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25%
  • 리뷰 총점6 25%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6.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더 이상 예사(穢史)가 판치는 역사는 안 된다!
"더 이상 예사(穢史)가 판치는 역사는 안 된다!" 내용보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 저술의 논쟁 중심에 서있는 조선조의 인물들과 그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하는 우리사회 구성원, 아니 나아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스러움, 그리고 오만이, 사실이라는 진실을 얼마나 윤색하고, 가공하여, 왜곡시켜 왔는지는 새삼스럽지 아니하다. 그러함에도 역사를 억단(臆斷)하고, 부회(附會)하여 호도하는 사이비 학자들로 인해 오늘의 우리의 정신
"더 이상 예사(穢史)가 판치는 역사는 안 된다!" 내용보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 저술의 논쟁 중심에 서있는 조선조의 인물들과 그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하는 우리사회 구성원, 아니 나아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스러움, 그리고 오만이, 사실이라는 진실을 얼마나 윤색하고, 가공하여, 왜곡시켜 왔는지는 새삼스럽지 아니하다.

그러함에도 역사를 억단(臆斷)하고, 부회(附會)하여 호도하는 사이비 학자들로 인해 오늘의 우리의 정신이 훼손당하는 현상은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릇된 역사인식과 이해로 삶의 태도와 자세, 사회 정의를 전도(顚倒)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에 있어 역사의 오류란 성리학적 지배질서에 따른 이데올로기성 오류, 새로운 사료, 유물등의 발굴로 인한 폐기된 과거형 오류, 구전으로 인한 단순 오류와 같이 학문적 기반의 오류가 있는가하면 이 저술에서 지적되는 내용과 같이 이기적 사욕에 의한 작의적인 훼손적 외곡이 더해진다.

이재호 선생의 이 저술은 사육신의 한 분인 유응부를 김문기로, 존재치도 않은 율곡의 10만양병설과 서애 유성룡에 대한 폄하, 이순신을 포폄하고 원균을 치켜세우는 사학자라는 표피를 걸친 무도한 자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에 대한 바로잡음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무리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왔으며,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 파렴치함은 엉뚱하게도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들 곡학아세하는 자들의 이론(異論)까지 그대로 인용하면서 사료의 의도적인 누락과 외곡, 사실과 논리의 터무니없음, 무지를 지적하고 있다.

한편 원로 국사학자로서 선생이 이렇게까지 나서야 할 만큼 우리의 사학계가 혼탁한가 하는 안스러움이 인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책임을 회피하는 처세술인‘소모릉식 처사’와 상식부족의 소치인 ‘골동반식’처사의 힐난은 적절하다 못해 적확한 비유에 읽다말고 박수를 치기까지 했다. 사육신묘가 사칠신묘로 남아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언제나 시정될 수 있을까...

조선왕조실록 중 그 사료로서의 진정성이 가장 극심하게 훼손된 것 중의 하나가 바로‘선조수정실록’임은 이제 어느 정도의 사적 지식을 갖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한다. 이는 동인과 서인으로 시작되는 당쟁의 결과이고 권력을 가진 서인과 북인들에 의해 가공된 역사이기도 하다. 또한 율곡을 수장으로 하는 서인들과 그 아류들이 조작한 영웅 만들기의 작태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데에는 역시 오늘의 기득권자과 그에 기생하는 사이비 학자들의 역할 탓이기도 하다.

서애 유성룡에 대한 폄하는 이제 재론할 여지도 없다. 비루한 왕 선조와 서인들의 2차례(임진년,정유년)에 걸친 조일전쟁에 대한 자신들의 치부를 은폐하고 서애의 공적과 민초로부터의 존경을 앗기 위한 몰염치와 사악함 이상의 의미가 없음이다. 더욱이 세 번째 논쟁인 이순신가 원균의 공적에 대한 실증 등은 학자들의 타락과 무지가 이정에 이르렀는가하는 탄식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역사가의 구비요건으로 중국의 계몽사학자 양계초(梁啓超)의 저서를 통해 사덕(史德), 사학(史學), 사식(史識), 사재(史才)를 들고 있다. 이중 역사가는 심술(心術)이 공정해야하는 사덕이 중요한 덕목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 3대 논쟁 뿐이랴. 많은 왜곡과 오류가 여전히 역사를 훼손하고 있다. 권세에 아첨하여 사실을 왜곡한 더러운 역사인 예사(穢史)나 남을 비방할 목적으로 쓰여지는 방서(謗書)만이 무성하고, 그것을 오용하는 우리 사학계의 통폐가 자정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재호 선생이 노구의 몸에 학계와 대중에 보내는 이 메시지에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역사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이들은 이 저술에 뛰어들라. 풍부한 사료와 그 사료의 해석, 사료의 의미와 가치, 이론(異論)들의 맹랑함과 이기적 사욕을 보게 될 것이다. 바른 사관(史觀)은 우리민족과 국가의 자긍심과 경쟁력으로 연결될 것이다. 정말 기다리던 감사한 저작이다.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사 논쟁......
"조선사 논쟁...... " 내용보기
노학자이신 이재호선생이 쓰신 책이다. 아마 내 기억에  한국사의 비정이라는 책이 한참전에 나왔는데 여기에 조금 추가를 해서 일반인이 보기쉽게 다시 쓰신듯 하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사육신, 유응부인가 김문기인가 율곡 이이는 실제로 십만 양병론을 주장했나 이순신과 원균 누가 진정한 구국의 명장인가 이중 사육신과 이순신 부분은 논란이
"조선사 논쟁...... " 내용보기

