로 본다면 사회 부적응자이며 그래서 일탈적인 생각과 행동을 갖고 있다. 둘 모두 온전한 가정이 아닌 곳에서 성장하는데, 소녀와 소년 모두 나이를 넘어선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나, 결국 성적 일탈과 집착, 그리고 폭력과 죽음/살인에 대한 집착으로 서서히 자신을 무너뜨린다.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일탈적인 성향은 이 책의 제목인 '부드러움'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을까. 부드러운 성격이든, 부드러운 외모든 마치 장미의 가시와 같이 그 속에 진정 무엇이 담겨져 있는지는 결국 그 부드러움을 헤치고 깨뜨려야 알 수 있는 것.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TV 및 영화 시리즈 "트윈 픽스"나 또 "블루 벨벳" 등의 영화에서 그려졌듯이 겉으로의 부드러움과 평온의 이면에 숨겨진 아픔과 공포가 얼마나 아린 것인지 이 책은 그리고 있다. 소년의 짧은 독백들과 소녀의 다가감 속에 조용히 긴장감은 고조되는데 그들의 짧은 만남 속에서 서로의 이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이해하고 알아가게 되면서 그들은 겉의 부드러움을 깨뜨리지 않아도 되는 그런 관계가 된다. 그럼으로써 일탈성과 집착성을 (둘 사이 만큼에서는) 조금씩 버리며 그들 안의 '괴물'과도 같은 '부드럽지 않음'을 조금씩 버려갈 수 있게 되지만, 결말은 비극적이다.
결말에 나타나는 물. 손으로 움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지만, 그 깊이와 무게를 알 수 없는 물이야말로 'Tendernes'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상징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