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은백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일찌감치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간 뒤, 마치 도인과도 같은 지혜로운 할아버지와, 그의 그림자와도 같았던 할머니 아래에서 자란 은백은, 순수한 지혜만을 받아먹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뒤, 얼마간 실종된다. 그리고, 마치 거짓말처럼 다시 나타난 은백의 머리카락은 노인의 그것처럼 새하얗게 세어 있었다. 예닐곱살에 머리가 하얗게 세고,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 말투마저 고매했던 어린 은백이는 실종되있던 기간동안 선계라는 곳에 다녀왔다는 말을 한다. 신선들이 노닌다는 선계에서 가져왔다는 그림 족자를 꺼내드는 은백. 그림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신선의 말을 듣고 왔다고 했다. 은백의 아버지는 전쟁터에 다녀온 뒤, 부모님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버리고 도시로 나가 있다가 은백의 할머니, 즉 자신의 모친상을 마친 뒤에야 은백을 데리고 서울 집으로 데려간다. 은백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선계에 다녀왔다는 은백이 미쳤다고 생각하며 정신병원에 집어넣는다. 이미 선계에 다녀와 진정한 아름다움과, 삼라만상의 이치를 접했던 은백에게 이 세상은 도무지 손 댈 수 없는 거대한 종양 덩어리와도 같았을 터. 족자 안의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 세상을 헤매이기 시작한다. 그의 헤메임은 인간사에 작은 파문들을 일으키며, 그 파문과 맞닿아있는 인연들과 이리저리로 얽히게 된다.
한 편의 선문집과도 같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외수 선생은 그 뿌리부터 극히 자연주의적인 동양철학, 특히 한국철학에 맥을 두고 있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흔히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도를 아십니까?' 라고 묻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것들이다. 신라시대 이래로 불교는 도교와 민간신앙이 모두 혼재되어있어, 사실상 한국철학은 동양신앙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불교, 도교, 무속에 왠만한 전통적 샤머니즘까지 모두 모여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외수 선생은 그런 한국 신앙의 이치에 어느정도 맞닿아있는 사람이고, 글재주까지 있어,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흥미롭게 글로 풀어내는 재주를 지닌 사람인 것이다. '벽오금학도' 는 그런 이외수 선생의 철학관이 총 망라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은백이 손에 들고 헤매이는 '그림' 은 인간이 한 생을 살면서 쥐고 있는 하나의 화두와도 같다. 그 화두는 어떤 자에게는 돈, 어떤 자에게는 색, 어떤 자에게는 능력이다. 누군가는 고상하게 예술, 명예, 꿈 따위라고 말하겠지만, 인간에게 있어 그 본질은 크게 변함이 없다. 불교에서는 그런 모든 집착들을 버려야만 한다고 설파하고, 이외수 선생 역시 이 작품을 위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또한 많은 '인연'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정말로 '인연' 이라는, 삶이 반복되면서 얽힌 거대한 자연의 흐름과 규칙이 있다면, 인간이 과연 그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 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화엄경 동종선근설에 일천 겁 동종선근자는 일국동출이며 이천 겁 동종선근자는 일일동행이라는 말이 있다. 일천 겁의 같은 선근을 인연으로 해서 같은 나라에 태어나고 이천 겁의 같은 선근을 인연으로 해서 하루를 동행한다는 뜻이었다. 일 겁은 사전적으로 말하면 천지가 한 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인데 불교에서는 버선발로 승무를 추어 바윗돌 하나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연이란 얼마나 지중한 것인가?"
이 구문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어마어마한 인연을 안고 태어나는 셈이다. 그러니,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그 한사람을 어찌 소흘히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자의로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맺지 않고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두 연결되어 있는 셈인 것이다.
이 작품 안에서도 주인공 은백이 족자를 안고 돌아다니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지나치면서 수많은 인연들을 파생해 낸다. 그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조차, 그 덕분에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생 고생을 하기도 한다.
결국 한없이 펼쳐 나가던 사상과 이야기들은 결국 불교와 도교등 동양사상들이 가지고 있는 중심으로 회귀한다. 먼저 내 자신을 통찰하고, 집착을 버려라.