 

노학자이신 이재호선생이 쓰신 책이다. 아마 내 기억에  한국사의 비정이라는 책이 한참전에 나왔는데 여기에 조금 추가를 해서 일반인이 보기쉽게 다시 쓰신듯 하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사육신, 유응부인가 김문기인가

율곡 이이는 실제로 십만 양병론을 주장했나

이순신과 원균 누가 진정한 구국의 명장인가


이중 사육신과 이순신 부분은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현재 사육신은 유응부가 맞고, 원균은 졸장,패장이 맞다고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금 관심을 가진 이유는 율곡 이이 때문이다.


현재 노량진 사육신묘에는 여섯명아닌 일곱명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사육신이니까 여섯이 맞지만  여기에 김문기선생의 위패까지 더해져 사실상 사칠신이 모셔져 있는 것이다. 으흠. 우째 이런 일이 생겼나.  이부분은 책에 자세히 나와있다.


30여년 전 어느날 갑자기 권력의 실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사학계에 압력을 가해 자신의 조상인 김문기를 사육신에 집어넣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국사학자들이 이에 부응해서 원 사육신인 유응부를 빼고 김문기를 그 자리에 대신했다. 당연히 반발이 일어 유응부를 빼지도 못했고 지금까지 어정쩡하게 일곱명의 사육신 아닌 사칠신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코메디같지만 엄연한 사실이고 현재 진행형이다. 얼마전에도 신문하단에서 김문기가 진정한 사육신이라는 광고를 본것 같다. 아무개 김씨문중에서 지속적으로 국민계도(?)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일인 까닭은 학문적 과정없이 위에서부터 일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대한민국은 아직도 봉건국가 왕조국가 양반국가인 모양이다. 


김문기는 누구인가. 당시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한 많은 사람들중 사육신 외에 3중신(重臣)이 있었는데 김문기는 바로 이 3중신중의 한분이다. 명예를 노리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은 아니다. 즉 김문기선생은 가만 있어도 삼중신의 하나로 존경을 받고있던 분이다.  그런데 그 후손들이 자신들 조상을 더 헌창한답시고 남의 자리를 뺏겠다는 것이다. 조상을 받드는게 아니라 더할 나위없이 욕보이는 짓이다. 그렇다면 왜 코메디인가.


사육신이라는 명칭은 20세기 사학자들이 붙인 이름이 아니다. 여섯명 충신들의 절의를 기록한 남효온의 육신전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조선후기에 이들의 행위가 충정으로 인식되면서 공인되어 사육신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즉 사육신은 역사적 개념이다. 이를 후대에 누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남효온 당신이 그때 잘못 전해들어서 그렇소  유응부가 아니라 김문기를 올렸어야 맞       소!  그러니까 이제 20세기에 당신 책을 바로잡겠으니 당신도 하늘에서 고치구랴.

