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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번씩 듣게 되는 끔직한 범죄들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테러나 범죄들을 볼때 '인간이 저 정도로 악할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너무 자주 접하는 살인, 납치, 전쟁 등의 소식에 이제는 무디어져버려 또는 어떻게 해 줄수 없어서 이런 뉴스들에 무관심해져 가는 것을 스스로 느낍니다. 몇 년 전에 보았던 심야 다큐멘터리에 나온 아프리카의 현실, 내전과 살인, 강간, 폭력 그리고 아프리카를 상대로 실험을 하는 서방 열강들... 그들의 모습 속에 분노를 느끼며 하나님께 왜! 저들은 저렇게 살고, 하나님을 믿노라하는 열강들은 저들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하고 그들의 가난을 이용하는지에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스기니스의 고통 앞에 서다'에서 저는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의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과는 달리 이 책은 개인의 고통을 다루기 보다는 지금도 계속되어져 오는 지금도 일어나는 악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미얀마 내전, 아프간 사태 등을 이야기 하며, 인간이 저지를수 있는 악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와 해야할 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엘리 위젤은 아우슈비츠 이후에 깊은 성찰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은 가해자일 뿐 아니라 피해자이며, 또한 방광자이다. 인간은 그런 세 종류의 면모를 동시에 드러낸다"고 말했다(p433).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과 성향이 존재한다(p298).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다...(중략) 인간은 한 편으로는 고귀하고 선한 듯 보이나, 다른 한 편으로는 노골적인 야만 행위나 교묘한 술책, 또는 단조로운 일상을 통해서 그런 특성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파괴적이고 악의적인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한다. 요컨대 우리 인간의 최상의 측면과 최악의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의 사건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점은 우리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이다(p76). 이 부분을 읽을 때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것은 저도 마찬가지이며 누구나 악한 본성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비극은 처참하며 그 결과로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프간 사태도 그 예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 오스 기스니는 성경은 하나님이 악을 허락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침묵하지만, 악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 방법에 대해서는 적극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악에 대해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악과 고통을 극복하는 세가지 조건을 강조합니다. 첫째는 인간의 마음에 악이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악을 저지른 자를 용서하며, 어떤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악과 불의에 맞서 싸우라는 겁니다. 선으로 악을 이길 것을 강조하며 이럴 때에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용서에 대한 부분에서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용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시키며 하나님의 용서는 정의가 아닌 은혜의 차원에 속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참된 용기는 자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 대해 개인적인 권리나 감정적인 권리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 것이며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용서뿐만 아니라 국가 지도자들도 과거의 상처를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을 베풀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리함으로 복수보다 한 차원 높은 목표를 지향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따른 현실적인 비아냥도 견디어 내야 합니다. 용서는 강력한 사랑의 힘으로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원한 관계를 청산하고, 도무지 회복될 것 같지 않던 관계를 새롭게 회복시킨다. 용서는 가해와 보복, 상처와 복수, 압제와 테러의 악순환을 종식시키며, 과거의 끔찍한 행위에서 비롯되는 그 모든 결과로부터 동료 인간을 해방한다. p333 그 누구도 악의 신비는 알 수 없으며, 단지 악의 신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이 겪어온 처절한 악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수백만 명의 무고한 시민이 학살되고, 사랑하는 자녀가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며, 히틀러 스탈린과 같은 악인들이 저지른 악과 하루에도 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악한 범죄 등에 대해 설명은 불가능하고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설명해도 만족하기 어렵습니다, 이럴때는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더 깨닫고 한층 더 성숙한 믿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챕터에 나온 할리의 이야기에서 선한 영향력의 힘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어릴적 경험한 범죄와 폭력을 경험하고 그 끔직한 지역을 벗어났지만 어릴적 기억은 그대로 보전되어 있습니다. 성인이 된 후 그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철학 교수가 되어 홀로코스트의 연구에 일생을 바칩니다. 그의 책은 유명해지지만 그의 고통과 우울증은 깊어집니다. 그런 그의 상처를 치유한 것은 프랑스 어느 마을의 나치 사냥꾼에게 쫓기는 유대인 어린아이를 보호해 주었던 위그노 신자들의 선한 마음씨였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선이 할리의 마음에 잔재되어 있던 상처를 치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치유하는 것은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며, 악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며, 또한 인간의 본성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악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선한 영향력과 우리의 죄를 조건없이 용서하시고 희생하신 예수님이 먼저 행하신 사랑을 본받아 용서하며 하나님이 악에 대해 진노하심을 알고 우리도 악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요청합니다. 오스 기니스의 고통 앞에 서다를 통해서 얻는 유익은 큽니다. 그리고 행동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악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는 부분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도 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만연한 풍조와 흐름에서 악의 문제를 등한시하고 다른 이의 고통에 무관심한 현대사회, 악을 조장하는 시대의 사상들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오스 기니스의 언어가 어렵지 않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고통 앞에 서다를 많은 그리스도인이 읽고 세상에 무관심 할 수 밖에 없는 악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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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 기니스의 고통 앞에 서다를 읽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는 듯이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악으로 인해 죽어가고 우리는 그에 점점 더 무감각해 진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은 점점 더 많아진다. 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과 나치의 홀로코스트 등 상상하기 힘든 학살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9.11 테러등 서로의 반목으로 인한 폭력. 더하여 대형 사고로 인한 고통까지. 우리 주변엔 고통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저자는 그런 고통에 대해 왜 생기는 것이며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또한 그러한 악에 세상은 고통과 악이 가득하지만 여전히 선은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에 대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특히 세상의 이성과 논리로 인해 종교가 밀려남으로써 더욱 고통과 악이 커졌음을 지난 세기를 통해 드러났다. 악을 견제하고 선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 정 하나이다. 결국 종교 특히 기독교를 통해 악을 견제하고 선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과 악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한다. 그것을 인정함으로 우리의 한계를 인식하고 종교의 인도함을 간구할 수 있다. 제목은 고통 앞에 서다 이지만 내용은 점점 악으로 흘러간다. 악으로 인해 점점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으니 그렇게 흘러가게 되는듯 하지만. 악이 아닌 그냥 사고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도 절대로 작지 않다. 아니 오히려 원망할 대상이 없어서 더 클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고통에 대한 언급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아쉽다. 좀 더 다양한 고통을 다루고 위로할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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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 기니스의 새로운 저작이다.
