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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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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육조 중 특히 後 4조를 가리켜 "문벌 배경 없는 군인 황제 시대"로 폄칭하지만(우리라기 보다 그 동시대인들의 컨센서스였겠지만) 이 양나라의 창업주 무제 정도면 어느 정도 대외적 위신도 선 인사였고 풍모도 아주 그럴싸한 관록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치술도 노련했거니와 나라 살림 챙기는 수완도 대단해서 오히려 북위와 국세가 역전되는 변곡점이 드디어 마련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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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육조 중 특히 後 4조를 가리켜 "문벌 배경 없는 군인 황제 시대"로 폄칭하지만(우리라기 보다 그 동시대인들의 컨센서스였겠지만) 이 양나라의 창업주 무제 정도면 어느 정도 대외적 위신도 선 인사였고 풍모도 아주 그럴싸한 관록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치술도 노련했거니와 나라 살림 챙기는 수완도 대단해서 오히려 북위와 국세가 역전되는 변곡점이 드디어 마련되는 것 아닌가, 정의는 마침내 승리한다고 정통 황조가 북방 미수복 영토를 되찾아 올 날도 머지않은 것 아닌가 등등 중화 빠들에게 엄청 기대를 부르는 임금이었죠.

그러나.. 정치라는 게 개인의 역량만으로 잘 이뤄지지도 않고, 우리 필멸의 인간들의 눈에 채 보이지도 않는 어떤 대세 같은 것의 등에 타야 대업이 이뤄진다는 게 함정이었죠. 게다가 양 무제 역시 너무 일찍부터 자기 업적에 도취되었는지, 혹은 조루증적 염세주의에 빠졌는지, 자기가 애써 잘 일궈 놓은 정치적 기반과 물적 토대를, 멍청한 2세 후계자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망쳐 버립니다. 이 무렵 위나라(선비의 북위)는 국운에 있어 롤러 코스터를 타는 모습입니다. 남조가 잘 풀리니 우리도 긴장 타야겠다며 국정의 고삐를 죄는가 하면, 반대로 서서히 동서 분단의 망조 그 단서가 보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무렵 볼 만한 건 조충지의 업적입니다. 보통 동아시아 역사에서 수학상의 발견 같은 건 환관이라든가 기술 관료 등 시시한 인물에 의해 이뤄진 게 많은데, 조충지는 번듯한 가문 출신인데다 본인 대에 고위 정무직 관료를 역임한 인물이라는게 특이하죠. 입체도형의 부피는 그 단면적에 비례한다는 카발리에리의 법칙도 조충지가 그 원리적 측면까지 먼저 증명한 걸로 유명합니다. 단지 기술적 지식의 발견이 아니라 명제의 증명에까지 눈뜬 건 이 조충지의 예가 동양에선 거의 유일하죠.

저자께서는 이 무렵을, 중원에서조차 동-서 대립이 만연했던 분열기로 진단합니다(즉, 북위가 지배한 화북, 중원조차 대립상이 관측됨). 사실 중국의 분열기에는 이처럼 북조에서도 분열이 현저해지는 게 보통인데, 5대 10국기만 해도 타이위안 중심의 세력과 카이펑에 웅거한 군벌이 내내 으르렁거리기도 했죠. 이런 흐름이 진정된 건 조광윤에 의해 대륙이 통일된 후입니다. 한참 후 명나라는 강남에서 일어난 황조인데도 화북 동서의 분열은커녕 어떤 지역적 할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아들 주체가 북경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남하한 후 정권을 잡은 상황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동과 서는 사실 춘추 전국 이래 전혀 다른 문화권이 나래를 펴던 지역이고, 동에 제나라나 크게 보아 삼진(晉)이 있었다면 서는 유목 민족 문화 기반의 진(秦)이 터잡은 고장이죠.

이 무렵에는 또한 거진 다 한화가 이뤄진 북위의 선비족에게, 유연이 새로 북방의 도전자로 나서 그 뿌리 깊은 "거울 제국"의 맥락을 이어갑니다. 즉 남북조 시대는 북과 남의 대결 전선 외에, 그 북(北) 위쪽에 또 하나의 북이 있어 위나라를 마치 농경 제국 약탈하듯 공략했다는 뜻입니다. 유연의 활약상과 위세는 이 무렵 결코 무시할 게 못 되었습니다. 이처럼 북위가 특유의 활력을 잃고, 또 유목 민족 고유의 청렴성과 강직한 기풍을 잃은 채, 적폐로 신음하는 중화 제국의 궁정처럼 타락하게 된 건 그것 역시 한화(漢化) 정책의 부작용이라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아무튼 어느 한쪽의 실정(失政)이 다른 편의 승세로 곧바로 이어지지도 않고 안개와 같은 다자 게임이 지속되는 모양은 역사 연구의 입체성을 더하는 매우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v*****7 2016.08.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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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 황제 양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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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북조 시대.수많은 나라들이 일어섰다 멸망한 시대라서 그다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은 시대이기도 하다.남북조 시대 중, 남조에 속하는 나라인 양나라는 다른 남조 국가들과 비교해 보아도, 매우 특이한 나라다.건국자인 양무제가 보살 황제라 불릴 정도로 불교를 좋아했기 때문이다.양무제는 불심이 매우 깊어서, 자신을 직접 절에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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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북조 시대.


수많은 나라들이 일어섰다 멸망한 시대라서 그다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은 시대이기도 하다.


남북조 시대 중, 남조에 속하는 나라인 양나라는 다른 남조 국가들과 비교해 보아도, 매우 특이한 나라다.


건국자인 양무제가 보살 황제라 불릴 정도로 불교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양무제는 불심이 매우 깊어서, 자신을 직접 절에 바쳐 승려나 노비가 되겠다고 할 만큼 불교를 애호했다.


그래서 양나라의 수도인 건강에는 거의 수천 채나 되는 사찰들이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강남의 비옥한 토지와 풍족한 산물 때문에 양나라는 북방의 북위보다 더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이었을까?


인도에서 왔다는 유명한 승려인 달마대사는 양무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공덕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양무제는 놀라 사람을 보내 달마대사를 잡으려 했으나,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는 유명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비록 전설이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진실이 담겨 있었다.


양나라가 이룩한 번영이 보기에만 요란한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양무제 본인은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매우 관대했다. 


얼마나 관대했느냐 하면 자기를 죽이려고 모반을 꾸민 동생을 용서해주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지나치게 관대한 정치만 하다보니, 죄인을 처벌하는 엄정함이 부족해서 양나라의 정치는 차츰 문란해지고, 사회는 소수의 부유층들이 장악하여 대다수 백성들은 빈민으로 전락해 버렸다.


요즘으로 치자면 소수 재벌들이 나라 안의 모든 경제를 다 장악해서 국민들 대다수가 가난해지는 일과 같다고나 할까?


좌우지간 그렇게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던 양나라는 외부로부터 불어닥친 충격을 받고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 끝은 참담한 전쟁과 극심한 대혼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해서 건강의 번영은 사라지고, 대신 들어선 진나라도 같은 길을 걷다가 망하고 말았다.


중국의 정사인 자치통감이 정식으로 국내에서 번역된 줄은 얼마 전에야 알았는데, 비로소 손에 넣게 되어 매우 기쁘다. 부디 중국의 다른 고전들도 더 번역되어, 국내 인문학의 수준을 올려주기 바란다.

x***2 2016.11.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