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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전강호>란 이 영화는, 90년대 초반 국내 극장 개봉 및 비디오 출시할 때 유덕화 출연을 앞세워서 홍보를 하였기에 유덕화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등광영입니다. 유덕화는 우정출연 격으로 캐스팅되었고 실질적인 주인공은 등광영이고 그에 맞서는 악역은 임달화이지요.
당시 한국판 포스터에는 좌측에 유덕화 우측에 등광영 사진을 내걸고 이런저런 멋진 문구를 아로새겨 피끓는 남자들을 유인했었답니다. 그때 그 광고 문구들을 다시 한 번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무적의 파트너 유덕화, 등광영의 거대한 진혼곡!
의리! 그것은 죽음의 예술이다!
지존무상, 정전자에 이은 유덕화의 90 최신 액션 문제작!
검붉은 피로 물든 복수의 전쟁을 기적이라 부르지 마라!
나의 눈물은 암흑가의 완전 죽음이다!
배신은 암흑가에서 멸망하고 의리는 피 속에서 승리한다!
우정은 복수를 위한 필사의 투쟁이다!!
90 홍콩 느와르 마지막 유언장!
최후의 혈전을 위해 친구! 난 자넬 선택했어!!
이보게 친구 - 자네 혈육을 찾는데는 내 목숨이 필요해 그 빚을 어떻게 할 건가!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문구들이지만 당시로서는 저런 표현들이 극장가를 찾아드는 관객들에게 제법 효과적인 광고 문구였지요. 지금까지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첩혈쌍웅>의 '개같이 살기보단 영웅처럼 죽고 싶다!' 카피 문구처럼 마치 영화 속 명대사처럼 오해 받는 경우도 허다했답니다. 참고 삼아 정우시네마판 <첩혈쌍웅> 비디오테이프 쟈켓에 새겨진 광고 문구들을 볼까요.
개같이 살기보단 영웅처럼 죽고 싶다.
좀 위험하지만 사진 한 장과 총 한자루로 밥을 먹습니다!
이 세상 살다보면 매 번 성공할 수는 없지...
저 해가 뜨고 질 때마다 많은 사람이 죽지만 오늘은 재수없게 우리 차례일 뿐이야!
강렬한 총격전과 처절한 바이올런스!
세기말의 도시 홍콩의 운명을 비극적 허무주의로 담아낸 홍콩 느와르의 전설적 세계!
홍콩은 도시이지 국가가 아니다. 그 도시는 중국이 아니며 또한 영국도 아니다. 그저 바다 위에 섬처럼 떠있는 소비와 환락, 엔터테인먼트와 욕망으로 이루어진 '허깨비' 같은 가짜 화려함으로 가득 찬 도시이다. 그러나 가짜의 시간은 역사의 진실 앞에서 이제 허영을 벗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도 아니고 지금 보면 과잉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표현들이긴 하지만 그 시기 그 영화들을 설명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정도로 생생한 문구들이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 국민을 억압해온 군부정치의 종식을 눈 앞에 둔, 반독재 투쟁의 끝에 서있던 그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저토록 선악(善惡)이 분명한, 단호하고도 정의로운 문구들은 피를 끓게 했었지요. 주윤발과 유덕화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 영화들은 당시 일종의 문화 현상이었고 배신이 난무하는 암흑가에서 형제애와 의리를 위해 싸우고 또 싸우는 열혈남아(熱血男兒)들은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배신과 협잡으로 권세를 누리는 배신자가 권선징악의 도덕을 비웃을 때 그렇다고 악이 승리할 줄 아니냐고 일갈하며 내뿜는 총알의 강렬함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중반까지 젊은이들의 가슴을 휘어잡았더랬습니다.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으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는 아시아 젊은이들의 열광을 넘어 할리우드의 비디오 키드들을 자극했고 그런 성원 속에 오우삼과 주윤발은 훗날 할리우드에 진출하기도 했었지요.
79년의 12 12와 80년 5월 광주의 피로 시작된 전두환 정권은 87년 6 29 선언으로 일단락 되었으나 직선제와 단임제라는 전리품에 취한 양김(兩金)은 각자의 승리를 자신한 끝에 하나회의 2인자 노태우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어주고 맙니다. 값지지만 아쉬운, 절반의 성공이었지요. 이후 양김의 한쪽은 전두환 정권의 2인자 노태우와 손을 잡고 나머지 한쪽은 박정희 정권의 정권의 2인자 김종필과 손을 잡고 한차례씩 대권을 차지합니다만 반(反)군부로 정치활동을 했던 이들이 군부정권의 실세이자 얼굴마담들과 손을 잡았으니 오호통재라!
정치판의 미묘한 이합집산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시대의 열정과 미처 다 끓어오르지 못한 청춘의 정의감은 영화 속 홍콩 젊은이들의 투쟁심에 매료되기 시작합니다. 현실에서는 친일파가 해방 후에도 권력을 갖고 군부세력에 붙어지내던 자가 여전히 정치 실세가 되었지만 영화 속에서는 나쁜놈을 응징하고 싹 쓸어버리니 통쾌할 수 밖에요.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의 홍콩영화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속속 수입이 되었고 그 와중에 스타의 이름값에 기댄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들도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영화 <재전강호>도 그러한 영화 중의 하나입니다.