김씨문중은 이렇게 주장하나보다. 압력을 받았든 향응을 받았든 여기에 동조한 국사학자들은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순신과 원균의 공적부분도 논란이 일기는 했다. 이부분도 처음에는 원씨문중의 누군가가 조상의 과실이 아닌 억울함을 풀겠다고 책을 쓴 것으로 기억한다. 원균의 억울한 누명에 동조한 사람들이 몇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후 이순신이 추앙받은 것은 박정권이 의도적으로 띄운 것이라 해서 이순신비하가 잠시 인적도 있었다. 우리는 흔히들 이순신을 성웅이라 부르는데 영웅이 아닌 성웅이 잘못된 것이라는 논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아마도 국사학계에서는 원균용장론이 발디딜 틈이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기록으로 미루어보면 원균은 패장이고 졸장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많이 양보해서 이순신이 그리 대단한 장수가 아니라고 인정한다해도 그렇다고 원균이 훌륭한 장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책에서 새삼스레 안것은  유명한 재야사학자 이씨가 원균을 비호했다는 사실이다. 참 의외였다. 이분은 암울했던 정국에서 민주화를 외치고 고생했던 진보 재야인사및 학생들과 가까이 지냈는데 이분의 이력으로보아 당시에도 퍽 의아하게 생각하긴 했다.  이분은 주역의 대가로 불리는 야산선생의 아드님이다.  아마 이순신이 주류나 보수쪽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라 반감이 생겼을까?  한학의 조예가 아주 깊은 분인데 어째 이순신 폄하에 가담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원균충신이나 용장론의 주요한 근거중 하나는 선조실록에 나오는 임난3대공신이다. 그는 선조임금이 직접 거론하여 3대공신의 하나로 책봉되었다. 그러니까 그토록 용렬하고 죄가 많았다면 어찌 임금이 직접 지명하여 공신책봉을 했겠는가 하는 논리다. 이런 논리라면 전쟁이 진행되던중 선조에 의해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의병장은 정말 죽일놈이다.


역사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이되고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면 다시 새롭게 고쳐지는 것이 당연하므로 원균이 훌륭한 장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사료로 보건대 원균이 그럴리는 없다.


언젠가 김탁환의 소설에서 원균을 긍정적으로 또는 새롭게 묘사했다고 하여 화제가 된적도 있는데 나는 김탁환의 책을 보지는 못해서 별 할말은 없다.  대중적으로 인정된 인물에 대해 특이한 해석을 내놓으면  주목받기 쉬운데 그래서 원균 다시보기가 계속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근래 역사평론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모씨가 신문지상에 연산군은 폭군이 아니었다 라거나 세조는 살인마에 가까운 사람이라거나 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이미 대중에게 상당한 지명도를 가진 이씨가 한마디하면 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을텐데 참으로 걱정스럽다.


율곡 이이는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다. 아마 이순신 만큼 유명할거다. 이이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시골 아줌마라도 율곡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십만양병론이다.

이재호선생은 이미 이전에도 여러차례 십만양병설의 허구성에대해 주장해왔다. 실제 이이는 십만양병이라는 말을 아예 꺼낸적이 없는데 제자들이 양병설을 유포하여 율곡의 선견지명을 감탄케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위의 두 건과는 달리 십만양병설 허구론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김문기의 후손은 당대의 권력자였고  원균의 후손은 별볼일 없어서 아직 원균이 오해받고 있고 율곡의 후손은 너무 빵빵하여 반론의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이율곡과 이순신은 같은 덕수이씨다. 집안은 빵빵하지 않다. 아마도 이재호선생이 지목하는 십만 양병설의 굳건한 지지자는 정계와 학계에 가득했던 서인세력일 것이다. 율곡에 반대했다는 유성룡은 남인이었는데 숙종이후 조선은 서인천지가 되었으니 유성룡은 반대론에 묻히고 이율곡은 애국지사가 되었던 것이다 - 이런 것이 이재호선생의 내심이 아닌가 감히 추측한다.


얼마 남지않은 한문의 대가인 이재호선생은 존경받아 마땅한 학자임에 틀림없다. 학문을 하는 자세또한 후학들이 본받을만 하다. 그러나 내보기에 이재호선생 또한 남인 입장에서 이이를 보고있지 않나하는 혐의가 있다. 이이가 양병설을 주장했는가의 여부가 중요하기보다는 유성룡이 근거없이 의심받았기 때문에 이를 변호하기 위해 양병 허구론을 주장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서인의 명사들인 김장생, 이항복, 송시열 등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기록에 없으니 근거없다는 주장도 의심할만하다. 임진왜란 이전의 공식기록들은 거의 다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걸 두고 실록에 없다고 가짜라고 하는건 역시 무리다. 이부분은 따로 논고가 있으니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역사와 전통이 오랜 나라인 만큼 유구한 가문들이 적지 않은데 그런 옛사람들이 모두 다 선인이고 위인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조상이 관련되었으면 기를 쓰고 선한 인물로 내비치게 하려는 문중의 어른들이 정말 한심스럽다.


