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로도토스 역사> 책 읽기 계획에 없던 책이었다. < 정치사상사 -헤로도토스에서 현재까지>(앨런 라이언 저 / 남경태·이광일 옮김 / 문학동네 2017) 늘 읽어볼 요량으로 작은 제목에 헤로도토스가 궁금해 먼저 읽어 두자는 의미에서 접하게 되었다. 역사의 아버지라는데…. 영화 300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기원전 479년 치러진 페르시아전쟁사를 서술한 책인데, 크게 기원전 499년부터 기록한 6장까지 예비단계와 9장까지 기록한 세세한 전쟁 묘사와 그 후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제목 1장 클레이오, 2장 에우테르페, 3장 탈레이아등, 각 장의 제목이 생뚱해서 찾아보니 그리스 신화 중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9명의 뮤즈 이름에서 따왔다. 이는 저자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후 알렉산드리아 후배들이 각 장의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온갖 세세한 이야기를 남겼지만 정작 본인의 집안이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남긴 게 없다. 다만 지금까지 후세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금의 터키 에게해 해변 할리카르나소스 명문가 출신으로 484~425를 살면서 당시 문명권으로는 전 세계라 부를만한 넓은 지역을 여행하며 직접 보거나 들은 이야기를 모아 동서 분쟁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페르시아 전쟁사를 기록한 「역사」를 남겼다. 여행의 범위는 당시 이동 수단으로 볼 때 불가능할 정도로 넓은데, 동으로는 바빌론(이란) 끝, 북으로는 스키티아(우크라이나), 남으로는 이집트 시에네(아스완), 서로는 리비아, 이탈리아까지 이른다. 직접 다 다녔다고 하기엔 너무 넓은데 역사의 아버지는 직접 연구하고 조사했다고 한다. "인간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망각되기 마련이다. 그리스인이나 이방인이 이룩한 위대하고 놀라운 갖가지 업적, 특히 무엇 때문에 서로 싸우게 되었는가에 대한 사정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갈 것이다. 이 책은 할리카르나소스 출신인 헤로도토스가 이 망각을 염려하여 자신이 직접 연구·조사한 것을 적은 것이다." ( <역사> 첫 시작 부분 13쪽)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책 장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역자의 문제라기보다 (의례 고전은 어려운 한자어와 형용사와 조사의 남발로 번역되기 일쑤인데 쉬운 생활 단어와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없을 정도로 잘 옮긴듯함) 수없이 많이 나오는 ~데스 ~토스 ~테스로 끝나는 인물의 이름에 더하여 옛 지명들마저 생소한 게 원인이다. 머리와 눈이 ~데스~토스~테스에 익숙해질 수 없는 게 계속 나오는 새로운 인물과 지명, 책의 두께와 더해져 덮고 싶은 기회를 어쩌면 엿봤을지도 모른다. 전공자나 고대 서양사에 꾸준한 독서가가 아니고서는 느린 게 맞는것인데. 참고용으로 있는 앞뒤에 붙은 당시 고대 지도를 펼쳤다, 덮었다 하며 지구본까지 옆에 두고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당시 지도를 복사해서 편하게 볼 머리를 왜 못 썼는지…. 책이 두꺼워 손목이 아프다.
