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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는 누가 키워야 할까? 제 어버이가 키우는 게 가장 좋겠지만, 어버이가 제대로 키울 수 없다면 누가 키워야 할까?
벤 애플렉 감독이 2007년에 만든 영화 <가라 아이야 가라 Gone Baby Gone>에서 던지는 물음이다. 그런데 바로 말하기가 어렵다. 쉽지가 않다.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2. 미국 보스턴에서 사립탐정을 하며 살아가는 패트릭 켄지(캐이시 애플렉)와 앤지 제나로(미셀 모나한). 이들에게 비어 맥크레디란 아낙네가 일을 맡기러 왔다. 네 쌀짜리 계집아이인 제 조카 아만다 맥크레디가 사라졌다며 찾아달라고 한다. 누가 데려간 듯하다며.
아만다는 이미 경찰에서도 찾고있는 아이였다. 없어진 지 사흘이 되어서야 패트릭과 앤지를 찾아온 것. 엄마인 헬렌 맥크레디(에이미 라이언)는 옆집에 가서 30분을 보내고 왔는데 아이가 없어 졌다며, "우리는 누구한테 해코지한 적도 없고 착하게 살아왔어요. 꼭 돌려보내 주세요..." 하며 텔리비전에 나왔다.
아이가 없어졌으니 보스턴 경찰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아동범죄반장인 잭 도일(모건 프리먼)이 나섰다. "우리가 꼭 찾을 겁니다"
경찰을 못 믿어서 사립탐정한테 일을 맡기려는 이들은 우리나라라면 보기가 어려운 모습이다. 따로 돈을 주어야 하고, 경찰보다 일을 더 잘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3. 패트릭은 보스턴에서 태어나 살았기 때문에 이 바닥을 훤히 훑고 있다. 그래서 술집을 돌아다니거나 아만다 집 가까이 사는 이들을 만나 물어본다. 아만다가 없어진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아는 스티브를 술집에서 만났는데, 그가 하는 말을 듣고 놀란다. "헬렌은 사귀던 레이와 같이 이레에 다섯 번이나 여기 술집에 와서 코캐인을 들이키곤 했어..."
패트릭이 알아본 바와 헬렌이 경찰에 알린 것은 달랐다. 옆집에 간다고 집을 30분동안 비웠다고 했지만, 레이와 마약을 하느라 두 시간을 비웠다는 것. 또 돈을 벌려고 마약을 배달해주기도 했다는 것. 이를 안 헬렌의 오빠 라이오넬 맥크레디는 펄쩍 뛴다. 올케인 비어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헬렌이 마약을 배달하러 갔다가 운이 좋게 13만 달러를 손에 넣었는데, 이 돈이 마약장사꾼인 치즈의 돈이라서 치즈와 그 똘마니 크리스가 헬렌한테 돈을 받아내려고 아만다를 데려갔다는 것. 돈을 돌려주고 아만다를 데려와야 하는데, 치즈 무리는 경찰을 싫어해서 패트릭이 갖다 줘야 한다.
4. 같은 이름의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은 아만다를 누가 키워야 하는가를 영화로 나타내고자 했다. 아버지가 없어 사내들을 좇아 다니는 엄마 헬렌은 아만다를 잘 키울 수가 없다. 마약에 손을 대고, 사내들과 어울려 놀기에 바쁘고... 그러면 누가 키워야 할까? 나라에서 키울 수는 없고, 아만다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엄마한테서 빼앗아 키워야 할까?
열두 살이던 딸이 몹쓸 사람들한테 잡혀갔다가 끝내 죽고말았던 잭 도일 반장이 키워야 하나? 아니면 아이를 빼앗아가는 나쁜 놈들을 때려잡으려 눈이 벌겋게 설치는 레미 브레샌트 형사한테 맡길까? 제 아이가 없어 아만다를 잘 돌봐주던 외삼촌 라이오넬과 외숙모 비어가 키우면 좋을까? 같이 살기만 하고 아이는 없는 패트릭과 앤지가 맡으면 좋을까?
감독은 어떻게 하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그냥 물음만 던질 뿐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하며 묻는데, 영화를 다 보았지만 쉽사리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내들이 총싸움을 벌이고, 언덕에서 낭떠러지 밑에 있는 못으로 뛰어들고, 피가 튀는 영화지만, 그런 건 곁다리일 뿐, 어린 아만다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영화였다.
