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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존재는 참 어렵다. 좋은점도 많지만 나쁜점이 없다는 건 아니다. 잘 어울려서 놀면 좋지만 한 번 싸우면 거의 나락이라고 봐야한다. 친구의 관계도 그만큼 복잡하다. 친구를 그냥 사귈 수는 있어도 친구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도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로 나뉜다. 좋은 친구는 나를 도와줄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주위에 그런 친구를 찾기는 어렵겠지만. '두렵다고 웅크리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 책의 이 문장은 가진 것은 없어도 도전은 해보자는 멋진 글귀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막 해결하려고만 하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럴때 옆에 있어주면 든든한 것이 친구다. 남을 배려 하지 않고 이기적인 '가짜 친구' 말고 남을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진짜 친구' 말이다. 이 책 [나의 달타냥]도 같은 맥락이다. 엄마를 놔두고 무서운 사육장을 탈출한 달타냥과 아빠의 가정폭력으로 공포의 질린 민호는 등교길에서 만나 어울린다. 물론 친구의 부탁으로 친해지긴 했지만,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며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행복한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민호의 아빠가 도박 때문에 집까지 팔려고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참지 못했던 민호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화가 난 아빠는 민호를 때린다. 결국 달타냥은 자신을 희생해 민호대신 세상을 떠난다. 슬프면서도 용감해보이는 이 느낌은 뭘까...... 민호와 많이 지낸 것도 아니고 자신의 안 좋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호의 아빠에게 대적한 달타냥은 용기있어 보인다. 하지만 한 편으로 자신의 엄마는 두고 왔으면서 민호를 도와주는 우리의 영웅(달타냥)이 불쌍하게만 느껴진다. '제발 슬픈눈(민호)을 내버려 둬!' 맞고있는 민호를 쳐다보며 자신의 모든 역경을 이기고 죽음을 택한 달타냥은 오직 민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나는 무서워서 민호의 아빠 근처에도 못 갈 것 같은데 그것을 기회로 만든 달타냥은 결국 가정의 평화를 만들었다. 책이긴 하지만 개와 사람의 따뜻한 우정에 나는 감동받았다. 달타냥의 무덤을 보며 민호가 달타냥과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은 그들의 슬픈 우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달타냥을 처음 만난 날, 달타냥이 도둑으로부터 지켜준 날,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날...... 민호는 아무것도 해준게 없는데 그럴로도 만족했던 달타냥의 마음을 보고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달타냥과 민호는 친구관계를 뛰어넘어 가족 같은 관계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이 [나의 친구 달타냥]이 아니라 [나의 달타냥]인 것처럼.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도 옛날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반에서만 다같이 놀았지, 주말에 따로 불려서 논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친구가 다가와 주말에 놀자고 했다. 남들은 한 번씩 있는 일이지만 나는 너무 설렜다. 그날 이후로도 우리는 계속 놀았다. 생일파티도 둘이서 하고, 자전거도 타고, 공부도 같이 하고. 나를 배신하지 않는 '진짜 친구'가 생긴 것이다.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서로 못 믿고 눈치 보며 어울리는 것은 친구가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친구 한 명을 사귀더라도 '진짜 친구'를 사귀어야 그게 진정한 친구이다. 마치 우리의 영웅 '달타냥'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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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난히 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눈에 많이 띈다. 게다가 읽는 도중 보신탕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마침 얼마전에 초복이 지난 터라 불편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실 소나 돼지도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하는 가축인데 유독 개는 그런 동물과는 레벨이 다르게 취급된다. 우리 아이들도 보신탕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를...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하긴 키우고 있는 강아지를 사정상 시골에 며칠 두기로 했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보고싶다고 노래를 하다시피 하는 아이들이니 말 다했지.
우연히 개의 이름을 지어준 관계로 개와 특별한 인연이 된 슬픈 눈 민호. 학교에서 친구들과 교류하지도 않고 자기 안에 갇혀 사는 민호는 친구들이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 같아 보인다. 자신의 아픔을 들키고 싶지 않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은 걱정도 없고 행복해 보이는데 자신만 불행한 것 같아서 그런 것이겠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운 아빠를 향해 당당하게 말 한 마디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자기 안으로 더욱 숨는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달타냥이라고 자신이 이름 붙여준 개를 키우게 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먼저 친구의 존재를 의식했다는 점이다. 물론 민호도 아빠가 술을 먹고 엄마를 때리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잘 노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러나 아빠가 변한 후부터는 철저히 혼자가 되고 만다. 하지만 달타냥을 키우면서 장만이와 삼총사가 될 정도로 친하게 지내며 각자의 사정을 조금씩 이야기하면서 이 세상에서 자기만 불행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지. 모든 사람에게는 얼마간의 시련이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어린 민호가 알기에는 아직 벅찼을지도 모른다.
