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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두 얼굴 영원한 라이벌, 베이징 VS 상하이 두 도시 이야기
▶ 중국은 지구상에 현존하는 국가중에서 영토면에서나 거주하는 인구면에서도 가장 큰 나라이다. 북미대륙의 미국만큼이나 민족구성원의 색깔 또한 각양각색이고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종교 또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나라이다. 또한 냉정시대를 거치면서 유일하게 정치틀을 유지하고 있는 사회주의 표방국가이다. 특히 한반도의 현실에서 견지할때 중국의 역활은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위치에 있는 국가이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중 하나이며, 유네스코에서 인준한 세계문화유산의 종류나 그 규모를 볼 때도 중국을 따라갈 나라는 지구상에 없는게 현실이다. 또한 천연자원 또한 무궁무진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불과 몇십년전만 해도 중국이라는 나라는 세계에서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한 나라였다. 냉정시대의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단지 구 소련과 한축을 이루고 있는 별반 볼일 없는 나라였다. 오죽하면 인구와 땅덩어리만 넓었지 대만이나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등 같은 문화권에 비해서 경제적 규모나 문화적 발전상에 많이 떨어졌던 덩치만 비대한 코끼리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하루밤 자고 나면 어제의 일은 과거라는 틀속에 남게 된다. 그 만큼 빨리 변화고 있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 중심에 중국이라는 나라가 부상하고 있다. 세계의 이목이 중국이라는 단 한 나라에 집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세계의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이제는 중국으로 세계의 자본과 인력이 몰려들고 있다.
▶▶ 그런 시점에서 이 책은 중국인 입장에서 현재의 중국을 존재하게 하는 기둥 역활을 하는 두 도시에 대해서 역사와 경제, 문화등 도시학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 그야말로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축이다.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이자 관문으로 정치, 문화적 상징을 표현하는 도시이다. 그에 반에 상하이는 경제 특히 현 정치구조에서 자유라는 의미심장한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는 도시이다. 대부분 나라의 도시들 특성을 비교해볼때 가장 먼저 살펴보는 점이 지역적 특성일 것이다. 중국의 경우 황하를 중심으로 북방과 남방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다. 사실 중국의 긴 역사로 볼 때 상하이라는 도시는 청나라의 몰락시점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도시이지만 베이징의 경우 많은 제국들의 수도로서 그 전통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전형적인 농경국가이자 하늘의 대리인인 천자가 지배했던 군주국가였다. 수도 베이징을 중심으로 전국을 지배했던 만큼 베이징에 대한 존재는 가히 독보적인 존재이자 중국인들의 정신적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베이징 사람들은 남방 사람들에 비해서 호방하고 의리와 신의를 중시 여기며 정열적이다고 할 수 있다. 도시의 탄생에서 부터 제국의 심장이라는 자부심이 시대를 거쳐오면서 면면히 가슴속에 녹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보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비판이나 논쟁으로 소일하는 속성 또한 지니고 있다.
그에 비해 상하이는 어떠한가 20세기초 영국과의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상하이라는 도시가 실재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쇄국에서 개방으로 가는 그 관문에 상하이가 자리매김하게 되고 급속도록 도시의 규모는 크게 신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베이징에 비교할만한 역사적인 토대없이 새로운 사조의 유입으로 그야말로 상하이는 일대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일본의 침탈기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도시이기도 하다. 임시정부가 자리잡기도 한 세계각국의 조계(치외법권지역)가 설치되고 제국주의에 반기를 든 혁명가와 신사조의 문학인들이 몰려든 도시가 바로 상하이이다. 그래서 상하이는 자유도시라는 이미지가 아주 강하게 각인되었다. 베이징인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명확하다. 논쟁보다는 실리나 실속을 더 중시하고 합리적인 면도 베이징에 비해 강하다. 특히 외래문화에 관용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이렇듯 중국에서 북방의 대표도시 베이징과 남방의 대표도시 상하이는 현재 중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쌍두마차임에 틀림없다. 두도시의 문화 또한 경파니 해파니 해서 구분될 정도 확연히 구분이 된다. 