유덕화의 사진과 이름을 크게 내세우고 있지만 영화 속 유덕화의 비중 자체는 적습니다. 왕년에 한가닥 했던 주인공 아룡(등광영)을 추종하는 철부지 갱스터로 나오지요. 비중이 큰 것은 악역을 맡은 임달화인데, 요즘 한국영화 <도둑들>에서 로맨틱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악당으로 나옵니다.
영화의 내용을 대충이나마 훑어본다면 이렇습니다.
제작자이자 주인공을 맡은 듬직한 체격의 등광영이 연기한 아룡은 차이나타운의 유명한 갱인데, 이탈리아 마피아와의 세력 다툼 끝에 아내(오가려)를 잃습니다. 암흑가의 삶을 버리고 새출발하자던, 아룡의 아내는 위험에 빠진 아룡을 구하기 위해 자동차를 몰고 이탈리아 마피아 사이에 뛰어들고 결국 어린 딸아이 하나를 남겨놓고 죽고 말지요. 분노한 아룡은 마피아 세력을 상대로 총질을 하게 되고 치열한 총격전 끝에 마피아 보스를 살해합니다. 마피아든 뭐든 사람을 죽였으니 감옥에 가야겠지요.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감옥에서 나온 아룡은 암흑가의 변해버린 정의와 잃어버린 딸 아이의 행방 때문에 번민하게 됩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반항기 가득한 소룡(나미미)인데 소룡은, 아룡의 딸 가가의 행방을 아는듯 합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 가득한 문제아 소룡은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니는데 아룡(등광영)은 딸아이의 행방을 알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소룡을 보호해주기에 이릅니다. 문제는 소룡과 트러블이 생긴 집단, 소룡을 혼내주려다가 소룡을 보호해주는 아룡과도 트러블이 생긴 집단이 조직 내에서 떠오르는 신흥집단, 바로 아방(임달화)의 세력이었던 것이지요.
영웅본색, 첩혈쌍웅에서 그러하듯 의리와 도의를 중시하는 암흑가에도 비열함과 잔인함을 무기로 삼는 세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실 살인과 협잡, 밀수와 성매매, 위조지폐와 마약거래가 주 업무인 암흑가에서 의리와 도의를 중시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낭만적 허구일테지요. 그런 낭만적 허구에 반(反)하는그 추잡하고 비열한 현실 세계를 응징하며 낭만적 환상의 세계로 되돌려놓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영화들이 갖고 있는 재미일 겁니다. 아방(임달화) 세력은, 조직 내 직속 상관은 물론이거니와 오랜 감방 생활 끝에 돌아온 왕년의 총잡이 아룡(등광영)까지 제거하려 듭니다. 영화이니만큼 악(惡)은 제거되어져야겠지요. 노태우, 김종필과 나란히 손을 잡은 양김이 그러하듯 어정쩡하고 미적지근한 승리는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렵습니다. 영화 속 권선징악, 사필귀정이란 모름지기 화끈해야할 것입니다.
왕년의 전설적인 갱스터 아룡을 추종하는 풋내기들은 악인을 제거하려는 아룡을 따라나섭니다. 그 무리들 중 하나가 유덕화인 것이지요. 무적의 파트너 유덕화, 등광영의 거대한 진혼곡 / 최후의 혈전을 위해 친구 난 자넬 선택했네! / 이보게 친구, 자네 혈육을 찾는데는 내 목숨이 필요해. 그 빚을 어떻게 할 건가! 같은 카피가 반은 맞고 반은 구라인 것이 영화 속 아룡(등광영)과 아화(유덕화)의 관계는 파트너요 친구라고 보기에는 엄청난 짬밥 차이가 있습니다. 유덕화는 영화 초반, 감옥에서 돌아온 아룡의 환영식 장면에 잠시 나타났다가 이후 후반부 총격전에 나타날 뿐입니다. '등광영'이란 사람이 워낙 홍콩 연예계에 대단한 사람이다보니 그런 식으로 톱스타 유덕화가 품앗이 출연을 해준 것이겠죠. 유덕화의 이름값이 있으니 여기저기 많이 팔렸을테고 제작자인 등광영이야 적자를 피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름값 있는 스타가 급조된 듯한 캐릭터로 출연함으로 인해 전체적인 영화의 밀도는 엉망이 되고 말았지요.
