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이 良書를 讀書하면서 그 價値가 稀釋되는 참으로 불편한 것이 있는데 倍判이 너무 작고, 語彙풀이 위치가 尾註인 점이다. 01-1. 尾註로 편집이 돼 있으니 독서를 하는 동안 해당 語彙가 나올 때마다 그 뜻풀이를 보려고 매번 뒤로 가야 하니 흐름이 끊어지고 번거롭기까지 하였다. 01-2. 倍判을 키우고 ‘脚註’ 형태로 했더라면 이런 불편함이 사라지거나 대폭 감소할 것이고 독서의 재미가 倍加됐을 것이다.
02. 다른 卷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이 冊에서 느낀 점...各 卷에 등장하는 主要 登場人物 紹介를 별도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사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음은 勿論이고 다른 卷에 등장하는 인물과 關聯된 사건과 聯繫 및 比較를 할 수 있기 때문이고 讀書한 지 시간이 한참 經過한 다른 卷과 連繫하며 記憶을 살려 효과적인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02-1.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스스로 解決策을 樹立해 독서하는데...以前 卷에서도 그랬지만 이 9권에서도 目次에 이 9권에서 활동한 등장인물을 적는 것을 하고 있다. 읽다가 전개 과정이 궁금하면 등장인물을 찾아보려고...
03. 農民軍 蜂起 소식을 접한 朝廷 國王(高宗)과 重臣들의 面面을 보면 앞으로 나라의 운명이 예상될 수 있었다...第2章, 03-1. 閔泳駿같은 부패하고 貪虐한 氏血族에게 휘둘리는 臣僚들이 대부분임에도 그 중에 그나마 趙秉世, 鄭範朝같은 이는 “蜂起의 原因이 貪官汚吏들에게 있으며 백성을 어루만질 대책을 세워야 하며 根本的 改革을 해야 한다”라고 高宗에게 奏請하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 伏地不動하는 대부분의 부패한 臣僚들 때문에 改革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04. 같은 東學徒, 같은 下流層, 같은 農民軍임에도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꼈다...71쪽, 04-1. 저 당사자들 탓이라기보다 2000년이 넘게 지속된 오랜 신분사회 탓에 無意識 중에 思考方式이 저리 된 것이다. 04-2. 壬辰倭亂 때도, 丙子胡亂 때도, 韓末(朝鮮末) 의병에서도 양반층 義兵이 常民 또는 賤民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史錄이 생각났다.
05. 農民軍이 夜襲, 夜間攻擊을 敢行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監營軍과 褓負商軍을 刺殺, 打殺, 擊殺 등을 하면서 매우 통쾌해 하는 장면에서....오랜 세월....얼마나 많은 賤待, 虐待 등을 받은 것에 대한 모습을 그렸고 同感했다...104~105쪽,
06. 頭領들과의 回議에서 全琫準이 한 말....“민심은 뜬구름...말과 행동이 불일치...”라고 한 말....이 표현은 지금도 매우 유효하다....111, 113쪽 06-1. 選擧 때도 그렇고, 평소 輿論 指標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아침 여론과 저녁 여론이 다르게 나오듯...
07. 농민군의 擧兵에 있는 大義名分에...‘불필요한 殺傷을 금하고 敵을 만들어 또다른 怨恨을 사는 행동을 하지 말라’ 라는 指針을 담은 벽보를 통해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吳기창, 崔낙수 패거리는 怨恨을 私的 膺懲(유배걸, 정익수 등을 살해...放火) 을 하여 또 다른 분란을 惹起하는 모습에 불안하고, 불편하고, 화도 났다....117~123쪽 07-1. 이들의 行悖가 이미 여러 차례 있었고...頭領들의 農民軍 合流도 拒否하며 獨自행동이 상대측에 농민군을 한묶음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07-2. 全琫準의 분노어린 표현 속에서 전쟁과정에서 將次 저 패거리들로 인해 펼쳐질 副作用이 절절하게 나타났다.
08. 作家가 설정하긴 했겠지만...전쟁 속에서도 서로에게 好感이 조금씩 피어나는 全琫準과 吳蓮葉과 軟粉紅 和色 장면은 주변의 맞장구, 호응, 추임새와 맞물려 참 보기 좋았다...167~168쪽,
09. 農民軍에게 怯을 먹고 이미 절반 가까운 脫營兵에다 본인 마저 萎縮돼 鎭壓 出動을 躊躇하는 洪啓薰....본인의 威信과 威嚴을 세우겠다며 엉뚱한 사람에게 陋名을 씌워 金始豊이나 鄭錫禧같은 官軍을 죽이는 無理手를 둔 모습에서 어이가 없고 화가 나고 哀惜했다....第7~8章 09-1. 특히 어릴 적 친구였던 裨將 鄭錫禧를 만났다는 것을 認知하곤 온갖 죄를 뒤집어씌워 梟首를 한 장면에서 너무 가슴 안타까웠다. 09-2. 본인의 힘으로 농민군을 鎭壓할 수 없음을 절감하니 奸臣 閔泳駿을 통해 수시로 淸軍 支援을 懇請하는 대목에선 卑怯하기 그지없고 나라 앞날을 조금도 생각할 줄 모르는 옹졸한 모습을 보였다.
10. 이전에도 그런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蜂起하자는 데는 意氣投合하는 과정에서 全琫準과 金開南 두 사람이 서로 결이 다른 모습에서 불안했다...270~280쪽 10-1. 金開南이 임금의 綸音을 들고 온 宣傳官(李효응, 裵은환)을 斬首한 것이나 임금의 內帑金을 官軍에게 전달하려다 체포된 宣傳官(李주호)을 斬首하는 과정에서 每事 深思熟考하며 결정하는 全琫準과 餘他 頭領들과 어떤 협의 없이 獨斷으로 電光石火, 一刀兩斷으로 처리를 하니 갈등이 표출되는 모습을 보니...앞으로 作戰 중에 支障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1. 古阜 戶房에게 납치돼 不安한 同居를 하던, 그런데 洪啓薰의 指示로 戶房이 감금된 뒤 혼자 남은 유월례가 凱旋將軍으로 全州城 안으로 入城 중이 남편 만득이의 모습을 보고 기쁨에 그런데 가까이 갈 수 없는...하염없이 울고 있는 모습에서 참으로 마음이 아렸다...296쪽,
12. 史實 與否와 無關하게 왕비(閔妃라고 卑稱한 것도 불편)가 남편(高宗)을 업신여김 그리고 眞靈君에게 過度하게 의지하는 모습, 國政 關與하는 이 여인의 드셈으로 향후 큰 혼란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320~325쪽,
13. 戶房 때문에 罪人아닌 죄인이 되다보니...먼발치로...자신을 돌봤던 李邦彦과 남편 만득이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도 다가가지 못하고 게다가 성난 상인들이 저지른 放火로 잿더미가 된 居所를 보곤 처량한 신세가 된...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유월례를 보니 참 悲劇도 이런 비극이 있겠나 싶다...305~315쪽 13-1. 이런 슬픔 속에서도 古阜에서 함께 살았던 경옥와 강쇠네와 遭遇는 좋은 兆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