그래서 치즈 무리와 한바탕 벌이는 아슬아슬한 총싸움이나 사라진 일곱 살짜리 사내아이를 찾아내는 일에서 나오는 가슴을 졸이게 하는 모습들도 볼만 하지만, 아만다를 두고 어른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하는 대목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5. 패트릭으로 나온 케이시 에플렉은 감독 벤 애플렉의 아우라 한다. 그런데 찬찬히 보면 젊었을 때의 버터 랭카스터를 보는 듯했다. 입매부터 눈까지 많이 닮았다. 시원스럽게 내뱉지 않고 응얼대는 듯한 말투는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건 보스턴말을 쓰느라 그랬다니 넘어갈 수밖에. 그런데 경찰 냄새도, 탐정 냄새도 아닌 어정쩡한 냄새를 피우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앤지를 맡은 미셀 모나한은 그저 그랬다. 나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빼어난 것도 아니었다. 집이면서 일터인 곳에서 패트릭과 알콩달콩 사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내 눈에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아만다의 엄마 헬렌을 맡은 에이미 라이언이 돋보였다. 아만다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올케 비어한테 억울하다는 듯 톡 쏜다.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그것도 혼자서...애를 못 낳는 언니는 몰라..." 그래 놓고는 아이를 돌보기보다는 마약을 하고 사내 뒤꽁무니만 찾는데, 아만다야 어찌 되었든 새로 사내를 만나러 가려고 차려 입고는 "나 어때요?" 하며 엉덩이를 살살 흔들며 패트릭한테 묻는 모습은 얄밉기 짝이 없었다.
보스턴 경찰서의 잭 도일 반장으로 나온 모건 프리먼은 "겉모습은 풋내기지만, 풋내기처럼 움직이지 않기를 바라겠네..." 경찰이 나섰는데도 아만다 일에 끼어들자 패트릭한테 못마땅하다는 듯 한 마디 하는데 농익은 연기를 잘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어 힘이 빠진 늙은이의 모습이었다. 레미 브레샌트 형사 노릇의 에드 해리스는 처음에는 별로라 생각했다가 갈수록 눈길을 끌어갔다.
6. 영화의 앞쪽에서는 누가 누군지, 어떻게 꼬여가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끝으로 갈수록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그 일을 함부로 잘라 말할 수 없게 된다. 처음보다는 끝으로 갈수록 좋아보이는 영화였다. 끝무렵의 뒤집힘도 좋았다. 첫 꼭지에서 가운데로 옮겨갈 때 덜 매끄럽게 다가왔기 때문에 별은 네 개만 주었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잭 도일 반장의 입을 빌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어..." 하는데, 패트릭을 내세워 '그렇게 다 알지 못해도 됩니다' 며 맞설 생각을 하지만 끝무렵에는 '잭 도일, 그의 말이 맞지 않을까?' 하는 얼굴을 짓게 했다. 잘라 말하기 어려운 물음을 던졌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영화라 그런지 디뷔디는 괜찮다. 화면이나 소리는 깨끗하다. 덤도 푸짐하다. 영화를 보면서 들려주는 얘기가 있고, 감독이 영화를 만든 뒷얘기는 짧게 나오지만, 배우들을 쓰게 된 까닭이나 잘라낸 장면들도 들어 있어 볼만 하다. 한 장짜리 디뷔디에 17,100원이었으니 조금은 비싼 셈이지만, 이마저도 이젠 나오지 않는다. 빨리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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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고민 1: 어린이 학대,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 갱, 총기 사용문제 등등
"미국은 어떤가(요)?" 혹은 "미국은 어떤 곳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참 난감한 질문이다. 어차피 '경험'이나 '이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고 그 사람의 환경이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질문은, 질문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답변하기엔 쉽지 않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답변으로 해준 게 바로 이 영화였다.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미국 작가가 있다. 이 영화는 이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는데, 약물 중독이나 알콜 중독, 갱, 어린이 학대(abuse나 neglect) 등 미국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다. ![]() 작품의 전면에 드러나는 건 어린이 학대 문제이다.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에 걸린 미혼모가 있다. 당연히 아이는 거의 방치된 상태이다. 그런데 어느날 이 여자의 딸이 유괴당한 것이다. 경찰과 탐정은 소아성기호증을 가진 변태성욕자(pedophile)의 짓이거나 돈이나 복수를 노린 갱단의 짓일 거라 생각하고 문제를 파헤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것, 그러니까 그 문제를 통해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미국' 그 자체이다.