두 도시의 여성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상하이는 수줍고 살림잘하는 현모양처의 여성상으로 베이징은 정열적이고 당당한 철의 여인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세계화라는 큰 화두에서 중국이 문호는 개방으로 변화고 있다. 지금의 두 도시의 색깔은 북방이니 남방이니 하여 자로 잰듯한 구분을 할 수 없는 시점에 왔다. 그 만큼 두 도시의 역활이 중국을 변화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중국이라는 나라가 깊은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그것도 기지개를 켜는 정도가 아니라 벌떡 일어나고 있는 정도이다. 중국인들 입장이나 세계인들 입장에서 볼땐 다행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세계의 다국적기업이 중국으로 몰려가고 자본과 금융이 중국으로 흡수되고 있다. 중국이야 말로 하루 자고 나면 건물이 들어서는 곳이다. 옛 제국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대국굴기의 자세로 지금의 중국은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 중심엔 항상 베이징과 상하이라는 두 도시가 있는 것이다. 저자의 관점에선 이러한 두 도시의 역활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발전상이 아닌 급조된 발전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베이징은 차치하더라도 상하이의 역사적 연대를 끌어올리기 위해 역사왜곡도 서슴치 않는 현실을 바라볼때 뒷맛이 개운하진 않다. 그렇다고 중국의 발전을 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네들의 주장대로 대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야 할 시점임에는 틀림없다. 오늘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이다. 이제 중국도 세계구성원의 하나로서 그 책임을 가져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두 도시를 통해서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책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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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원제 <城市季風-北京和上海的文化精神>
이 책은 정말이지 아주 오래전에 구입한 책이다. 리틀초이가 중학교 3학년이던 2008년 여름에 상하이로 가족여행을 갔었다. 나로서는 상하이 여행이 두 번째여서 그랬는지 여행하는 기분이 남달랐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발견하게 된 이 책(2008.6월 한국판 발간)은, 베이징을 여행했던 기억까지 떠오르게 하면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런데 책의 앞부분에 서술된 해파와 경파의 논쟁에 대한 글들은 읽기에 좀 지루했고 결국 끝까지 나의 흥미를 붙잡지는 못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었는데. 중국의 역사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고 난 최근에서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면서, 첫 번째 읽었을 때의 지루함은 무지의 소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지했음에 대해 저혼자 부끄러웠던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시의 무지를 알게 될 정도로 조금은 성장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쁨이 되기도 했다. 책읽기에도 어느 정도 단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명호의 <중국인이야기> 두 권을 통해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고. 천광중이, 낡은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의 뒷골목인 후통(胡同hutong)을 세 번의 여름과 겨울동안 누비고 다니면서 썼다는 <풍경>을 읽고 베이징의 후통문화에 대해 정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중국의 두얼굴>은 처음 읽었을 때보다 쉽게 이해되었고 흥미로운 책이 되었다.
<중국의 두 얼굴>은, 중국을 대표하는 두 얼굴로 상하이와 베이징을 꼽는다. 남방을 대표하는 상하이와 북방을 대표하는 베이징. 남방과 북방이라는 지역적 차이만큼이나 두 도시에 축적된 문화의 양상 또한 크게 다르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시기이다. 상하이가 영국에 의해 항구를 개방했던 1842년부터, 해파(海派)와 경파(京派)논쟁이 대두되었던 1930년대와 문화대혁명의 격동기를 거쳐 개혁개방의 시기에 이르는 역사적 시간동안. 두 도시에서 각기 다른 문화가 형성되고 변천해 가는 모습과 그 문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성향을 비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다를 수 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들을 설명한다. 이 책의 저자 陽東平(yangdongping)은, 1949년 산둥성 취푸(曲阜/내가 가보고 싶은 공자의 고향이기도 하다)에서 출생하여 고교시절까지 상하이에서 자라고, 문화대혁명시기에는 헤이룽지앙셩(黑龍江省)의 농촌으로 하방(下放)되어 3년동안 지식청년시기를 경험했으며, 지금은 베이징이공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다. 상하이와 베이징이라는 두 도시를 모두 겪어본 저자의 글은 객관성에 더욱 신뢰감을 주었다.
