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흔히 육조 중 특히 後 4조를 가리켜 "문벌 배경 없는 군인 황제 시대"로 폄칭하지만(우리라기 보다 그 동시대인들의 컨센서스였겠지만) 이 양나라의 창업주 무제 정도면 어느 정도 대외적 위신도 선 인사였고 풍모도 아주 그럴싸한 관록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치술도 노련했거니와 나라 살림 챙기는 수완도 대단해서 오히려 북위와 국세가 역전되는 변곡점이 드디어 마련되는 것 아닌가, 정의는 마침내 승리한다고 정통 황조가 북방 미수복 영토를 되찾아 올 날도 머지않은 것 아닌가 등등 중화 빠들에게 엄청 기대를 부르는 임금이었죠. |
|
중국 남북조 시대. 수많은 나라들이 일어섰다 멸망한 시대라서 그다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은 시대이기도 하다. 남북조 시대 중, 남조에 속하는 나라인 양나라는 다른 남조 국가들과 비교해 보아도, 매우 특이한 나라다. 건국자인 양무제가 보살 황제라 불릴 정도로 불교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양무제는 불심이 매우 깊어서, 자신을 직접 절에 바쳐 승려나 노비가 되겠다고 할 만큼 불교를 애호했다. 그래서 양나라의 수도인 건강에는 거의 수천 채나 되는 사찰들이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강남의 비옥한 토지와 풍족한 산물 때문에 양나라는 북방의 북위보다 더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이었을까? 인도에서 왔다는 유명한 승려인 달마대사는 양무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공덕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양무제는 놀라 사람을 보내 달마대사를 잡으려 했으나,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는 유명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비록 전설이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진실이 담겨 있었다. 양나라가 이룩한 번영이 보기에만 요란한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양무제 본인은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매우 관대했다. 얼마나 관대했느냐 하면 자기를 죽이려고 모반을 꾸민 동생을 용서해주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지나치게 관대한 정치만 하다보니, 죄인을 처벌하는 엄정함이 부족해서 양나라의 정치는 차츰 문란해지고, 사회는 소수의 부유층들이 장악하여 대다수 백성들은 빈민으로 전락해 버렸다. 요즘으로 치자면 소수 재벌들이 나라 안의 모든 경제를 다 장악해서 국민들 대다수가 가난해지는 일과 같다고나 할까? 좌우지간 그렇게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던 양나라는 외부로부터 불어닥친 충격을 받고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 끝은 참담한 전쟁과 극심한 대혼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해서 건강의 번영은 사라지고, 대신 들어선 진나라도 같은 길을 걷다가 망하고 말았다. 중국의 정사인 자치통감이 정식으로 국내에서 번역된 줄은 얼마 전에야 알았는데, 비로소 손에 넣게 되어 매우 기쁘다. 부디 중국의 다른 고전들도 더 번역되어, 국내 인문학의 수준을 올려주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