" 그중에서도 가장 그럴듯하다고 내가 생각하는 풍습은(중략)…. 마을에서는 저마다 매년 1회 다음과 같은 행사를 한다. 시집갈 나이가 된 아가씨들을 모두 모아 한곳으로 데리고 가서 그 둘레를 많은 남자가 둘러싼다. 그러면 호출인이 아가씨를 한 사람씩 세워서 판다. 우선 그중에서 가장 기량이 좋은 아가씨부터 시작하는데, 이 아가씨가 좋은 값으로 팔리면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기량이 좋은... (중략) 아가씨들은 결혼을 위해 팔리는 것이다. 신부를 맞이할 적령기가 된 바빌론의 청년 중에서도 유복한 사람은 서로 값을 올려서 기량이 가장 좋은 아가씨를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서민 계급의 적령자는 기량이 좋다는 것 등에는 상관하지 않고, 돈을 받고 오히려 미운 아가씨를 얻는 것이 통례이다. (중략) 비록 자기 딸이라도 자기가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시집보내는 일은 금지되어 있다. 또 딸을 산 남자도 반드시 그 아가씨를 아내로 삼는다고 하는 보증인을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데리고 갈 수가 있다. 당사자끼리 잘 안 될 때에는 남자가 지참금을 돌려주는 것이 관습이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도 원한다면 아가씨를 살 수가 있다." (118쪽 바빌론 풍습을 소개한 옆길, 이성의 발전이 낮았던 고대, 헤로도토스마저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는) " 무리 살이 하는 성질을 가진 물고기는 하천에서는 그다지 자리지 않고 호소에서 주로 사는데, 그 생태는 다음과 같다. 이들 물고기는 교미기가 되면 떼를 지어 바다로 헤엄쳐 나간다. 수컷이 맨 앞에 서서 이리(? 물고기 수컷의 배 속에 있는 흰 정액 덩어리)를 뿌리면서 앞으로 나가면서 뒤를 따르는 암컷이 그것을 삼켜서 수태한다. 바다에서 수태가 끝나면 고기들은 각기 살던 곳을 향하여 강을 올라간다. 그러나 선두에 서는 것은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다. 떼를 이루어 선두에선 암컷들은 앞서 수컷이 한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 즉, 좁쌀만 한 알을 조금씩 뿌리고 가면 뒤를 따르는 수컷이 그것을 삼킨다. 이 좁쌀 크기의 알 하나하나는 물고기인데 삼켜지지 않고 남은 알만이 자라나 물고기가 되는 것이다. 바다에 나갈 때의 물고기를 잡아서 보면 머리 부분 왼쪽에 찰과상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강을 올라서 되돌아가는 것들은 오른쪽에 상처가 있다. 왜 이런 상처가 나느냐 하면, 물고기는 바다로 내려갈 때나 강을 올라서 돌아갈 때도, 왼쪽 물가를 따라 될 수 있는 대로 물가에 접근하여 닿을 정도로 헤엄을 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의 흐름 때문에 길을 잃지 않으려는 조심 때문인지도 모른다."(174쪽 이집트 해안지역의 먹거리 기록. 자연 관찰 책인 듯)
" 트라우소이족의 풍습은 다른 트라키아인과 대체로 같은데 아이가 태어났을 때와 사람이 죽었을 때 아래와 같은 행동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은 그 아이 주위에 둘러앉아 인간에게 일어나는 온갖 불행을 모두 헤아리고 이 아이도 태어난 이상 이와 같은 수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면서 탄식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을 때는 수많은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더없는 행복의 경지로 들어간 것이라고 해서 기쁨 속에 땅에 묻는 것이다. 다음으로 크레스토나이오이족 북쪽에 사는 부족의 풍속은 아래와 같다. 여기에서는 사내가 모두 많은 아내를 거느린다. 그런데 남편이 죽으면 어느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아내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또 죽은 사내의 친구들도 이 일에 끼어든다. 그리고 거기에서 뽑히는 영예를 얻은 여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부족민으로부터 찬양을 받고,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족의 손에 의해 남편의 묘 위에서 인후가 째여져 남편과 함께 매장된다. 한편 남은 아내들은 자신들의 불운을 탄식한다-그녀들에게 이처럼 치욕적인 일은 없는 것이다." (405쪽. 트라키아인 풍습)
이 같은 고대 풍습은 현대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는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부족민을 이루며 모든 사물에 정신이 있다고 여기는 샤머니즘을 생각할 때 당연할지 모른다. 초기 로마제국도 허용했던 다신교의 여러 민족은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가 받아들인 유일신 그리스도교를 국교화 이후, 강요되고 서서히 몰락했다, 다양한 민족의 풍성한 지적, 정신적 문화유산이 사라진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역사의 아버지는 샛길을 정말 세세하게 기록했다. 2장 이집트의 생생한 기록은 현재 연구에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6장부터는 직접적인 전쟁을 기록하는데 샛길이 없다. 유명한 마라톤 전투, 영화 300의 이야기인 테르모필아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이 기록되어 있다. 지루할 틈 없는 생생한 기록이다.
지금껏 인류사에 수없이 많은 책이 나왔고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부터 오늘날은 하루에도 수천 권씩 인쇄 될 것이다. 고전의 가치는 활자로 된 인류사에서 지금껏 살아남은 책이다. 구전이 아닌, 신화와 전설의 운문이 아닌, 직접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기초한 최초의 산문체. 헤로도토스가 남긴 <역사>다. 우리가 역사로만 국한되어 바라보지 않는다면 당시 이성이 아직 낮았던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을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현대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한 살인과 폭력의 전쟁사와 종교를 보며 이성이 성숙한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평화와 인권에 보호받고 있는지도 깨닫게 된다.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여행 블로거. 추천한다. 고전 읽기에 깃발을 하나 꽂으며...
#헤로도토스 #역사 #MUHA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