개 달타냥의 시선과 민호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그러나 외국동화에서 사용한 이러한 방식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바다 아이>라는 책이 그런 구성이었는데 거기서는 끝까지 독자들도 상황을 전부 알지 못하도록 구성해 놓은 반면 여기서는 독자가 모든 상황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긴박감은 좀 덜한 편이다.)을 취하고 있어서 민호의 마음이었다가 다시 달타냥의 입장을 반복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청자의 입김에 의해 결론이 변경가능한 드라마였다면 달타냥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처음에는 그런 운명을 만든 작가가 원망스러웠으나 마지막에 민호 아빠가 다치고 왜 다쳤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겁많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달타냥은 어쩌면 민호 자신의 모습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악의에 가득 차 있고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달타냥의 형인 태풍의 모습은 아내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무기력함에 길을 잃은 민호 아빠 자신 아닐까. 그렇다면 달타냥과 태풍의 죽음은 민호와 아빠의 나쁜 면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니 그러리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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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황선미 작가의 '푸른개 장발'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물론, 완전히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개의 시선으로 전개되던 장발 이야기와 달리 나의 달타냥은 슬픈 눈의 민호와 달타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개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옵니다. 개와의 우정을 통해 성장해 가는 소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죠. 엄마와 함께 있던 사육장에서 형과 함께 도망쳐 나와 슬픈 눈을 만나게 되고 거리의 황제라 불리우는 떠돌이개 선생님을 통해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는 달타냥 어릴 적 이혼한 아빠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정만이와 술을 먹고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떠올리며 엄마를 지켜주지 못해 마음 아파하는 민호. 달타냥이 결국 아빠에 의해 비참하게 죽게 되고 아빠는 달타냥의 형인 태풍에 의해 다치는 마지막 장면이 묘한 여운을 남겨주네요. 인과응보? 결말부분이 뭔지 모르게 아쉬움이에요. 외롭게 지내던 민호에게 힘이 되어 주는 친구 달타냥과 정만이가 함께 운동장에서 어울리는 모습은 읽다가도 흐뭇했구요. 엄마의 슬픔을 바라보는 달타냥의 애틋한 마음이 엄마와 형을 그리워 하는 달타냥의 마음과 잘 연결되는 느낌이었어요. 사람이나 개나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하는 거죠. 달타냥에게 도움을 준 떠돌이 선생님이 어떻게 되었을까도 무척 궁금해지고, 엄마의 냄새를 쫓아 복수하겠다던 달타냥의 형 태풍이도 잘 지내게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각 장의 제목을 따라 민호(슬픈눈의 사람)의 입장에서 그리고 달타냥(흰 눈 같은 털을 가진 개)의 입장에서 보고 듣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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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눈을 가진 아이 민호와 슬픈 눈을 가진 흰 개 달타냥이 들려주는 슬픈 이야기. 민호는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자신의 속으로 움츠러드는 아이고, 달타냥은 어미개가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시킨 강아지다. 둘 다 무엇인가에 쫓기고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달아날 방법, 사람에게서 개가 달아날 방법, 뭐가 있을까? 아이와 강아지의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달타냥이 눈빛이 고운 사람을 찾아 몸을 의탁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에게 끌려가고, 엄마는 목숨을 걸고 두 자식(강아지들)을 탈출시킨 대가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고, 함께 달아난 형은 투견 장사꾼에게 잡혀갔다. 홀로 남은 달타냥이 무조건 따라간 아이 민호는 달타냥에게 달타냥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을 지어준 사람.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쓰는 사람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래서 슬프다. 민호의 아버지도 폭력적이었던 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내와 아들에게 관계를 대물림한다. 달타냥이 민호의 삶 속으로 들어간 것 역시 슬픈 관계의 연장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이름을 주고받은 사이다. 그런 사이에서는 상대가 마음에 병이 들었을 때 냉정하게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 더구나 어린아이는 더 그렇다. 책을 읽으며 딱한 마음이 목까지 차올라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슬프게도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민호의 엄마가 달타냥의 엄마를 조금 닮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무튼 슬픈 책이다. 어린이책으로서는 드물게 슬픈 결말을 과감히 시도한 책이다. 이 작가의 <검정 연필 선생님>에서도 어린이책답지 않은 신랄함이 눈에 띄었던 기억이 있다. 매우 어린이다운 감성과 문체를 지니고 문제의식을 정확히 겨냥하는 책. 두 가지 상반된(?) 색깔이 잘 어울리는 묘한 느낌. 이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