 

k****n 2009.03.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육신, 10만양병설, 이순신과 원균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다.
"사육신, 10만양병설, 이순신과 원균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다." 내용보기
우리 역사엔 비밀이 많다.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지만 전해지는 기록의 미비,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록자가 자신의 입장을 반영한 기록이 많아 상대방을 왜곡 폄하하는 기록도 많아 이를 모티브로 하는 팩션이나 방송을 보면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 의문부호를 더하는 것은 역사가들도 한 몫 거들고 있으니 일반인들이 헷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
"사육신, 10만양병설, 이순신과 원균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다." 내용보기

우리 역사엔 비밀이 많다.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지만 전해지는 기록의 미비,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록자가 자신의 입장을 반영한 기록이 많아 상대방을 왜곡 폄하하는 기록도 많아 이를 모티브로 하는 팩션이나 방송을 보면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 의문부호를 더하는 것은 역사가들도 한 몫 거들고 있으니 일반인들이 헷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그 어느 시대보다 기록물이 많은 조선시대지만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물 정도로 ?가 던져지는 사건들이 많다. 당대의 조작뿐만 아니라 후대에 조작한 것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조선사 3대 논쟁이 새삼 일깨워준다.

사육신 묘가 사칠신 묘로 바뀐 까닭, 이율곡의 10만 양병설과 그엔 반대한 류성룡,  이순신과 원균의 공과에 대한 의문부호를 넘어서 원균이 더 뛰어나다는 일련의 주장들을 일러 조선사 3대 논쟁이란 이름으로 원로사학자가 펴낸 반론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이 선조의 공적을 드높이고자 시도한 사육신중 무신 유응부를 김문기로 바꾸치려는 거대한 작업에 국사편찬위원회의 내로라하는 역사학자들이 맞장구를 쳐주어 현재 사육신묘는 김문기의 허묘를 포함하여 사칠신묘가 되었다. 정작 외곡(왜곡이라고 알았는데 이책은 외곡이라 표현한다.)에 앞장선 당사자가 10.26사건의 주역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음에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란 생각이다. 이런 일은 친일파 문제에서도 버젓이 살아있으니 부끄러워해야 할일이다.

 

당쟁의 소산으로 보이는 동인 이율곡과 서인 류성룡(어떤 부분에선 남인)의 대립각에서 후손들이 율곡의 십만양병설을 끼워넣고 이를 반대한 인물이 류성룡이고 이것 때문에 임진왜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다는 책임소재를 경쟁 당파에 돌리는 후안무치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순신과 원균의 논쟁에도 부각되는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의 기록, 이율곡 같은 당파인 후학들의 기록들의 문제점을 추적하여 오류를 밝혀낸 학자의 집념이 대단하다. 당시에 조선의 국력으론 상시 10만명의 군인을 유지 양성할 정도가 되지 않아 설사 양성했다고 하더라도 백성의 고통이 커 그것이 조선을 허물어뜨릴 수도 있었음을 지적한 후대의 지적은 새롭게 안 사실이다. 이율곡=10만 양병설, 10년내  왜란발생을 예언한 암기공식과 선조의 피난시 정자를 불태워 강을 건너게 한 일화까지 어우러져 선지자로서의 면모를 내게 심어준 역사적 기록이 조작되었다는 지적에 아직도 어리둥절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확신이 선다.

 

이순신과 원균
두 사람 모두 임란 이후 공신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지만 너무나 대비되는 인물로 영웅 이순신과 간신 원균의 이미지가 우리 국민 대다수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를 뒤집는 인물한국사의 저자인 이모씨와 원균 그리고 원균이란 소설의 저자 고모씨가 원균을 이순신보다 앞자리에 세우려는 데 문제 제기를 하는 논란거리다. 최근 일본에서 이순신 장군을 닌자가 살해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것을 생각하면 원균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논란거리는 아닌 모양이다. 두 장군이 살았던 당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된다니 그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순신장군의 자살설, 조선왕 독살설 등 민간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들을 사실인양. 아니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일반 대중의 생각에 덧칠을 하여 다양한 팩션과 방송드라마가 늘어나고 있다.

