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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제재로 씌어진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다. 엮은이가 언급하고 있듯이, 가부장제하의 굴곡진 여성의 삶은 남성의 삶을 우회하여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여성과 남성은 한 사회의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부장제를 온몸으로 살아내는 서글픈 여성의 삶은 여성만의 것이 아니라 남성과 그 자식들인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실린 각각의 소설이 끝나는 뒷편에는 '생각할 문제'를 제시해 보다 깊이 있는 사유를 하도록 돕는다.
씨받이 여인 순녀의 한 많은 삶을 그린 김동리의 <동구 앞길>은 한 여성이 아들을 낳는 도구가 되어 비인간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 가난이지만, 가난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남성보다 여성을 더욱 힘들게 하는 억압의 굴레로 작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집의 맏딸로 태어나 집안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자식 없는 부잣집 영감의 씨받이가 된 순녀는 아들을 낳을 때마다 본가에게 빼앗기는 신세다. 마치 모성의 본능이 얼마나 질긴지 생체실험 당하는 듯하다. 순녀를 찾아와 마음껏 분풀이하는 영감의 마누라도 망가지기는 마찬가지다. 두 여인은 가부장제를 계승하는 아들 생산의 도구로서 인정 받은 자와 인정 받지 못한 자의 차이만큼이나 상처 받은 마음의 골도 깊다.
이해 관계를 둘러싸고 다투는 것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흔히 여성비하 발언의 하나로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하는 데는 여성들의 다툼엔 아이러니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다툴수록 이익을 보는 것은 여성 중 어느 한쪽이 아닌 남성(사회)이기 때문이다. 여성들끼리 다툴 때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문제는 가려지고 여성 개개인의 인격 문제로 좁혀지기 십상이다. 몸통은 놔두고 깃털이 날린다고 깃털만 탓하는 격이 되는 두 여인의 싸움이 모성을 사이에 두고 벌어져 더욱 슬프다.
황순원의 <과부>는 아들 생산의 도구로 억압받았던 씨받이 여인과 달리, 일부종사라는 유교 사회의 혼인 제도에 갇혀서 살며 살아도 산 목숨 같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한 많은 소년 과부 이야기다. 특히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숨죽이고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유교적 관습과 제도의 형식이 지닌 비인간성을 돌이켜보게 한다. 지금도 죽은 조상들을 위한다는 차례와 제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살아있는 여성들의 허리가 휘고 가정이 파탄나는가. 인간의 이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관습의 무의식적인 힘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많은 현대인에게 고통을 준다.
중년 사내가 되어 찾아온 아들을 끝내 외면하는 모성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그 찢어지는 가슴 속 한을 누가 알아주고 달래줄 수 있는가. 뒤늦게 생모임을 눈치채고도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하고 돌아가는 다 큰 아들의 가슴엔 무엇이 남아있을까. 예의를 통해 인간이 동물과 다름을 강조하고자 했던 유교사회는 역설적으로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아들을 외면하게 하는 한의 굴레로 작용한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식 생산의 도구이자 역할로 살아간 씨받이 여인과 과부의 삶을 그린 두 편의 소설은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과 남성의 과거를 그린 서글픈 자화상이다. 여성혐오로 인한 범죄가 계속되는 우리 사회에서 오늘의 남녀가 운명 공동체로서 함께 가는 삶이 어떠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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