수많은 고통과 번민 속에서 40여년을 버텨온 은백이 선계로 돌아가지 못한 이유는 그 하나였다. 그 어떤 숭고한 이유를 가지고 있더라도, 집착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단, 한가지 버리지 않아도 될 집착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정화에 대한 집착이리라. 모든 정성을 다해 붓으로서 마음을 정케 하려 했던 등장인물 중 하나인 고산묵월이 그 정성의 댓가로 인연을 얻어 선계로 등선할 수 있었듯 말이다.
조금 장황한 부분도 있고, 워낙 사상, 관념적인 설명들이 많아 관심이 없으면 조금 질려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그런 부분들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무척 유익했다. 마치 조각들처럼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절묘하게 한 곳으로 모이는 연출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역시, 이야깃꾼은 이야깃꾼이라니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갖고있는 삶들이 리얼하고 현실감있어서, 비현실적인 소재와의 간극을 충분히 메꿔주었다. 그런 여러 장치들은 이 작품이 픽션이 아니라 팩트라고 착각할 정도의 현실감을 부여했다.
나에게는 여러모로 아주 재미있었던 작품. 1992년에 초판된 책이 아직까지도 인쇄되고 있다는 기록은 이 작품이 시공을 초월한 가치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
|
작가 본인 특유의 수도자적이고 신비적인 이미지때문인지 그의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배어나는 분위기와 인물의 특성은 독특하고 기괴하다.여러가지 이야기가 산만하게 엮여있으며 거칠고 투박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어떤 틀에 어긋남이 없이 거치는것 없이 백지위에 자유롭게 써내려 간 듯 하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속이 시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교,도교,토테미즘 등의 지극히 동양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몽환적이고 이색적인 분위기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장외인간에서는 사라져버린 달을 찾아헤매이는 청년을 칼에서는 신검을 만들어 우주의 질서를 다시 세우겠다는 꿈을 꾸는 40대 중년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인물들로 보통의 사람들에게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전형적인 약자이며 비주류적인 특색을 가진다. 그는 역설적으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똑똑한 이들은 많지만 점점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삐뚤어져가는 기형적인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초월적인 능력을 소유한 기이한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소년은 선계에서 가져온 그림,벽오금학도를 통해서 어린 날 다녀온 선계로 되돌아가기를 소망하며 그림을 볼 줄 아는 심안을 가진 스승을 찾아다닌다. 절대적 순수와 이상향의 세계인 선계를 쫓는 여정에서 그의 모습은 장외인간의 이헌수와 칼의 박정달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꿈꾸는 세계는 벽오금학도의 선계로 집약되고 있었다. 욕망,소유,이기심,질투,집착 등의 인간적인 정서들에서 모두 벗어버린 해탈과 자유의 경지인 선계,벽오금학도를 희망하고 있었다. 이외수는 인간이 지향해야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그만의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며 설화적인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던지고 있다. |
|
집에 있는 책장에 이 책이 꽂혀있어서 별 기대없이 꺼내서 보았던 책이었는데 손에서 놓지않고 그대로 한권 완독했네요
약간의 판타지같기도 했구요. 근데 오탈자가 가끔씩 보여서.... 최근 발행된게 아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이외수 작가님의 다른 책도 읽어볼까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
|
작가 이외수가 가장 가고싶은 세상! 나또한 가고싶은 세상! 세속에서는 현실 도피라고 말하지만 살아서 갈수 있는 곳이라면 한번쯤 꿈꾸어보고 싶은 세상! 작가의 여러작품중 그의 생각을 가장 직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바로 "벽오 금학도" 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나고 물어오면 당연 작가 이외수가 재미없는 소재도 재미있게 만들기 때문에 충분히 재미는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책속으로 너무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호랑이 담배피는 시절이야 모르겠지만 요즘같아서 책에 너무 심취하여 계룡산 10년,백두산 10년 이렇듯 동굴에서 벽보고 도닦기를 한다면 현실도피자! 내지 미친놈 소리 듣기 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톱니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짜증나고 각종 매연이 나를 무겁게 짓누를때 이것을 읽는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한함을 느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갈수 없을 뿐더러 만일 있더라도 각고의 노력으로 가기위한 수양을 쌓기 전에는 발도 들여놓을수 없는 그곳이기에 차라리 나는 더욱 현실로 돌아와 지금 희망하는 작은 것들을 하나씩 이룸으로서 그곳에 간듯한 행복을 느끼고자 더욱이 마음을 다잡게 했던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