단순 암기식으로 우리 역사를 공부해온 우리는 그 순간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도 높다는데 동조를 하여 역사적 무지에 덧칠해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되고 역사적 사실이나 공과를 떠나 선악의 차원에서 역사문제를 바라보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육신의 문제, 이율곡의 십만양병설과 류성룡, 이순신과 원균..조선시대 당대의 3대 논쟁이라기 보다는 저자가 천착해온 오늘의 논쟁을 잠재우기 위한 반론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자신의 집안의 명리를 위해 이용한 사육신문제는 정부가 나서 바로 잡아야 하고, 이순신과 원균, 10만양병설의 논란은 아무래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논란을 양측면에서 제대로 보게 해준 조선사 3대논쟁은 역사를 제대로 보는 안목을 키워주는 책이다.

y*****n 2008.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사 3대 논쟁
"조선사 3대 논쟁" 내용보기
어느 책이든 가급적 단일한 주제나 방향성을 가진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혼합된 토픽을 다루는 책은 비교적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책을 샀다. 사놓고 읽지 못해서 쌓아놓은 책 중에서 골라 읽는데, 책을 산 시점이랑 읽는 시점이랑 너무 시차가 나다보니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산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 산 책을 또 사는 불상사까지.
"조선사 3대 논쟁" 내용보기
어느 책이든 가급적 단일한 주제나 방향성을 가진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혼합된 토픽을 다루는 책은 비교적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책을 샀다. 사놓고 읽지 못해서 쌓아놓은 책 중에서 골라 읽는데, 책을 산 시점이랑 읽는 시점이랑 너무 시차가 나다보니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산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 산 책을 또 사는 불상사까지..-_-)

어쨌든 이례적으로 단일 주제를 가지지 않은 책을 읽게 되었는데, 어째서 이 책을 샀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_- 뭐 어쨌든 샀으니 읽긴 읽었는데, 애석하게도 썩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아주 재미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몰랐던 몇 가지 논쟁점들을 알게 된 것이 얻은 것이라면 얻은 것이랄까.

책의 토픽과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면 크게 다음 세 가지이다.
  1. 유응부가 사육신의 멤버인가? 김문기가 멤버인가?

    국사편찬위원회가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압력을 받아 처음에 김문기로 결정했다가, 나중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시인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2. 율곡은 십만양병설을 실제로 주장했나?

    사실은 안 했다. 펌질의 폐해다

  3. 원균은 사실 명장이었나?

    사실 원균은 무진장 졸장이다.
개인적으로 이순신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어줍잖은 이순신 관련 서적을 몇 권 읽은 바 있어서 마지막 토픽인 원균명장론 분쇄는 당연한 얘기라 별 무리 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원균명장론 떡밥이야 벌써 수없이 분쇄되고 갈려서 이제는 가루의 흔적조차 안 남아 있지만, 을파소님의 블로그에서 책보다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순신 장군은 뭐 두 말이 필요없는 존재. 마침 이번 주말에 이순신 장군의 묘에 다녀올 생각이다.

제일 놀랐던 게 율곡의 십만양병설이 사실은 없었다는 것인데, 검색해보니 이 사람만의 주장은 아닌듯 싶다. 조작이라는 주장도 있고 반론도 있었다.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조작됐다? - 조작 1 by 동글기자
한겨레 ‘십만양병설 조작’ 주장은 ‘율곡전서’ 판본 무지서 비롯 2009-07-24 오후 02:26:14

음... 이건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 조금 혼란스럽다. 뭐 어쨌든 저자는 율곡행장의 기록은 율곡이 국방문제에 대해 평소 국방력을 잘 관리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을 뿐인데, 이걸 율곡신도비명과 율곡시장이 율곡 행장을 카피하면서 부풀려져서 생겨난 것이라는 주장인 듯 하다.

첫 번째 사육신 논쟁은 약간 공허한 면이 없지않아 있는데, 이전의 포스트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김문기는 이미 삼중신인데, 삼중신이 사육신보다 더 높은거 아닌가 싶다. (무거울 重자가 아닌가)
뭘 그리 레벨을 낮추고 싶어서 노력하는지 알 수 없다-_- 게다가 결정적으로 김문기 본인이 6인 멤버가 아니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니 이는 더 이야기할 것도 없다. ㅎㅎ

약간 웃긴점이 있다면, 앞부분(p123)에는 선조수정실록이 고증을 별로 하지 않고 과거 기록을 쓴 것이라 내용이 조잡하다고 해놓고는, 이순신 토픽 부분에서는 선조수정실록의 언급을 무척 많이 활용하고 있다-_- 뭐하자는 거?

이 책의 가장 애석한 부분은 p57에 '왜곡'이 잘못된 단어이고 '외곡'이 맞는 단어라는데, 상당히 황당하다. 이유라도 좀 적어주지.

다 읽고나니 괜히 십만양병설의 진위만 궁금해진다. ㅋ
z*****i 2009.11.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