상하이와 베이징. 上海(shanghai)는, 아편전쟁(1840년~1842년)의 종결에 따라 체결하게 된 난징조약에 의해 정식으로 개항을 하게 되고 영국의 조계지가 되어 20세기 전반에 걸쳐 상업중심지로 자리잡게 된다. 조계지라는 특성상 개인의 자유로운 사상과 활동이 보장되고 자본의 축적과 흐름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상하이인들의 성향은, 자산계급의 풍조가 짙고 개인 위주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중국 대륙인들은 상하이를 ‘자본주의 오염된 솥’이라 부르며 혁명의 대상으로 간주했지만 그러한 배경들은 상하이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융성하게 하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 반면에 北京(beijing)은, 여러 나라들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800여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고 지금도 중국 정치의 중심지로 건재한다. 베이징인들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 한다. 대원(大院 )이라는 높은 담장을 치고 그 틀 안에서 자기들만의 폐쇄적이고 귀족적인 생활을 영위했던 신엘리트층에서 그런 성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官迷라 칭해질 정도로 베이징인의 권력숭배 경향은 아주 컸는데. 베이징인들은 스스로 ‘천자의 발치’로 아래를 내려다본다는 우월감이 대단했다.
해파(海派)와 경파(京派)로 구분되는 상하이인와 베이징인의 문화속에는 이러한 성향들이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상하이의 해파(海派)문화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하나의 시민문화였다면, 베이징의 문화는 경파(京派)문화와 경미(京味)문화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해파문화와 대립되는 의미의 경파(京派)문화는 보통 당이나 군 간부인 신엘리트가 형성한 대원문화를 이르는 말이고, 베이징에는 경파(京派)문화 이전부터 쓰허위앤(四合院)이라는 거주형태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라오베이징인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서민문화가 있었다. 라오베이징인이 골목길을 중심으로 형성한 문화라 하여 후통(胡同)문화라고도 한다. 천광중의 <풍경>에서는 후통(胡同)의 골목길 하나하나를 더듬어봤다면 <중국의 두 얼굴>에서는 후통(胡同)이 사라지게 되는 씁쓸한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풍경>을 읽고 써 놓은 글을 보니 “중국에서는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도시재개발구역안에 있어도 “문물보호단위”로 정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여 보호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후통(胡同)은 도시계획에 의해 거의 훼손된 상태로 관광객을 위한 여행상품의 수준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다. 개혁개방이후 인구의 집중으로 도시가 팽창되면서 베이징과 상하이도 많은 변화를 겪는다. 상하이는 기존에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로 번창했던 와이탄(外灘)의 맞은 편에 푸동(浦東)지구를 개발했다. 황푸강(黃浦江)을 끼고 우뚝 솟아있는 동팡밍주(東方明珠)TV송신탑은 상하이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베이징은 古都에 깃든 유물들을 해체하고 철거하면서 그 자리에 도로를 놓고 개성없이 높은 콘크리트 빌딩들을 세웠다. 인구 집중에 따른 물부족과 수많은 자동차가 뿜어내는 배기가스, 그리고 네이멍구(內蒙古)사막화에 따른 황사현상으로 현재 베이징은 심각한 생태위기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말한다.
개혁개방이후 중국의 도시들이 국제화된 대도시를 목표로 도시계획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경쟁력을 갖춘 도시는 베이징, 상하이, 홍콩 정도라고. 이 책이 2006년 개정되었음을 고려할 때 지금 더 추가해야할 도시가 있다면 광저우(廣州)가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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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무서운 상승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으리란 믿음마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를 강타한 경제 위기로부터 중국도 자유로울 순 없었던 모양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중국을 대표하는 두 도시는 과연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지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와 관련된 부분에만 중점을 둔 책이 아니니 어쩌면 나의 선택은 그릇된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같은 나라 안에 놓인 두 도시의 같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양상을 엿보는 과정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두 도시는 역사만 살펴보아도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북쪽에 위치한 베이징은 8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다. 게다가 이 도시는 오랜 기간 동안 한 나라의 수도 기능을 굳건히 수행해 왔다. 오늘날 중국 정치와 경제를 이끄는 많은 엘리트들이 이 도시 출신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상하이는 역사만 놓고 보면 베이징에 비해서는 한참 어리다.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상하이는 중국 대륙에서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개항 후 상하이는 현격히 발달했고, 베이징과의 경쟁에 즐거이 임했다. 