영화는 매우 사실적이다. 스펙터클하고 과장이 심한 헐리웃 영화들을 보면서 느끼는 괴리감이랄까, 비현실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미국적'인 영화, 미국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고민 2: 나는 너의 선한 'Big brother'야. 나는 선한 동기를 가졌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고민 중 하나는 결국 선악의 문제인 것 같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 어쩌면 선한 사람일수록, 선에 가까워지려는 사람일수록 이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차피 악한 사람들이야 이런 데 관심도 없고, 자기들 스스로 악해서 문제도 느끼지 못하니깐. 여기에 삶의 딜레마와 아이러니가 있는 듯.
정말 선한 사람이, 악을 미워해서 악을 없애려는 의도로 시작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악을 가져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의도가 선했기 때문에 선인가? 아니면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악인가? 그렇다면 결과가 좋지 않으면 모두 악인가? 만약 나는 선한 의도로 신념을 가지고 한 행동인데, 누군가 그 행동은 악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 그러니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밖에서 '세계 경찰'을 자부했던 미국의 내적, 실존적 고민이 드러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주 모범적인 경찰서장이었던 모건 프리만과 그의 부하직원들은 미국이 상정한 미국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그들의 의도와 동기는 선했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그들은 한평생 정의를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선한 동기로 시작했던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거기에 따른 희생도 너무 컸다. 결국 본인들의 신념과 가치관에 의거하여 한 행동들에 의해 자승자박의 형국에 빠지게 된다. 나는 분명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인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애송이'가 "네가 잘못한 거야."라고 한다. 목숨을 걸고 지킨 신념인데, 억울하다. '알잖아, 원래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라구. 난 당신의 선한 Big brother야. You know?'.
직면한 딜레마적 상황: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사실 선과 악은 생각처럼 그렇게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영화속에 보면 술집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사실 그 부분이 매우 상징적이다. 살인과 마약과 섹스 등 온갖 범죄가 만연한 술집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 문만 열고 나오면 바로 대명천지의 환한 세상이지만, 그 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밖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누구든, 언제든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불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빛과 어둠,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게 '현실'이다. 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딜레마적 상황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선악이라는 것, 그 판단 역시 결국은 자신의 가치관에 의거했다는 것. 단순히 자기 기준에 의거하여 타인의 행동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타당한가? 그것은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탐정과 경찰서장은 기실 선과 악의 대비처럼 보여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모두 선이다. 단지 입장의 차이가 있고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 즉, 경찰서장이 생각하는 선과 탐정이 생각하는 선이 일치하지 않는 것뿐이지, 이 둘을 선악이라는 기준으로 나누거나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가 쉽게 '악'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이렇듯 매우 복잡미묘하게 얽혀있는 것이다. 도대체 당신의 선이 그의 선보다 더 선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 순간, 당신은 당신이 오만하다고 손가락질했던 바로 그 사람이 되어 버리는데. 여기에 인간의 숙명적 딜레마이자 아이러니가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부터 선악을 구분해야 하는 일은 모든 인간에게, 그리고 개개인의 인간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덧붙임] 1. 벤 애플렉이 각본 및 연출을 맡았다. 2.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욕이 많이 나오는 영화다. 평생 들은 욕보다 이 짧은 영화를 통해 듣는 욕이 훨씬 많다. 그러니깐 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은 아마 수명이 10년은 늘어날 거다. 3.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Gone baby gone'을 어떻게 '가라, 아이야, 가라'로 번역했는지 알 수가 없다. 4. '미스틱 리버'나 '셔터 아일랜드'도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을 영화한 것이다. 5. 여담이지만, 남자 주인공 참 맘에 든다. 위에 있는 사진을 봐도 알겠지만 시종 일관 헐렁한 면티에 트레이닝복, 면바지나 청바지만 입고 나온다. 영화 주인공치고는 참 소박한. 소설 속 인물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 원작을 안 봐서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탐정 캐릭터. 6.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지금까지 다섯 편의 작품이 나왔고, 조만간 여섯 번째 작품이 출간될 계획이라고 한다. 기회가 되면 영화가 아닌 소설로도 접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