<소명> 으로 친숙한 저자는 , 라브리의 정신을 계승하여 상당히 이성적이고 , 합리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자신만의 색깔을 지니고 있는 오스 기니스의 저서는 , 그 매력을 맛 본 이들로 하여금 , 계속적으로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다.
이번 저서는 , 그 동안의 노선과 약간은 다른 경로를 따르고 있는 듯 하지만 말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 이 책은 '고통' 에 관한 책이다.
이 책 속에는 수 많은 사회 속의 '고통' , '재난' 이 담겨 있고 ,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 , '재난' , '아픔' 에 대한 인용글 들이 난무한다.
실제로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 일어 났던 수 많은 아픔들 <ex) 홀로코스트 , 폴 포트의 만행 , 스탈린의 행각 , 전쟁 등 > 을 종합적이고 , 일목 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점 만으로도 이 책은 나름 , informative 하다.
약간 아쉬운 점은 , 계속 되는 사람들의 말 말 말 , 그리고 사건들의 연속적인 나열이 이 책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책은 두꺼운 데 ,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 참 뒤에 나온다. (물론 , 이렇게 자세하게 실제적인 사실 정보를 확실히 제시해 줌으로써 , 뒤에 언급하게 될 '주장' 에 탄탄한 힘을 실어 주는 효과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 책이 어렵지 않고 우리가 세상 속에 실재했던 , 그리고 실재하는 , 그리고 앞으로도 실재할 '고통' 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초심자들에게도 추천이 가능한 책이다.
가령 C.S LEWIS 의 <고통의 문제> 등의 책은 ,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훨씬 속 시원한 답변을 해줌에도 불구하고 초심자들에게 권하기는 너무 어려운데 반해 , 이 책은 그에 비하면 훨씬 대중적이다.
다방면에 걸쳐 언급되어 있는 사건들과 , 인물들과 , 지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 일견 핵심 논지가 잡히질 않아 따분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박식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풍성한 지식' 들이 , 나름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잘 버무려져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자신의 출판 의의를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씨름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은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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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제한적인 능력으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알기'를 원하는 욕구에서 비롯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여기서 기웃, 저기서 기웃거리다 결국에는 자신의 부족함은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절대자를 향해 원망의 소리를 발하는 것이다.. 자신의 무지함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것리고 있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그런 원망과 불평이 이해되기도 한다..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면 과연 어느 누가 가만히 참아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기도 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존재하시기는 하는 건가요??" 하나님을 제외하고 이 세상 그 누구가 이 질문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저자인 오스 기니스는 인간의 무지함을 위해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인류 역사 가운데 나타났던 수많은 자연재해와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사고 등을 통해.. 우리가 무지하여 알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악의 문제와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다양한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악의 문제와 고통의 문제에 대해 올바른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성경은 이러한 악의 문제와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큼은 매우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에 관심을 갖기 보다.. '어떻게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가?'에 더욱 관심을 갖어야 함을 의미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비록 우리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깨닫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알고 계시며..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모든 일들을 계획하시고 진행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우리의 삶을 복종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메시지이며.. 악의 문제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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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고통"이라고 한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책 내용은 "악"에 관한 것이다. 또 하나, 옥한흠 목사와 이동원 목사의 추천사를 속표지 제일면에 정성들여 박아놓았는데 내 느낌으로 이 양반들은 책을 읽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출판사에서 이 양반들이 교인들에게 한번이라도 소개를 해 주었으면 하던가 아니면 추천인 이름 때문에 많이 팔리겠지 하는 의도였던 것 같은데, 추천사는 저자가 비판하는 욥의 친구들이 했던 말장난일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 정치 상황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가 3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말하는데, 오스 기니스는 "홀로코스트가 다시 반복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너무 절망적이다. 게다가 더 슬픈 것은 오스 기니스가 말하는 역사관이 너무나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역사관은 다름 아닌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이다. 요사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나 "목적 혹은 꿈, 비전"이라는 말이 마치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의 표지이며 또한 그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세속적인 낙관주의(유토피아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 오스 기니스의 말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낙관주의는 결코 세상에 횡행하는 악을 인정하지 않고 또 설명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그 악의 원인이 되기까지 하는 것이 우리가 겪는 실제 현실이다.
오스 기니스는 "나를 통해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라는 솔제니친의 제안을 악에 대항하는 우리의 자세로 제시한다. 이는 실로 미니멀(최소한)한 반응일 뿐이지만 이 또한 성경이 증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운동, 연합, 위원회 등을 일으키지만 실제로 세상의 악에 대항하기는 역부족일 뿐더러 심지어 악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목도할 수 있는 현상이다. 저자는 결국 신앙이 있어야 하고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믿어야만 악에 대항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침노하는 천국을 제시하지 않아 아쉽지만 결코 반복되게 둘 수 없다고 다짐하는 악이 다시 반복되는 것에 절망하는 저자가 마치 선지자 하박국처럼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