베이징에서 부패한 청 왕조가 마지막 촛불을 태우며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고 있을 때에도 상하이는 ‘조계’가 지닌 특수성을 120% 활용, 당대 선진적이라 할 법한 외국문물을 마음껏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두 도시의 차이는 어쩌면 지리적인 위치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만일 상하이가 남방의 항구 도시가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베이징이 서부 고원에 위치하고 있었더라면 우린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두 도시에서 생성된 문화도 역사에서의 차이만큼이나 서로 달랐다. 거대한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찬 베이징이란 도시는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인 중심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군주제를 더 이상 택하고 있지 않으나 이 도시는 여전히 중국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 집단의 본거지라 할만하다. 그래서일까? 베이징과 관련된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어딘가 가슴 한 켠이 답답했다. 어딘가 모르게 고리타분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상하이로부터는 자유로움을 느껴야 마땅했다. 하지만 서민 문화가 큰 힘을 발휘해온 상하이를 접하며 내가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다. 상대적으로 서양의 문화를 먼저 받아들인 이 도시는 아이러니하게도 관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화대혁명 시절 상하이에서 꽃폈던 극좌의 물결을 생각해보라! 상대의 사상을 의심하고 급기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날카로움은 상하이보다는 베이징에 어울릴 법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 상하이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개방적인 상하이에 오히려 전통적인 성역할을 옹호하는 여성이 넘쳐난다는 사실 역시 우리로선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중국의 2000년을 보고 싶으면 시안에 가세요. 중국의 500년을 보고 싶으면 베이징에, 중국의 100년을 보고 싶으면 상하이에, 중국의 최근 10년을 보고 싶으면 광둥에 가세요.” 한 때 중국에서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란다. 그러고 보면 베이징과 상하이, 두 도시를 통해 우리는 중국의 과거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두 도시 모두 과거 어느 한 시점에 고착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변화가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탈을 쓴 중국의 사회주의는 경제 성장에 매우 목말라 있는 상태이다. 베이징의 화려한 과거가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나날이 심각해지는 환경오염과 빈부격차 등도 ‘언젠간 해결이 될 것이다’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다가서선 안 되는 문제이다. 숱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가 벌이는 선의의 경쟁이야말로 중국 사회에 내포된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진실로 필요한 게 아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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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두 얼굴 】 - 영원한 라이벌 베이징 VS 상하이 두 도시 이야기 _양둥핑(저자) | 장영권(역자) | 펜타그램 | 원제 『도시의 계절풍』 : 베이징과 상하이의 문화 정신(城市季風-北京和上海的文化精神)
21세기는 도시의 세기라고 한다. 도시의 생명력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 될 것이다. 이 책은 중국의 대표적인 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교했다. 단순히 두 도시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베이징인과 상하이인의 특성을 이야기해준다. 베이징인–상하이인, 남방–북방의 핵심적인 차이점과 함께 이 두 도시의 20세기 후반기 변천사가 담겨있다. 20세기 전반의 중국 역사는 파란의 연속이기도 하다. 19세기 40년대 무렵부터 시작된 근대화는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청 왕조의 붕괴, 몇 차례의 혁명, 중일전쟁 등의 와중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이 근대 문화의 대행진은 대체로 남에서 북으로 나아갔다. 그 뒤로 다시 내전(內戰)과 신중국(新中國)수립 등 격동의 역사가 이어진다. 이 와중에 혁명의 중심이 된 남방과 보수적인 북방의 대충돌 속에서 상하이는 북방과 대립하는 중국의 새로운 사회,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베이징성과 상하이시 베이징의 원주민은 황토 고원에서 동쪽으로 이동, 타이항(太行)산맥을 넘어 드넓은 화북 대평원을 발견한 뒤 그 북쪽 끝, 지금의 베이징 땅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문자로 기록된 역사에서는 2200년여 전,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의 수도인 계성(薊城)이 베이징 땅에 있었던 것이 최초이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원(元)왕조가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1272년 2월 베이징 땅을 수도로 정했다. 베이징이 중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 되기 시작한다. 그 뒤 베이징은 원(元), 명(明), 청(淸)의 세 왕조를 거치며 640여 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다. 