잃어버린 딸을 찾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부인하는 딸의 미묘한 관계라든지 내가 당신의 딸이요 당신은 나의 아버지라는 고백이 진짜 딸이라서 그런 것인지 앞으로 딸과 아버지의 관계로 생각하겠다는 유사 가족으로서의 고백인지... 제법 그럴듯하게 전개될 수도 있었을, 이 영화만의 이야깃거리는 홍콩영화 특유의 스타 끼워팔기와 과다한 총격씬으로 인해 매몰되고 맙니다. 영웅본색 시리즈가 암흑가의 배신과 암투, 응징의 스토리와 형제애와 버무려 잘 녹여냈듯 이 영화 역시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부정(父情)과 암흑가의 이야기를 잘 버무릴 수 있었을텐데 제법 그럴듯하게 그릴 수 있었던 이야기는 막판의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액션 연출로 인해 전체적인 영화의 급을 떨어뜨리고 말았지요.
남자다운 호방한 외모를 가진 등광영은 그 시절 주윤발 못지않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주먹을 날리고 총을 쏘아대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의 감독은 오우삼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총격전이라고 해도 CF처럼 세련되고 발레처럼 우아한 영상미로 관객을 매료시키던 오우삼과 달리 이 영화는 끝으로 가면 갈수록 목불인견의 꼴을 보여주지요. 방탄처리된 대형 트럭에서 기관단총을 연신 쏘아대는 등광영, 유덕화의 모습은 폭력 연출의 미학은 탄알의 갯수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악역인 임달화가 지휘하는 악당들의 모습은 또 어떻게나 전형적인지 영화의 끝으로 가면 갈수록 영화 꼴이 말이 아닙니다.
아무튼 이렇게,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톱스타 유덕화까지 출연시켜 영화 한 편 뚝딱 만들어서 수출까지 해낸 등광영은 제작자로서의 센스를 발휘하여 시나리오 작가였던 왕가위를 영화감독으로 데뷔시키는데 그 영화가 바로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가 출연했던 열혈남아, 이름하여 몽콕하문이랍니다. 홍콩 영화판의 실력자 등광영은 열혈남아의 성공에 고무되었는지 더 큰 자본, 더 많은 스타를 끌여들어 왕가위의 새 영화를 제작하기에 이릅니다. 그게 바로 <아비정전>이었는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기존의 홍콩 느와르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였지요.
영웅본색, 첩혈쌍웅, 미스터갱, 지존무상 등의 당시 홍콩발 흥행영화들보다는 오히려 훗날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더 닮았다고까지 볼 수 있는, 상실과 그리움, 불안과 애련을 다룬 <아비정전>은 그 시절 홍콩영화들이 국내 개봉할 때 으레 그러하듯 형제며 의리며 자극적인 문구로 소개되었고 그 결과 환불 소동이 벌어졌다나 극장이 난장판이 되었다나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남기게 되었지요. 바다 건너 관객들이 이럴진데 제작자이자 홍콩 영화판의 실력자인 등광영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혹자는 왕가위의 아비정전이 등광영의 수명을 앞당기기도 했다고도 하는데 당시 <아비정전>이 가져다준 충격을 생각하면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싶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화려한 캐스팅과 그 시절 으레 그러한 홍콩영화 특유의 자극적인 광고문구에 낚여서(!) 당연히 액션영화인줄 알고 <아비정전>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왔다가 장국영이 혼자 맘보춤을 추는 장면까지 보고 끄고 말았었더랬습니다. 300원, 500원 정도의 비디오 대여비를 지출한 사람도 충격을 받았으니 영화 제작을 맡았던 등광영의 충격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왕가위의 걸작 <아비정전>을 본의 아니게 제작해버린 등광영은 유덕화보다 머리 반 개는 더 큰 건장한 체구와 젊은이들 부럽지 않은 건강해보이는 얼굴색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교적 이른 나이인 65세를 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지요. 혹자는 왕가위 때문에 5년 일찍 죽었다고 말하기도 한다는데 재전강호 같은 영화를 백 번 제작하느니 본의든 아니든 아비정전을 제작한 것이 영화사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비정전을 제작해서 5년 일찍 죽었다고들지만 아비정전의 제작자로 50년 넘게 영화사적으로 기억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참고로, 영화 속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소녀로 나오는 나미미는 이후 장학우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그 장학우는 등광용이 제작하고 왕가위가 연출한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에 연이어 출연했고 이후 왕가위의 동사서독에서 홍칠공 역을 맡기도 했었지요.
반군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던 YS가 타도의 대상이던 노태우와 손을 잡고 DJ가 516 쿠데타의 설계자 김종필과 협력하듯 정치판은 민중의 바람과 달리, 예기치 않게 흘러갑니다. 정치판의 그런 이합집산을 보고 강호의 도(道)가 땅에 떨어졌군!이라고 한탄하며 비디오 대여점을 돌며 보고 또 보게 만들던 당시의 홍콩 느와르 영화들. 보수 세력이 경제 민주화를 외치고 진보 세력이 보수의 장자방을 영입하고 '진보의 아이유'라 불리던 사람이 아이유가 아니라 '처키'임이 밝혀지고 성인군자처럼 여겨졌던 신진 세력의 각종 흠집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작금의 혼란스러운 정치판은, 선악이 분명한, 아드레날린과 카타르시스 충전 100% 그 자체였던, 그 시절 홍콩 영화를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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