베이징이란 이름은 명대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상하이는 어떤가? 약 2500년 전, 초(楚)나라 재상 황헐(黃歇)이 상하이 땅에 춘신군(春申君)으로 봉(封)해졌다. 상하이의 별칭인 ‘선청(申城)’은 바로 이 춘신군에서, 그리고 상하이 한복판을 흐르는 강의 이름 황푸장(黃浦江)은 황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상하이의 진정한 운명은 수운(水運) 및 개방(開放)과 연관된다. 당(唐) 천보(天寶)10년(751년), 상하이 땅에 화정현(華亭縣)이 설치되면서 비로소 행정구역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이곳은 해운의 항구로, 무역이 발달하여 이윽고 상하이진(鎭)이 출현했다. 이때 역사상 처음 ‘상하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이다. 그 후, 원(元) 왕조 지원(至元)28년(1291년)에 이르러 상하이현(縣)이 설립됐다. 상하이인이 본 베이징인 대다수 상하이인은 베이징인에 대해 이렇다 할 만한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실제로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아 구체적인 감정을 가져 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상하이 사람들이 “베이징에 간다”라고 말할 일은 드물었다. 이는 매우 영광스런 일이요, 자랑스런 일이었다. 상하이에는 “베이징에는 정치는 있지만 문화가 없다”라고 비꼬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분명 틀린 말이지만, 상하이인은 베이징인의 정치 지향성에 대해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베이징 사람들은, 정치를 직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까지도, 다들 정치를 매우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상하이 사람들은 베이징 사람들이 정치에 쓸데없이 정열을 불태우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를 좋아하는 베이징인 베이징 사람들의 정치 취향은 “황제의 발치에 있다”는 말이 있듯, 정치의 중심에 위치한 특수한 조건에서 비롯한 것이다. 정치에 종사하며 권력을 잡는 것은 중국인들이 무엇보다도 간절히 바라는 일인데, 베이징 사람들은 지리적으로도 권력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러한 바람을 품었던 셈이다. 정치적 관심과 정치적 활동은 언제나 집단 행위, 집단 이익, 집단 가치를 지향한다. 그 때문에 신베이징인들의 조직화에 대한 열정, 집단을 중시하는 가치관 등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홍위병 시절에 베이징 청년들은 사람들을 모아 단체를 수립하고 선언문을 발표하는 일에 열중했다. 이러한 청년의 자발적 조직은 결집력이 매우 컸다. 공동의 신념과 책임감 정도가 아니라, 단체에 충성을 바치는 가치관이 있었다. 상하이인이 인간관계 속에서 중시하는 것은 예의나 이익 판단 등이었지만, 베이징인은 사적인 이익만을 중요시하여 친구나 단체를 배반하는 것을 가장 경멸했다. 배반자는 심한 경우 적대적인 단체도 상대해 주지 않을 정도였고, 모두로부터 ‘왕따’가 되어버린다.
베이징인이 본 상하이인 상하이인을 한마디로 설명해 보라면, ‘대(大)상하이의 (小)시민’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 말에는 ‘대도시에 사는 소심한 사람들’이라는 조롱이 가득 배어있다. 이 말은 베이징을 비롯한 북방의 도시들뿐만 아니라 상하이에서도 곧잘 쓰이곤 하는데, 그만큼 널리 인정하는 말인 셈이다. ‘대상하이의 소시민’은 상하이인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이다. 베이징인이 상하인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언급하자면, 할 이야기가 끝도 없다. 물론 대부분이 ‘소시민’을 깔보는 험담들이다. 특히 상하이 남성에 대한 베이징 여성의 비판은 통렬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상하이의 남자는 항상 고민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고, 풍채가 시원치 않아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상하이 사람들도 북방 사람들을 경멸하는데, 예를 들면 북방 사람들을 가리켜, ‘베이라오(북쪽 놈들)’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베이징 사람들이 남방 사람들을 멸시하는 공통의 호칭이 있는데, “그 사람 상하이인이래”라고 말하면, 그 속에는 반드시 경멸의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 베이징에 사는 상하이인들은 자기가 어디 출신인지 밝히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 여긴다. 이 책은 문화의 큰 테두리 안에서 거론 할 수 있는 베이징과 상하이 두 도시의 운명, 도시의 문화, 도시의 사람들과 같은 테마를 한데 모아 서술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결과물이다. 이 책은 또한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중국인들이 찾아 읽는 안내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소중한 자료가 될 부분이 많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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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두 얼굴 : 원한 라이벌 베이징 VS 상하이, 두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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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6년가 유학하셨던 팀장님 선물로 드린건데요. 중국 생활을 좀 그리워 하시길래 휴가때 읽으시라고..^^ 읽을만 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중국에서 6년간 계셨던분이 하신 말씀이니까 믿을만 한것 같아요. 그렇게 비현실적이지도 않고 재미도 있다고 하셨어요~
선물해 준 책이여서 하는 말씀이 아닌것 같더라고요. (재미 없으면 없다고 하는 스탈이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